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64화 (64/150)

64화. 헬 파티 (1)

“예?”

헌터 협회 이사, 유지애의 사무실에서 뾰족한 비명이 새어 나왔다.

항상 냉정하고 철두철미한 일처리로 사원들의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는 그녀가 이렇게 격한 반응이라니!

멸망급 게이트의 예고라도 받았단 말인가.

이내 벌컥 문을 열고 나온 지애가 비서에게 소리쳤다.

“성경 씨! 나흘 후 저녁 일정… 아니, 오후 일정 전부 비워줘요.”

“예? 네, 넵! 이사님!”

“나흘 후, 하나 플라자 호텔에서 파티 있을 예정인데, 드레스도 좀 준비… 아니, 제가 하죠.”

“이사님! 나흘 후 저녁에 나이지리아 대통령 측과 화상 면담 일정은 어떻게 할까요?”

“양해 구하고 취소해요. 나흘 후 파티가 최우선 일정입니다.”

“네!”

최우선… 지애에게 그 말은, S급 게이트 이상이 아니면 변동될 일이 없다는 의미.

대체 나흘 후 파티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혹시… 남자친구?’

순간 뜬 생각을 비서인 성경은 픽, 웃으며 부정했다.

‘그럴 리가 있나.’

존경스러울 만큼 일에만 집중하는 커리어 우먼이 바로 유지애 이사다.

설령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더라도 만나볼 시간조차 내지 못할 만큼 일정이 빡빡해서 다들 과로사를 걱정할 지경이니…….

* * *

멕시코의 낡은 교회.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의 눈이 아래를 응시했다.

인류의 원죄를 안고 죽어가면서도, 저를 탄압하는 자들을 그저 긍휼히 여겼다던 예수의 눈동자 위로… 피가 흘러내렸다.

한 방울… 두 방울…….

점점 많아지던 피가 이내 폭포처럼 흐르고…….

철퍽!

찢겨진 내장이 공물처럼 십자가 아래 떨어졌다.

그 위로 온화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교회의 풍경은 끔찍했다.

의자와 바닥은 부서지고 창은 깨졌다.

그 폐허 위를 수십 명의 피와 내장이 덮었으니… 가히 묵시록의 광경이라 할만했다.

“으, 으으… 그만둬…….”

피 칠갑이 된 남자가 부러진 다리를 잡고 몸을 뒤로 질질 끌었다.

그는 이 교회의 유이한 생존자였다.

또각.

그의 다리 사이를 하이힐이 사뿐히 점했다.

애원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여성의 눈은 성녀처럼 자애로웠다.

그녀가 바로 이 참상을 만들어낸 자임을 누군들 짐작할까.

남자조차, 구석에 앉아 있던 그녀가 별안간 중앙에 나와 공격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짐작조차 못 했다.

붉은 수녀복과 허벅지부터 찢어진 치마 사이로 드러난 가터벨트의 애로틱한 조화.

등에 짊어진 십자가.

그저 특이한 옷차림이라고만 여겼는데…….

그 여자가 바로 저 블랙벤더의 S급, ‘붉은 수녀’일 줄이야…….

“제, 제발 살려줘.”

붉은 수녀가 두 손을 모으고,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었다. 마치 기도하는 모양.

“안 됩니다, 신부님. 사악한 죄를 저지른 당신을 신의 곁으로 인도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니…….”

“크윽! 사람을 다 죽여 놓고 무슨 소리야!”

“이 교회가 후안 카르텔의 세탁처임을 알고 왔습니다. 우리 블랙벤더의 신성한 로드께서 제게 계시를 내려주시어 왔으니, 겸허하게 심판을 받아들이십시오.”

“이 미친 살인마가!”

독설을 들으면서도 붉은 수녀의 미소는 걷히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신의 대행자인 제게 죽음으로써 당신의 모든 죄는 사해질 것이니…….”

붉은 수녀가 양팔을 벌리자… 그녀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천장과 바닥을 흐르며 뚝뚝 떨어지던 피들이 꿀렁거리며 뭉쳤다.

[피의 탐욕]

―피를 이용해 다양한 무기를 만듭니다. 이 스킬로 죽인 자의 피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피의 양이 늘어날수록 데미지도 늘어납니다. 지능 스테이터스에 비례해 데미지와 생성 속도가 상승합니다.

―설명 : 철분이 많은 피를 선호합니다.

피들이 뭉쳐 말뚝과 같은 형상을 만들었다.

그 수가 수십 개.

“자, 잠깐! 기다려! 살려줘! 돈을 줄게! 돈을 바칠 테니까 목숨만은 살려줘!”

“그것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죽은 후 전부 신의 전당에 바쳐질 예정이니…….”

그때,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고 발랄한 음악이 붉은 수녀의 주머니에서 울렸다.

―하트하트, 당신 가슴에 펑펑 캔디~

남자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트캔디?”

전화를 받으려던 붉은 수녀가 움찔했다. 그를 노려보며, 붉은 수녀가 전화를 받았다.

―일 중이었나?

들려온 목소리에 붉은 수녀의 볼이 입은 옷처럼 붉어졌다. 마치 소녀 같은 태도다.

“네, 로드. 지금 막 정리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정리’라는 단어에 남자가 움찔했다.

―급한 일이 생겨서 한국에 돌아와 줘야겠어. 파티 드레스 있나?

“네, 로드.”

―좋아. 내일까지 돌아와 줘! 파티에 참가해야 하거든!

“네! 알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붉은 수녀가 가슴 위로 핸드폰을 꼭 끌어안고 황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쉐도우 로드 님과 드레스 입고 함께 파티… 하아… 너무 좋아.”

생명의 은인인 쉐도우 로드를 붉은 수녀는 가슴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누가 의도한 것처럼 자꾸 시간이 안 맞아서 쉐도우 로드와 단둘이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오랜만에 함께 활동 일정이 잡힌 것이다.

그것도 마치 데이트 같은 일정이…….

“추, 축하드립니다… 저는 이제 가도 될까요?”

날카로운 시선이 그를 향했다.

“당신… 하트캔디를 압니까?”

“패… 팬입니다. 1… 1집 앨범 수록 세 번째 곡이죠?”

“최애는?”

이건… 목숨이 걸린 질문일지도 모른다. 남자의 눈이 피가 떨어지는 천장을 한 번 훑었다가 내려왔다.

꿀꺽.

침을 삼킨 후, 잔뜩 긴장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하… 니입니다.”

붉은 수녀의 눈썹이 슥 올라갔다.

“하니 본명은?”

“희수, C급 헌터인 오빠 백수신선 남우를 가진 소녀 가장!”

가족사까지 아는 것을 보니… 이 정도면 골수팬이다. 하트캔디는 아직 주목받지 못하는 영세한 소형 소속사의 걸그룹… 중소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명의 팬도 소중한 상황!

붉은 수녀는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신이시여, 오늘의 복된 만남을 기념하여 더 이상의 살생은 금하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모르는 사이, 희수는 한 사람을 구했다.

* * *

하나 플라자 호텔은 정, 재계의 재벌들이나 연예인들이 결혼식장으로 쓰거나, 외국의 귀빈들이 머무는 것으로 유명한 5성급 특급 호텔.

그 호텔의 한 층을 이현이라는 남자가 통째로 빌렸다.

거기에 호텔 측이 미리 건네받은 하객 명단에는 헌터 협회의 중역 유지애 이사까지 포함됐으며… 소형 기획사 소속이지만 요즘 해외를 중심으로 인지도가 높아지는 중이라는 아이돌 그룹, 하트캔디가 축가를 맡았다.

“거기를 우리가 치는 겁니다.”

안경을 쓴 남자가 검지로 지도를 턱 짚었다.

그가 입은 파란 티셔츠에는 하얀 하트와 함께 대문자로 ‘KCWA’라는 글씨가 크게 프린팅됐다.

KCWA는 ‘Korean Creature Welfare Association’의 약자로… 한국말로는 ‘한국 괴물 자유연대’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괴물, 아인의 보호와 권익.

그들에게 있어…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들 또한 그저 게이트라는 재앙에 휘말린 피해자였다.

인간도 크리처도 사는 차원은 다르지만, 한 우주의 피조물로서 서로 존중하고 평화롭게 어울려야 하는 것이다!

안경남이 주먹까지 불끈 쥐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그간 수십 차례, 정부와 헌터 협회에 부당하게 억류되어 있던 크리처들을 풀어주고 시위하는 것으로 평화적 합의를 모색해보았습니다.”

열 명이 넘는 KCWA 회원들이 그의 말에 끄덕였다.

그 와중에 풀려난 크리처들이 애꿎은 직원들을 공격하거나 민간에 피해를 입히고 전염병을 퍼트린 사실은 그들의 머릿속에 없었다.

있더라도… 그런 부수적인 피해는 대의를 위한 작은 희생일 뿐.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 보낸 것은 멸시와 조롱!”

안경남의 손바닥이 책상을 내리쳤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더 많은 크리처들의 권익 증진을 위해 강경한 수단을 동원할 때가 온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비쩍 마른 여자가 손을 들었다.

“강경한 수단이라면, 어떤 겁니까?”

“계란 던지기?”

헌터 협회 유지애 이사에게 계란을 명중시킨다면 그것만으로 뉴스거리가 될 것이니… 충분한 성과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안경남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우린 호텔째 그녀를 감금할 겁니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유지애 이사를 감금한다?

그녀가 누군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헌터 협회의 이사다. 최근에는 S급 게이트를 피해 없이 막아내고, 현장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인기를 얻어 그 위세가 더욱 막강해졌다.

말로 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유지애 이사는 평소에도 경호가 단단할 텐데요?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은 스무 명 정도가 전부고요.”

안경남이 씩 웃었다.

“이날만큼은 경호가 허술할 겁니다. 제가 하객 명단을 입수했는데… C급이 하나, D급이 하나에 유일하게 개최자인 이현이라는 남자만 A급 헌터입니다.”

안경남의 눈이 구석에 앉은 남자들에게 향했다.

“여기, C급 헌터 분들이 세 분이나 계시니 충분히 상대 가능하지 않을까요? 나머지 분들도 전부 마력을 사용하실 수 있는 분들이고요.”

전의를 떨어트릴까 봐 안경남은 굳이 ‘D급’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어쨌든 D급이어도 일반인보다는 훨씬 강하니…….

하객 명단을 보던 남자 중 하나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여기 진명우… 성마리… 불스아이 병장이랑 붉은 수녀 본명 아닙니까?”

둘 다 S급 중에서 사이코로 유명한 자들이다. 먹필도사도 나름 사이코로 유명하지만, 저 둘은 살벌한 사이코다.

안경남이 피식 웃었다.

“우연이겠죠. 불스아이 병장과 붉은 수녀의 소속 길드는 사이가 나쁜 것으로 유명하잖아요?”

“아, 하긴.”

“그리고 이현이라는 남자는 아직 인지도도 없는 A급 헌터인데, 그들이 무슨 인연으로 파티에 참가하겠습니까?”

구구절절 맞는 말… 더 이상 반론은 나오지 않았다.

안경남은 슬쩍 안경을 추켜올리고는 공약을 내거는 대선후보처럼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번 거사로 우리의 이름을 더욱 알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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