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마왕의 딸 (1)
사당의 어느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작은 카페.
이곳은 근처에 사는 맘카페 회원들의 우아한 미팅 장소였다.
오늘은 정기적인 모임이 있는 날.
각자 부녀회장이며 인플루언서이기도 한 여성 셋이 모였다.
“…그 얘기 들었어요?”
“무슨 얘기요?”
“왜, 그 얼마 전에 TV도 출연한 S급 헌터 말이에요. 마왕.”
‘마왕’.
무수한 마물을 소환하는 특별한 스킬을 지닌 헌터로, 소환하는 마물들은 물론 본신의 강함도 다른 S급 헌터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자.
그 이름은 요즘 한국에서는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 헌터가 여기 산대요. 요 앞, 103동에요.”
“그래요?”
“들어보니 딸 하나에 노부를 모시고 사는데 아주 효자가 따로 없는 모양이에요.”
눈치를 보던 여인 하나가 물었다.
“그럼… 집값이 아주 많이 오르겠네요?”
“많이 오르는 것뿐이겠어요? 2배, 아니 10배도 오를 수 있죠.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도시라고 소문나서 강남보다 더 오를걸요?”
요즘처럼 우후죽순으로 게이트가 열리는 시대에는 헌세권이 최고다.
상위 0.1% 재벌이라도 목숨은 하나뿐.
S급 정도의 헌터쯤 되면 돈만 좇고 움직이는 자는 드물어 직접 고용도 어렵다.
가장 강력한 S급 헌터가 지키는 도시라면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입주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럼 마왕이 우리 아파트에 산다고 얼른 퍼트려야겠네요.”
“아, 마왕의 딸이 그 요기 앞 키즈카페 다닌다니까 그것도 소문내고요.”
“저 벌써 마왕님 인문 팔로우해놨어요.”
“저 공유 좀 해주세요.”
* * *
“여기가… 마왕이 사는 곳인가……!”
시대착오적인 한복 차림의 사내가 차에서 내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지나던 사람들이 놀라 핸드폰을 들었다.
“먹필도사다!”
“S급 헌터!”
길드 칠성검의 길드장이자 한국 최강의 S급 헌터로 불리던 먹필도사.
그가 사당의 아파트 단지 내에 별안간 나타난 것이다.
먹필도사는 어울리지 않게 선글라스를 쓰며 씨익,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신예 S급, 마왕 이현… 그가 여기에 산다는 극비 정보를 아는 것은 아직 나뿐이겠지…….”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그를 보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혹시 먹필도사도 마왕을 만나러 왔나?”
“그렇겠지. 글쎄 쉐도우 로드랑 불스아이 병장도 자주 드나든다나 봐.”
“어머, 그래?”
언제나 쏟아지는 관심… 이미 익숙하다.
“훗.”
착각에 빠진 먹필도사는 시원시원한 걸음으로 아파트에 들어갔다.
거침없이 벨을 누른 그가 뒷짐을 지고 기다리는데…….
“누구십니까?”
문을 열고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얼마 전 멸망급 게이트에서 본 헌터다.
길을 걷다가 한두 번 봤을 법한 흔한 얼굴.
하지만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인 먹필도사는 금방 그를 알아보았다.
“김남우 헌터?”
“먹필…도사님?”
이 사람도 이현과 알고 있었나. 먹필도사는 약간 당황했다.
C급 헌터인 그가 정보력에서 뛰어나지는 못할 테니… 아마 우연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거나.
의외로 종종 있는 일이었다.
“크흠. 마왕님을 보러 왔소만… 계시오?”
안에서 이현이 버럭 외쳤다.
“종교 안 믿는다 그래!”
“아, 형님… 그게 아니라…….”
그때 남우의 뒤에서 길가메시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오, 뭐야? 전에 본 광대 놈이군!”
“윽… 다, 당신은?”
PTSD가 일어난다.
먹필도사가 주춤 물러났다. 길가메시가 남우의 머리 위에 두꺼운 팔뚝을 척, 얹었다.
“복수전이냐! 좋지! 언제든 덤벼라! 크하하!”
이놈은 머릿속에 싸움 생각밖에 없나?
안쪽에서 이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야야! 손님이면 들여보내고, 잡상인이면 내보내면 되잖아! 뭘 동네 시끄럽게 문을 열어놓고 있어?”
“이쪄!”
“아유, 우리 빈이~ 말도 잘 따라해쬬요~”
“쬬요!”
이 정신 사나운 집안은 뭐냐.
이곳이 정녕 그 위엄 넘치던 마왕의 집이란 말인가…….
생각과 현실의 괴리에서 허우적거리는 먹필도사의 팔을 길가메시가 잡아끌었다.
“뭐, 일단 들어와라. 싸우러 온 것도 손님이지.”
“어… 어엇?”
이놈의 가치 판단 기준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거냐.
얼떨결에 끌려 들어가자 부엌에서 일성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어이쿠! 손님 오셨어요? 이거 점심 일 인분 더 준비해야겠네요.”
거실에서는 이현이 소파에 기대어 앉아 웬 아인의 아기와 놀아주는 중. 아기는 블록을 상자의 구멍 모양에 맞게 끼워 넣는 장난감을 쓰는 중이었는데…….
별 모양을 세모에 억지로 밀어 넣거나 원을 네모에 끼우는 등 맞추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 빈아. 절대자는 세상이 정한 가치 판단에 휘둘릴 필요 없이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법……!”
어딘가 잘못된 교육의 현장이었다.
그 옆에서는 옅은 갈색 머리의 잘생긴 청년이 핸드폰 게임에 열중이었다. 남우가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쉐도우 로드님. 상황은 어떤가요?”
“빨리 앉아. 지금 한타할 것 같아.”
남우가 핸드폰을 들고 잽싸게 옆에 앉았다.
“쉐도우 로드?”
먹필도사를 흘끔 본 지태가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어, 먹필도사시네.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다시 게임에 집중한다.
먹필도사는 충격받았다.
‘나만 아는 게 아니었어?’
이현이 빈이에게 블럭을 건네주다가 물었다.
“그래서… S급 헌터 씨가 우리 집에는 무슨 일이지?”
“…후하하! 전에 마왕 씨의 활약은 잘 보았소. 내 그래서 길드 가입을 권유하고 싶은데 어떻소? 우리 칠성검에 들어오는 것이!”
“싫다.”
칼답이 먹필도사의 마음을 벴다.
“조건도 들어보지 않고?”
“응. 귀찮아.”
먹필도사는 게임을 하는 중인 쉐도우 로드를 흘끔 보았다. 부채가 정신없이 얼굴을 부쳤다.
“어느 길드보다 좋은 조건으로 영입하겠소!”
“조건 문제가 아니야. 귀찮아. 바빠. 용건 끝났으면 가지?”
축객령.
“지… 진짜 좋은데…….”
부길드장인 바리데기에게 이현을 가입시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온 터.
매우 당황스러웠다.
차마 발을 못 떼고 있는데… 갑자기 이곳저곳에서 재난경보음이 울렸다.
게이트.
B급 게이트가 바로 앞 공원에서 열렸다는 경보.
열심히 놀던 빈이가 흠칫 놀라 울먹거렸다.
“흐… 흐에…….”
“아이구, 우리 빈이! 괜찮아, 괜찮아. 아빠가 이놈하고 올게.”
이현이 통통한 볼에 쪽 입을 맞추자 빈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 웃었다.
말랑한 볼살을 꼬집듯 집어준 후 이현이 일어났다.
“야야, 게임 그만하고 일어나. 일하러 가자.”
머리를 맞대고 게임을 하던 지태와 남우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아, 옙!”
먹필도사가 나섰다.
“나도 가겠소! 이 몸의 힘을 보여드리지!”
고작해야 B급 게이트. S급 헌터라면 혼자서도 산책하듯 정리할 수 있다!
이현이 그를 흘끔 보고 대답했다.
“그러던가…….”
* * *
후웅!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거대한 망치.
미노타우르스라고 불리는, 소의 머리에 근육질의 남자 몸을 지닌 괴물이 휘두르는 무기였다.
B급 게이트, ‘돌진하는 황소의 요새’에 도착한 A급 헌터, 고봉철이 소스라치며 허리를 숙였다.
“우왁!”
머리 위를 망치가 스치자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봉철은 기겁했다
눈앞에 보이는 미노타우르스는 무려 스물.
게이트에서 튀어나와 호전적으로 날뛰어 게이트가 열린 지 오 분 만에 피해가 막심했다.
여기서 막아야 하는데…….
“우르르르…….”
너무 강하다.
하나하나의 개체가 B급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강력한 수준.
심지어 저 뒤에 팔짱을 껴서 보고 있는 놈은…….
[미노타우르스 십인장]
단순한 이름과 달리 어마어마한 마력을 발산하는 중.
감히 접근하는 것조차 무서웠다.
“우르르!”
미노타우르스 세 마리가 봉철에게 접근했다.
각자 단숨에 차량을 부수는 망치를 손에 들었다. 맞으면 단숨에 피자 반죽처럼 될 것이다.
‘도망쳐야 하나.’
봉철은 방패를 쥐고 침을 꿀꺽 삼켰다.
본래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길드, 흑룡단의 부길드장이었던 그였으나…….
그를 감싸주던 형님 두철이 사망하며 그의 입지는 추락을 시작했다.
게다가 S급 게이트 ‘출입이 금지된 봉마사’의 공략 과정에서 형님의 친구이자 S급 헌터인 현우를 비롯하여 길드의 유망주 대부분이 전사.
흑룡단은 또 다른 거대 길드인 블랙벤더에 흡수 합병됐다.
블랙벤더에서 봉철의 입지는 처참했다.
다른 A급들에게조차 ‘템빨’이라며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
‘이번에 이미지를 반전시켜야 하는데…….’
하필 그가 막고 있는 이 길목을 지나면 곧장 사당의 아파트 단지.
이현이 사는 곳이다.
다른 S급들과 마찬가지로 B급 게이트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돈도 되지 않을뿐더러 명성에도 도움이 안 될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나…….
‘빌어먹을!’
이 전투 상황에 질투와 열등감이 치솟았다.
자신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그 거지같던 놈은 갑자기 S급 취급이라니!
세상이 이리도 불공평할 수 있단 말인가!
이를 가는 찰나, 갑자기 어디선가 제트기 이륙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고개를 든 순간 그의 눈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림자가 보였다.
쐐액!
쿠웅!
서 있던 미노타우르스 하나가 산산조각이 나며 육편을 터트렸다.
졸지에 그 피와 육편을 맞게 된 봉철은 피칠갑이 된 얼굴로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한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드는데…….
“에이, 착지 잘못했네.”
캐릭터가 그려진 하얀 셔츠에 추리닝 차림의 남자가 봉철과 눈이 마주쳤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
게다가 저 신의 편애를 받은 듯한 잘난 면상!
“마… 마왕?”
피칠갑이 된 남자를 보고 이현이 움찔했다.
“응? 괜찮나? 심하게 다친 것 같은데.”
“…피 튄 겁니다.”
“아……!”
다가온 이현이 그의 어깨에 척, 손을 얹었다.
“피범벅이 될 정도로 사냥하다니… 대단하군.”
“…….”
봉철을 전혀 알아보는 눈치가 아니다. 당연하다.
봉철 혼자 열등감과 질투에 몸서리칠 뿐, 이현에게 그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조차 아니었다.
이현이 미노타우르스 무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뼈로 만든 장식을 뿔에 단 미노타우르스의 대장과 눈이 마주쳤다.
“보스는 저놈인가?”
“예? 어, 아마도…….”
봉철은 얼떨결에 끄덕였다.
대답과 동시에 이현의 신형이 길게 늘어지더니 대장의 머리가 위로 폭발했다.
머리를 잃은 몸이 뒤로 넘어갔다.
쿠웅!
한순간에 벌어진 일.
그 모습을 본 다른 미노타우르스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양팔을 위로 들었다.
그때 뒤에서 웬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우하하! 먹필도사 등장이오!”
도포를 흩날리며 착지한 먹필도사가 부채를 쫙 펼치고 외쳤다.
하지만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현을 급하게 따라오느라 주위를 살피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다 정리된 상황이다.
도움을 받은 것 같은 헌터 하나가 ‘넌 뭐냐’는 눈빛으로 보는 중.
먹필도사는 박수를 쳤다.
“여… 역시 내가 눈여겨본 자! 대단한 실력이오!”
본의 아니게 먹필도사의 말이 봉철의 가슴을 후벼 팠다.
‘저 칠성검의 먹필도사도 이현을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쉐도우 로드도 이현을 찾아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처음 봤을 때와는 까마득하게 벌어진 격차가 봉철의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