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아빠는 혼자 살더라 (2)
이현은 커다란 곰돌이 인형을 들어 유심히 살폈다.
안에서 작은 전기음이 나는 것 외에는 평범한 인형 같았다.
“이 안에 카메라가 들었다고요?”
카메라를 설치하던 스태프가 끄덕였다.
“예. 그 눈이 소형 카메란데, 근처에서 대기하는 저희 감독님께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내죠. 저희는 토미라고 부릅니다.”
“음… 빈이가 찢지 말아야 할 텐데…….”
“예?”
“그럼 저기 화분이랑 디퓨저도 전부 카메라?”
“네. 설치되는 카메라는 전부 소형이라 아마 겉으로만 보면 위화감이 없으실 겁니다. 아무래도 카메라를 의식하면 자연스러운 행동이 나오기는 힘들어서요.”
“하긴 그렇겠군.”
누군가 날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행동도 뻣뻣해지고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행동을 담기 위해 설치한 카메라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익숙해지시면 아마 카메라가 있는지도 모르고 행동하게 되실 겁니다.”
그럼 너무 날 것이 되지 않을까?
회를 시켰더니 펄떡이는 생선을 그대로 갖다주는 꼴이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마음을 읽은 듯 스태프가 말했다.
“문제가 될 것 같은 장면은 다 편집 과정에서 자를 테니 평소처럼 행동하셔도 됩니다.”
“그럼 저기 샴푸랑 음료수도 다 카메란가?”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건 좀… 하며 보는데 스태프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아뇨. 저건 협찬 물품인데요.”
“협찬?”
“그냥 평소에 물건 쓰시듯이 사용만 해주시면 됩니다. 잘 보이는 데 둘 거거든요.”
“흐음… 내가 쓰는 물건도 아닌데 쓴 것처럼 보여주는 일은 부자연스러운 행위 아닌가?”
이른바 뒷광고를 하자는 말인데…….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면서 부자연스러움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예의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사기 아닌가?
“어… 그게… 피디님과 한번 얘기를…….”
일개 스태프가 뭘 좌지우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현은 곧장 술 마실 때 받아두었던 영찬의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영찬이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아, 예! 이현 님? 지금 무슨 일 있으세요?
“여기 협찬 물품이 있다는데… 누구 욕 먹일 일 있나?”
이현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분위기를 눈치챈 영찬이 진지하게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진즉에 설명드렸어야 했는데… 실수했네요.
“이런 실수 별로 안 좋아하는데…….”
빈이와 함께 출연할 방송에서 평판에 금이 갈 일이 생기면 아버지로서 면목이 안 선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혹시 미리 고지하고, 협찬임을 밝히는 걸로 괜찮으실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핸드폰 너머로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상상되는 목소리였다.
방송은 협찬으로 먹고사는 것이라고 하니 사과도 했겠다, 이 정도는 봐주기로 할까.
“뭐… 사람이 다 실수하고 사는 거죠.”
―감사합니다! 다음부터 신경 쓰실 일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 * *
지애는 티비를 틀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맥주에 치킨을 시켜 먹으며 티비를 보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힐링 시간이었다.
탁! 치익!
맥주를 따는 소리에 벌써 힐링이 되는 기분!
꿀꺽꿀꺽…….
“후…….”
‘아혼살’은 그녀의 애청 프로그램이었다.
아무래도 가족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보니… 외로움이 사무치는데.
아빠가 육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대리만족이 됐다.
가상의 남편처럼 느껴진달까.
그런데…….
[어? 여긴 누구 집이죠?]
[엇? 아아!]
작은 화면을 통해 집을 보는데… 어쩐지 집 모양이 익숙했다.
욕실 문을 열고 한 남자가 설렁설렁 나왔다.
카메라가 남자의 얼굴로 단숨에 줌인했다.
[마왕, 이현!]
“응?”
지애는 야무지게 닭다리를 뜯으려고 입을 벌린 상태로 굳었다.
편한 자세로 앉은 이현이 나타났다.
사전 인터뷰 영상이었다.
새카만 셔츠에 추리닝 바지만 입었는데… 잘생김이 화면을 뚫고 나온다.
[안녕하세요, 마왕 이현입니다.]
[우와아아~]
[마왕 이현! 세계를 멸망에서 구한 최강의 남자.]
멸망급 게이트에서 활약하는 이현의 모습과 각종 큐튜브 영상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한참 수많은 활약상을 보여준 후…….
다시 얼굴로 돌아온 화면에 핑크빛 하트가 떠올랐다.
[괴물뿐만 아니라 여심도 울린 마성의 남자 이현.]
[지금 그의 하루가 시작된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형이 왜 거기서 나와…….
그런 느낌이다.
닭다리가 지애의 손에서 툭 떨어졌다.
화면에서 이현의 하루가 시작됐다.
패널들이 침대에서 일어나는 이현을 보며 감탄했다.
[어우~ 민낯이 뭐 저래.]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요즘 헌터는 얼굴로 등급을 매기나요?]
옷을 벗고 샤워하는 장면에서는 노골적으로 상체를 보여준다. 근육이 만들어낸 가슴골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방울에 지애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괜히 치킨 뼈를 잘근잘근 씹게 됐다.
이현이 직접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부엌칼을 한 번 휙 돌려 잡더니 능숙하게 고기를 꺼내 썬다.
양념에 숙성시킨 고기로, 척 봐도 범상치 않았다.
다시 인터뷰하는 이현의 얼굴이 나왔다.
[네, 요리를 좋아합니다. 잘한다고 자부하고요.]
[어우, 뭐야~ 스윗해~]
[완벽남이네, 완벽남.]
치익!
아침 식사로는 다소 과해 보이는 양의 고기가 프라이팬에 올라간다.
[미노타우르스 허벅지살입니다. 별미죠. 제가 먹을 건 아니고…….]
파프리카와 고기가 예쁘게 플레이팅되는 장면을 카메라가 황홀하게 잡았다.
칭찬 속에 이현이 느긋하게 어떤 방의 문을 열었다.
[빈아, 밥 먹자~]
[아빠~!]
작은 아이가 파닥파닥, 등 뒤의 날개를 움직이며 달려온다.
이현의 다리에 와락 안기고는 고개를 들어 본다.
반짝반짝 빛나는 붉은 눈에서 아버지를 향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가 느껴졌다.
[우리 빈이가 이제는 아빠가 안 깨워도 일찍 일어나네~]
[인나!]
이현이 빈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다시 인터뷰 화면으로 전환됐다.
[예. 제 딸 빈이입니다. 제가 게이트를 헤매던 시절에 발견한 아이입니다.]
[발견하셨다고요?]
[네. 친딸은 아닙니다. 화산에 혼자 버려져 있었는데… 며칠 동안 보다가 안쓰러워서 데리고 왔죠. 그리고 계속 함께 다녔습니다. 가슴으로 낳았죠.]
옆자리에 앉혀 손수 고기를 찢어 먹이는 다정한 모습에 패널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어쩜 좋아! 너무 스윗하다~]
[멋있네요.]
[애가 너무 예뻐요~]
양손에 고기를 쥐고 먹던 빈이가 고기를 쭉 찢어서 아빠 입에도 넣어준다.
그런 빈이를 이현이 흐뭇하게 보았다.
다정한 부녀의 따사로운 한때.
지애는 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성경 씨? 쉬는 중에 미안해요. 마왕님 프랜차이즈 계획 말인데 좀 수정할 부분이 생긴 것 같아서… 아, 성경 씨도 보고 있었어요?”
* * *
이현의 첫 방송은 어마어마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기존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기에 방송사에서 약간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전쟁에서 어마어마한 활약을 보여준 사내다.
기존 헌터들에 대한 악의적인 이미지도 있어 대중들의 반응이 썩 좋지 않을 경우도 각오하고 있던 바.
그러나 조회수와 댓글 반응은 그러한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키고,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 수준이었다.
방송 일부를 딴 클립과 캡처, gif 짤 등이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번졌고,
모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님들, 이번 주 아혼살 봄?]
[마왕 대존잘.]
[게이트 헤매다가 아이 주워 기르는 인성 뭐임?]
[이 남자… 스며든다…….]
[캡처 뿌린다.]
[법적으로 유부남 아니니까 가능성 있는 거 아님?]
[ㄴㄴ 얼굴 때문에 없음.]
ㄴ개새끼야.
빈이의 사진도 덩달아 퍼졌다.
[판타지 베이비 예압!]
[존귀.]
[드래곤 패밀리 소냐 닮음.]
ㄴ그게 뭔데 씹덕아.
[눈이 어떻게 저렇게 예쁨?]
[렌즈 낀 거 아님?]
[아니 근데 은근히 닮은 게 신기하네.]
피디인 영찬에게는 이현의 집 방향으로 절을 하고, 샴페인을 터트리고픈 호재였다.
그러나 인터넷 세상이 그렇듯 언제나 좋은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한테 고기 먹여도 됨?]
[아직 한 살 정도 같은데 저렇게 큰 고기를 먹이는 건… 방송이라고 오버하는 것 같네요.]
[헐… 아동학대 같은데 나만 그렇게 느낌?]
[먹기 싫은데 억지로 먹이는 느낌… 어린이집 교사 4년 차인 제 눈에는 훤히 보이네요~]
질투와 시기에 찬 사람들이 그런 의견을 퍼다 나르며 억지로 논란을 만들었다.
시간이 남아도는 인간들을 인터넷에서 이기기란 어렵다.
혼자서도 댓글을 수천 개씩 쓰며 돌아다니니, 맑은 물에 풀어진 잉크가 눈에 띄듯이 그렇게 여론을 더럽히기 시작했다.
* * *
“정면 돌파하죠.”
이현은 영찬에게 덤덤히 말했다.
이미 어느 정도의 논란은 예상했던 바.
어느 차원에나 그런 자들은 있었다.
얼마 전에도 그중 악질에 속하는 여자 하나를 게이트에 던져 놓기도 했고.
감시하던 기사단의 말에 의하면 이틀 만에 모기 떼들에게 당해 죽었다나.
생각보다 더 못 버틴 편이었다.
“제가 빈이 데리고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는 장면을 찍겠습니다.”
어차피 받을 때가 되기도 했고.
자잘하게 말로 설명하거나 사과문을 써봐야 악플러들에게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이다.
유명인, 연예인들이 본인 말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움직이는 모습에서 일종의 권력욕과 쾌감을 느끼는 작자들이니.
직접 이현의 집에 와 있던 영찬이 놀라서 바라봤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아무리 전투에 익숙해져 멘탈이 단단한 헌터들이라도 악플을 통한 정신 공격에는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바닥 생활에 이골이 난 연예인들도 힘이 들어 생을 마감하기도 하니…….
영찬으로서는 염려가 됐다.
그러나 이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네, 그럼 새 에피소드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것으로 하시고… 혹시 친구분들 중 방송에 나와도 괜찮다는 분은 계실까요?”
“친구라…….”
일단 종말의 네 기사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하나하나 방송에 내보내기 불안한 녀석들이다.
문화도 다르니 당연히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자칫 잘못하면 해명방송만 주구장창 찍어야 할 수도 있다.
찍으라고 해도 안 찍을 테지만.
“다른 헌터가 하나 있습니다. 별로 화제성 없는… 일반인에 가까운 녀석인데 괜찮아요?”
남우, 그놈이라면 매우 평범하니 모난 구석도 없어서 방송에 나와도 별 영향이 없겠지.
여동생인 희수에게 앨범을 홍보해주겠다고 약속도 했으니 기왕이면 같이 나오라고 하는 것도 좋겠다.
말을 듣고 영찬이 반색했다.
“아, 물론이죠! 오히려 일반인이면 더 좋죠.”
지금 이현은 친근한 이미지를 쌓는 중.
일반인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은 플러스지 결코 마이너스가 아니다.
이건 어느 연예인이나 마찬가지라 일부러 배우를 고용하여 일반인 친구인 척했다가 들통나 매장당한 사례도 과거 몇 있었다.
그러나 이현이라면 그런 걱정도 없다.
계속 긍정적이고 밝은 이미지를 어필하면 논란은 자연스레 종식될 것이다.
영찬의 예상은 다음 방송이 나간 후 완벽하게 적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