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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66화 (66/150)

66화. 사랑의 힘…? (1)

바닥에 내던진 달걀처럼 깨져, 빛을 잃은 내핵을 드러낸 달.

참혹한 파편의 위를 하데스가 지팡이를 짚으며 걸었다.

아마테라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아이를 죽여 그 영혼을 중간에 가로챈다는 계략을… 이현이 직접 염라를 협박한다는 기상천외한 수단으로 간단히 파훼 당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역을 침범당했음에도 염라는 이현에게 호의적이었다.

얼마 전 그를 포섭하러 갔을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놈이 좀 거칠기는 해도 똑똑하더군. 놈이 하도 간곡히 조언하기에 살짝 들어줬더니… 능률이 300%가 올랐어.

―역시 이 몸의 선구안은 틀리지 않더란 말이야. 거, 전에 일도 따지고 보면 그쪽 성단이 먼저 잘못한 건 맞지 않나?

―괜히 건드리지 말고 포기하지 그래?

뿌드득.

아마테라스는 이를 갈았다. 다시 생각해도 열불이 나는 말이다.

그러나… 하데스의 지금 행동은 분노에 찬 그녀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극단적이었다.

“정말 괜찮겠소?”

하데스가 여유 있게 웃으며 끄덕였다.

“네, 그자라면 분명 이현을…….”

“우리가 괜찮겠냐는 뜻이오!”

아마테라스는 감히 큰소리를 내는 것조차 두려워 속삭여 외쳤다.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그자는 광인이오. 아니… 광신(狂神)이라 해야겠지. 그자의 손에 찢겨 죽은 신이 몇인지 아시오?”

당장 그들이 발을 디딘 이 부서진 별도… 그자가 아무 이유 없이 맨주먹으로 두드려 부순 것.

차원을 찢고 나타나 별안간 별을 부수는 그를 보았을 때는 경악했다.

그런 자를 하데스가 찾아가겠다고 하니… 더욱 경악할 수밖에.

“그자가 당신 말대로 이현과 싸워주겠소?”

그는 어떤 성단에도 들지 않고…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으며 폭력을 휘두른 자…….

설득이나 협박이 통할 리가 없다고 생각됐다.

“자자, 진정하시죠.”

하데스가 조소했다.

“물론 그자는 당신의 말대로 광신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이현과 싸워줄 것입니다.”

“무슨 말이오?”

“뭐… 두고 보시죠.”

루비로 된 지팡이를 짚으며 하데스가 파편들의 위를 걸어 올랐다.

그러자 웅크린 남자의 등이 나타났다.

벌거벗은 등은 다부진 근육으로 역삼각형이다. 그 등 전체가 치열한 전투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걸친 것은 하반신을 가린 거대한 뱀의 가죽뿐.

사자갈기 같은 금발이 등을 덮고 있는데… 그 너머로 쩝쩝, 게걸스럽게 뭘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갑습니다.”

하데스의 인사에 남자가 일어났다.

“손님인가.”

바윗돌 같은 주먹에서 빛나는 부스러기들이 흘러내렸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신력을 이루는 문자.

남자가 먹고 있던 것은 신이었다.

아마테라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2:1이라니 재미있겠군.”

두 신을 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 그 강함이 짐작이 가는 행동이었다.

하데스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저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식사를 방해할 생각도 없었고요. 죄송합니다.”

남자가 굵은 금빛의 눈썹을 꿈틀했다.

“흥… 겁쟁인가. 재미없군. 꺼져라.”

다시 몸을 돌리려는 그에게 하데스가 말했다.

“재미있게 해드리려고 왔습니다. 호적수를 찾고 계시죠?”

쿠르르…….

부서진 별의 파편들이 떨렸다. 남자가 각진 턱으로 미소 지었다.

“있나? 나와 주먹을 맞댈 자가?”

“있습니다. 지구라는 차원에 제가 직접 길을 열어드리죠. 그런데… 제가 의심스럽지는 않으십니까?”

아마테라스는 놀라 하데스를 바라봤다.

‘잘돼 가고 있는데 왜 쓸데없는 질문을?’

남자가 팔짱을 끼고 피식 웃었다.

“상관없다! 무슨 계략이든 부숴버리면 그만이니!”

하데스가 보란 듯이 아마테라스를 돌아보았다. 놀림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아마테라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열지요.”

하데스의 지팡이가 땅을 찍었다.

타악!

쿠르르르릉!

붉은 벼락이 내리쳤다. 벼락의 줄기가 넓어지더니… 천천히 안쪽에 일렁이는 다른 차원의 풍경을 드러냈다.

손목까지만 있는 손이 수갑 찬 죄인처럼 선 동상이 나타났다.

“저 차원에 제가 말한 강자가 있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놀아볼까!”

뭐라 더 말할 틈도 없이 남자가 금발을 휘날리며 뛰어내렸다. 아마테라스가 그 모습을 보고 하데스에게 물었다.

“아니… 저래도 되겠소? 저자를 지구에 들였다는 사실을 다른 신들이 알면…….”

“알면 어쩌겠습니까? 저자가 이현을 처치해주기만 하면 다들 오히려 좋아할 겁니다.”

하데스가 씩 웃었다.

“자아… 우린 차분히 차나 한잔하며 구경하죠.”

* * *

타앙!

강남에 위치한 헌터 협회 상황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상황은?”

나타난 것은 유지애 이사. 여느 때처럼 말끔한 정장 차림인 그녀의 얼굴은 여유가 없는 긴장으로 가득했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오퍼레이터 한 명이 군인 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예! 20분 전 강남 상공 200미터 지점에서 열리기 시작했고, 현재 직경 10미터까지 확대됐습니다! 마력 양은 B급…입니다.”

‘멸망급 게이트가 아냐?’

유지애는 가늘게 눈을 떴다.

강남에서 전조 증상도 없이 게이트가 열렸다기에 멸망급 게이트라고 생각해서 급하게 뛰어온 것인데…….

아니었다고?

데이먼 호크니의 예언은 확실하지만… 단점이 있다.

일어나는 시간과 게이트의 등급을 정확히 추측하기 힘들다는 점.

그림에서 본 정보만으로 추론해야 하는데, 아무리 잘 맞춰도 일주일 정도의 간극이 생기는 경우가 흔했다.

어쨌든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 사실 대단하기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데이먼 그자가 허술해서 능력도 허술한 것 같아…….’

약 처먹고 히피짓하는 놈이 하필 예언 능력을 지녔다니… 세계에 손해다. 게다가 영국은 데이먼의 눈치를 보며 그를 방임했다.

하필 영국은 왕실의 입김 때문에 협회의 힘이 그리 강하지 않은 국가라… 협회가 협조를 구해도 자존심만 세우기 바빴다.

지금도 데이먼과 연락하는 인물은 꼴랑 경감 하나라나…….

지애 자신이 그런 능력을 지녔으면 아예 예언 전담팀을 만드는 식으로 예언을 최대한 활용했을 텐데…….

그때 오퍼레이터가 화면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게이트에서 막 괴물이 이탈… 마, 맙소사…….”

“왜 그러지?”

“괴… 괴물이 나온 순간 게이트의 마력이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며… 멸망급의 마력입니다!”

데이먼 호크니가 알려준 예언의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데이먼의 예언이 틀린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

역시 그 새끼가 코카인이라도 빨고 예언한 것이 틀림없다!

“…당장 CCTV 화면 띄워요.”

오퍼레이터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내, 화면에 팔짱을 낀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강남스타일 동상의 위에 당당히 선 남자는 뭐라고 고래고래 외치는 중이었다.

“뭐라는 건지 알 수 있습니까?”

“해보겠습니다.”

화면에 가득 찬 남자에게서 생김새에 어울리는 굵은 목소리가 터졌다.

―이 차원에서 가장 강한 놈! 여기로 와라! 한 시간 안에 오지 않으면 이 차원 전체를 부숴버리겠다! 크하하하!

분명히 다른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의 말인데… 기이하게도 한국어처럼 들렸다.

일부 지성 있는 괴물들 중에 텔레파시와 같은 특별한 의사소통 수단을 보유한 자들이 있다던데, 저자도 그 중 하나인 듯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애는 재빨리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발신음이 가고 약 10초… 어딘지 나른한 중저음이 전화를 받았다.

―누구?

“이현 씨. 저 협회 이사 유지애입니다. 제 번호… 저장 안 하셨나요?”

파티에서 분명히 전화번호 교환을 했는데… 바나나톡 친구 추가까지 해놨는데…….

그녀의 물음에 이현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아, 맞다.

“…….”

왜 연애 어플에서 까인 사람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지애는 잠시 심호흡했다.

‘이상한 생각하지 말자. 사적인 일로 전화한 것도 아니잖아.’

―근데 무슨 일?

“강남에서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일단 등급은 B급인데, 거기서 나온 자가 강력한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자가 지구에서 가장 강한 자를 찾고 있고요.”

―근데?

‘근데’라니… 어이가 털린 지애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이현 씨가 지구에서 가장 강하시니까요.”

―그렇긴 한데, 대화는 해봤어?

“예?”

―지구에서 가장 강한 자를 찾고 있다며. 그 말을 들었다는 건 말이 통한다는 얘기잖아. 얘기는 해봤냐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생긴 것도 사람 같고… 괴물이 아닌 아인으로 분류되는 자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설령 게이트에서 나온 자라도 대화를 먼저 해보는 것이 맞다.

지애는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데이먼 호크니의 예언에 너무 집착한 탓일까.

“그게…….”

그때 핸드폰 너머에서 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삼식이!

―어유! 우리 빈이, 삼식이 그렸어요~ 허어어억!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현이 중얼거렸다.

―우리 빈이… 미술에도 소질이 있구나…….

내버려 두면 어딘가 다른 세계로 가버릴 것 같은 목소리다.

혹시 지금 안 오려고 하는 게 빈이 때문 아닐까……?

“…이현 님?”

―어, 아무튼 그쪽에서 대화 끝나고 안 되겠다 싶으면 연락하라고. 난 바쁘니까.

“예? 잠깐…….”

전화가 뚝 끊겼다. 먼저 전화가 끊겨본 것도 처음 있는 일. 방금까지 빈이 돌보고 있었으면서 바쁘다는 뻔뻔한 거짓말을……!

지애는 이 급박한 상황에 화가 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오퍼레이터 하나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S급 헌터 먹필도사 현장에 도착!”

“그 인간이 거기 왜 있어!”

유지애 이사가 먹필도사 때문에 한때 신경증까지 앓은 것은 유명한 일. 연락을 받은 오퍼레이터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연락이 왔는데 연결할까요?”

“…연결해요.”

곧 정체불명의 남자를 비추던 화면 옆에 먹필도사의 기생오라비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부채를 설렁설렁 흔들며 말했다.

―오, 이사. 보고 있소? 내 마침 강남을 순찰 중이었는데 일이 터진 것 같아 왔소. 제일 강한 자를 찾는다니 뭐 이 내가 와야지 별수 있나! 하하하!

먹필도사는 강하다. 한국의 S급은 물론… 전 세계 S급들 사이에서도 순위권에 든다는 것이 중론.

그러나…….

“상대는 멸망급 게이트의 보스급입니다. 혼자서는 절대 상대할 수 없으니 최대한 시간을 끌어요.”

―응? 그야 물론이오. 내가 바보도 아니고 괜한 걱정을 하는군.

‘당신 바보 맞잖아…….’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지애는 일단 참고 말했다.

“절대 싸워선 안 됩니다! 알았죠?”

“연락 끊겼는데요?”

“…….”

불안하다. 너무나 불안하다!

지애는 안절부절못하고 화면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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