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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50화 (50/150)

50화. 크리스마스의 거래

“아유~ 우리 빈이 구래쬬요? 사람 많이 와서 조아쬬요?”

“쬬아!”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빈이를 둥기둥기 하는 이현을 명우와 지애가 영혼이 빠진 눈으로 바라봤다.

그럴듯한 포즈만 취하면 화보집에 나올 것 같은 비현실적인 미모의 남자가, 다른 의미에서 비현실적인 외모를 지닌 아기를 안고 우쭈쭈하는데… 그 옆에는 갑옷을 입고 가면을 쓴 쉐도우 로드가 앉아서 딸랑이를 흔들고 있다.

‘새로운 호러 장른가?’

지애는 순간 든 생각을 고개를 흔들어 지워버리고 입을 열었다.

“육아 중에 죄송하지만 이현 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헉!”

이현이 굳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잠깐, 빈이 기저귀 좀 갈지.”

빠르게 방으로 들어가는 등을 황망하게 보는데, 명우의 싸늘한 목소리가 울렸다.

“쉐도우 로드. 당신이 여기 무슨 일이지?”

“할 얘기가 있어서요.”

근데 왜 이 사람은 아까부터 반말일까.

지태는 명우의 말투가 거슬렸지만…….

뭐라 하기에는 너무 무서웠다.

‘불스아이 병장’의 소문은 블랙벤더에서 아주 유명했다. 실제로 사업 하나를 그 때문에 망친 적도 있어, 붉은 수녀가 척살하는 게 어떠냐는 흉흉한 의견을 내놓은 적도 있었다.

물론 기각했다. 괜히 척살 명령을 내렸다가 반대로 척살 당하기는 싫었으니까.

아무리 지태라도 잘 때는 갑옷을 벗고 자는데… 그때 불시에 기습이라도 당하면 끝장이다.

심지어 명우는 저격수.

어디서는 부기맨… 히트맨으로 불리는, 요인 암살에 특화된 인물.

연필로 사람을 일곱이나 죽였다던가… 강아지를 죽였다고 조직 하나를 혼자서 궤멸시켰다던가 하는 도시전설 같은 괴담이 붙은 무시무시한 남자다.

“병장님도 형이랑 친하세요?”

“형…?”

형이라니…….

명우는 경악해 이현이 들어간 방으로 눈길을 돌렸다.

벌써 말을 놓는 사이란 말인가…!

저 사악하기로 유명한 쉐도우 로드를 포섭한 것도 모자라 감화시켰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현은 그저 강할 뿐만 아니라 그만한 도량과 인덕을 갖춘, 삼국지로 치면 유비 현덕 같은 인물이라는 의미.

‘대단한 분임은 알았지만…….’

이 정도면 존경심이 들 지경이다.

지애도 비슷한 감상을 하며 이현을 바라봤다.

그때 일성이 과일이며 부침개가 푸짐하게 차려진 상을 들고 거실에 왔다.

“아구구, 이거… 손님이 많으니 참 좋네요.”

“어… 어르신, 이렇게까지 해주시지는 않으셔도 괜찮은데…….”

“어유, 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자, 맘 편히들 얘기 나누면서 들어요.”

그때 이현이 빈이를 안고 돌아왔다. 뿌듯한 얼굴이다.

“기저귀 갈기 신기록을 또 갱신했군.”

“오, 형! 축하축하!”

지태가 열렬히 박수를 쳤다.

지애는 같이 박수를 칠까… 했다가 관뒀다.

“이현 님,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빈이를 의자에 앉힌 이현이 그녀를 바라봤다.

“응? 그쪽은 누구시더라?”

천진하게 맑은 눈빛이 농담 같지가 않았다.

“…전에 뵀는데요.”

“내가 기억력이 나빠서.”

누구한테 금방 잊힐 만한 인상은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처음 받아보는 대우가 지애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헌터 협회 이사 유지애라고 합니다.”

보통 이쯤 되면 자세가 공손해질 만도 한데, 이현은 여전히 반쯤 드러누운 자세로 태평했다.

“응. 근데?”

지애는 최근 힘줄이 늘어나고 있는 이마를 살며시 누른 후 생긋 웃었다.

“제안 하나를 드리려고 합니다.”

“제안?”

붉은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헌터 협회는 세계 각국의 지원을 받으며 어마어마한 자금력을 자랑한다.

그 자금을 그냥 놀리지 않고 영화, 노래, 게임 등 각종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사업을 늘려가는 중.

그런 협회의 이사가 직접 왔다는 것은…….

“설마…….”

드디어 때가 온 건가.

이현이 훗, 웃었다.

“우리 빈이의 귀여움이 꽤 널리 알려졌나 보군.”

“예?”

멍한 되물음에 이현이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신만만히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SNS라는 걸 만들어볼까 했거든.”

지태가 옆에서 호응했다.

“오, 형. 좋은 생각인데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오? 그래? 도와줄 수 있냐?”

“이래 봬도 블랙벤더가 연예계에 꽤 발이 깊거든요.”

“짜식… 너, 쓸만하구나!”

한 편의 콩트 같은 둘의 대화를 듣던 지애가 칼 같은 보브컷을 흔들었다.

“아뇨, 무슨 생각을 하시는진 잘 모르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제가 관심 있는 건 이현 님입니다!”

세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지애에게 꽂혔다. 지애는 얼른 손사래를 쳤다.

“그런 관심 말고요! 이현 님께 S급 헌터의 자리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S급? S급은 좀… 바쁘지 않나?”

이현이 발등을 벅벅 긁었다.

아주 한가해 보이는 모습이 상당히 열 받게 만들었다.

“아뇨, 오히려 지금보다 더 안 바쁘실 수도 있습니다. S급 게이트 같은 국가적 재난 사태에만 활동하시더라도 충분히! 먹고 살고도 남을 테니까요.”

붉은 동태눈이 심드렁하니 그녀를 응시했다.

“지금보다 훨씬 인기도 많아지실 거예요. 이현 님의 자서전, 이현 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피규어 같은 것도 팔릴 수 있고요. 여기 쉐도우 로드 님도 2차 상품 시장에서 큰돈을 벌고 계시죠.”

“오… 그래? 너 피규어 같은 거 있고 그러냐?”

지태가 딴청을 피웠다.

“그렇긴 한데 쪽팔려서 안 사요.”

“네가 네 피규어를 사면 좀 이상하지.”

“그렇죠?”

지애의 손이 매트 위를 퉁퉁 쳤다.

“…명예도, 부도 모두 거머쥐실 수 있습니다! 따님도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하실 수도 있을 거고요.”

“글쎄…….”

이현이 먼 곳을 바라봤다.

“왕이나 부호의 딸이라고 꼭 행복하지는 않거든.”

보기라도 한 것 같은 말투다.

강적이다.

지애는 손에 땀이 났다.

“그럼 정의는 어떤가요?”

“정의?”

부도, 명예에도 관심이 없지만 헌터를 하는 이들.

이를테면 성녀 예슬이 그랬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세계의 평화…….

그러나 혼자만의 힘으로 평화를 지켜낼 수는 없다.

돈, 자금, 인력… 세계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선 필요한 것이 많다.

“네. 정의를 위해서 S급 헌터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지원을 받아 더 많은 사람을 구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그건 더 싫은데.”

이현이 빈이를 바라봤다.

“아뺘.”

빈이가 공룡 인형을 흔들며 투명하게 웃었다.

“꼰뇨!”

우리 빈이… 갈수록 말이 는다. 이현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말했다.

“난 딱히 정의를 추구하지는 않아서.”

“예……?”

이런 대답은 지애도 처음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의 포장을 위해서라도 정의를 부르짖기 마련이다.

신념 또한 사람을 움직이는 요소.

부도, 권력도 아니라면 신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는 대체 뭐란 말인가.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유명한 말도 있죠.”

지애의 눈이 날카롭게 그를 찔렀다.

“이현 님의 큰 힘을 B급에서 쓰시는 건, 낭비이고 방임이라고 생각 안 하십니까?”

독설로 유명한 지애가 기관총처럼 쏘아대는 말을 이현의 안면 근육이 간단히 튕겨냈다.

“안 하는데.”

“그럼 이현 님이 바라시는 건 뭡니까? 협회에서 최대한 지원을 약속하죠.”

다른 두 남자도 궁금했기에 은근히 바라봤다.

“글쎄…….”

그때 빈이가 의자를 끌고 아장아장 다가왔다. 지애의 앞에 선 빈이가 입을 살짝 벌리고 지애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검지로 지애를 가리키고 외쳤다.

“곤듀님!”

“응……?”

“곤듀님!”

의자에서 벗어난 빈이가 엉금엉금 지애에게 기어갔다.

애를 많이 대해본 적이 없는 지애는 어쩔 줄 모르고 굳었다. 지애의 허벅지를 짚고 일어난 빈이가 지애에게 와락 안겼다.

“곤듀님!”

“저… 저기… 얘야?”

“아.”

공주님.

이현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동화책을 펼쳤다.

“역시…….”

요즘 빈이가 보는 핑크롱에 나오는 프린세스 카리나.

그녀와 지애가 은근히 닮았다. 특히 저 새카만 머리와 입술 아래의 점이.

빈이가 지애의 점을 검지로 누르고는 까르륵 웃었다.

“곤듀님!”

“으음.”

이현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애 씨라고 했나.”

자꾸 안기며 침을 묻히는 빈이를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리던 지애가 고개를 들었다.

이현의 붉은 눈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중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예.”

“우리 빈이를 위해…….”

스윽.

동화책이 펼쳐졌다. 마법봉을 든 프린세스 카리나가 보였다.

“크리스마스에 이 복장으로 와줄 수 있나? 그거면 A급 헌터 정도는 맡아줄 수 있는데.”

“예……?”

농담인가?

지애는 짧은 순간이지만 평정을 잃고 이현을 바라봤다.

그러나… 진지하다!

지금까지의 어느 순간보다 진지한 눈빛!

“지…진짜요?”

“응.”

지애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쉐도우 로드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이현이 언제라도 음지로 넘어갈 수 있다는 어필일지도 모른다.

쉐도우 로드의 친밀한 태도가 그 증거.

만약 이현 같은 강대한 전력이 블랙벤더로 들어가 협회의 적이 된다면…….

감당할 수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현을 포섭해야 한다.

그래도…….

‘코스프레라니!’

흔들리는 눈빛에 이현이 결정타를 날렸다.

“왜? 두려운가? 방금 전까지 세계 평화를 부르짖어 놓고… 코스프레 한 번 힘든가? 실망이군…….”

“큭…….”

맞는 말이다.

이현을 A급 헌터 직위에 놓는 것만으로 여기 온 목적의 반은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에 안 든다.

안 들지만…….

협회의…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총력을 기울여 해내야 한다!

어차피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두 달이 남았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충분하다.

지애는 비장하게 말했다.

“좋아요. 크리스마스에, 오겠습니다. 그럼 A급의 직위를 받아주시겠습니까?”

이현이 슥 입꼬리를 올렸다.

“훗, 좋아.”

끄덕인 이현이 뒤늦게 명우를 바라봤다.

“근데… 넌 왜 왔냐?”

명우는 지애와 지태를 한 번 흘끔 보고 말했다.

“저번 사건의 배후를 알아냈습니다.”

“응? 아… 그거. 이미 얘한테 들었는데.”

이현이 턱짓으로 지태를 가리켰다. 그를 본 시점에서 이현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던 명우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제 정보가 더 정확할 겁니다.”

“아… 그래?”

일어난 이현이 방으로 손짓했다. 명우가 따라 들어오자, 문을 닫은 이현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

“읊어봐.”

“블랙벤더는 관계되어 있지 않더군요.”

명우가 핸드폰에 사진 하나를 띄워 내밀었다.

“일본의 야쿠자인 시케구치구미의 두목인 ‘나카지마 지로’입니다. 이자가 빈이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이 실패했으니 아마 또 다른 사람을 보내겠죠.”

“그래? 지태… 쉐도우 로드랑 같구만.”

명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렇군요… 어쩌시겠습니까?”

“어쩌긴. 가서 족쳐야지.”

이현이 주먹을 풀었다.

뭔 생각인지는 몰라도 감히 빈이를 노리다니… 야쿠자고 뭐고 알 바 아니다.

‘대가리에 운석을 박아주겠어.’

“내일쯤 갔다 오려고.”

“벌써 비행기 표를 마련하셨습니까?”

“아니, 쟤가 자기 전용기 있다더라.”

뭔가… 자존심이 상한다!

그야 블랙벤더는 거대 길드고, 명우는 혼자니 정보력이나 행동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겠지만… 하필 저놈, 쉐도우 로드에게 밀렸다는 사실이 기분이 나빴다.

명우는 전의를 불태웠다.

“같이 가도 될까요?”

“그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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