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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54화 (54/150)

54화. 오사카 레이드 (4)

츠쿠요미는 원래 직접 나설 계획이 없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밤과 달의 신이 한낱 인간을 상대함은 어불성설.

화신으로서 힘을 받은 나카지마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그렇게 여겼는데… 아니었다.

말 그대로 박살이 난 나카지마를 보자 츠쿠요미는 조급해졌다.

화신은 신이 자신의 힘을 직접 나누어주는 존재…….

그 덕분에 인간 세계에 보다 직접적으로 간섭하고, 신도를 늘려 힘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화신이 죽는 것은 고스란히 신 자신의 손실이 된다.

그래도 예상 못 한 힘을 지닌 이현을 상대하기가 꺼려져 경고만 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이현이 끝내 화신을 죽여버린 것이다.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망신일 뿐만 아니라, 다른 성좌들에게 얕보이게 된다.

‘난 신이다! 인간 따위는 두렵지 않으니.’

소금사막 같은 수면 위로, 하늘에서 환히 빛나던 만월이 천천히 내려왔다.

만월이 수면에 닿은 순간, 빛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그 아래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중성적인 미모에 창백한 청은발. 고대의 일본 복식을 하고, 한 손에는 푸른 구슬을, 다른 손에는 황금의 검을 들었다.

츠쿠요미.

그는 여태까지 달에서 이현과 나카지마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 주제에… 겁을 상실했구나.”

[아마츠카미 소속의 성좌 아마테라스가 당신을 비웃습니다.]

[애시르 소속의 성좌 오딘이 관심을 갖고 지켜봅니다.]

[올림포스 소속의 성좌 아레스가 팝콘을 꺼내듭니다.]

수십 개의 메시지가 이현의 주위에 떠올랐다. 이현은 손을 휘둘러 메시지들을 쳐내고 츠쿠요미를 바라봤다.

“하나만 묻자.”

츠쿠요미가 오만히 턱을 치켜들었다.

“허락하지.”

“왜 멀쩡한 남의 집 딸내미를 납치해? 로리콘이냐?”

평생 들어본 적이 없는 모욕.

[올림포스 소속의 성좌 아레스가 박장대소를 합니다.]

츠쿠요미가 눈을 내리깐 채 싸늘하게 조소했다.

“나의 미학에 반하는 존재로군…….”

이현이 상정했던 것보다 강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래봤자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

게다가 이곳은 그가 창조해낸 공간.

모든 것이 그에게 유리하다.

“내 세계에 아름답지 못한 자는 필요 없다.”

츠쿠요미가 구슬을 들었다.

차랑.

맑은 방울 소리 후, 세상이 천천히 기울었다.

“응?”

기묘한 광경이었다.

이현은 그대로 서 있는데… 데칼코마니처럼 하늘을 비추던 수평선만이 기울더니 끝내 완전히 뒤집혔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었다. 그러나 물은 떨어지지 않았고 이현이 하늘로 꺼지지도 않았다.

그는 여전히 츠쿠요미와 마주 서 있었다. 발을 굴리니 물방울이 첨벙 튀었다.

이현은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도 스멀거리며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뭔가 달라졌다. 그런데 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천벌을 받아라.”

츠쿠요미가 검을 수평으로 들어 이현의 가슴을 겨누었다.

어떤 전조 동작도 없이, 츠쿠요미의 몸이 수면을 미끄러지듯 이동해 이현의 가슴을 찔렀다.

이현은 슬쩍 몸을 옆으로 젖혀 검을 피하고 츠쿠요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스윽.

츠쿠요미의 얼굴이 물에 비친 잔상처럼 이현의 주먹을 통과시켰다.

“응?”

“후후후…….”

조소와 함께 츠쿠요미의 검이 이현을 노렸다. 이현은 훌쩍 뒤로 뛰어 검을 피했다.

“요 녀석이 재밌게 해주네.”

“목이 베여도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넌 개한테 먹혀도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뭐?”

그 순간 추악한 이형의 생명체가 츠쿠요미를 덮쳤다.

츠쿠요미는 기겁했다.

그의 스킬… ‘명경지수’는 자신의 실체를 2차원에 숨긴 채 3차원에 있는 상대를 공격하는 것.

눈에 보이는 모습은 평면의 그림과 같아… 3차원의 존재에게는 결코 간섭받지 않는다.

그런데 틴달로스의 사냥개는 너무나도 쉽게 2차원으로 파고든 것이다.

“뭐냐! 이 괴물은!”

츠쿠요미는 황급히 몸을 피했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사냥개는 보랏빛의 타액을 흘리며 끈질기게 쫓아왔다.

이현이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그 녀석은 차원의 모서리에 서식하는 괴물이다. 네가 어디 있든 상관없이 쫓아갈걸.”

차원의 모서리라는 장소는 그 존재를 아는 이도 극히 드물었다.

우연히 알게 된 이가 있더라도, 그곳에 서식하는 저 틴달로스의 사냥개의 눈에 띈 순간 잡아먹혀 버렸기에 알려지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지구에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돌아다니다 우연히 그곳에 들어갔을 때…….

이현 또한 저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에게 죽을 뻔했다.

“길들이는 데 꽤 애먹었지.”

츠쿠요미가 사냥개에게 검을 내질렀다.

“더러운 존재가 나의 차원을 더럽히다니!”

새카만 검기가 대지를 내리찍었다. 그야말로 밤의 격류.

정체불명의 악취와 점액이 사방으로 튀며 사냥개가 두 동강이 났다.

“크르르!”

지점토가 합쳐지듯, 갈라졌던 사냥개의 몸이 다시 합쳐져 일어났다.

흉포하고 끔찍한 울음이 츠쿠요미의 가슴을 서늘하게 찔렀다.

그와 같은… 스킬이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갈라졌던 몸이, 재생되어 다시 붙은 것이다.

히드라나 불가사리 같은 일부 신적인 괴물에게나 있는 불사의 권능.

한낱 인간이 이런 괴물을 다스린단 말인가.

“그렇다면 네놈을 지우겠다!”

소환사가 죽으면 소환수는 폭주하거나 사라지는 것이 섭리.

저 괴물이라면 몰라도 이현의 타격은 먹히지 않는 것을 확인했으니… 놈을 죽이면 그만.

다행히 사냥개의 이동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츠쿠요미의 몸이 은색의 화살이 되어 날아갔다.

“저 괴물이 없이는 나의 아름다운 몸에 흠집 하나 낼 수 없을 테지!”

“있는데?”

그 순간 이현의 몸이 길게 늘어졌다. 2차원에 침입한 것이다.

“아닛?!”

경악한 얼굴에 이현의 미소가 드리웠다.

“어, 나도 반가워.”

냉소를 띤 이현의 주먹이 츠쿠요미의 얼굴을 가격했다.

콰앙!

“크악!”

츠쿠요미는 발작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가볍게 몸을 젖혀 피한 이현이 그의 배를 걷어찼다.

퍼억!

쩌적!

맞은 부위에 거미줄 같은 시커먼 금이 번지고… 몸이 포탄처럼 뒤로 발사됐다.

글자로 이루어진 피를 토한 츠쿠요미의 몸이 낙엽처럼 수면을 굴렀다.

‘평범한 발차기에 이 무슨……!’

몸을 이룬 신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은 충격.

하지만 그것보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크윽… 허억, 네놈도 설마 나와 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니……!”

“힘? 평범한 차원 이동에 너무 오버 하는 거 아니냐?”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헤맨 차원이 몇 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차원 이동에는 이골이 난 몸이었다.

츠쿠요미가 다른 차원에 몸을 숨겼다는 것을 안 이상, 그곳에 가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이현이 그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평…범하다고……?”

허세다.

허세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납득할 수 없는 말이다.

‘아니, 진정하자. 아름답게 농락하는 게 실패했을 뿐. 여전히 유리하다!’

아마츠카미 신계에서 츠쿠요미는 최강은 아니다.

능력으로 겨룬다면 누이인 아마테라스에게 밀리며, 힘으로는 스사노오에게 밀린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라면 둘 다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어떤 신과도 맞서 싸울 수 있을 터.

신조차 아닌 인간은 상대가 아니다.

그때 이현이 말했다.

“멍멍아, 넌 가만히 있어.”

붉은 시선이 싸늘하게 츠쿠요미를 향했다.

“내 딸을 노리는 놈들에게 본보기도 보일 겸, 너한테는 내 힘을 살짝 보여주지.”

“크르릉.”

그에게서 피어오르는 살기에… 당장에라도 츠쿠요미를 덮치려던 사냥개가 몸을 움츠렸다.

저 괴물이 완전히 겁을 먹고 말을 듣고 있다. 츠쿠요미의 가슴속에서 한 조각 공포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얕보였다는 분노가 더 거셌다.

“밤이여!”

츠쿠요미가 검을 들자, 수면의 위에서 어둠이 울부짖었다.

아아아아!

꺄아아아!

남녀의 구분이 안 되는 비명과 함께 검은 파동이 이현을 덮쳤다.

영원한 밤이 가져오는 한기와 영혼을 찢는 고통으로 육체와 정신을 한꺼번에 파괴시키는… 그야말로 천벌의 구현.

불멸을 과신하는 이들조차 두려움에 떨리라.

그러나…….

이현이 그를 검지로 가리켰다.

“소환.”

스슥!

츠쿠요미의 눈앞에 이현이 나타났다. 거의 동시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현의 주먹이 츠쿠요미의 턱을 후려쳤다.

콰앙!

“켁!”

반격도 못 하고 떨어지는데… 다시 이현이 그를 가리켰다.

“소환.”

츠쿠요미의 눈앞에 다시 이현이 나타났다.

뻐억!

배를 걷어차이고 날아가는 짧은 순간, 츠쿠요미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했다.

소환당했다. 이현의 앞에 강제로.

이따금 신도들이 그의 힘을 빌릴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소환사라는 것은… 이계의 생명이나 정령을 소환하여 싸우는 자들. 개중에는 강력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신과 연결되어 신의 힘을 소환하여 싸우는 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심으로 힘을 빌리는 것일 뿐 강제적으로 빼앗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신을 강제로 앞에 소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일부 요괴나 마물을 그가 계약 따위 없이 강제로 불러오듯, 이현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

그의 힘이, 격이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다는 뜻…….

“말도 안 돼!”

“돼.”

이현이 다시 그를 가리켰다.

츠쿠요미는 몸을 피했지만… 소용없이, 다시 이현이 앞에 나타났다.

미칠 노릇이다.

“일루 와, 이 변태 같은 로리콘 새끼야.”

“크아아!”

발작하듯 소리 지르며 검을 휘두르는 양팔을 이현이 간단히 붙잡았다.

우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팔이 압착기에 말려 들어간 듯 으깨졌다.

“끄아악!”

“신께서 꼴사납게 비명을 지르시면 안 되지.”

이현이 그대로 가랑이를 걷어찼다.

뿌직!

끔찍한 소리와 함께 츠쿠요미의 가랑이가 함몰되고, 잡혀 있던 양손이 뜯어지며 몸이 뒤로 날아갔다. 수면을 물수제비처럼 튕기며 날아가던 몸이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며 미끄러졌다.

이현이 뿌리듯 옆으로 손을 펼쳤다.

“소환.”

스슥!

날아가던 츠쿠요미의 목이 이현의 손에 덥석 잡혔다.

뿌드득…….

“크…허억…….”

츠쿠요미의 팔에서 글자들이 흘러내렸다. 손가락이 파고든 목에서도 마찬가지. 피 대신 흘러내리는 글자들은 모두 그를 이룬 신력이었다.

힘이… 그를 이룬 신성이 무너지고 있었다.

[애시르 소속의 성좌 오딘이 흥미를 가집니다.]

[올림포스 소속의 성좌 아레스가 재미있었다며 당신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그만두어라!”

그때, 태양과도 같은 빛이 공간에 비추었다. 수십 개로 갈라진 빛으로 펄럭이며 내려오는 것은 하얗고 동그란 얼굴의 여인.

머리에는 태양을 닮은 금색의 장신구를 달고, 옷자락은 빛으로 이루어진 듯 아름답게 일렁거렸다.

아름다운 얼굴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이현을 노려보았다.

“저건 또 뭐야?”

“나는 성단 아마츠카미의 여신 아마테라스! 내 남매에 대한 핍박을 그만두고 당장 물러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아마츠카미의 신 모두를 적대한다는 뜻이라 받아들이겠으니!”

이현은 먹이를 던져주기를 기다리는 틴달로스의 사냥개를 한 번 흘끔 본 후 피식 웃었다.

그의 손이 츠쿠요미의 늘어진 몸을 아마테라스를 향해 휙 던졌다.

“자.”

날아가던 츠쿠요미의 몸을 받아든 아마테라스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이현을 노려보았다.

“이 천박하고 무지한 것… 언젠가 감히 신을 핍박한 대가를 치를 것이니라!”

이현이 귀를 후비며 짜증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건 뭐 너희들 멋대로 하든가 말든가 딱히 상관없는데…….”

후.

귀를 파던 새끼손가락을 분 이현의 목소리가 차갑게 공간을 울렸다.

“또 내 딸 건드리면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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