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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110화 (110/150)

110화. 용을 삼킨 신 (3)

온통 죽음이 내려앉은 듯 회색의 땅.

지평선 끝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인간들이 사슬을 매단 돌을 끌고 걷고 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고통에 젖은 얼굴에, 흙먼지와 땀이 뒤섞여 번들거리는 나체였다.

“빨리빨리 움직여!”

기괴하게 뒤틀린 몸을 한 괴물이 채찍을 휘둘렀다.

“으으…….”

“아아아아…….”

사람들이 울상이 된 채로 힘겹게 돌을 끌었다. 돌을 버리고 싶어도 사슬이 몸을 꿰뚫고 연결되어 있어 어쩔 수가 없다.

목적지는 멀리 보이는 산의 정상.

산의 정상에는 천국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성채가 보였다.

그러나 막상 산에 다다르면 돌과 함께 다시 내려갔다가… 반대편 산으로 올라가는, 무한히 반복되는 굴레.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번에는 진짜 천국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채찍을 피해서 걸을 수밖에 없는 지옥인 것이다.

쿠웅!

반쯤 넋이 나간 채 걷고 있던 남자의 앞에서 흙먼지가 폭발했다.

“으악!”

발라당 넘어진 남자의 앞에서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지닌 남자가 나타났다.

그가 뚜벅뚜벅 다가와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가 타나토스라는 놈의 구역인가?”

“예……?”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 멍하니 보는데…….

옆에서 채찍을 든 지옥의 노역장이 다가와 으르렁거렸다.

“네놈! 산자가 어떻게 명계에 왔지!”

그 순간, 남자의 몸이 잔상을 남기고 미끄러져 노역장의 목을 붙잡았다.

노역장의 몸이 머리 두 개는 더 큰데도 불구하고, 남자는 가뿐히 그를 들어 올렸다.

“크아아!”

노역장이 손에 든 채찍과 날카로운 발톱이 난 발로 그를 때리고 걷어찼다. 그러나 남자는 몸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듯 꿈쩍도 안 했다.

“여기가 타나토스의 구역이냐?”

“네, 네놈은 뭐냐!”

“대답이나 하지?”

뿌드득.

손아귀가 더 조여들며 기괴한 소리가 났다. 노역장이 거품을 물고 끄덕였다.

“마, 맞…다!”

“좋아.”

빠직!

목이 부러진 노역장의 몸이 털썩 떨어졌다. 떨어진 몸이 땅에 닿은 순간 새카만 재가 되어 흩날리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제대로 왔군.”

남자가 펄쩍 뛰었다. 순식간에 작은 점이 된 남자가 산으로 떨어지더니…….

콰앙!

운석이 떨어진 듯 산이 폭발했다. 폭발한 토사가 하늘로 솟구치고, 구름이 단숨에 걷히며 푸른 하늘이 원형으로 드러났다.

쩔그렁!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다. 바위를 끌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몸을 내려다보고 경악했다.

몸을 꿰뚫고 있던 사슬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엇?”

“어엇……!”

“아!”

“자…자유다아!”

함성이 평원을 채웠다.

* * *

밝은 금빛 광채가 흐르는 구름 위.

진줏빛을 띤 기둥이 천장을 받친, 고대 그리스 풍의 신전들 사이로 두 천사가 날았다.

손에는 각각 하프와 나팔을 들고 네 쌍의 날개를 펄럭이는 모습이 우아했다.

“보호 결계가 깨진 게 몇 년 만이지?”

“200년 만인가?”

“어떤 놈인지 겁을 상실했군… 이곳이 메타트론 님의 영역이라는 걸 알면 아마 기겁할 테지.”

“오, 그래?”

“물론…….”

말을 하던 천사가 움찔했다.

‘오, 그래?’하고 들려온 물음이 동료의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옆에서 한 남자가 날고 있었다.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옆으로 누운 태만한 자세인데… 엄청난 속도로 날고 있던 두 천사와 나란히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두 천사가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뭐, 뭐냐! 네놈은!”

“정체를 밝혀라!”

똑바로 선 남자가 양팔을 벌렸다. 수백 개의 마법진이 일시에 남자의 뒤로 펼쳐졌다.

별이나 은하를 보듯… 장엄한 광경.

새카만 머리 아래에서 붉은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마왕.”

이현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마법진에서 각기 다른 수백 개의 마법이 두 천사와 그 뒤에 있는 신전들을 향해 발사됐다.

천사들은 필사적으로 힘을 모아 하프를 튕기고 나팔을 불었으나…….

몇 개의 마법을 상쇄하는 데 그쳤을 뿐.

순식간에 마법에 휩쓸렸다.

“으아아!”

“아아아악!”

* * *

징글벨~ 징글벨~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리는 거대한 백색의 성.

빨간 모자를 쓴 요정들이 눈이 덮인 정원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요정들~”

정원을 이룬 꽃들도 풀잎을 흔들며 노래에 장단을 맞추고.

성에 달린 거대한 시계도 초침 소리 대신 콧노래를 불렀다.

“음~ 착한 어린이에게는 좋은 선물을! 나쁜 아이들에게는 절망을 준다네!”

징글벨~ 징글벨~

루돌프가 끄는 썰매 위에 요정들이 열심히 선물을 날랐다.

썰매가 날아올라 게이트를 열고 사라지면, 다시 새로운 썰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동화 같은 낙원…의 위로 붉은빛이 비쳤다.

“응?”

하늘을 올려다본 요정 하나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하늘이 불타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소리와 막대한 질량감에 너무나 압도적이라 현실감이 없었다.

성의 바로 위로, 성보다 훨씬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고 있었다.

쿠르르르!

성을 보호하던 보호막이 습자지처럼 쉽게 찢어졌다.

“와악!”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요정들이 선물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도망쳤으나…….

콰아앙!

직경 수십 킬로미터의 거대한 불덩어리가 성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다. 충격파가 대지를 휩쓸고, 수십 킬로미터까지 치솟은 토사가 대기를 덮으며 살아남은 생명체들에게 암흑과 추위를 선사했다.

초록과 푸름으로 가득했던 차원이 새카만 돌덩어리로 바뀌는 데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 * *

“호호호호! 그래, 그래서… 이게 뭐라고?”

산타클로스와 일곱 성좌들 앞에는 거대한 유리관이 있었다.

관 안에는 야광처럼 발광하는 액체가 가득 들어찼고… 그 중간에 몸을 웅크린 빈이가 둥실 떴다.

눈을 꼭 감고 늘어진 모습은 박제된 조형물처럼 섬뜩했다.

하물며 대상인 빈이는 아기.

보편적인 윤리관을 지닌 자라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릴 만큼 잔인한 모습.

그러나 보는 성좌들의 시선에 떠오른 것은 호기심뿐이었다.

유리관의 앞에 있는 작은 모니터에 불이 켜졌다. 초록색 글자들이 비전공자들이 흉내 낸 코딩 화면처럼 난잡하게 나타났다.

모니터의 양옆에 붙은 스피커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힘의 배분 시스템. 레비아탄을 녹여 우리 일곱 성좌 모두에게 힘을 공평하게 배분한다.]

산타는 거품 같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썹을 올렸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레비아탄은 잡아먹지 않으면 힘을 얻을 수 없는 게 아니었나?”

[맞으면서 틀림. 이 시스템은 우선 나라는 성좌를 통해 힘을 해명하고 분해함. 해명된 힘을 여섯에게 분배.]

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타나토스가 물었다.

“클클클… 네놈이 힘을 독식한 후 찌꺼기를 나눠준다… 클클… 그리 들리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무감정하게 대답했다.

[나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대안을 제시해도 좋다.]

일곱 성좌가 서로를 마주 보는데…….

갑자기 산타의 주머니에서 요정 하나가 튀어나왔다.

“산타.”

“응? 뭐냐?”

“1번 공장과 연락이 안 됩니다.”

“연락이 안 된다니?”

“직접 가보려고도 했는데 이동이 안 됩니다. 차원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요.”

“호호호… 뭔가 착각이겠지!”

그때 타나토스의 앞으로 검은 수정구가 떠올랐다.

수정구의 표면에서 안개가 걷히더니 흉측하게 일그러진 해골의 얼굴이 나타났다.

-왕이시여! 습격입니다! 명계의 본성이 함락됐습니다!

차례차례, 성좌들의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폐하! 공포의 눈이 부서졌습니다! 테러로 추정됩니다!

[양자 확률 변동기 파괴. 병렬 회로 37% 파손.]

-괴물! 죽지 않는 괴물이… 으아아악!

-크르르르르!

타나토스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다들 볼일이 생긴 것 같군.”

그제야 산타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거의 동시에 각기 다른 성좌들의 영역이 습격당한 게 그냥 우연일 리가 없다.

“우선 각자 차원을 살피고 다시 모입세!”

산타는 황급히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가 다 열리기도 전에 뚱뚱한 몸으로 허둥지둥 비집고 들어가니… 수백의 요정들이 발치로 우르르 달려왔다.

“산타!”

“1번 공장과 연락이 안 돼요!”

“산타! 이상해요! 차원 이동이 안 돼요!”

“그, 그래! 알았다! 알았어! 일단 비켜라!”

뱃살을 출렁이며 달려간 산타가 차원 이동 장치로 다가갔다.

산타는 마음에 드는 행성을 운석이나 다른 외부의 개입에서 지키기 위해 차원을 분리시켜 가두고, 자신과 허락한 자들만이 이동할 수 있는 게이트 생성기로 연결해놓았다.

그와 같은 성좌들이라면 으레 하는 조치였다. 차원이 무너지면 그냥 아끼는 보석을 잃는 수준이 아니라, 그 차원에 머물던 신도들도 함께 잃는 것이다.

신도를 잃는다는 것은 바로 힘을 잃는 것이니… 성좌에게는 존재를 위협받을 수도 있는 큰일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안 돼요!’

게이트 생성기 자체가 고장 났을 수도 있고 그냥 연락이 끊겼을 수도 있다.

1번 공장은 그가 가장 아끼는 차원이었다. 지구에 퍼트리는 선물을 만드는 차원이라 가장 바쁘고 가장 퀄리티가 높다.

‘거기만은!’

제발 별일이 없기를 바라며 산타는 스노우볼처럼 생긴 차원 이동 장치를 조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저절로 눈보라가 치며, 스노우볼의 유리가 사라지고 게이트가 열려야 정상.

그런데…….

기이잉… 쉬이이이…….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며 기계의 작동이 멈췄다.

산타가 오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요정들도 술렁였다.

“뭐야?”

몇 번을 조작해도 마찬가지. 산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단순히 차원 게이트가 파괴된 것이라면 연락은 되어야 했다.

산타는 다시 기계를 조작했다. 차원 게이트가 열리며 새카만 공간이 드러났다.

안으로 발을 딛은 그가 입을 떡 벌렸다.

“어억?!”

아무것도 없는 우주공간에 산타가 벌러덩 주저앉았다.

이동한 차원의 중앙에는 새카맣게 탄 행성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쪽이 어린아이가 베어 문 파이처럼 움푹 파인 채, 초록빛으로 싱그럽던 표면은 실수로 태운 팬케이크 같았다.

운석의 충돌로 생긴 크레이터가 확실했다.

“이, 이럴 수가!”

망연자실한 산타가 크레이터를 보는데… 크레이터 중앙에 떨어져 있는 운석의 모양이 이상했다.

중지를 든 주먹 모양.

세상에서 제일 거대하고 파괴적인 욕설이 행성에 틀어박혀 있었다.

산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눈이 충혈됐다.

“이, 이노오옴!”

산타의 주먹이 냅다 운석을 후려쳤다.

호호 웃는 할아버지 같지만, 그 정체는 인간을 초월한 지 오래인 성좌.

직경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운석이 단숨에 조각나며 파편을 흩뿌렸다.

“마왕! 마왕, 네놈이냐아!”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딴 짓거리를 벌인 놈이 마왕임은 분명하다.

애초에 그 말고 누가 이런 일을 벌이겠나!

하지만… 정말 그놈이 벌인 일이라면…….

분노가 가라앉자 두려움과 의심이 일었다.

“그놈… 대체 어떻게 이곳을 알아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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