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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81화 (81/150)

81화. 마왕의 딸 (3)

김은선이 서이수와 처음 마주친 것은 중학교 3학년에 오른 아침 교실이었다.

엄격한 교칙 때문에 똑같이 똑 자른 단발에 무릎이 넘는 치마를 입은 소녀.

그러나… 이수는 은선과 모든 것이 달랐다.

이수는 목은 물론 팔다리도 길쭉길쭉했다.

은선은 목이 승모근에 덮일 지경이었고 허리도 길었다.

이수는 뽀얗고 하얀 피부를 지녔다.

은선은 까무잡잡하고 여드름도 많았다.

이수는 항상 밝게 웃었고 선생님들도 좋아했다.

은선은 조용했고 선생님들은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은선에게도 잘해주었던 것이 이수였다.

―안녕? 뭐 해? 그림 그려? 무슨 그림인지 봐도 돼?

처음으로 그녀가 말을 걸었을 때는 햇살마저 편애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화가 났다.

나는 이 모양인데… 그림도 열심히 그리는데…….

이 아이는 타고난 얼굴만으로 그냥 예쁨을 받는 것 같았다.

―저리 가. 함부로 보지 마.

―어? 어… 미, 미안.

아마 그렇게 홀대받아본 것은 처음이었겠지.

당황한 모습을 보니 우쭐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다른 아이들이 봤다.

―싸가지가 없네.

―얼굴도 저런데 인성도 더럽냐.

소문이 번지며 친구가 사라졌다.

왕따까지는 당하지 않았으나 은따에 가까운 차별.

억울했다.

모든 것이 이수 탓 같았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됐다.

이수는 먼 예술고로 진학해 소속사까지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야말로 탄탄대로.

그러나 은선의 인생은 하향새였다.

그림으로 성공할 거라는 확고한 생각으로 공부도 하지 않았기에 성적도 좋지 않던 그녀다.

지망하던 미대는 떨어졌고 낮춰 지원한 학교들도 전부 떨어졌다.

합격한 대학은 흔히 말하는 지잡대.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몇 번인가 웹툰 연재도 시도해보았지만 전부 실패했다.

기본을 다지자며 간 미술학원에서는 고등학생들에게 밀리는 신세.

SNS에서 끄적인 그림을 올리고 받는, 몇 안 되는 응원만이 유일한 낙이 됐다.

시장이 잘못된 탓이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여보았으나…….

자괴감만 커질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먹고 사는 백수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큐튜브로 이수를 보았다.

그녀는 학창 시절보다 더 빛나고 반짝이는 모습으로 거기 있었다.

분노가 폭발했다.

생각해보면 다 이수의 잘못이었다. 그녀가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좀 더 그림에 집중해 더 좋은 대학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수에 대해 검색하던 중… 은선은 그녀가 매일 정기적으로 라이브 채팅을 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소속사가 관리를 허술히 하는지, 누구나 간단히 가입해 들어갈 수 있었다.

[처웃는 거 가식 그 자체. 애미애비랑 다 같이 교통사고 나서 뒤졌음 좋겠다 ㄹㅇ]

반복적으로 단 댓글에 이수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눈물을 흘리며 라이브를 껐다.

은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어떠냐.

이게 인생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너를 물고 빨고 좋아해주는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너도 인생의 쓴맛을 아니 아주 슬프지?

지금까지 그 잘난 외모로 실컷 꿀을 빨아왔으니 좀 힘든 것도 경험해봐야지.

은선은 이수가 괴롭기를 바랐다.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런데…….

[원준 씨가 힘든 시기를 지탱해줘서 이겨낼 수 있었어요. 항상 고마워요.]

다시 TV에 나온 그녀는 괴롭기는커녕 아주 행복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잘생긴 배우의 대명사인 원준과 혼인하며 더더욱 잘나가는 것이다.

너무나 불합리했다.

어떻게든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

알아보니 이수는 최근 S급 헌터인 마왕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간 상태.

마왕 덕에 사당은 집값이 연일 고공행진이라고 했다.

찾아보니 마왕이라는 놈도 번지르르한 상판이 마음에 안 들었다.

분명 저 얼굴 탓에 다른 S급 헌터들보다 고평가를 받는 것이다.

이현이 나온 큐튜브는 보지도 않고, 은선은 멋대로 평가를 내렸다.

곪아 터진 그녀의 증오는 사회 전반으로 확대된 상태였다.

집에서 잘 나가지도 않고 뉴스도 보지 않는 탓에, 그녀는 신작 만화의 연재 시기는 알아도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몰랐다.

헌터가 무섭기는 하지만 설마 법을 무시하고 해코지라도 하겠나.

‘아이가 있다……?’

검색해보니 집의 위치며 여러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연예인이나 S급 헌터들의 정보는 의외로 얻기 쉬운 편이다.

유명해질수록 따라다니는 사람도 많아지고, 소문도 빨리 퍼졌다.

‘가만… 그럼 마왕이라는 이 헌터의 명성이 떨어지면 집값도 떨어지겠네?’

이수뿐만이 아니라 부모 잘 만난 덕에 떵떵거리며 사는 부자들 전체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는 일.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구청에 마왕을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증거가 없어도 대충 말을 지어내기만 하면 공무원들은 믿었다.

안 믿으면 믿을 때까지 신고하면 그만.

운 좋게도 신고는 정상적으로 들어갔으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은선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은선은 주기적으로 이수의 아파트 근처 옥상에서 고배율 카메라로 집 안을 관찰했는데…….

오늘도 관찰하던 도중 초대받은 마왕을 발견했다.

마왕과 이수의 사진을 잘 찍으면 둘이 불륜을 저지르는 것처럼 편집이 가능할 것이다.

사진이야말로 완벽한 증거.

이수를 완전히 묻어버릴 기회였다.

* * *

탁.

이현은 닌자처럼 소리 없이 은선의 뒤에 착지했다.

가만히 보니 은선은 이수의 집 쪽으로 카메라를 고정해놓고 이것저것 조절하며 열심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기운이 이상하다.

보통 인간들도 아주 약간은 마력을 지니고 있고, 그녀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그녀의 마력은 보통 인간들보다 강하면서… 무겁고 어두웠다.

사령술이나 흑마법 계통의 마법에 걸린 것과 비슷하다.

아마 헌터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녀의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 이유도 모르고 기분이 나빠졌을 것이다.

타고나거나 누군가에게 마법으로 당한 것은 아니고.

오랫동안 증오와 어두운 마음을 쌓은 끝에 마력에 영향을 끼쳤을 터.

“어이.”

“힉!”

뒤에서 부르니 은선이 소스라치며 돌아봤다. 이현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빤히 보니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마… 마왕?”

“날 아니 이야기가 빠르겠군.”

어차피 옥상이라 도망갈 곳도 없으니…….

팔짱을 낀 이현이 느긋하게 말했다.

“당신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하나, 경찰서에 직접 가기. 둘, 경찰서에 끌려가기.”

“…뭐? 내… 내가 경찰서에 왜 가! 당신이 뭐라고?! 내 몸에 손대면 당신이야말로 경찰에 신고할 거야!”

은선이 카메라 화면을 몸으로 가리며 외쳤다.

이현은 내심 감탄했다.

‘무식하면 진짜 겁이 없네?’

딱히 무력행사를 하지는 않았으나 가만히 있어도 쌓인 힘이 흘러나와 저절로 느껴지기 마련.

게다가 지구에서는 그간 쌓인 명성도 있을 텐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을 모르나?

‘아니, 오히려 지구가 평화롭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군.’

길 가다가 처맞을 걱정이 없으니 함부로 바락바락 소리치면서 협박을 하지.

이현은 끄덕였다.

“그렇군… 당신을 죽일 때는 법적 증거가 남지 않도록 하란 말이지? 좋은 조언이 됐어.”

은선이 찔끔했다. 눈치를 보던 그녀가 황급히 소리쳤다.

“여, 여기 사람 살……!”

그녀의 몸이 얼음땡을 하듯이 굳었다.

소리를 치던 자세 그대로.

이현이 공간째로 그녀의 몸을 굳힌 것이다.

다가간 이현이 그녀의 카메라를 들었다.

“어디… 뭐가 들었는지 볼까?”

갤러리를 살피는데 뜻밖에도 빈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현의 얼굴이 굳었다.

각도로 보나 사진 속 풍경으로 보나 도촬이 분명했다.

“이건 또 뭐야?”

그런 사진이 한두 장이 아닌 수십 장. 실수가 아니라 다분히 악의가 느껴지는 사진들이었다.

“해명이 필요하겠군.”

이현은 그녀의 머리를 척 짚었다. 기억을 읽는 기술은 예전 사마엘과의 전투 중에 알아냈다. 신들의 기억을 읽는 것은 위험했지만 평범한 인간의 기억을 읽는 일은 쉬웠다.

“흐음…….”

침전물 같은 오랜 기억을 지나쳐… 최근의 기억을 이현의 마력이 빠르게 훑었다.

이현을 아동학대로 신고한 범인이 바로 그녀였다.

어두운 방에서 킬킬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방. 악취가 풍기는 것조차 모를 만큼 그녀는 쓰레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악의… 추악한 열등감…….

그녀는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고 자기 스스로를 속여 감정이 기억조차 왜곡시킨 상태였다.

이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손을 툭툭 털었다.

오물에 손을 댄 기분.

그녀의 마력이 이질적인 것도 이해가 갔다.

이만큼 악의를 쌓았으니 오염될 수밖에.

그나마 마력을 쓸 줄 아는 자들이 얼마 없고 과학이 발달한 지구라 다행이지, 마법이 일상화된 다른 차원이었으면 사악한 마법에 손을 대 어마어마한 민폐를 끼쳤을 것이다.

“여기 있어선 안 되는 존재로군.”

경찰에 넘겨도 소용없다.

어차피 처벌도 미흡할 테고 이만한 악의는 어지간해서는 갱생이 불가능하다.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자신을 신고한 사람에게 원망을 품을 것이 뻔했다.

징역을 살더라도 금방 다시 나와서 보복을 생각하겠지.

심지어 이수같이 착한 사람은 앞에서 울며불며 반성하는 척하면 선처해줄 것이 뻔한데…….

달라붙은 사령들이 선의조차 왜곡해 받아들이게 만들 것이다.

오히려 언젠가 마력을 각성해 그 악의를 마법으로 행사할지도 모르는 일.

그렇게 되면 반드시 빈이에게도 피해가 오리라.

사령을 떨쳐내고 오랜 기간 치료를 도우면, 어쩌면 갱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지인이었으면 도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자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

딸을 노린 사실을 안 시점에서 인류애를 발휘한다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넌 새로운 기회가 오면 언제든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더라? 그러니 내가 관대하게 기회를 주지.”

이현이 허공을 두드렸다.

쩌엉!

오색의 파편이 흩날리며,

게이트가 열렸다.

희미한 빛 안쪽으로 보이는 것은 아마존 같은 울창한 정글.

“공평한 세상을 원했지? 이게 새로운 기회다. 아주 공평한 태초의 자연이지.”

크르르르르…….

우욱우욱.

짐승의 것 같은 기괴한 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오는데.

이현은 미닫이문을 밀듯이 손을 슥 움직였다.

은선의 몸이 서서히 게이트 안쪽으로 미끄러졌다.

겁에 질린 은선이 간절히 쳐다보았으나.

“나도 그곳에서 새 기회를 얻었다. 어디 열심히 노오력해봐.”

조롱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녀의 몸이 완전히 게이트 안쪽으로 사라졌다.

이현은 덤으로 카메라까지 발로 차 안에 넣었다.

따악.

손가락을 튕기자 게이트가 닫혔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에 따르라는 말이 있다.

어지간하면 이현은 대한민국의 법대로 그녀를 처분하고 싶었다.

그것이 태어나고, 앞으로도 살아갈 나라에 대한 존중이니.

그러나 은선은 빈이를 건드렸다.

딸아이의 미래에 비하면 다른 가치는 모두 후순위였다.

게다가 그 게이트에서 이현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정말 노력해 살아남을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힘을 얻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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