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오사카 레이드 (3)
니시토쿄시에 있는 일본의 헌터 협회는 마치 거대한 묘비를 연상시킨다.
납색으로 외로이 우뚝 선 모양. 불규칙한 창문은 고인을 위로하는 글귀 같다.
실제로 이 건물은 게이트 폭발 당시 사망한 사람들을 기리며… 또 다른 참사를 방지하자는 의미에서 세워진 건물이었다.
그 건물의 전체에 별안간 붉은 빛이 들어왔다.
“멸망급 게이트……!”
일본 내 게이트 발생을 관측하는 오퍼레이터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경악과 절망이 떠올랐다.
멸망급 게이트.
인류에게 외계 생명체의 존재와 마력이라는 새로운 힘을 알려줌과 동시에…….
그들이 인류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린 재앙.
그것이 일본, 오사카의 한복판에 나타난 것이다.
“S급… S급 헌터를 전원 소집해!”
“지원 요청을!”
“일제 경보! 경보!”
멸망급 게이트는 말 그대로 인류 멸망의 위기를 의미하는 전 세계적 재앙.
일본에 열렸다고는 해도 일본 혼자 감당할 재앙이 아니다.
런던, 뉴욕, 가까운 한국에도 곧장 재앙의 발생이 전달됐다.
삶을 받치고 있던 얇은 믿음이 무너지고, 아귀를 벌린 절망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어떤 이는 양손을 맞잡고 기도했고…….
어떤 이는 책상 밑에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었다.
희망마저 지금은 가혹했다.
* * *
벌려진 균열을 향해 나카지마가 백스텝으로 들어갔다.
구둣발로 가볍게 뛰었는데… 신체 능력이 얼마나 좋은지 아스팔트 바닥이 깨지며 몸이 뒤로 쏘아졌다.
그러나 이현이 더 빨랐다.
“어디 가.”
이현이 잔상을 남기고 나카지마의 앞에 나타났다.
“헉!”
빠악!
미사일 같은 정권이 나카지마의 배에 꽂혔다.
주먹을 중심으로 폭풍이 터졌다.
나카지마의 몸이 뛰어올랐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게이트 안쪽으로 쏘아졌다.
“크악!”
콰앙!
검푸른 수면에 내리꽂힌 나카지마가 왈칵 피를 토했다.
한 방.
단 한 방을 맞았을 뿐인데… 복부에 구멍이 뚫리고 등 뒤로 구멍이 뻥 뚫렸다.
총탄이 회전력 탓에 몸을 헤집고 커다란 구멍을 내고 나가는 것처럼, 주먹의 충격파가 몸을 분쇄한 것이다.
평범한 주먹질이 아닌 능숙한 파괴 기술.
강하다. 틀림없는 괴물.
하지만…….
“큭큭큭…….”
나카지마는 피를 토하며 일어났다.
“음?”
게이트 안쪽은 달이 뜬 밤의 세계.
그의 주인… 츠쿠요미의 공간이었다.
화신은 신의 힘을 받은 신의 대행자. 밤과 달의 신인 츠쿠요미가 달이 뜬 밤에 강해지듯… 나카지마 또한 이 공간에서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후광같은 달을 뒤로한 나카지마가 양팔을 벌린 채 서서히 공중에 떠올랐다.
피부가 작은 푸른색의 파티클 입자로 바스러지고… 별이 연결되어 만들어진 인체의 윤곽이 나타났다.
가슴 가운데 북두칠성이 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손이 달빛을 그러모으자, 황금으로 만들어진 석장이 나타났다.
차랑!
석장의 끝이 수면을 쳤다. 수면에 파동이 일며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일어났다.
“음?”
이현은 그를 보고 팔짱을 낀 채 갸웃했다.
‘이 자식… 사마엘이랑 비슷한 기운이네?’
신의 힘이 어쩌고 하며 금색 줄기를 뻗던 사마엘과 비슷하면서 다르다. 이현은 혹시나, 싶어 사마엘에게 했던 것처럼 ‘힘’을 연결해보았다.
키잉!
나카지마가 석장을 휘두르자 화살처럼 쏘아진 힘의 줄기가 튕겨 나갔다.
“사마엘보다 강하네?”
“사마엘… 그 반편이 신 말인가?”
“뭐야? 아는 사이였냐? 설마 그 힘을 알려준 게 너냐?”
나카지마가 큭큭,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군…….”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복잡한 문자로 이루어진 청색의 끈들이 다이슨 구체를 만들며 빙글빙글 돌았다.
“이 힘은 신만이 가질 수 있는 것… 너 따위는 흉내를 낼 뿐인, 위대한 힘이다.”
이현은 나카지마와 같은 자세로 왼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서도 황금색 끈들이 떠오르더니… 나카지마가 만든 것보다 몇 배는 복잡한 다이슨 구체를 만들었다.
“공놀이가 뭐 대수라고.”
“아… 아니……?!”
이현이 오른손을 들었다. 그 손에서 똑같은 구체가 만들어져, 왼손과는 반대로 회전했다.
회전과 동시에 만들어진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공간 자체를 웅웅 울렸다. 나카지마는 눈도 없어진 몸인데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단순히 회전만 하는 게 아니라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거나 갑자기 회전 방향이 바뀌고, 정사각형으로 모양 자체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에게 힘을 준 신, 츠쿠요미보다도 훨씬 매끄럽고 강력한 힘의 활용이었다.
“마… 말도 안 돼!”
“펜 돌리기 비슷하네. 네가 말하는 신들은 설마 이런 놀이로 싸우냐?”
가위바위보로 이겼다, 졌다 정하는 것처럼?
만약 그렇다면 참 유치한 놈들이다.
이현의 말에 나카지마의 눈에 불꽃이 타올랐다.
화신이 된 그의 신에 대한 충성심은 그야말로 목숨을 바쳐도 모자란 정도……!
그 충성심이 자극받은 것이다.
“네놈 따위가 감히!”
나카지마가 석장을 높이 들었다.
[백귀야행]
―하루 한 번, 밤에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마력을 소모한 만큼 요괴를 소환합니다. 소환되는 요괴는 무작위로 결정되며 시전자의 지능 스테이터스에 비례한 추가 스테이터스를 얻습니다.
―설명 : 100마리 중 1마리는 따돌림받고 있습니다.
촤아아…….
물살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수천의 기괴한 형상으로 일어났다.
호수에 잠들어 있던 지옥의 군세가 깨어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숫자는 그 자체로 폭력이 된다.
이미 승리를 확신한 듯 괴물들이 제각각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크크크크…….”
“후후후후…….”
하늘에 뜬 채 발아래를 가득 메운 군대를 내려다보며… 나카지마는 묘한 쾌감에 지배됐다.
독재자들이 군대 사열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힘도, 숫자도 모두 우위.
이제 버러지를 짓밟으면 될 일.
나카지마는 오만하게 석장을 들어 이현을 가리켰다.
“가라.”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보던 이현이 중얼거렸다.
“많기는 하네.”
때려잡지 못할 건 없지만… 하나라도 게이트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고, 빈이가 무서워하겠지.
“오랜만에 개밥 좀 줘볼까.”
천천히 든 주먹이, 허공을 두드렸다.
쿵.
허공에 균열이 생겨났다.
쿵.
균열이 크게 번졌다.
쿵.
균열이 무너지며 거대한 구멍이 나타났다. 안으로 보이는 것은 공허.
바라보는 것만으로 한기가 느껴지는 공허 속에서 굶주림이 나카지마를 응시했다.
이현이 말했다.
“나와라, 틴달로스의 사냥개.”
“크르르르…….”
끈적이고 흐물거리는 형태 없는 발이 공허 속에서 빠져나왔다.
아니… 그것을 발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모든 생물군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그것은 발이며 동시에 손이었고 날개이기도 했으며 두족류의 촉수 같기도 했다.
무엇이든, 끔찍한 형체였다.
푸쉬이이…….
그것이 수면을 딛자 지독한 악취가 피어올랐다. 내딛는 걸음 하나가 세상에 대한 모독이었다.
“크… 윽!”
이윽고 뒤틀리고 뒤엉킨 채 꿈틀거리는 주둥이가 나왔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기아로 허덕이고 있었다.
완전히 빠져나온 몸은 어떤 생물군에도 속하지 않는 형태였다.
생물이라고 할 수가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뒤룩거리는 황록색 동공들이 이현을 바라보았다가, 나카지마를 향했다.
감정이라고는 없는… 블랙홀처럼 빛마저 먹어 치울 허기만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카지마는 저도 모르게 흠칫 물러났다.
그의 감정에 동조하듯 소환된 요괴들도 술렁거리며 물러났다.
“크윽……!”
도망쳐야 한다.
본능이 속삭였다.
‘저것’의 앞에서는 화신조차 먹잇감에 불과하다. 이현이 어떻게 저런 것을 거느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각은 무의미했다.
그러나 주인님이, 신께서 보고 있다. 나카지마는 발악하듯 외쳤다.
“하나가 둘이 됐을 뿐이다! 죽여라!”
그 순간 사냥개가 움직였다.
물에 떨어진 잉크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사냥개가 순식간에 확산하며 탐욕스럽게 요괴들을 집어삼켰다.
1초도 되지 않는 순간.
수천 마리의 요괴가 사냥개의 배 속으로 사라졌다. 핏방울 하나 남기지 않고.
“이게 대체……!”
뒤늦게 나카지마가 사냥개를 향해 석장을 내리치려고 했지만… 어느새 접근한 이현이 석장을 붙잡은 상태였다.
“어딜 보냐.”
금색의 문자로 둘러싸인 주먹이 나카지마의 얼굴을 때렸다. 별자리로 이루어진 몸에 유리처럼 금이 갔다.
콰앙!
“이 자식!”
나카지마는 발작적으로 주먹을 날렸지만… 날리기 전에 이현이 팔꿈치로 그의 주먹을 찍었다.
이어지는 니킥에 턱이 깨지며 파편을 흩날렸다.
충격으로 굳은 몸에 빗방울 같은 타격이 쏟아졌다.
터덩! 텅텅!
사람의 주먹과 몸이 부딪치는데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현은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는 그 끊임없는 탐식으로 수많은 차원에서 두려움을 산 괴물.
게이트 밖으로 나가면 이놈보다 더한 재앙이 된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살펴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면서도 이현은 무성의한 얼굴로 이따금 뒤를 살피는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열받아 미칠 노릇이었다.
“크아아!”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뿌리친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복부에 발이 꽂혔다.
쾅!
성간 가스를 흩뿌리며 날아간 몸이 수면에 내리꽂혔다. 화신이 된 후 처음 느끼는 강렬한 고통에 나카지마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당연히, 반격도 불가능했다.
단숨에 추격한 이현의 발이 가슴을 짓밟았다.
쿵!
충격파가 터졌다. 원형의 파도가 빌딩도 집어삼킬 것 같은 높이로 일어났다.
나카지마의 가슴이 무너지며 왈칵, 가스를 토했다.
“크어억!”
빠르다…….
아니, 빠르기만 할 뿐이 아니다. 눈짓, 발짓 하나에 페인트가 섞여 있는데 피하기는커녕 막는 것도 불가능했다.
단 한 순간도 제대로 반격할 수 없었다.
게다가… 더욱 무시무시한 것은 방금 전의 공격이 이현에게는 그리 신경 쓴 것도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신께서 착각하셨단 말인가?!’
분명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복날 개처럼 두드려 맞고 나니 신앙심이 마구 흔들렸다.
그때 이현의 앞에 반투명한 블록이 떠올랐다.
[아마츠카미 소속 성좌 ‘츠쿠요미’가 당신에게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응?”
[성좌 츠쿠요미가 그만두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성좌? 츠쿠요미?
‘명우가 말한 배후로군. 제초 작업은 뿌리를 뽑아야지.’
이현은 블록을 툭툭 두드렸다.
“얌마. 말을 하려면 앞에 나와서 해야지.”
[성좌 츠쿠요미가 건방 떨지 말라고 말합니다.]
[성좌 츠쿠요미가 지금 당장 죽여주겠다고 말합니다.]
“이놈 말뽄새 봐라?”
이현이 이소룡처럼 허공에 손을 까닥거렸다.
“드루와,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