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오사카 레이드 (2)
“쁘아!”
빈이가 양팔을 벌렸다.
오사카, 도톤보리의 상징인 커다란 마라톤 아저씨 간판을 보고 따라 하는 것 같았다.
그런 빈이가 귀여워 이현의 입가에 헤벌쭉 미소가 번졌다.
아기의 귀여움은 만국 공통의 감정.
지나가던 사람들도 빈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에에~ 코스프레?”
“혼또?”
“카와이이~”
붉은 머리와 뿔이라는 이색 조합의 아기지만, 길거리에서 고양이귀 머리띠에 메이드복을 입은 소녀들이 돌아다니며 가게를 홍보하는 거리에서는 그리 이상한 모습도 아니다.
게다가 그 아이를 안은 남자도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의 모델 같은 남자.
코스프레이겠거니, 생각하며 그 퀄리티와 귀여움에 감탄만 했다.
“지태야, 카와이 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데 무슨 뜻이지?”
“귀엽다는 뜻이에요. 빈이가 귀엽다는 뜻이겠죠.”
“그렇군.”
반짝이는 눈으로 거리를 구경하는 빈이를 보니… 다시금 흐뭇해진다.
물 건너 일본에서도 이렇게 이목을 끈다는 것은 빈이의 매력이 전국구를 넘어 세계구라는 의미…….
유네스코 지정 귀염 문화제로 지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 행사 요원 같은 차림을 한 여자가 손짓했다.
“아! 고찌고찌!”
“응? 뭐라는 거냐?”
“일로 오라는데요?”
여자를 따라가자 그녀가 손짓, 발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지태가 능숙하게 번역했다.
“저 다리 건너로 가시면 행사장이 있다는데요?”
“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행사를 한다면 놓칠 수 없지. 이현은 요원의 안내에 따라 다리를 건넜다.
그러자 판타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차림의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더니… 멀리 웬 무대 같은 것이 보였다.
거의 속옷 차림이나 다름없는 여성이 지나가는 것을 본 이현이 경악했다.
“뭐야? 안 춥나?”
지태가 아, 하고 아는 척을 했다.
“이거 코스프레 행사인가 본데요?”
“야, 너희 때문에 오해받았잖아.”
평소대로 S급 헌터로서의 복장을 한 지태와 명우는 다른 의미에서 주목받고 있었다.
사실 이번 오해는 온전히 둘 때문이라기보다는 빈이와의 합작품이었지만…….
묵비권을 행사하기로 결심한 지태 때문에 명우는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나도 코스프레 행사는 처음이기도 하고, 구경이나 좀 해볼까.”
“이 중에 야쿠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명우가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다들 가면을 쓰고 분장을 해서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완전히 관광 기분인 이현이나 지태와 달리, 명우는 날이 잔뜩 섰다.
이곳은 적진 한복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그때 카메라를 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노~ 스미마셍~”
일본어로 뭐라뭐라 하는 말을 지태가 빠르게 번역했다.
“사진 찍어도 되냐는데요?”
우리 빈이의 예쁨을 일본에 퍼트리겠다는데… 안 될 것 없지!
이현은 끄덕이고 포즈를 취했다. 그러자 주위에서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찰칵찰칵!
모공까지 담아갈 생각인지 대포 같은 모양의 카메라가 온갖 각도에서 찍어대는데… 빈이를 찍는 사람이 반, 명우와 지태를 찍는 사람이 반이었다.
“한국 S급들 코스를 다 보네.”
“와… 갑옷 질감이 3D 프린터로 만든 게 아니라 수제 같은데?”
“총이 없어서 1점 감점.”
S급 헌터쯤 되면 물 건너에서도 유명해서… 알아보는 이들이 많았다.
코스프레 행사장이니 당연히 코스프레라고 생각하고 셔터 소리가 쏟아졌다.
“근데 저 아기는 귀엽긴 한데, 뭔 코스임?”
“그거 아니냐? 레드 마리아 같은데.”
“아냐. 드래곤 패밀리 소냐잖아.”
“소냐는 뿔이 뾰족한데 저건 다르잖아.”
“네가 나의 소냐쨩에 대해 뭘 알아?”
그때 행사 요원이 세 남자에게 뛰어왔다.
쨍하게 밝은 목소리로 뭐라 뭐라 하는 소리를 듣고 지태가 갸웃했다.
“형, 저쪽으로 이동해달라는데요?”
“저쪽?”
이현이 슬쩍 보니,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질서정연하게 이동 중이었다.
“가달라니, 가자.”
얼떨결에 줄을 서자 행사 요원이 웬 번호 스티커를 하나씩 배부했다.
“가슴에 붙이라는데요?”
“엉?”
고개를 쭉 빼서 앞을 바라보니 줄이 무대와 이어져 있었다. 무대에 올라선 코스플레이어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야, 이거 뭔 대회 같은 거 아니냐?”
“아…! 형, 이거 코스프레 대회네요.”
“방송 타는 건 싫은데.”
“오… 1등 상품이 플레이스테이션8이네요. 2등 상품은 백화점 상품권 30만 원이고, 3등 상품은… 프린세스 카리나 피규어? 아동 애니치고 캐릭터가 섹시해서 인기 많다더니…….”
프린세스 카리나!
빈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의 주인공이 아닌가!
그게 애니도 있고 피규어도 있었다니…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이현은 빈이의 배에 스티커를 뽁 붙였다.
“너희들도 포즈 생각해 놔.”
당연히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지태가 흠칫했다.
“하시게요?”
“재밌을 것 같잖아.”
이현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것은 탐욕이었다.
“형, 저희는 코스프레가 아니라 본인인데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으로 코스프레 대회에 출현하는 꼴 아닌가?
이현이 씩 웃었다.
“안 들키면 그만이지.”
프린세스 카리나의 피규어는 놓칠 수 없지.
셋 중 한 명만 3등을 하면 되니 가능성은 높다!
“들키면 이벤트라고 해.”
“그것도 괜찮네요.”
기본적으로 서브컬쳐 문화에 거부감이 없는 지태는 끄덕였지만… 명우는 몸을 돌렸다.
원래도 사람 많은 곳은 싫은데… 무대 위에 서라니.
그의 아이덴티티에 반하는 일이다.
“…전 돌아가겠습니다.”
이현이 그의 목덜미를 덥석 잡았다.
“어디 가. 쪽팔리니까 너도 같이해.”
“…….”
쉐도우 로드는 묵묵히 서 있다.
여기서 부끄럽다고 빠지면 그를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무색해진다.
명우는 거절하지 못하고 줄에 섰다.
“37번 올라오세요!”
행사 요원이 지태를 불렀다.
다년간의 방송 경험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 익숙한 지태다.
무대에 당당하게 선 지태가 근엄하게 턱을 치켜들고 포즈를 취했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진지하게 지태를 보더니 각자 점수를 적어 들었다.
지태의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 낮은 점수는 아니었다.
“질 수 없지! 그렇지, 빈아?”
“아브아.”
이현이 빈이를 안고 올라가자 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빈이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천진하게 눈을 빛냈다.
그 동작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뭐를 붙여 만든 것이라고는 생각이 안 들 정도.
물론 신체의 일부니 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했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했다.
사실 만들려고 하면 만들 수 있는 수준이기도 했다.
‘인상 깊은 퍼포먼스가 필요하겠군.’
“자, 빈아. 푸하, 하자. 푸하!”
이현이 작은 등을 토닥이며 부추겼다.
“푸하!”
입술을 내민 빈이가 청색의 불을 내뿜었다.
화르륵!
“우와아!”
이제 불 뿜기도 능숙해져서, 불의 길이가 30센티는 됐다. 대낮에도 선명한 불길에 감탄사가 터졌다.
그렇게 해서 받은 이현의 점수는 7.5점.
이현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지켜보던 지태는 분했다.
“아니, 왜 실물인 저보다 형이 더 점수가 높죠?”
“기술이랑 퍼포먼스에서 내가 더 높게 받았잖아.”
그때 명우가 무대에 올라가는데… 놀랍게도, ‘불스아이 병장’의 코스튬을 한 코스플레이어가 두 명이 더 있었다. 심지어 한 명은 여성으로 판초우의 밑에 거의 속옷만 입은 노출도 높은 차림이었다.
“오, 명우 쟤 인기 많나 보다.”
“S급 헌터들은 국적불문하고 인기가 많은데, 병장님은 저 군인 느낌 나면서 기괴하고 시크한 게 멋있다나 봐요.”
“수상할 정도로 잘 안다?”
“스트리머들은 서브 컬처에 민감해야 하거든요.”
그러나… 막상 무대에 올라간 명우는 주변 공간이 오그라드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소극적이었다.
다른 두 코스플레이어는 총을 겨누는 시늉을 하고 LED가 달린 장식으로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너무 차이가 난다.
“쯔쯔. 사내가 저렇게 숫기가 없어서야.”
우리 빈이의 피규어를 위해서라도 좀 열심히 할 것이지…….
결국 명우는 셋 중 가장 낮은 5점을 받고 내려왔다.
참고로 가장 높은 점수는 노출도 높은 여성이었다.
자본주의의 승리랄까.
“내가 진짠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명우에게 이현이 싸늘하게 말했다.
“실망이군. 5점이라니… S급 헌터라고 해도 이 정도인가…….”
“…….”
명우가 난간을 짚고 비틀거렸다.
“아, 형. 전부 올라와 달래요.”
“오… 시상인가……!”
드디어 고대하던 순간이 왔다.
심사위원들이 꽤 혹독한지… 지금까지 본 바에 의하면 8점 이상은 한 명뿐.
이제 인기 점수에 의해 순위가 결정된다.
우글우글 선 코스튬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이현은 긴장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럼 먼저 5등부터 발표하겠습니다!”
5등부터 3등까지 수상한 사람들이 차례로 올라가는데… 명우도, 지태도 한 번도 호명되지 못했다.
이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2등은 불스아이 병장 코스프레를 하신….”
“오!”
이현이 반색하는데….
“라리나 님!”
판초우의 밑에 속옷만 입은 몸매 좋은 여성이 폴짝폴짝 뛰며 상을 받았다. 이현이 싸늘하게 명우를 바라봤다.
“아니… 본체가 밀리는 건 너무하지 않나?”
“그, 그게….”
명우는 억울했다.
“그럼 다음은 대망의 1위 발표가 있겠습니다! 1위는….”
두근… 두근.
“한국에서 오신 이현 님!”
지태의 해석을 들은 이현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현은 빈이를 번쩍 들었다.
“빈아! 우리가 해냈다!”
“뺘아!”
이유도 모르면서 아빠가 웃으니 빈이도 방긋 웃었다.
빈이에게 프린세스 카리나의 피규어를 안겨줄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그때 별안간 무대 앞으로 세 개의 그림자가 떨어졌다. 하필 상품이 진열되어 있던 테이블 위였다.
쿠궁!
쿵!
쾅!
긴 코에 붉은 피부를 한 괴물, 여우 머리의 괴물, 까마귀의 머리와 날개를 지닌 괴물이었다. 모두 수행을 다니는 무사 같은 복장을 했고 키가 족히 5미터는 되어 보였다.
[텐구]
[이누가미]
[카라스텐구]
흔적도 없이 부서진 상품들을 보고 이현이 경악했다.
“카, 카리나가!”
“꺄아악!”
그때, 사회를 보던 아나운서가 마이크에 대고 비명을 질렀다. 그것이 기폭제가 된 듯, 모여있던 사람들이 아비규환으로 서로를 밀치며 도망갔다.
“괴물!”
명우가 등에 메고 있던 길쭉한 짐을 휘둘렀다. 천이 벗겨지며 거대한 저격총이 나타났다.
그때 이누가미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헌터, 제안을 하지. 그 아이를…….”
퍼엉!
이누가미의 머리가 폭발했다. 피와 살점이 화산 폭발에 휘말린 듯 위로 흩날렸다.
넘어가는 거구 위로, 이현이 주먹을 든 채 떨어졌다. 두 눈이 살벌하게 빛났다.
“피규어 돌려내.”
“이놈!”
떨어지는 이현을 양쪽에서 괴물의 주먹이 덮쳤다.
푸른 광선과 검은 불꽃이 그 주먹들을 꿰뚫고 태웠다.
타앙!
화륵!
“크아아!”
주먹을 움켜쥔 괴물들이 괴로운 비명을 내며 물러났다.
명우가 총을 들고 나섰다.
“제가 괴물들을 맡을 테니 당신은 아이를 보호해주시죠.”
“아, 좋죠.”
명우가 총을 겨누고, 지태의 몸이 서서히 떠올랐다. 뒤에서 그 광경을 보던 코스플레이어들이 입을 벌렸다.
“이 사람들… 진짜였어?!”
“세상에!”
이누가미의 시체를 밟고 선 이현은 살기를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도망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카만 정장을 입고 마치 홍해를 가르는 모세처럼 당당히 선 남자가 이현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무질서하게 도망치는 사람들이 공간이 분리된 것처럼 남자와는 옷깃도 스치지 않는 모습이 기이했다.
“뭐야, 저놈은?”
남자… 나카지마 지로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의 신전으로 초대하지.”
나카지마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머리 위 공간이 삽시간에 십 미터가량 유리 같은 균열을 내며 쩍 갈라지더니… 보랏빛의 불길한 빛으로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