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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98화 (98/150)

98화. 크리스마스 대란 (3)

투타타타타…….

새카만 헬기 한 대가 로열 가디언 엔젤 크루즈의 헬리포트에 내려앉았다.

착륙을 유도하던 선원은 물론 지켜보는 선장의 얼굴에도 긴장이 역력했다.

헬기에 붙은 성조기 때문.

부드럽게 착륙한 헬기에서 정장을 여미며 중년의 뚱뚱한 남자가 내렸다.

미국 국방장관 레이드 커스틴!

그리고 뒤를 이어 내리는 남녀.

바티칸의 대주교 주세페 페르난데스와 S급 헌터 ‘성녀’ 예슬.

입이 떡 벌어지는 조합이다.

물론 미리 전달받은 명단을 통해 승선할 사람이 누군지 알고는 있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마왕님은 어디 계시오?”

선장에게 커스틴이 물었다. 바로 인사를 하러 갈 생각인 듯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미국 국방장관이 직접 인사라니…….

처음 봤을 때 이현의 친근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매우 거리감이 들었다.

“아, 지금 수영장에서 따님과 놀고 계십니다.”

“고맙소.”

그 말을 들은 성녀와 페르난데스도 서로 뭐라고 속삭이며 국방장관의 뒤를 따라갔다.

다른 헬기가 뒤이어 착륙했다. 헬기의 측면에 새겨진 커다란 문장은 리본을 문 흑사자.

암흑사회를 지배하는 거두, 블랙벤더의 문장이었다.

이현의 인맥은 정, 재계는 물론 음지에까지 뻗었단 말인가!

긴장한 선원들이 침을 꿀꺽꿀꺽 삼켰다.

착륙한 헬기에서 두 남녀가 내렸다.

쉐도우 로드와 붉은 수녀.

쉐도우 로드는 평소 보던 대로 은색 가면에 시커먼 망토를 걸친 반면, 붉은 수녀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시상식에서 입을 법한 드레스 차림.

붉은 수녀의 미모에 넋을 놓은 것도 잠시.

우는 것 같은 가면의 눈구멍과 눈이 마주친 선장이 흠칫 놀랐다.

쉐도우 로드가 그에게 뚜벅뚜벅 다가왔다.

‘헉! 뭐 잘못 보였나?’

쉐도우 로드가 선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잘 부탁하지.”

“어? 아… 예에…….”

“짐은……?”

“방에 갖다 놓았습니다. 계란이라 생각하고 조심해서 다뤘죠.”

“이현 님은 방에 계신가?”

“수영장에 계십니다.”

“음.”

끄덕인 쉐도우 로드가 아래로 내려갔다.

선원들은 무슨 큰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가슴을 쓸어내렸다.

선장이 허허, 웃었다.

“이거… 정신 바짝 차려야겠구만.”

그때 헬리포트의 앞에 벼락이 내리쳤다.

꽈르릉!

“으악!”

“뜨헉!”

“뭐야!”

놀라 보는데… 벼락이 내리친 곳에서 세 인영이 나타났다.

하얀 정장을 입은 미남 미녀들.

눈에서 묘한 광채가 흘렀다.

“허리랑 등에 찬 저거… 칼 아냐?”

멍하니 보는데 금발을 허리까지 기른 남자가 호쾌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여기가 로열 가디언 엔젤 크루즈인가!”

“예? 아… 예에…….”

“나는 올림… 읍!”

뒤에서 훤칠한 키의 여자가 남자의 입을 막고 나섰다.

“아테나라고 하네.”

명단에 있던 이름이다.

장갑을 낀 손이 초대장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수상쩍은 행색이라 선장은 필요 이상으로 꼼꼼하게 초대장을 확인했다.

그러나 초대장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확인되지 않았다.

“나머지 분들도 확인하겠습니다.”

역시 다른 초대장들도 문제가 없다.

‘뭐지, 이 사람들? 헌터인가?’

스킬… 뭐 그런 게 아닐까. 사장은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았다.

“반갑습니다! 방을 안내해드리지요!”

“오, 좋지! 기왕이면 술과 여자도…….”

퍽!

옆구리를 맞은 아레스가 주저앉는데, 아테나가 다시 나섰다.

“이현 님은 지금 어디 계시죠?”

이 사람들도 바로 마왕을 찾는구나…….

“수영장에 계십니다.”

* * *

로열 가디언 엔젤 크루즈는 어느새 부산이 보이지도 않는 대해에 접어들었다.

맑은 하늘 아래, 그보다 맑은 웃음이 퍼졌다.

첨벙첨벙!

“꺄아~”

빈이가 짧은 다리로 물장구를 쳤다. 병아리 무늬가 그려진 노란 수영복을 입고, 허리에는 캐릭터 튜브를 낀 상태.

래시가드를 입은 이현이 빈이의 튜브를 아래에서 받치고서 흐뭇한 얼굴로 수영을 도왔다.

“우리 빈이 잘한다~”

우리 빈이… 못 하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이거… 우리 빈이, 나중에 올림픽도 나가겠는걸…….”

이현은 진지했다.

너무 재능이 많은 자식을 키우는 것도 힘들단 말이야.

진로를 결정하기가 어렵다.

뭐든 빈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지원해주면 되겠지.

아니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이것저것 다작을 해도 되고.

“후후.”

그때 이현의 옆으로 풍만한 살덩이 두 개가 나타났다.

베요네타가 배영을 하고 있었다.

새카만 모노키니를 입은 모습으로 그녀가 수줍게 물었다.

“주군. 소녀… 이곳에 수영복이라는 것이 있어 입어보았습니다. 어떠신지요?”

“응? 그쪽으로 갈 건데 좀 비켜줄래?”

“…….”

베요네타의 몸이 조용히 침몰했다.

뽀그르르.

“으앗! 베요네타 님!”

지켜보던 남우가 호들갑을 떨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배불뚝이 서양인이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미국 국방장관 레이드 커스틴이었다.

다만… 정복 대신 트렁크 수영복에 하와이안 셔츠만 걸쳐 흔한 관광객처럼 보였다.

직선으로 이현에게 다가간 커스틴이 동네 아저씨처럼 유쾌하게 손을 흔들었다.

“마왕 씨! 초대해줘서 고맙소!”

이현이 수영을 멈췄다.

“응? 누구……?”

“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니 모르겠군. 나 미국 국방장관 레이드 커스틴이오.”

“으응? 아~”

어지간한 사람들은 경기를 일으킬 직함을 듣고도 이현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누가 올까 했더니 국방장관이라.

보고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한 것보다는 높은 사람이 왔다.

딱 그 정도의 감상만 들었다.

커스틴이 씩 웃었다.

“그 옆의 귀여운 아이가 따님이겠군요?”

“아, 그렇지. 빈아, 인사해. 옆집 아저씨야.”

‘옆집 아저씨’라는 말에 커스틴의 눈에 당혹이 스쳤다.

“아조씨.”

빈이가 작은 손을 흔들었다. 커스틴은 금방 웃음을 회복하고서 빈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래. 난 커스틴이라고 한다. 커스틴.”

“커스틴!”

“이야~ 말 잘하는데!”

커스틴이 빈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뒤에서 맑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현 님!”

파란 비키니를 입은 늘씬한 여성이 다가왔다. 허리에는 숄을 둘렀는데 하얀 피부와 긴 다리가 돋보였다.

“오, 이사님? 몰라보겠는데?”

항상 정장 차림만 봤는데 수영복 차림을 보니 색다르다.

지애가 눈웃음으로 인사하고 커스틴을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커스틴? 전에 LA에서 뵌 이후 처음이군요.”

지애가 자연스럽게 커스틴과 이현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열성 팬의 돌진을 막는 매니저 같은 태도다.

“미스 유! 와하하! 더 예뻐지셨군.”

“초대장을 받으신 줄 몰랐네요.”

커스틴이 이현의 눈치를 살폈다.

“미국에서 나만큼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없더군.”

나이 든 노인의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국방장관께서는 참 정력적이시군요. 허허허.”

바티칸의 대주교 페르난데스와 성녀 유예슬이었다. 둘 다 가벼운 수영복 차림. 예슬은 처음 입는 비키니가 어색한지 가디건을 아래로 꾹 누르고 걸어오는 중이었다.

“이거… 두 분께서도 초대되신 줄은 몰랐군요.”

커스틴도 당황했다.

“저도… 말입니다.”

미처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오오! 마왕! 날세! 아레스!”

“…저 시끄러운 놈이 왔네.”

터질 것 같은 가슴 근육을 울끈불끈거리며 다가오는데… 수영장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빈이와 한가롭게 수영을 즐기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것들, 초대하지 말 걸 그랬나?’

미국과 바티칸에 초대장을 보낸 이유는 여론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왕이 인류 배신하면 어떡함?]

[누가 막을 수는 있냐?]

[걸어 다니는 핵무기 같은 건데 게이트보다 위험한 거 아님?]

내심 서운하기는 했지만 당연한 걱정으로 여겨졌다.

언제나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강한 힘을 지닐수록 그렇다.

멸망급 게이트라는 대재앙을 맞이한 인류는 일종의 전 세계적 트라우마로 남은 상황.

게이트를 열고 나온 제국의 괴물들을 보고 그 트라우마가 자극됐을 수도 있다.

말로만 ‘안전하니 걱정 마십시오’ 한다고 누가 믿겠나.

가뜩이나 한국 사람들은 6.25 전쟁을 비롯해 여러 번 비슷한 말에 속아 참사가 일어난 전적도 있고.

그래서 성단들은 물론 미국과 바티칸이라는 영향력 높은 두 나라에 초대장을 보내어 우호 관계를 쌓을 생각이었는데…….

‘귀찮아.’

빈이와의 시간을 쓸데없이 빼앗기는 것 같은 기분이다.

초대했다는 사실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뉴스로도 나갈 테니까… 뭐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이현은 마침 옆으로 온 지애의 어깨를 척 짚었다.

“내게 할 말이 있으면 여기 계신 유지애 이사님을 통해 전해주겠나? 이 사람, 내가 신뢰하고 있거든.”

지애가 화들짝 놀라 쳐다봤다.

이현은 그녀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빈이와 함께 수영장을 벗어났다.

“우리 딸, 아빠랑 딸기주스 먹으러 가자!”

“와앙! 딸기주쯔!”

행복한 목소리가 멀어졌다. 지애에게 아레스를 포함한 사람들의 시선이 와르르 쏠렸다.

지애가 더듬더듬 말했다.

“어… 그럼… 일단 저를 비서라고 생각하시고 말씀해주시겠어요?”

* * *

크리스마스이브.

갑판을 포함한 배 곳곳에 예쁜 장식과 형형색색의 전구가 걸려 반짝였다.

“참, 인간들 취향은 특이하단 말이야. 뼈도 칼도 없는 게 무슨 장식인가!”

아레스의 말에 옆에서 걷던 아테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봤다.

“그건 네 취향이 이상한 거지.”

그녀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손에 잘 포장된 선물상자를 들고 있었다.

헤르메스가 끼어들었다.

“자자, 날 세우지 마세요. 저희는 올림푸스를 대표해서 온 거라고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하다 말고 아테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레스와 헤르메스도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반대편 복도에서 두 성좌가 다가오고 있었다.

프레이야와 로키.

프레이야는 손에 은 재질의 화려한 상자를 들었다.

그녀가 고혹적으로 웃었다.

“어머, 올림푸스 분들이시군요.”

“오랜만이군요, 프레이야 님.”

두 성단 사이에 은근한 불꽃이 튀겼다.

프레이야가 아테나가 품에 안은 선물상자를 보고 조소했다.

“어머, 그 귀여운 상자는 뭔가요? 개껌이라도 들어 있나 보네요?”

“…빈이의 선물이랍니다.”

“아? 아, 그랬군요! 미안해요~ 선물이라는 게 포장도 중요한 법인데… 워낙 대충한 것 같아서… 개껌 같은 게 든 모양새가 아닌가 싶지 뭐예요~ 오호호호!”

아테나가 이마에 힘줄이 돋은 상태로 말했다.

“하긴, 아스가르드는 보수적이라 잘 모를 수도 있겠군요. 저희 올림푸스는 지구의 문화를 존중해 이쪽의 포장 문화를 따랐거든요.”

아테나의 눈이 프레이야의 선물을 흘겼다.

“그런 겉치레만 요란한 상자를 보고 빈이가 문화 차이 때문에 과연 좋아는 할지 걱정되네요.”

파지지직.

두 여신의 눈이 첨예하게 맞부딪쳤다. 그야말로 번갯불이 튀는 듯하다.

아직 파티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전쟁이 벌어질 위기.

헤르메스와 로키가 각각 아테나와 프레이야를 말렸다.

“자자, 들어가십시다! 어서 들어가서 눈도장 찍어놔야죠.”

“여기서 괜히 실랑이라도 벌였다가 마왕 눈에 찍히면 더 골치 아프다고.”

으드득.

두 여신이 이를 갈았다.

하는 생각은 똑같았다.

‘누구 선물이 더 빈이 마음에 들지… 어디 두고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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