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명계의 왕 (3)
저승사자라는 직업은 높은 전투력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죽은 자들이 순순히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저승에 따라가는 경우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절반 이상은 난동을 부리거나 거부하고 도망치는데…….
그런 영혼들 중에 호전적인 장수나 악인이 있으면 자연히 무력을 사용하게 된다.
강림은 그런 저승사자들을 인간이던 시절에 맨손으로 일곱이나 때려눕혔다.
그 패기와 강함을 높이 사 염라가 그를 직접 저승사자에 임명했고…….
저승사자가 된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쫓은 영혼을 놓치지 않으며 그 신뢰에 보답했다.
“그래서 싸움 방식은?”
이현이 손목을 풀며 물었다. 강림이 턱수염을 긁으며 말했다.
“데스매치…라고 하고 싶지만 난 이미 죽었으니 공정하지 않지. 그리고 애 아빠를 죽이는 것도 내키지 않아.”
“안 질 거니까 그런 신경 안 써줘도 돼. 응? 아니, 아닌가. 내가 널 죽이면 명부 보러 가기가 곤란하겠네.”
“크하하하! 기개 좋은 놈이군. 좋아! 좋은 게 생각났다.”
강림이 갑자기 팔뚝의 천을 북 잡아 뜯었다. 그리고는 이현과 손을 맞잡고 천으로 두 손을 단단히 묶었다.
“이게 뭐야?”
“내가 인간일 때 했던 거지. 이러고 서로 친다. 먼저 무릎이 땅에 닿은 놈이 진다. 간단하지?”
“오, 좋네.”
이현은 의형제를 맺은 ‘길가메시’와 비슷한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무식하게 서로 피하지 않고 주고받기였고…….
삼 일 밤낮을 서로 때린 끝에 이긴 것은 결국 이현.
간발의 차였다.
“그럼 시작은 어떻게 할까?”
강림이 지켜보던 사자들에게 외쳤다.
“어이! 네가 신호해라. 대충 3까지 세.”
“아, 예! 그, 그럼… 하겠습니다. 3… 2… 1!”
손을 맞잡은 순간 강림은 이현이 강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싸워보지도 않고 패배를 떠올린 적은 없으나… 이번만큼은 거대한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전력으로 주먹을 날렸다.
후웅!
보라색의 마력을 두른 주먹이 이현의 안면을 덮치는 그 순간…….
지켜보던 저승사자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현의 주먹이 수십 개로 늘어난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기관총 쏘는 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주먹이 강림의 몸을 난타했다.
‘아냐, 주먹이 늘어난 게 아니라… 잔상이다!’
두두두두!
“크아아아!”
소낙비를 헤치고 나아가는 사람처럼, 강림은 주먹의 빗속을 허우적거리며 어떻게든 반격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현의 주먹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니었다.
엄청난 속도로 가격하면서 전부 급소를 노리는데… 한 발 한 발이 묵직했다.
‘이럴 수가!’
“크윽, 크어어억!”
순식간에 얼굴이 부어오르고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었으나… 강림은 오히려 다리에 힘을 주고 온힘을 다해 허리를 튕겼다.
반동에 이현의 몸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오.”
“받아라!”
떠오른 몸을 향해 강림이 어퍼컷을 날렸다.
디딜 데 없는 허공, 훤히 드러난 복부.
직격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무슨 마술인지, 어퍼컷을 날린 주먹이 꺾여 강림 자신의 면상을 때렸다.
뻐억!
“켁!”
쿠웅!
끝내 강림의 무릎이 꺾였다. 강림은 뒤늦게 벌어진 일을 깨달았다.
그가 날린 주먹을 이현이 니킥으로 아래에서 쳐 얼굴로 날려 보낸 것이다.
완벽한 카운터였다.
후두둑.
강림의 얼굴에서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이현이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승리군.”
“형님!”
달려오려는 저승사자들을 향해 강림이 손바닥을 펼쳤다. 저승사자들이 발을 멈췄다.
강림이 고개를 들었다. 피떡이 된 얼굴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후련했다.
‘사나이들 사이에서는 육체의 대화만이 서로의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법… 너의 뜨거운 마음이 분명히 닿았다!’
너무 두드려맞아서 화끈거리는 것이었지만, 무슨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길가메시 같은 놈이 또 있네. 세상은 참 넓어.’
이현도 내심 감탄했다.
“젠장, 이렇게 처맞은 건 오랜만이다. 졌다.”
“설 수 있겠나?”
이현이 내민 손을 강림이 굳게 잡았다.
“그럼.”
일어난 강림이 스스로 손을 묶은 천을 찢었다. 무릎을 후들거리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똑바로 선 강림이 몸을 돌렸다.
“따라와. 어이, 너희는 삼신께 가서 꽃 하나만 달라 해라!”
“예, 형님!”
그 말을 듣고 이현의 눈이 번쩍 빛났다.
“잠깐, 꽃?”
분명 아까 그 꽃밭을 삼신이 관리한다고 했지…….
“나도 꽃 하나만 줘라.”
“응? 넌 안 다쳤잖아.”
이현이 강림의 피로 범벅이 된 주먹을 쓰다듬었다.
“네 몸이 단단해서 그런지 좀 시큰거리는군.”
“크하하!
강림이 이현과 함께 집을 나왔다. 지나다니는 영혼들이 떡이 된 얼굴을 보고 흠칫흠칫 놀랐지만, 정작 강림은 아무렇지 않게 당당히 활보했다.
“그런데… 왜 왔다고 했지?”
“명부에 내 딸 이름이 적혔거든. 애가 멀쩡한데 병사라니 믿겠냐.”
강림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럴 만하지. 실은 요즘 실수가 잦아.”
“어째서?”
“몰라, 난 그쪽 담당은 아니라. 난 명부 받아서 현장만 뛰는 입장이라…….”
“발주가 잘못됐다, 이건가.”
이현도 공장 근무 경험이 있어 대강 이해했다.
“아랫것들 까봐야 소용없으니 염라께 직접 가보자고.”
커다란 대궐을 가리키며 강림이 하는 말에 이현이 씩 웃었다.
시원시원한 진행이 마음에 든다.
“나야 좋지.”
염라궁은 지상의 그 어떤 인간이 지은 궁전도 비교가 안 될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수평으로도 그렇고 수직으로도 100층은 되어 보일 만큼 높았는데… 꼭대기에는 구름이 걸려 있을 정도였다.
1층에 들어서기 무섭게 북적거리는 소리가 무섭게 안면을 때렸다.
“3312번 환생자! 3312번 환생자 사망 자료!”
“살인 둘! 코드 레드!”
“야 이 새끼야! 수술 중 사망을 살인에 놓는 놈이 어디 있어!”
도깨비들이 서류를 한 뭉치씩 들고 뛰어다닌다. 바닥에 있는 서류를 밟고 미끄러지는 자가 있는가 하면 천장 높이까지 닿는 서류를 조심조심 들고 다니는 자도 있다.
공통점은 하나같이 초췌하고 퀭한 얼굴에 책상마다 커피며 에너지 드링크가 놓인 점이랄까.
“뭐야, 여긴? 꼰대였던 부장들이 오는 업무 지옥… 뭐 그런 거냐?”
“아니, 그냥 저승의 업무 부서다.”
“근데 무슨 서류가 저렇게 많아? 컴퓨터 없어?”
자세히 보니… 글을 쓰는 사람 옆에 한 사람이 더 붙어서 열심히 먹을 갈고 있다.
“없는데?”
“그럼 일을 전부 먹 갈아서 붓으로 종이에 쓴다고……?”
“그래, 염라께서 전통을 중요시하거든.”
태연한 강림의 대답에 이현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었다.
황제로서의 안목이 단숨에 문제를 파악했다.
빈이가 왜 명부에 올랐나 했더니… 일하는 꼬라지가 이래서야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꼼꼼한 사람이라도 직접 손으로 옮겨 적다 보면 실수하기 마련… 심지어 그걸 볼펜도 아니고 붓으로 하다 보면 신경과민에 노이로제가 와서 실수를 창조하는 경지에 이를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다.’
그 와중에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있는데… 이 커다란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단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문에는 대놓고 ‘5급 이상 전용’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인상이 찌푸려지는 광경이다…….
“이거 우린 탈 수 있나?”
“아아, 내가 3급이라 괜찮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77층에서 내리자… 붉은 융단이 깔린 호화로운 방이 나타났다.
황금으로 용이 장식된 열주가 좌우로 펼쳐졌고, 그 끝에 옥좌가 보였다. 옥좌에 앉은 자는 황금으로 된 묵직해 보이는 관을 쓰고 푸르스름한 피부를 지닌 거한.
양옆에서는 날개옷을 입은 선녀들이 천천히 부채질 중이었다.
‘저자가 염라겠군.’
상황을 파악하며 온지라 이현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그가 강림과 나란히 뚜벅뚜벅 다가가자, 상소문처럼 보이는 것을 읽고 있던 염라가 굵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냐? 강림, 어찌 산자를 데려왔느냐? 네 얼굴은 왜 그 모양이야?”
이현이 대답했다.
“이봐, 명부가 잘못됐으니 바꿔야겠어. 당신은 할 수 있지?”
명계의 지배자에게 이 무슨 건방진 말투인가. 염라대왕이 팔걸이를 박차고 일어나려다가… 이현의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가만. 저놈, 그놈이잖아? 츠쿠요미를 개패듯이 팬… 설마 강림을 팬 것도 저놈?’
강림은 강하다. 어지간한 신은 그의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것이다.
과거 강림의 만행을 용서했던 이유도 그의 강함을 눈여겨보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강림을 저렇게 떡으로 만들어놓다니. 게다가 그냥 떡으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 감화시킨 듯이 보인다.
‘일났다… 츠쿠요미를 팬 것도 그렇고, 강림까지… 이거 나도 위험한 거 아냐?’
게다가 세력을 지닌 성좌도 아닌 놈과 싸움박질을 해보았자 얻는 게 없다. 이겨도 손해, 져도 손해다.
염라는 떼려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크흠… 본디 산자의 말에 부화뇌동하여 명부에 손댐은 원칙에 어긋나나… 내 이번만큼은 강림의 얼굴을 보아 한번 확인해보지.”
‘응? 의외로 말이 통하네.’
입구부터 본 광경 때문에 꽉 막힌 꼰대를 연상했는데… 염라가 의외로 ‘대왕’이라는 이름이 붙은 자다운 대인배다.
아니… 강림의 이름값이 그만큼 큰 것일까?
‘어쨌든 잘됐네.’
“헌데 누가 잘못되었는가?”
“내 딸. 빈이.”
“응?”
이현의 아이, 빈이라면… 인간이 아니다. 염라도 한 번 본 기억이 났다.
‘그럼 우리 명부에 실릴 리가 없는데……?’
이건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다.
“출생 년도는?”
“2037년 5월 7일.”
염라가 손가락을 튕겼다. 어디서 나온 건지 그의 손에 명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엄지에 침을 묻힌 염라가 천천히 명부를 넘겼다.
“빈… 빈이라…….”
명부를 넘기던 손가락이 우뚝 멈췄다.
[이 빈.]
사인 : 병사.
“확실히 명부에는 올라 있기는 한데… 확실히, 명운이 쇠함은 느껴지지 않는군. 병사 담당관을 불러라!”
“예!”
잠시 후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도깨비 하나가 쭈뼛쭈뼛 걸어왔다.
그가 염라 앞에 넙죽 엎드렸다. 염라가 그에게 명부를 휙 던졌다.
“여기 적혀 있는 빈이라는 아이가 명부에 올랐는데, 내가 살펴보니 이 아이의 명운은 아직 쇠하지 않았다. 이는 어찌 된 일이냐?”
겁에 질린 얼굴로 명부를 뒤진 관리자가 히끅 하고 숨을 삼켰다.
“소… 송구하오나… 아래 것 중 하나가 기입 과정에서 실수한 듯합니다… 속히 기입을 실수한 자를 찾아내어 처벌하겠습니다!”
염라가 스윽, 이현에게 시선을 향했다.
“크흠, 그렇다는군. 걱정 말고 돌아가게. 내 이번 일은 이 염라대왕의 이름을 걸고 조속히 해결할 테니.”
“아니.”
팔짱을 끼고 보고 있던 이현이 말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