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검은 손길 (2)
이현은 키즈카페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요즘 유행한다는 핑크롱과 포로로가 서 있다. 슬쩍 보니… 빈이도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었다.
“후후후…….”
각종 놀이기구가 즐비한 키즈카페의 안쪽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부모들과 아이들이 우글우글 들어차 있었다.
한쪽 벽에 붙은 커다란 금색 판이 눈에 들어왔다.
[본 키즈카페는 불스아이 아동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응?”
어디서… 본 이름이다. 이현은 지갑을 꺼냈다. 전에 S급 헌터라던 남자가 준 명함이 기억났다.
무심코 넣어두고 잊고 있었는데… 찾았다.
명함을 꺼내는 이현을 환히 웃는 직원이 반겼다. 핑크롱이 그려진 앞치마와 유치원 선생님 같은 발성이 인상적이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아, 예. 소개를 받고 왔는데 어떻게 이용하면 됩니까?”
이현이 명함을 꺼내 건넸다. 직원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헉! 불스아이 병장님 명함이잖아!’
그때 직원의 눈이 이현의 발 옆에 앉은 삼식이를 발견했다. 삼식이는 열심히 앞발을 손질 중이었다.
저거… 사자 아닌가?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광경에 직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쪽에서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아아.”
곧 직원이 점장을 데리고 나왔다. 점장도 삼식이를 보고 흠칫했다.
“어매, 웬 새끼 사자가 있대.”
바닥을 뒹굴거리며 이현의 발을 갖고 장난치던 삼식이가 귀를 쫑긋 세웠다. 파란 눈이 똘망똘망하다.
귀엽다. 무해하다. 왠지 허락해주고 싶어진다.
“…새끼니까… 괜찮지 않을까?”
“꼬리가 활활 타는데요?”
“큐튜브 촬영 아냐?”
카메라는 안 보이지만… 붉은 눈을 지닌 잘생긴 남자가 기묘한 생물과 기묘한 아이를 데리고 오니 의심스러웠다.
점장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불스아이 병장님 소개를 받고 오신 분인데… 뭐 사고 치시겠어?”
이쪽 업계에서는 불스아이 병장의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다.
거대 아동 복지재단을 운영하며, 제 3세계의 아동들까지 기부를 아끼지 않는 그는 세간의 악명과 달리 선한 영향력을 크게 퍼트리고 있었다.
점장도 이 가게를 세우며 받은 대출금 절반을 그의 기부금으로 때웠다.
그런데 그의 지인이다? 새끼 사자가 아니라 다 큰 사자를 데려왔어도 거부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동들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할 생각은 아니지만.
“사자 잘 관리하시는 조건으로 무료로 들여보내 드리고, 네가 잘 감시해.”
그래도 새끼 사잔데 뭐 별일 있겠는가. 저렇게 보니 그냥 고양이 같고 귀엽기만 하다.
“네.”
메뉴판을 보고 있던 이현이 인기척에 눈을 돌렸다.
키즈카페는 1시간에 8,000원의 시간제에, 부모의 입장료는 따로 받았다.
카드를 내려는 이현을 직원이 만류했다.
“불스아이 병장님 소개로 오신 분께서는 언제든 무료로 이용하셔도 된답니다.”
“오…….”
“음료는 뭐로 준비해드릴까요? 물론 공짜예요.”
“그럼 레몬에이드로.”
다단계로 의심했던 것이 미안해지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나중에 만나면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군.’
이현은 명함을 고이 지갑에 넣었다.
“뺘아…….”
형형색색의 놀이기구들을 보고 빈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우리 빈이 저기 장난감 기차 탈까?”
빈이가 기차로 양손을 뻗었다가 배를 안은 팔을 툭, 툭 쳤다. 하고 싶다는 뜻이다.
“부!”
실내를 도는 장난감 기차의 탑승구에는 아이를 안은 부모들이 넷 서 있었다. 그들이 무심코 빈이를 보았다가 흠칫했다.
예쁜 어린이 대회 본선 진출 정도는 따놓은 듯 참 예쁜 아이다.
그런데…….
‘뿔?’
‘꼬리?’
그중 호기심 많은 한 부모가 접근했다.
“안녕하세요, 아이가 참 예쁘네요. 이름이 뭐예요?”
“감사합니다. 빈이라고 해요. 그 아이도 예쁘군요.”
머릿속으로는 우리 빈이가 오백만 배 더 예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현은 침착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그… 뿔이랑 꼬리는 어떻게 된 건가요?”
“아… 코스프렙니다.”
이렇게 고퀄리티의 코스프레를 했으면 행사장으로 달려가야지, 왜 키즈카페를 왔을까.
의문만 증폭시키는 대답을 해놓고 이현은 태연했다. 그 얼굴이 얼마나 뻔뻔한지… 부모들은 깜빡 속아 넘어갔다.
“어머… 그렇구나… 이거 정말 진짜 같네요.”
“그런데 왜 하신 거예요?”
“취미입니다.”
인간과 비슷한 지성이 있는 괴물… 아인들에 대한 정보는 일반인들에게도 알음알음 알려져 있었다.
지금은 21세기. 완벽한 정보의 통제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알고리즘이라는 신기술은 또한 일반인들에게 정보를 선택적으로 강요한다. 게다가 정부가 철저하게 관리하기도 해서… 일부 오타쿠 커뮤니티를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 아인이란 존재는 하지만,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무엇인가였다.
코스프레라는 이현의 말은 뿔과 꼬리가 달린 아인 아기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다.
“아버지가 직접 코스프레도 시켜주고, 키즈카페에도 데리고 오고… 우리 아기는 좋겠네~”
사람들의 시선에 주눅이 들어 있던 빈이는 웃음을 보자 금방 저도 활짝 웃었다.
“아유~ 이뻐~”
이현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예쁘다는 말이다.
아직 의미까지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긍정적인 의미고 칭찬이라는 정도는 빈이도 느꼈다.
빈이가 양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좋아했다.
“꺄하아!”
그 귀여움에 엄마들의 눈에서 하트가 폭발했다.
이현은 그 모습에 으쓱했다.
‘우리 빈이가 은근 붙임성이 있단 말이지.’
역시 미래에는 배우나 아이돌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키즈 모델 쪽을 알아봐야 하나. 아이돌들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고 들었으니까…….
마침 남우의 여동생이 아이돌이니 좋은 선생님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배추 씨앗에서 막 싹이 났는데 이현은 벌써 물을 끓이고 김치찌개를 끓일 준비를 했다.
십 분쯤 기다리자 드디어 장난감 기차의 탑승 차례가 왔다.
삑삑!
벨트를 매고 앉히자 빈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기차 창문으로 빼꼼 보이는 얼굴도 귀엽다.
이현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찰칵찰칵!
다른 엄마들도 자기 아이의 사진을 찍으며… 은근슬쩍 빈이의 모습도 옆에 담았다.
SNS와 맘카페에 빈이의 사진이 하나, 둘 업로드 됐다.
[지기 여러분, 오늘 사당 XX키즈카페에 코스프레한 아이가 놀러 왔어요.]
[너무 예쁜 아이 한번 보고 가세요~]
* * *
부산항.
외국계의 선원들이 주로 오는 주점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러시아계로 보이는 얼굴에, 두터운 눈썹은 반쯤 샜다. 곰 같은 덩치에 굵은 전완근은 그가 뼈가 굵은 선원임을 증명했다.
가을이 가까워지는 날씨라 차가워진 밤바람이 거슬렸던 것일까.
카드놀이를 하던 남자들이 잠깐 시선을 보냈다가 다시 카드에 시선을 고정했다.
두리번거리는 남자를 향해 구석에 앉아 있던 중년의 한국인이 손을 들었다.
“이반!”
“초이.”
이반이 성큼성큼 걸어 초이라고 부른 남자의 앞에 앉았다.
“최라니까. 미스터 최.”
최팔룡이 보드카를 따르며 능숙한 러시어로 말했다.
“너희 이름은 너무 어려워, 초이.”
투덜거린 이반이 보드카를 단숨에 들이켰다. 두툼한 볼살이 파르르 떨렸다.
잔을 쿵 내려놓은 그가 회색 눈으로 팔룡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번엔 무슨 일이야? 요즘 일본으로 가는 화물이 많아. 바쁘다고.”
이반은 일본계 러시아인으로… 주로 하는 일은 밀입국이었다. 주류, 담배 같은 단순한 화물부터 마약, 사람까지… 그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이 바닥의 올라운더.
그가 이 바닥에서 일한 지도 벌써 7년. 잔뼈가 굵은 남자다.
그리고 팔룡은 브로커였다. 그가 브로커로서 취급하는 상품은 주로 인간.
팔룡이 팔짱 낀 팔을 식탁에 올려놓고 몸을 내밀었다.
“큰 건이야, 이반. 진짜 큰 건이지.”
“호들갑은.”
이반이 술잔으로 이마를 긁고 그를 바라봤다.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팔룡과 안 지도 3년이 지났다. 이놈이 큰 건이라면 정말로 큰 건이었다.
“간만에 장기라도 나르나?”
“장기매매는 요즘 돈이 안 돼. 아티팩트니, 바리데기년 꽃이니 하는 것 때문에 시장이 확 죽었다고. 뭐… 덕분에 새로운 기회를 잡기는 했지만.”
게이트 폭발은 여러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음지에도 당연히 큰 변화가 왔다.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간의 실종이 당연해진 것이다. 실종 사건 수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 형국.
덕분에… 불법체류자, 밀입국자들의 이동이 활발해졌다.
과거에는 지체장애인들처럼 지능이 낮아 스스로 뭘 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나 간간이 거래가 됐다면… 이제는 CCTV만 조심하면 평범한 시민도, 아이도 활발히 납치가 이루어졌다.
특히 한국 여자들은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팔룡은 한국 여자들을 창녀로 팔아치우는 과정에서 큰돈을 만졌다.
그러나 이번 건은 완전히 새롭다.
식탁을 탕 친 팔룡이 두툼한 입술로 웃었다.
“아인이야.”
“아인? 그거 도시전설 아닌가?”
“세상이 어느 땐데! 이반, 뉴스 좀 보고 살아.”
팔룡의 주먹이 이반의 팔뚝을 가볍게 쳤다.
“아인은 날라본 적 없는데.”
“사람이랑 똑같아. 아니, 어떤 점에서는 사람보다 편하지. 존재 자체가 위법이거든. 대충 위조해도 안 걸린다고.”
해본 적도 없으면서 잘도 말한다. 이반이 거칠게 수염 난 입을 삐뚤게 올렸다.
하지만 팔룡의 수완은 믿을 만했다.
“그래서?”
팔룡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장난감 기차를 탄 작은 아인 아기의 얼굴이 보였다.
붉은 머리에 산양을 닮은 뿔과 붉은 눈.
이반이 눈썹을 올렸다.
“합성 아니야?”
요즘 기술이 워낙 발전해서 이런 사진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컴퓨터니, 포토샵이니 하는 것은 모르는 그로서는 구분할 방법이 없었다.
“진짜다. 일본에서 원하는 고객이 있어. 그 양반이 이번에 돈을 대기로 했지. 나카지마 지로, 아나?”
나카지마 지로.
일본에서는 정계와도 연줄이 깊은 야쿠자 두목으로, 삼합회와의 무력 항쟁에서 승리하고 일본을 장악한 남자였다.
이반으로서는 모를 수가 없는 이름. 밑에 헌터로 치면 S급의 무력을 지닌 ‘신인’들도 많다고 알려졌다.
“물건은 확보된 건가?”
팔룡이 킬킬 웃었다.
“삼합회 놈들이 다 뒈진 덕에 국내 시장이 열렸지. 놈들이 사용하던 공장이랑 설비를 통째로 먹은 놈들이 있어.”
“그놈들이 물건을 가져온다고?”
“그래, 아마 벌써 착수했을 거야.”
상대는 헌터라고 들었지만… 삼합회의 공장을 차지한 이들은 거대 길드 블랙밴더의 비호 아래에 있는 자들.
블랙밴더의 길드장은 전 세계에서 악명 높은 S급, 쉐도우 로드.
아인은 이미 손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보수는?”
“착수금 5천, 성공보수는 2억.”
다시 보드카가 잔을 채웠다. 노랗게 찰랑이는 잔을 든 팔룡이 음흉하게 웃었다.
“할 건가?”
“애 보기는 귀찮은데… 미리 분유라도 준비해둬야겠군.”
이반이 잔을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