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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88화 (88/150)

88화. 올림푸스

쿠웅!

이현이 떠올랐다. 수십 마리의 장어들이 일시에 그에게 쏟아졌다.

쿠어어어!

장어 한 마리가 이현을 집어삼켰다. 바롱 삼디가 시가를 쥐고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아둔하구나! 그것들의 위액은 설령 신의 몸이라도 녹인다!”

그때 바롱 삼디의 바로 앞에 게이트가 열렸다.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은 말끔한 모습의 이현이 게이트에서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윽?!”

퍽!

선글라스가 부러지며 안면 중앙이 주먹 모양으로 움푹 파인 바롱 삼디가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

실크해트가 하늘에서 팔랑팔랑 떨어졌다.

콰앙!

건물에 박힌 바롱 삼디가 코를 잡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옆에서 나타난 이현이 냅다 옆구리를 걷어찼다.

뿌직!

“크억!”

허리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이며 몸이 빌딩을 뚫고 나갔다.

쾅! 쾅!

빌딩 두 개를 뚫고 하늘로 나온 그의 눈에 다시 게이트를 열고 나타난 이현이 보였다.

그러나 이번엔 장어들이 이현을 옆에서 노렸다.

장어의 머리가 단숨에 터졌으나 덕분에 틈이 생겼다.

도로에 착지한 바롱 삼디가 두개골을 들어 올렸다.

“네놈의 결정으로… 이 차원의 인구는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껄껄 웃는 바롱 삼디의 몸에서 붉은 문자들이 피어올랐다. 문자가 몸을 휘감으며 풍기는 강력한 기운에 도로가 뒤틀리고 돌가루가 튀어 올랐다.

갈라진 틈에서 붉은빛이 솟아오르는데… 지옥의 틈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소녀가 너무 얕보인 것 같군요.”

부우우우우!

분노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새카만 벌레떼가 온 사방을 뒤덮었다.

“뭐지?!”

바롱 삼디는 당황해 주위를 살폈다.

거의 모든 좀비가 움직임을 멈췄다.

베요네타가 조소했다.

“별것 없는 힘이로군요. 고작해야 시체를 되살려 조종하는 힘… 게다가 시체들이 내는 힘은 시체 본연의 힘에 제한되죠.”

벌레의 폭풍 속에서 베요네타가 요염하게 걸어 나왔다.

“제 벌레들이 당신의 천박한 시체들을 전부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 품위 없는 움직임은 더 보일 수 없겠죠.”

본래 다수를 상대로 특화된 것이 베요네타의 힘.

바롱 삼디에게는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벌레들에 휩싸인 좀비들이 불이 붙은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다가 무너져갔다.

모든 것이 바롱 삼디의 예상을 벗어났다.

그러나 바롱 삼디는 이를 인정할 수 없었다.

“감히 한낱 마물 따위가!”

“한낱 신 따위가 뭐래.”

파악!

바롱 삼디의 가슴에서 이현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손이 쥐고 있는 것은 붉게 맥동하는 심장.

“네… 네놈……!”

“뒤져.”

콰직!

심장이 터지고, 바롱 삼디의 칠공에서 구더기와 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러났다.

“아니, 이놈 생긴 것 답게 더럽게 죽네.”

손을 터는 이현의 모습에 베요네타의 눈에 살기가 맺혔다.

“감히… 주군, 깨끗이 먹어 치울까요?”

이현이 손을 내저었다.

“아냐. 배탈 나. 하지 마.”

그때 별안간 바롱 삼디의 목이 홱 돌아가 이현을 바라보더니, 그 손이 이현의 가슴을 찔렀다.

“주군!”

파악!

이현의 셔츠가 찢어지며 흑수정 같은 가슴의 비늘이 드러났다.

파직.

비늘에 작은 금이 갔다. 이현이 가슴을 손으로 덮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큭……!”

“흐흐흐흐… 기억력이 좋지 않구나. 내 권능 아래 죽은 자들은 모두 좀비가 되어 되살아난다고 했을 텐데.”

바롱 삼디의 몸이 순식간에 수복했다.

“이 몸 또한……!”

이현이 죽인 육편들도.

“이놈이 감히 주군의 옥체에 손을……!”

달려들려는 베요네타를 향해 이현이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여전히 손을 가슴에 댄 채 이현이 일어났다.

“됐어. 별것도 아니잖아. 다친 것도 아니고.”

“하, 하지만…….”

“짜증 나니까 이놈은 내가 직접 죽여야겠다.”

베요네타가 정중히 물러났다.

“네, 주군.”

바롱 삼디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이 몸을 죽이겠다고? 보고도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가?”

“재생 같은 건 지나가던 아메바도 할 줄 알거든?”

이현이 주먹을 내질렀다. 바롱 삼디는 그대로 맞아주려고 했으나…….

주먹에 맺힌 기운이 심상치가 않았다.

“윽?!”

허공으로 회피하자 이현이 비웃었다.

“응? 어차피 되살아나신다며? 왜 피하지?”

“이… 이놈…….”

용수철처럼 튕긴 이현이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재생한 장어들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퍼억!

주먹에 맞은 순간 장어들의 몸이 굳었다. 주먹에 맞은 부위부터 시커멓게 썩은 몸이 부식된 듯 무너졌다.

바롱 삼디는 곧장 알아챘다.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되듯, 주먹에 맞은 순간 장어들에 깃들어 있던 바롱 삼디의 힘이 오염되어 오작동을 일으켰다.

재생도, 좀비화도 되지 않는 것이다.

맞으면 죽는다.

‘이… 이놈! 설마… 이놈이 설마 그 소문의 마신이었나!’

그들이 속한 차원 외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올림푸스의 신들과 달리, 바롱 삼디같은 신세대 신들은 외부 차원에도 관심이 많았다.

긴밀히 외부의 신들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여러 정보를 얻게 되었는데…….

―뭐시기 제국이라는 차원은 건드리면 안 돼. 그곳을 정벌하려고 한, 일곱 차원이 죄다 흡수당했거든.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있나?

―마신이라고 하던데… 우리 신들에게는 천적 같은 힘을 지녔다더군. 그놈의 군대도 괴물처럼 강하고.

―당한 놈들이 으레 하는 호들갑이 아니겠나?

―어쨌든 우리는 근처에 얼씬도 안 하니 그쪽도 주의하는 편이 좋아. 어차피 우연히는 갈 수도 없겠지만…….

마신. 그냥 뜬소문이라 치부했던 괴물.

그런데 실제였단 말인가!

“큭!”

바롱 삼디는 잔을 아래로 쏟았다.

폭포수처럼 핏물이 흐르며 무수한 좀비들이 튀어나왔다. 산처럼 쌓인 좀비들이 허우적거리며 바롱 삼디와 이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우선 이 자리를 벗어난다!’

그의 차원이 어디인지는 놈도 알지 못할 터.

도망만 치면 쫓아올 수 없다.

그런데…….

크르르릉!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별안간 나타난 괴물이 좀비들을 집어삼켰다. 고름처럼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몸과 황녹색의 눈.

틴달로스의 사냥개였다.

사냥개도 모든 좀비를 먹어 치우지는 못했으나…….

“어딜 도망가.”

이현이 튀어나올 자리를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길을 내듯 사냥개가 파먹은 구멍으로 튀어나온 이현이 바롱 삼디의 목을 붙잡았다.

말도 못 하고 꺽꺽대는 그에게 이현이 말했다.

“이번에도 살아나 봐.”

콰직!

바롱 삼디의 목이 몸과 분리됐다.

몸이 떨어지며 새카만 불길에 휩싸였고,

땅에 닿기 전에 재가 되어 하늘에서 흩어졌다.

이현은 바롱 삼디의 목을 베요네타에게 던졌다.

“이거 잘 포장해. 갖다줄 데가 있거든.”

“네, 주군!”

* * *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요람에 빈이가 앉았다.

몸을 수그리고 빈이의 볼을 잡은 이현이 속삭였다. 눈이 촉촉하다.

“우리 빈이… 아빠 없어도… 잘 있어야 한다?”

“…폐하, 어디 전쟁 나가십니까?”

빡!

머리 위에 시퍼런 물방울이 생긴 크루엘이 구석에 머리를 박고 달라붙었다.

이현은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저번 좀비 침공 사태 이후, 올림푸스에 가봐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올림푸스가 이 차원을 놀잇거리 삼고 있다’는 말이 매우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 미친놈의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라고는 해도, 다른 차원과는 달리 어떤 개입의 느낌이 물씬 나는 이곳의 게이트들을 보며 영 수상쩍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

이번에 올림푸스에 가서 제대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매끼 고기 잘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는 법도 잊지 않았겠지?”

베요네타가 고개를 숙였다.

“예, 주군! 소녀 똑똑히 기억하고 있나이다!”

“길어봐야 사나흘 뒤에 올 테니까 잘 돌봐주고 있어.”

영 미련이 남는다.

이현이 마지못해 빈이의 머리에서 손을 떼는데…….

빈이가 말했다.

“아빠. 따녀오뚀.”

“헉!”

‘아빠 다녀오세요’라니… 우리 빈이… 언제 이렇게 예쁜 말을 배워서 할 수 있게 됐지.

이현은 입을 틀어막았다. 눈가에 물기가 늘어났다.

다녀오라는 말은 아빠가 어딘가 가야 하고, 본인이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도 인지하는 상태여야 할 수 있는 말!

아직 어린 빈이가 그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의젓하게 기다리겠다는 뜻.

…사실은 그냥 일성이 평소 자주 하는 말을 따라 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이현은 아무튼 감동했다.

“그래, 빈아! 아빠가 얼른 다녀올게!”

마지막으로 빈이의 동그란 이마에 뽀뽀를 한 이현이 게이트를 나섰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는 호화찬란한 금빛 마차가 서 있었다. 마차를 끄는 것은 그 유명한 페가서스.

눈부실 정도로 하얀 털과 금빛 갈기가 아름답다.

그 위용이 랜드마크처럼 이목을 집중시키는 중.

그 마차에 다가가는 이현을 보며 사람들은 감탄했다.

“마왕이다!”

“그럼 저게… 마왕 마차였어?”

“마왕은 저런 거 타고 다니는구나.”

고급 승용차나 스포츠카는 예상했지만 페가서스가 끄는 마차는 아무도 예상 못 했던 바.

마왕이라는 이명과는 어울리지 않기는 해도, 묘하게 어울린다!

그러나 이를 보는 이현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저것들 때문에… 빈이를 두고…….’

키즈카페도 못 가고 방송도 취소했다. 손해가 아주 막심하다.

살기까지 느껴지는 표정에 마부가 당황했다.

‘마차가 마음에 안 드시나?’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최대한 좋은 마차로 왔는데…….

이현은 매우 불편한 표정으로 마차에 탔다.

“가지.”

“아, 넵!”

마부는 잔뜩 긴장해 평소보다 훨씬 부드럽게 마차를 몰았다.

그럼에도 마차는 로켓 추진체라도 달린 듯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쿠르르릉!

순식간에 대기권을 벗어난 마차의 정면에 벼락이 모여들었다. 공격인가 싶어 이현이 팔짱을 푸는데 마부가 말했다.

“게이트 진입합니다! 잠시 흔들리실 수 있습니다!”

‘무슨 스튜어디스 같군.’

다시 팔짱을 끼고 보니 모여든 번개가 별들을 밀어내고 게이트를 만들었다.

마차가 게이트를 통과하자 다른 게이트들과는 다른 설명이 나타났다.

[올림푸스]

설명 : 위대한 성단 올림푸스는 마왕님을 환영합니다.

‘오호라.’

이것들이 게이트에 이상한 설명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확실해졌다.

꽃과 나비의 환영이 마차를 둘러싸며 달콤한 향기가 번지는데… 이현의 표정은 더욱 싸늘하게 굳어갔다.

만약 이놈들이 게이트를 조작해서 지구에 괴물들을 보내는 거라면, 지구를 개판낸 주범들이 바로 저놈들이라는 뜻.

적어도 관련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추궁해 사실을 밝혀내야지.

설령 전쟁을 벌이게 되더라도…….

그것이 빈이의 미래를 위한 길이니까.

다각다각.

지그시 지켜보는 사이 마차가 하얀 포석에 내려앉았다.

빌딩처럼 거대한 분수가 보이고, 그 앞에 황금 갑옷을 입은 무수한 군인이 도열했다.

그리고 그 정면으로 아레스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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