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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56화 (56/150)

56화. 부모의 책임 (1)

톡톡톡톡…….

칼이 능숙하게 도마 위를 누비며 호박을 썰었다.

한쪽에서는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중.

일성은 푸근하게 웃으며 창밖을 보았다.

아직 낮 네 시.

저녁 준비를 하기에는 이르지만… 일본 여행을 갔던 이현이 돌아오는 날이라서인지, 들뜬 마음이 몸을 움직였다.

그때 현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딩동.

이현이라면 초인종을 누르지 않을 텐데…….

일성은 의아한 마음으로 인터폰에 다가갔다.

인터폰 화면에는 부부로 보이는 두 남녀가 서 있었다.

교회 전도인가, 싶어 무시하려던 일성은 한순간 남자의 얼굴을 다시 보고 당황했다.

“준모……?”

오준모… 일성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공사판 노동자에서 기러기 아빠로… 궂은 세월 이겨내며 애써 키운 아들이었다.

서른넷에 결혼한 후부터는 연락이 뜸해졌지만… 다들 그렇다는 말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했다.

자식이 독립할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 참된 부모의 역할이라는 말이 있으니… 그저 그대로 실천하려고 했다.

그저 간간이 연락만 해주면 그걸로 족하다고 여겼다.

최초의 게이트 폭발 이후 완전히 소식이 끊겼을 때는 그리 생각했던 어리석은 자신을 얼마나 탓했는지 모른다.

게이트 폭발 당시의 실종자들은 제대로 수색도 안 되는 실정.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다시 몇 년이 걸렸다.

허겁지겁 문을 열자…….

정말로 준모가 거기 있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수척해졌지만, 제 아들을 못 알아보는 아비가 어디 있을까.

준모가 어색한 얼굴로 웃었다.

“아버지.”

“준… 준모야. 준모 맞니……?”

손을 뻗으면 흩어지는 환영일까, 차마 손도 뻗지 못하고 일성은 현관에 멍청히 서서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다.

그러자 준모가 다가와 일성의 손을 잡았다.

“저 맞아요, 아버지. 오랜만이죠?”

“준모야… 준모야……!”

안겨드는 일성을 준모가 얼떨떨한 얼굴로 안았다. 눈물이 떨어지며… 고목처럼 마른 손이 어깨를 훔켜쥐었다.

자식 앞에서 부모가 눈물을 보임은 금기였으나…….

살아 돌아온 자식 앞에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나.

“우리 며늘아기도 한번 안아보자.”

“네, 아버님.”

일성은 준모 부부를 거실에 앉혔다.

“그래… 밥은 잘 먹고 다녔고?”

“그럼요, 아버지. 그런데…….”

정갈한 아파트인데… 아기용 소음방지 매트가 깔린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의 흔적이 보인다.

“혼자 사시는 게 아닌가 보네요?”

“아, 그게…….”

그때 멀리서 삼식이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사, 사자?”

놀란 눈초리에도 삼식이는 아랑곳 않고 소파에 기대앉은 일성의 다리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불이 붙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데…….

“꼬리에 불이…….”

“사잔데……?”

일성은 놀란 부부의 표정을 보고 삼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얘는 삼식이라고… 같이 사는 사람 애완동물이다. 아, 그래. B… 아니, B급 헌터 이현이라고 들어보았니?”

“아뇨…….”

두 부부가 눈으로 삼식이를 경계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름 기억해두어라. 나중에 크게 될 사람이니까.”

“그, 그런가요?”

“그래, 너희는 그간 어찌 지냈니? 손주, 손녀는 잘 있고?”

헤어지기 전 나이가 7, 8살이었으니…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것이다.

“예, 아버님. 학교도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야.”

“아버지도 다행이네요. 이 집값 비싸다는 사당에… 헌터 일도 하신다면서요? 헌터는 벌이가 좋다더니… 정말인가 봐요.”

심지어 최근 S급 게이트가 쉽게 공략된 사건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한 서울권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최고의 헌세권… 그런 말에 프리미엄이 붙어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실거래가가 20%나 올랐다.

준모의 아내인 미순이 슬쩍 나섰다.

“저어,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님.”

무슨 일인지 준모가 헛기침하며 팔꿈치로 미순을 슬쩍 밀었다.

“어허, 여보.”

“왜요? 아버님도 일찍 들으시는 편이 낫죠. 이렇게 잘 살고 계시는데.”

의아하게 보는 일성에게 미순이 말했다.

“아버님, 실은 우리 손주손녀가 학교에도 들어가고 하니까… 학원비고 뭐고 돈이 들어가는 데가 많더라고요.”

“그래, 애 키우면 그래.”

할멈과 함께 준모 하나를 키우는데도 돈이 어찌나 들어가는지…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하는 것만으로 뼈가 삭는 고생이 필요했다.

이렇게 번듯이 자라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미순이 무릎으로 슬쩍 몸을 당기고 상체를 앞으로 살짝 뺐다.

“그런데 이이도 그렇고 저도 게이트 폭발 이후 변변히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솔직히 어려운 형편이에요, 아버님.”

준모가 죄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이 나올지 뻔했다. 게이트 폭발은 많은 기반 사업을 망가트리고 부수어 놓았다.

가족을 잃고, 직장을 잃고… 폭발의 트라우마로 자살하는 사람만 연간 몇백 명… 그야말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 아이를 둘이나 키우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 돈이 얼마나 필요하니?”

어차피 얼마 안 가 늙어 죽을 목숨… 자식새끼들 주는 돈이 안 아까우랴.

아들을 살려주면 천금을 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되살아온 아들 부부에게라면 전 재산을 줄 수도 있으니…….

부부가 서로를 보았다. 준모가 조심스레 말했다.

“2억 5천 정도면…….”

생각보다 더 큰돈이다…….

하지만 일성은 꺼리는 기색 없이 말했다.

“그리 큰돈은 없다. 미안하구나. 대신 3천 정도면 줄 수 있다.”

지금 있는 전부였다. 그간 모은 돈에… 이현이 양육비 명목으로 준 용돈까지 모아놓은 돈.

후에 죽으면 돌려주려고 모은 돈이기는 하지만, 아들을 위해 쓴다고 하면 이현도 용서하리라.

“3천…….”

그러나 일성의 말이 준모 부부는 영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다.

“아버지, 정말…이십니까? 이렇게 좋은 집에 사시면서…….”

다른 곳도 아니고 사당에 있는 큰 아파트인데… 그런 말이 숨겨진 눈빛이었다.

“미안하구나. 이 애비도 얹혀 사는 입장이고… 헌터라고 해봐야 다 늙은 몸인데 벌어야 얼마나 벌었겠니.”

“그럼, 대출이라도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준모가 다시 눈빛을 바꾸고 강압적으로 말했다.

“저희도 여기저기 끌어다 쓰다 보니 더 대출도 못 받는 상황이라… 우리 손주들 살린다, 생각하시고 2억만 대출받아주세요.”

“꼭 갚을게요, 아버님.”

“헌터들은 대출도 잘 나오잖아요.”

대출이 잘 나오는 것은 생존률이 높은 B급 헌터부터지 C급은 아니다. 보험사들이 자선 기관도 아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헌터들에게 선뜻 돈을 빌려줄 멍청한 보험사는 없다.

그러나…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왔을 아들 내외를 어찌 외면할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은 선인이든 악인이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일성의 눈에 준모의 눈에 깃든 탐욕은 애달픈 간절함으로 닿았다.

제 심장을 내어주며 구르면 넘어질까, 조심히 들고 가라고 말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라… 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아비가 한번 알아보…….”

그때, 키패드 누르는 소리가 울렸다.

삐삐삣삐. 띠로롱!

“다녀왔습니다!”

“하삐!”

부스럭부스럭.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들어온 이현이 거실에 앉은 두 부부를 보고 멈칫했다.

“응? 누구……?”

“아, 현 군! 여기, 내 아들과 며느리네. 자, 준모야. 여기 내가 말한 그 이현 군이다. B급 헌터고, 이 아비에게는 생명의 은인이고… 아주, 대단한 사람이야.”

“오.”

유모차를 끌고 다가온 이현이 손을 내밀었다.

“반갑군.”

평소 같았으면 젊은 놈이 싹수없게 말을 깐다며 센터를 까고 싶어졌겠지만…….

상대는 B급 헌터.

혼자서 한 개 중대와 맞먹는 인간병기.

자연스레 준모의 얼굴이 공손해졌다.

“아, 예.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대충 악수를 한 이현이 들고 있던 봉투에서 뭘 꺼내어 일성에게 건넸다.

“이거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과자랑 약입니다. 좀 드세요.”

“어유, 맛있는 거나 더 사 먹지. 뭐 이런 걸 다 줘요.”

“나눠 먹어야 맛있죠. 음? 이 냄새… 된장찌개네요?”

“빈이가 매운 거 좋아해서 청양고추 조금 넣고 칼칼하게 끓였어요.”

이현이 멀뚱히 선 준모 부부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들도 저녁 먹고 갈 거지?”

“예? 아, 아닙니다! 저희는 금방 가려고 했어요.”

아버지의 입에서 빚 이야기가 나오면 곤란하다. 그런 생각에 거절했으나…….

간신히 돌아온 아들을 밥도 안 먹이고 보내기에는 일성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밥은 먹구 가야지.”

“그러지. 방도 있으니 한 잠 자도 되고.”

이현이 일성과 살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게 아들 준모의 이야기.

자랑부터 회한까지… 묘하게 정이 붙을 정도로 들어버렸다. 함께 사는 일성의 손님은 그의 손님이기도 하니… 대접을 소홀히 할 수야 없는 일.

“된장찌개로는 부족하겠군요. 제가 요리를 준비하죠.”

이현이 준모 부부에게 물었다.

“혹시 미노타우르스 차돌스테이크 먹어봤나?”

“…미노, 뭐요?”

“안 먹어봤군. 할아버지, 잠깐 빈이 좀 맡아주세요. 부엌은 제가 쓰죠.”

* * *

준모 내외는 나란히 빈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고 좋은 술까지 얻어먹어 기분이 좋았으나…….

동시에 긴장이 되기도 했다.

“헌터랬죠?”

“으응.”

“그럼 우리가 도망가도 금방 찾지 않을까요?”

“뭐 하러 우릴 찾어? 본인 돈도 아니고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닌데.”

그때 뭐가 방문을 벅벅 긁는 소리가 들렸다. 삼식이가 문을 긁는 것이다.

내외는 약속한 듯 입을 닫았다.

잠시 후 미순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한층 낮아져 있었다.

“2억… 아버님이 준 2억으로… 우리 다시 딸 수 있을까요?”

“그럼. 운칠기삼이라는 말 몰라? 도박은 운이 칠, 기운이 삼이야. 한 번만 더 가면… 잃은 거 열 배 백 배로 딸 수 있어. 그럼 아버지한테 빚도 갚고 다시 번듯하게 사는 거야.”

“그냥 그 돈으로 당신 잘하던 사업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어허, 당신도! 사업으로 한 푼 두 푼 모아서 언제 다시 재기를 해! 당신, 나 못 믿어? 엉?”

“아이, 믿죠. 믿는데… 아이, 알았어요.”

“얼른 자자고. 내일 일찍 아버지 데리고 은행 가야 하니까.”

“예, 그래요.”

그들은 아무도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속닥였으나…….

벽 너머에서, 이현은 빈이를 달래며 그들이 하는 말을 바로 옆처럼 생생하게 들은 상태였다.

잠시 골몰히 생각하던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했다.

곧 졸린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예… 형님?

“어, 지태야. ‘쉐도우 로드’ 힘 좀 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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