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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87화 (87/150)

87화. 좀비 사태 (2)

“우리 빈이~ 팔 들고~ 옳지, 잘한다!”

프린세스 카리나의 옷을 입은 빈이가 양팔을 들고 일어났다.

“짠!”

이현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흐어어어억! 우리 빈이! 공주님이네!”

실제로도 공주님이지만 공주님 같다! 이현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부우우웅.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이현이 갸웃했다.

“얘가 요새 자주 전화하네.”

너무 노골적으로 미디어에 노출되려는 것 아닌가.

이현은 방에 있는 카메라 스태프를 흘끔 보며 전화를 받았다.

“예. 여보세요?”

―오빠! 저 지금 여기…….

쾅! 끼익!

쿠당탕!

―꺄아악!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비명과 함께 목소리가 멈췄다.

이현의 얼굴이 굳었다.

“…뭐지?”

전화가 끊겼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이현은 즉시 남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형님.

“어, 남우야. 네 동생 어디 갔는지 아냐?”

―예? 무슨 광고 찍는다고 하던데 정확한 위치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서울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왜 그러십니까?

“그래? 그거면 됐다.”

그 발랄한 아이가 공포에 질릴 정도의 상황.

연기가 아니었다면 분명 심각한 일일 것이다.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를 찍던 스태프가 당황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 어디 가십니까?”

그때 핸드폰에서 재난 문자 발신음이 울렸다. 이현이 핸드폰을 들었다.

“여기.”

“예? 자, 잠시만요! 방송은…….”

이현의 싸늘한 눈빛에 스태프가 입을 다물었다.

이현이 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빈아. 아빠 잠깐 나갔다 올게. 혼자 씩씩하게 있을 수 있지?”

“아빠, 빨리!”

가만히 말을 듣던 빈이가 손과 꼬리로 바닥을 톡톡 쳤다.

공주님이 여왕님이 되셨다. 이현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얼른 올게.”

* * *

왜애애앵…….

“으으…….”

희수는 눈을 떴다.

경찰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귀를 울렸다.

눈을 뜨자 세상이 거꾸로 보였다.

“어?”

몇 번 눈을 깜빡이고서야 어둡던 시야에 빛이 들어왔다.

거꾸로 뒤집힌 차. 깨진 유리.

부딪친 채 불타는 차들이 보이고… 사람들은 도망치는 중.

비명과 아우성이 사이렌 소리를 뚫고 들렸다.

“아!”

희수는 주위를 살폈다. 안전벨트 덕인지 그녀도, 사장과 다른 멤버들도 다들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차가 받히고 한 바퀴 굴렀는데도 경상이라니… 공익 광고에 나와도 될 것 같은 안정성이다.

“얘, 얘들아……!”

“으으… 헉!”

그때 사장이 번쩍 눈을 떴다. 그가 홱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얘들아! 괜찮니?”

깨자마자 뒤를 돌아보며 묻는데 좀 감동이다. 희수는 엄지를 들어 보였다.

먼저 깨어난 사장과 함께 멤버들을 밖으로 꺼내고 나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꺄악!”

크르르르!

다 썩은 시체 같은 남자가 차에서 기어 나온 여자의 다리를 물어뜯는 중이었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살이 찢기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잔인한 장면.

그 뒤로 괴물들이 하나둘 몰려오더니 여자를 덮쳤다.

영화 속에 나오는 좀비 같았다.

“꺄악!”

좀비의 무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때 아직 깨어나지 못한 멤버 한 명을 등에 업은 사장이 재촉했다.

“도, 도망가자!”

“어디로요?”

사방이 괴물인 것 같은 상황. 사장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어디로든 가야지! 괜찮아! 곧 헌터들이 올 거야!”

“네… 네!”

생존 본능이 희수의 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난 멸망급 게이트 때도 살았고, 뱀파이어 때도 살았어. 괜찮을 거야.’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는 도로를 빠져나오자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보였다. 다들 직장인 같은 차림이다.

검붉은 하늘 아래…….

겁에 질린 얼굴로 달리다가 비틀거리고, 서로를 밀다 넘어지는 등 난장판이 펼쳐졌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이게 영화 속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매캐한 냄새와 비명 소리, 질척하게 달라붙는 공포가 현실임을 자각시켰다.

“하아! 하아!”

별로 달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긴장 때문인지, 사고의 후유증인지 금방 숨이 찼다.

희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무리 강단이 있다고 해도 그녀는 아직 중학생이다.

도망을 치면서도 넘어지고 구르는 사람들을 남기고 가는 죄책감과, 목덜미까지 달라붙는 괴물들의 소리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희수야! 이쪽!”

사장이 근처 방공호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게이트 폭발 이후 서울 도심에는 스타크래프트의 벙커를 연상시키는 방공호가 수십 개나 생겼다.

그중 하나의 입구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재난 상황이 닥쳤음에도 침착하게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는 모습에서 인류애가 차올랐다.

희수와 사장이 줄에 끼어들었다.

차츰차츰 사람들이 들어가고, 줄의 중간까지 왔는데…….

“으헉!”

“괴물이다!”

“얼른 들어가!”

“문 닫아, 문!”

좀비들이 눈에 보이는 거리까지 다가오자 난리가 났다.

줄이고 뭐고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밀치고 팔을 뻗는데…….

우왕좌왕 얽히다가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으아악!”

“꺄악!”

중간에 껴 있던 희수와 멤버들도 힘에 밀려 함께 넘어졌다. 삽시간에 만들어진 인간 샌드위치의 토핑이 되어 눕게 됐다.

“꺅!”

“희수야!”

바로 뒤에 있던 중년 남자에게 짓눌려 희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다른 멤버들도 꼼짝없이 갇힌 상황.

어떻게든 방공호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몸을 밀며 압박을 더했다.

가슴이 눌려 숨을 쉬기가 버거웠다. 팔다리는 쥐가 온 듯 떨렸다.

‘엄마, 오빠…….’

그어어…….

우어어어…….

섬뜩한 소리가 숨통을 조였다. 의식이 점차 흐려졌다.

“흐악!”

“괜찮아?”

선명한 붉은 눈이 희수를 내려다보았다. 한 손이 그녀의 손을 잡은 상태.

그 뒤로는 무슨 조화인지 수많은 사람의 몸이 허공에 떠 있었다. 중력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엇, 우왓?”

착각이 아니라 진짜 중력이 사라져 있었다. 발이 허공을 차니 몸이 둥실둥실 떠오른다.

이현이 좀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떠 있어. 금방 정리할 테니까.”

이현이 땅에 발을 딛자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좀비들이 산사태처럼 위에서 쏟아졌다.

동시에 전후좌우 사방의 골목에서 좀비들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팔짱을 낀 이현이 말했다.

“베요네타.”

―네! 주군!

허공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청소해.”

“네!”

부우우웅!

벌레의 날갯짓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폭풍이 몰아쳤다.

고작 수십 초.

묵시록의 재앙처럼 회오리치던 벌레떼가 사라지자 좀비들이 입고 있던 옷들만 나풀나풀 떨어졌다.

어느새 이현의 옆에는 안개처럼 너울거리는,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검은 망토 아래 레이스 뷔스티에와 가터벨트만 입고 긴 다리와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낸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가 가슴에 손을 얹고 이현에게 예를 갖췄다.

“주군. 명을 이행했습니다.”

“어, 잘했다.”

* * *

이현은 처참하게 파괴된 서울을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봤다.

“이건… 끔찍하군.”

화가 났다.

그때 끔찍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렸다.

―크크크… 과연 마왕이라 불리는 자답구나.

이현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 뚫려 있던 게이트가 넓어지더니, 하얀 실크해트에 턱시도를 입은 흑인이 내려왔다. 손에는 두개골로 만든 잔을 들었다.

그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구더기가 들끓는 텅 빈 동공이 나타났다.

“이 몸은 바롱 삼디. 시체들의 주인, 부활의 상징이니라. 마왕 이현, 반갑도다.”

슉.

이현의 몸이 그의 앞에 순간 이동한 듯 나타났다.

“어, 죽어.”

도시를 파괴한 범인임을 안 이상 대화는 불필요하다.

날아드는 주먹을 향해 바롱 삼디가 잔의 내용물을 뿌렸다.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까지 띠었다.

철퍽!

“응?”

잔의 앞에서 핏빛 파동이 번지더니 장어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입이 나타나 이현의 주먹을 물었다.

이현이 홱 주먹을 뺐다.

“뭐야, 이건?”

회백색의 축축한 껍질을 지닌 괴물이 붉은 파동 안에서 기어 나왔다.

장어를 닮았는데, 꿈틀거리는 기다란 몸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상처가 났다.

“후후. 이 몸은 그대가 죽인 하데스 같은, 낡은 신과는 다르노라. 현대에 좀비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수억 명이라는 걸 알고 있나? 두려움은 곧 신앙… 신앙이 곧 신의 힘이지!”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장어가 달려들었다.

이현의 주먹이 수십 개의 섬광을 만들었다.

장어의 몸이 풍선처럼 터졌다.

후두두둑.

떨어지는 살점 속에서 붉은 눈이 빛났다.

“그래서, 뭐? 나 세다, 자랑하냐? 애새끼냐?”

“글쎄. 비슷하다고 해두지.”

바롱 삼디가 잔을 다시 뿌렸다. 열 개도 넘는 파동이 나타나며 수십 마리의 장어들이 기어 나왔다.

“올림푸스와 다른 신들은 이 차원을 한낱 유흿거리 삼아 갖고 놀고 있다. 여기에는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데도!”

얼마 전 찾아온 아레스가 이현의 뇌리에 스쳤다.

‘이놈은 내가 올림푸스에 가는 걸 저지하는 게 목표로군.’

올림푸스와 같은 거대한 세력이 있다면 그에 대치하는 다른 세력이 생기는 것도 필연.

“그대가 동맹을 맺어야 하는 신은 올림푸스가 아니라 바로 이 몸이노라! 보아라!”

별안간 지상에서 기척이 일어났다.

이현이 내려다보니 좀비들에게 당한 사람들의 시체가 좀비가 되어 일어나고 있었다.

추잡한 광경이다.

“나의 권능 아래, 죽은 자들은 모두 좀비가 되어 되살아나노라. 그대의 군대와 나의 힘을 엮으면 무적의 군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리 생각되지 않는가?”

“않는데. 그리고 무적의 군대를 만들어서 뭐 하게? 우주 정복이 꿈이냐?”

바롱 삼디가 두개골을 와인잔처럼 손에서 굴렸다.

“후후. 성단들을 정복해 이 차원의 지배권을 올림푸스 놈들에게서 빼앗을 것이니라. 이 차원이 저 성단들의 손에 놀아나는 것은 부조리한 일이 아니겠나?”

죽은 자들이 지상을 걸어 다니고 죽은 괴물들이 하늘에서 꿈틀거린다. 악취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방공호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좀비들에 둘러싸여 덜덜 떨었다.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 조종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두려운 것이다.

이현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네놈의 손에 놀아나는 건 부조리가 아니고?”

“후후…….”

묵직한 웃음소리. 바롱 삼디가 시가를 꺼내 멋스럽게 물었다.

“괜찮겠나? 지금 그대는 군대도 없는데. 끝없이 증식하고 공포도 모르는 나의 군대를 상대로 모두를 지킬 수 있겠나?”

바롱 삼디의 힘이 서울 전역에서 느껴졌다.

서울시 인구 전부가 그의 인질.

놈의 말대로 죽은 자가 전부 좀비로 되살아난다면 싸움에 휘말려 죽은 시민들까지 적이 된다.

자칫 잘못하면 서울 시민 전체… 아니, 인류 전체가 좀비가 되어 공격해올 수도 있는 일.

꽤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온 모양이었다.

이현의 눈에 살기가 맺혔다. 주먹을 든 이현이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네가 짜증 나는 놈이라는 점은 잘 알겠다.”

쿠르르르…….

이현의 몸에서 금색과 검은색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이현이 손마디를 꺾으며 말했다.

“네가 뭘 착각한 모양인데, 난 무슨 코믹스 히어로가 아니거든? 일단 널 조지고 나머진 나중에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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