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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82화 (82/150)

82화. 탄생의 숲

“꺄아악!”

게이트를 통과한 순간 은선의 목청이 뚫렸다.

그녀는 제 고함에 스스로 놀라 흠칫 숨을 죽였다.

끼익끼익.

우르르르르…….

깍깍…….

작은 동굴이었다.

바깥은 기묘한 괴성이 울리는 숲.

남미의 어디 밀림이라 해도 믿겠다.

“더… 더워.”

은선은 허겁지겁 패딩을 벗고서 동굴을 살폈다.

구석에 놓인 허물어진 흙덩어리.

벽에 보이는 뭔가를 긁은 자국들… 선사시대의 동굴처럼, 아주 오래전 사람이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

은선은 벽에 보이는 자국들이 어딘지 익숙한 모양임을 깨달았다.

한글… 돌로 긁어 쓴 것 같은 한국어였다.

날짜까지 표시되어 팔만대장경처럼 빼곡히 쓰였다.

뭔가 탈출의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은선은 허겁지겁 기록의 첫날을 찾았다.

[이동된 지 13일. 내 이름은 이현. 어차피 고아였던 날 찾을 사람은 없겠지만 나를 잊지 않기 위해 이 기록을 남긴다. 시발.]

“마… 마왕?”

그렇다면 이 기록은… 마왕, 이현이 쓴 기록이란 말인가.

―아주 공평한 태초의 자연이지.

그가 게이트에 밀어 넣기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18일. 18 좆같다. 여기 사는 생물들은 다 비정상이다. 그래도 오늘은 다람쥐를 먹었다. 오랜만의 고기다. 맛있었다.]

[132일. 먹을수록 몸이 강해진다. 시력도 좋아져서 밤이 낮처럼 보인다. 방사능 오염 생물들인가? 엑스맨 볼걸.]

[247일. 이곳의 생물을 먹으면 그 힘을 얻는 것 같다. 날개가 생기거나 털이 나는 건 아니고.]

자그마한 단서라도 찾기 위해 정신없이 읽는 사이, 점점 기록은 동굴의 외곽으로 이어졌다.

[3년. 습격이 사라졌다. 새끼들아. 여긴 내 영역이야.]

[기록]

―모기 : 한 번 빠는 게 1.5리터. 물림 뒤짐.

―사슴 : 입 촉수 조심. 뿔에서 불.

―굼벵이 : 건들면 독. 구워 먹으면 ㄱㅊ

―늑대 : 존나 큼. 존나 쎔. 아마 최강? 순간이동. 날 이동시킨 문도 얘가 만든 듯?

―새 : 늑대 등에 둥지 짓고 산다. 낙하 조심.

[10년 며칠. 늑대를 죽였다. 놈의 능력을 배웠다. 집에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그녀의 귀에 웬 드론 나는 소리가 들렸다.

부우우우우.

“어?”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자 동굴 입구에서 모기와 눈이 마주쳤다.

“으악!”

은선은 놀라 주저앉았고.

그 덕에 모기의 첫 번째 공격을 피했다.

부우웅!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모, 모기랑 눈이 마주쳤어!’

중생대에 살았다던 거대한 곤충들처럼 큰 모기.

심지어 어처구니없게도 배에 난 줄무늬가 가죽 장갑도 뚫는다는 저 산모기와 닮았는데…….

끔찍하고 징그러웠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그때 은선의 눈에 동굴 한구석에 세워진 창이 보였다.

은선은 몸을 날려 창을 붙잡았다.

동시에 달려드는 모기.

“아악!”

휘두른 창이 모기를 강타했다.

땅!

플라스틱을 때리는 소리가 나며 모기가 날아가는데…….

죽지 않았다. 날개가 좀 꺾여 날지를 못할 뿐 멀쩡했다.

“시, 싫어어! 오지 마!”

은선은 삼각대에 고정시킨 카메라 머리로 모기를 마구 내리쳤다.

퍽퍽.

몇 번을 내리쳤을까.

모기가 움직임을 멈췄다.

찌그러지고 터진 몸에서 투명한 체액이 줄줄 흐르는 광경에 은선은 입을 막았다.

“우웁.”

무섭다. 징그럽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진짜 공포에 그녀는 패닉에 빠졌다.

‘아, 아냐. 괜찮아. 하나 잡았으니까 이제 괜찮을 거야. 누군가, 헌터가 구하러 와줄 거야. 그 남자도 설마 날 이렇게 버려둘 리가 없어!’

은선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숲으로 향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현은 이곳을 벗어나 지구로 갔다.

‘나도 갈 수 있을 거야!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순간 눈앞이 탁 트였다.

운석이 떨어져 만들어진 듯 거대한 분지.

그곳에 거대한 유골이 보였다.

오래된 듯 군데군데 풀에 덮였으나, 분지의 끄트머리에 선 그녀에게는 그 위엄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인 형상은 늑대와 같았는데… 척추는 산맥 같고 누인 발은 산등성이나 마찬가지.

두개골 위로는 작은 새들이 날아다니는 중.

비현실적이고 절망적인 광경.

‘설마 마왕이 죽였다는 늑대가… 저거야?’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잡을 수 없는, 군대가 와도 죽일 수 있을지 모르겠는 괴수를… 이현은 홀로 죽이고 생환한 것이다.

털썩.

은선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어… 엄마…….”

눈물이 나왔다.

따뜻한 집. 매일 방문 앞에 놓이던 밥상.

남들은 레스토랑에 갈 때 자신은 된장찌개 따위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싫어 매일 투정했는데…….

이제는 허름한 집이, 따스한 밥이 너무나 간절했다.

표피가 다 올라온 마른 입술이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누… 누가 제발 구해줘…….”

그때 그녀의 뒤에서 숲이 스산하게 들썩였다.

* * *

걸그룹 하트캔디는 마법소녀를 콘셉트로 한 걸그룹이다.

중소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소규모 기획사 소속.

그럼에도 독특한 콘셉트와 안정적인 비주얼로 나름의 독자적인 지지층을 꾸준히 확보해나가던 중이었다.

지금은 해외 팬도 제법 확보해 바쁜 나날.

가끔 고가의 선물을 후원하는 팬도 생겼다.

사장이 인건비 아끼겠답시고 직접 차량을 운전해 멤버들을 이동시키는 등 매니저 역할까지 하는 터라 멤버들도 분골쇄신, 불만 없이 일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녀들에게는 이동하는 잠깐의 시간이 바로 휴식.

하니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희수는 큐튜브를 보며 지친 심신을 달래고 있었다.

오늘도 알고리즘의 바다를 정처 없이 헤매던 중…….

한 얼굴을 보고 희수의 손가락이 딱 멈췄다.

“어. 원준이다.”

국민 남배우 원준!

3년 전 영화에 출연해 무시무시한 비주얼로 화제를 몰아놓고, 그 이후 어디에도 출연하지 않아 팬들을 지치게 한 마성의 남자.

그가 웬일인지 연퀴즈에 출연했다.

연퀴즈는 국민 MC라 불리는 연호석이 진행하는 채널로, 그의 자연스러운 진행 능력을 살려 출연자들에게 없던 입담도 만들어내는 채널이었는데…….

거기에 원준이 출연한 것이다.

섬네일 가득한 마성의 잘생김에 희수는 홀린 듯 클릭했다.

원준은 그리 말솜씨가 좋지는 못했으나…….

얼굴만 봐도 재미있다. 얼굴이 대유잼!

이 얼굴이면 아재 개그만 해도 배가 터져라 웃을 자신이 있다!

[…그런데 원준 씨. 최근에 어떤 헌터 분과 친분이 생기셨다고요?]

원준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끄덕였다.

무슨 중년이 저리 잘생겼냐.

결혼 마렵다…….

원준의 얼굴에 빠져 있는데 그가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아, 예. 마왕 이현 씨라고…….]

MC인 호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오오! 아니, 마왕님이요?]

[예. 아내가 다니는 키즈카페에 다니시더라고요. 우연히 친해졌습니다.]

[아내분이라면 서이수 씨 말씀이시죠?]

[예. 철이… 아들이 마왕님 딸이랑 친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이야…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그럼 막 골프도 같이 치러 다니고 그러시겠네요?]

[제가 골프는 안 쳐서… 게임은 몇 번 같이 했고, 식사도 좀 하고 그럽니다.]

옆에서 함께 보던 멤버도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 마왕님이면 그 잘생긴 아저씨잖아! 요즘 잘나가신다더니 원준 씨랑 친해졌다고? 대박이다.”

“어… 어, 그러게.”

생명의 은인.

잘생겼지만 어딘지 허술한 듯하면서… 묘하게 날카롭기도 한, 이상한 아저씨.

그것이 지금까지 이현의 이미지였는데 원준과 친해졌다니!

뭔가 새롭다. 복잡한 기분이었다.

나만 알던 아이돌이 갑자기 전국구가 되어, 지금의 재력으로는 팬미팅도 갈 수 없게 된 팬의 기분이랄까!

[우와. 마왕님이라고 하면 이, 뭔가 범접 못할 분위긴데 직접 만나보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보기보다 되게 재밌고 다정하신 분이십니다. 실물이 더 잘생기셨더라고요.]

[아~ 그래요? 카메라 빨을 못 받는 편이시라고요? 아니, 이야… 원준 씨는 우리 대한민국 미남 일인잔데 그런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궁금하네요.]

[낯을 가리는 성격은 아니시라 언젠가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와…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호석이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마왕님. 언제 한번 저희 연퀴즈! 출연 꼭 부탁드립니다!]

“우, 우와.”

벌써 연퀴즈 같은 프로에서 방송 섭외 요청이 오다니.

희수는 슥 화면을 내려 댓글을 보았다.

대부분 원준의 팬인 것처럼 보이는 댓글이었다.

[연퀴즈 섭외력 보여줘.]

[원준 님 드디어 사바세계로 나오셨군요…….]

[저게 어떻게 사십 대 얼굴? 내 나이 가져간 거 아님?]

ㄴ뭐야 시발. 돌려줘요.

[마왕이랑 친하단다. 존잘끼리는 텔레파시라도 통함?]

여성들의 댓글도 은근히 보이는데…….

[미쳤다. 원준, 마왕 조합? 못 참지?]

[얼굴만 보고 있어도 밥 한 끼 뚝딱일 듯.]

[앜ㅋㅋ 군침이 싹 도놐ㅋㅋ]

[섭!외!해! 섭!외!해!]

[세금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거 아닐까?]

물론 좋은 댓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배우가 찍으란 영화는 안 찍고 예능부터 나오네ㅋㅋ]

[마왕 영상은 빌게이츠가 여러분 머리에 양자 칩을 심어 조작한 것입니다. 회개하십시오.]

희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큐튜브를 껐다.

그 마왕 오빠가 이렇게 뜰 줄이야.

그 유명한 마왕 영상은 희수도 봤다. 다른 S급들과는 급이 다른 능력.

압도적이었고, 정말 마왕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한 무시무시한 힘이기는 했다.

‘그런 분이 그렇게 웃긴 성격인 걸 알면 사람들 반응이 어떨까.’

희수는 내친김에 가끔 염탐하던 이현의 SNS에 들어갔다.

SNS에는 휴먼아재체로 빈이 사진만 잔뜩 올라와 있었다.

예전에는 아줌마들 댓글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댓글을 다는 중.

[마왕님! 잘생겼어요!]

[딸 말고 본인 사진도 많이 올려주세요.]

그런데 이현은 쿨하게 답 댓글 하나 달아주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건지… 그냥 사진 올리는 갤러리 용도로 쓰는 모양이다.

하긴 이 SNS도 빈이를 키즈모델 시키려고 만들었다고 했으니…….

그때 뒷자리에서 다른 멤버가 희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야야, 우리 전에 마왕님 돌잔치에도 갔었잖아. 마왕님이 연퀴즈에서 우리 언급해주심 완전 대박 아니야?”

잔뜩 신이 난 목소리다.

“돌잔치 아니었는데…….”

“뭔 잔치였지?”

“나도 모르겠네.”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희수의 눈이 정처 없이 자동차 천장을 헤맸다.

운전하던 사장이 부추겼다.

“희수야. 한번 살짝 말씀드려봐. 연퀴즈에서 우리 얘기 나오면 진짜 떡상 노릴 수 있는데.”

소형 기획사치고는 잘나가고 있다고는 하나, 인기 멤버인 희수조차 10, 20만 원 정도 정산받는 수준.

이 인기가 언제 사그라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반등을 위해서는 새로운 추진력이 필요하다.

마왕이라는 추진력이라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추진력이 아닐까.

너무 김칫국부터 들이마시는 것 같지만.

“그럼 일단 오빠한테 먼저 연락해볼까요?”

희수는 희희낙락 핸드폰을 들었다. 화면에 뜬 이현의 번호가 보물상자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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