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광기의 놀이동산 (2)
“축하드립니다!”
머쉬룸헤드가 이현과 남우의 티켓에 도장을 눌렀다.
뽁뽁.
티켓을 다시 받은 이현이 씩 웃었다.
“좋아, 이걸로 여섯 개째. 포켓몬 스티커 모으는 것 같고 재밌네.”
“아… 예에…….”
한 시간 사이에 홀쭉해진 얼굴로 남우가 끄덕였다.
그는 전혀 재미없었다. 천재적인 사디스트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 같은 이 놀이공원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인간은 마조히스트거나… 이현뿐일 것이다.
온갖 고문 도구와 괴물들이 이현에게는 이빨도 안 먹히고 놀이기구로 전락했다.
‘지옥의 거미인간’이라는 어트랙션에서 미션에 실패해 용암에 빠졌던 이현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모습은, 뭘 해도 죽지 않고 주인공을 쫓아오는 슬래셔 무비의 살인마 같았다.
‘그런데 형님이 이걸 하는 건 반칙 아닌가?’
닫힌 문을 억지로 비틀어 열고, 함정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니 게임이 제대로 성립이 안 된다.
게임으로 치면 불법 프로그램에 치트까지 써가며 공략을 하는 것인데 운영자의 개입이 없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보통 그런 핵쟁이들이 날뛰는 게임을 망겜이라고 기피하지 않나?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운영자가 개입하기 마련이고…….
‘이게 그냥 게이트라 다행이야…….’
“좋아, 마지막이다.”
이현이 눈독을 들인 마지막 어트랙션의 이름은 ‘죽음의 콜로세움’.
“으엑.”
어떤 창조적인 악의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불길하다.
“다른 데 가면 안 될까요?”
“상어 갈래?”
“…저기 가죠.”
죽음의 콜로세움은 이름 그대로의 장소였다.
커다란 원형의 공터. 들어온 문의 반대편에 철창으로 가로막힌 문 하나가 보였다. 문 위에는 전광판이 달렸는데 ‘0/3’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었다.
이현과 남우가 가운데에 서자, 텅 소리와 함께 하이라이트가 떨어졌다.
―신사숙녀 여러분! 오늘의 제물을 소개합니다!
관중석에 불이 들어왔다.
앉은 것은 온갖 기괴한 괴물들… 그들이 피와 살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두 인간을 바라봤다.
이 순간 그들을 먹잇감으로밖에 인식하지 않는 그 시선들이, 남우로 하여금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들었다.
이현에 옆에 있지 않았다면 공포와 절망에 울부짖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치를 경기는 모두 3라운드! 무시무시~ 한 전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콜로세움에 피와 내장을 흩뿌릴 새로운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까요! 그럼 첫 번째 라운드… 시작합니다!
전광판의 숫자가 ‘1/3’으로 바뀌었다.
정면의 철창이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드르르르…
쿵. 쿵.
거친 발소리와 함께 도끼를 든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가 걸어 나왔다. 손에 든 양날 도끼는 곰의 머리도 단숨에 쪼갤 것처럼 위압적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구릿빛 근육이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는데…….
[놀이공원의 미노타우로스]
‘집에 가고 싶다.’
남우는 이현의 뒤에 숨어서 덜덜 떨었다. 그때 이현이 남우의 팔을 톡톡 쳤다.
“야, 이거 약하네. 1라운드는 네가 해봐.”
“예?! 제가요?”
말을 알아들었는지 미노타우로스가 동전만한 콧구멍으로 숨을 흥, 뱉었다.
그리고는 도끼를 땅에 내리찍었다.
쿠웅!
묵직한 쇳소리에 남우의 몸이 움찔했다.
“기껏해야 트롤 수준이야. 실전을 해야 늘지.”
이현이 남우의 등을 떠밀었다.
“걱정 마. 내가 봐줄게.”
봐준다니, 뭘? 나의 죽음을?
억지로 밀려 나간 남우에게 미노투우로스가 도끼를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구오오오!”
“뜨아아아!”
남우가 옆으로 몸을 날린 순간, 미노타우로스의 도끼가 땅을 내리찍었다.
간발의 차.
그러나 안심할 새도 없이, 배를 깔고 누운 남우를 미노타우로스가 냅다 밟았다.
“끄악!”
옆으로 몸을 굴리자 미노타우루스가 콧김을 뿜었다. 아쉬운 모양이다.
연속적인 발구르기가 이어졌다.
쿵! 쿵! 쿵!
위험하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심장이 쿵쿵 울리며 시야가 까맣게 좁아졌다.
그때 이현이 외쳤다.
“반대로 굴러!”
이판사판. 남우는 반사적으로 그의 말을 따라 반대로 굴렀다.
남우가 같은 방향으로 구를 것이라 예상하고 미노타우로스의 도끼가 먼 곳을 찍었다.
덕분에 겨드랑이가 훤히 드러났다.
이현만큼은 아니어도, 생사를 건 전투를 몇 번 치러본 남우다. 기회가 들어오자 반사적으로 손이 갔다.
“으아아!”
남우가 내지른 검이 미노타우로스의 허리를 찔렀다.
“꾸억!”
미노타우로스가 냅다 발을 휘둘렀다. 격통이 남우의 배를 가격했다.
뻐억!
검을 잡고 있던 남우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헉!”
밑에서 이현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까마득히 멀게 들렸다. 2층 높이까지 올라간 몸이 털썩 떨어졌다.
쿵!
“컥!”
남우는 쓰러진 채 토악질을 했다. 내장이 액체가 되어 뒤섞이는 것 같다.
“헉… 헉.”
미노타우로스는 배에 박힌 검을 빼 바닥에 내던졌다.
씨익씨익.
숨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작은 검인데, 부위가 안 좋았는지 움직일 때마다 격통이 일었다. 지금 남은 놈에게 공격당하면 큰일이다.
그럼 다른 놈을 먼저 죽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아까부터 팔짱을 끼고 가만히 있는 꼴이 영 거슬리기도 했고.
미노타우로스는 이현에게 몸을 돌렸다.
“뭘 봐?”
그런데 눈을 마주친 순간, 오한이 미노타우로스를 덮쳤다.
죽는다. 저건, 건드려서는 안 된다. 주춤하는 미노타우로스에게 이현이 눈짓했다.
“아직 안 끝났어.”
미노타우로스가 고개를 돌리니… 남우가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작은 생물 주제에 어떻게 산 것일까. 보통은 배가 터져 산산조각이 났는데.
미노타우로스는 다시 도끼를 쥐었다. 배에서 피가 줄줄 흘렀지만, 미노타우로스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크게 포효했다.
“구오오오!”
지기 싫은 마음에 남우가 마주 소리쳤다.
“으… 크아아!”
이현이 그 모습에 박수를 쳤다.
“오, 좋아좋아.”
미노타우로스가 도끼를 치켜들고 달려갔다. 내리치는 척하면서 크게 횡으로 휘두를 생각이었다.
무기도 없는 저 작은 놈이 도망밖에 더 치겠나.
“앞으로!”
그런데 이현이 버럭 외치자 남우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미노타우로스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진 남우가 떨어져 있던 검을 주웠다.
잽싸게 돌면서 수평으로 휘두른 검이 미노타우로스의 발목을 버터처럼 벴다.
“꾸어어!”
남우를 찾아 몸을 돌리던 미노타우로스는 별안간 발목을 덮친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펄쩍 뛴 남우의 검이 미노타우로스의 목을 찔렀다. 미노타우로스가 요동치며 팔을 휘둘렀지만, 남우가 꽉 쥔 검을 비틀어 베자 벼락을 맞은 듯 몸이 굳었다.
피거품과 함께 미노타우로스의 몸이 가라앉았다.
쿠웅!
남우는 시체 위에 걸터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긴장과 공포로 손이 덜덜 떨렸다.
그때 박수 소리가 들렸다.
“뭐야, 따로 안 가르쳐줘도 잘하네.”
“그… 그런가요?”
“응, 근데 검술 연습은 좀 해야겠다.”
띠링!
갑자기 영롱한 전자음이 울렸다. 전광판의 숫자가 2/3으로 바뀌어 있었다.
―멋진 전투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상대를 이길 수 있을까요?
드르르르…….
철창이 오르더니 이번엔 뱀의 하체에 인간 여성의 상체를 지닌 괴물이 두 손으로 기어 나왔다.
슈르르르…….
괴물이 방울뱀같은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입에서 보랏빛의 운무가 서서히 흘러나오는 게… 아무래도 독인 듯싶었다.
[놀이공원의 나가]
“입냄새 난다.”
날아든 이현의 주먹이 단숨에 괴물의 상체를 분쇄했다. 피와 내장이 허공을 비산했다가 비처럼 후두둑 떨어졌다.
아나운서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렸다.
―수… 순식간에 적을 격파한 참가자! 대단합니다! 이제 마지막 전사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응, 빨리 좀 나와라.”
청색 피부를 지닌 외눈의 거인이 네 개의 팔에 각각 다른 무기를 들고나왔다.
[놀이공원의 푸른 거인]
“크흐흐흐… 나가를 단숨에 죽이다니 대단하군. 하지만 방금 전 쓰레기와 내가 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몸은… 엥?”
그 순간 거인의 커다란 외눈에 주먹을 쥐고 날아오른 이현의 모습이 비쳤다.
쾅!
머리를 잃은 괴물의 몸이 풀썩 넘어졌다. 남우는 왠지 허무해졌다.
‘난 1라운드 놈이랑 목숨 걸고 싸웠는데…….’
이현이 손짓했다.
“야, 선물받으러 가자.”
“예, 형님.”
앞서가는 등을 보자 남우는 목을 근질거리는 말을 내뱉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응?”
풀죽은 얼굴로 다가간 남우가 물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가 두렵거나… 부럽지는 않으셨습니까? 열등감을 느낄 땐 어떻게 해결하셨죠?”
“응? 글쎄…….”
이현이 티켓을 꺼내며 말했다.
“열등감 같은 걸 느낄 이유가 있나… 강함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잖아?”
“형님처럼 강해도 해결하실 수 없는 일이 있으십니까?”
티켓에 도장이 찍히는 사이 잠시 고민하던 이현이 말했다.
“김치 없이 김치볶음밥 만들기라던가?”
한국인의 피에는 김칫국물이 섞였는지, 어느 차원을 가든 김치는 항상 그리웠다.
프로스트 드래곤으로 만든 티본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라면에 김치 한 젓가락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결국 그 욕망을 견딜 수 없었기에 황제의 자리와 죽어서도 따르겠다는 신하들마저 뿌리치고 차원을 이동해 지구로 온 것이다.
그 간절함에 비하면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 따위 사소한 것이었다.
“생각난 김에 집에 가서 김치볶음밥이나 해 먹을까…….”
삼겹살을 송송 썰어서 볶다가 나온 기름에 파와 양파를 넣고 볶으면…….
그게 천국이지.
입맛을 다시는 이현을 보니 남우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하긴… 형님 말이 맞아.’
남우도 옛날과 비교하면 일취월장이란 말이 어울리게 강해졌음을 느꼈다.
D급 서포터가 C급 서포터로 오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남부럽지 않게 돈도 많이 벌고 있다.
당장 훨씬 강한 이현은 명예에도, 권력에도 집착하지 않고 김치볶음밥 얘기나 하고 있는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옛날보다 형편이 나아졌음에도 뭐가 부족한 것처럼 욕심을 내고 있었다.
‘형님께서는 내게 욕심내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남우는 존경의 눈으로 이현을 바라봤다.
이현은 그냥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었다.
“일곱 개를 다 채우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기프트숍에 들르시는 걸 잊지 마세요!”
티켓을 돌려주며 머쉬룸헤드가 하는 말에 이현이 헤죽 웃었다.
“오오. 야, 빨리 가보자.”
“예, 형님.”
빈이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며 이현은 기대에 부풀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프트숍의 내부는 얼핏 봤을 때는 놀이공원에 흔히 있는 가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가판대에 놓인 물건들이 모두 아티팩트였다.
그것도 하나하나가 A급 아티팩트.
남우는 가슴이 크게 뛰었다.
‘A급 아티팩트라면 어머니의 고칠 수 있는 물건이 있을지도 몰라!’
빠르게 가판대를 살피던 남우의 눈에, 은색으로 빛나는 병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