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광기의 놀이동산 (1)
“으아아아! 형니임! 살려주세요!”
“응?”
이현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니, 남우가 도끼를 든 괴물들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트롤 전사]
이번에 들어온 곳은 B급 게이트.
아직 보스까지는 멀었으니 지금 남우를 쫓고 있는 저놈들은 고작해야 C~B급일 텐데…….
“하아…….”
이현의 몸이 훅, 사라졌다. 뱀처럼 긴 잔영을 남기며 미끄러지듯 달려온 이현의 하이킥이 트롤의 머리를 걷어찼다.
쿵!
포탄에 맞은 듯이 턱이 뜯어지며 위로 솟구쳤다. 이어지는 돌려차기 후 정권 콤보에 뒤에 있던 트롤 두 마리의 허리가 꺾이고 복부가 터졌다.
콰쾅!
남우의 눈에는 이현이 순간이동을 하며 트롤들을 분쇄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 우와.”
“우와는, 임마.”
이현이 손날로 남우의 머리를 툭 쳤다.
“이 정도는 혼자서 해결해야 안심하고 짐꾼을 맡기지.”
“…이걸요? 제가요?”
남우는 질겁해서 쓰러진 시체를 보았다.
트롤은 B급 몬스터지만, 재생력이 강해서 어지간한 A급들에게도 성가신 괴물이다.
갓 C급… 그것도 서포터인 남우가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물론 세상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지만, 오늘처럼 그냥 이현의 게이트 공략을 도우러 왔다가 황당하게 죽는 것은 사양이었다.
“세 마리는 힘들겠지만 지금 너로도 한 마리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이현이 다시 앞서나갔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자신감 없는 얼굴로 남우가 읊조렸다.
다른 놈이었으면 그러다 죽는 게 네 운명이겠거니, 하고 내버려 뒀을 텐데…….
‘희수에게도 앞으로 신세를 질 테고, 우리 빈이도 이 녀석을 좋아하니까…….’
사람을 도울 때마다 거창한 이유를 댈 필요는 없다.
이현은 손을 내밀었다.
“증거 보여줄게. 칼 줘 봐.”
남우는 떨떠름하게 그에게 칼을 건넸다.
칼을 장난감처럼 휘릭휘릭 돌리며 걷던 이현이 트롤을 발견하고 멈췄다. 마침 딱 한 마리였다.
“이제부터 저놈을 너만큼만 힘을 사용해서 잡을 테니까 잘 봐라.”
이현이 산보하듯 가벼운 걸음으로 트롤에게 다가갔다.
전에는 마력을 낮추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게이트를 들락거리며 S급부터 D급까지 다양한 헌터들을 본 덕에 마력량을 대강 맞출 수 있게 됐다.
그를 발견한 트롤이 히죽, 잔인한 웃음을 짓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커다란 도끼가 대뜸 그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우선 침착하게 상대의 동작을 본다.”
이현은 가벼운 풋스텝으로 도끼를 피했다. 남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여?’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속도였다.
“덩치 큰 상대에겐 하단이 효과적이지.”
피함과 동시에 안으로 파고든 이현의 검이 트롤의 발목을 찔렀다. 푸딩을 찌르듯 검이 쑥 들어갔다가 나왔다.
“쿠엑!”
트롤이 옆으로 쓰러지자 이현의 검이 뒤에서 날개뼈를 파고들었다.
“아무리 커도 생물학적 특성상 급소는 대개 비슷해.”
눈을 부릅뜬 트롤이 입에서 피를 왈칵 토하고 절명했다. 심장이 찔린 것이다.
검을 옆으로 휘둘러 피를 털어낸 이현이 뚜벅뚜벅 다가왔다.
“생물은 머리가 가장 단단해. 목뼈도 의외로 끊기 쉽지 않고. 큰놈일수록 더 단단하지. 심장, 폐, 동맥을 노려라.”
남우는 입을 벌리고 경청했다.
뭘 보여주려고 저러나… 했는데…….
이현은 정말로 남우만큼의 마력만으로 트롤을 죽인 것이다. 속도도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기술.
압도적인 단련과 경험에서 오는 몸놀림만이 달랐다.
이현이 그에게 검을 내밀었다.
“이 정돈가. 당장은 못 따라 할 거야.”
멍하니 검을 받아든 남우가 물었다.
“형님은 그렇게 강하신 데도 기술을 배우신 겁니까?”
이현이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나라고 처음부터 강했겠냐? 너보다 약했던 시절도 있었어.”
“형님이 저보다요?”
“응, 게이트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진짜 무서웠지.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어. 모기한테 뒤질 뻔했다니까.”
이현의 과거 이야기는 처음이다. 전부터 그 사람 같지 않은 강함의 비밀이 궁금했는데… 마침 기회가 아닐까.
남우는 흥분을 억누르고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강해지셨어요? 뭔가 기연이 있으셨나요?”
“아니, 그냥…….”
아련한 눈빛으로 하늘을 보며, 이현이 말했다.
“그냥 존나 굴렀지…….”
“…….”
다시 남우를 본 이현이 해맑게 웃었다.
“그러니까 너도 존나 구르자.”
* * *
“오… 여긴… 놀이공원인가?”
[광소하는 악몽의 공원]
관람차에 롤러코스터, 유령의 집 등… 있을 건 다 있는 놀이공원이 게이트 안쪽에 떡하니 자리 잡았다.
A급 게이트치고는 꽤 건전한 모습이었다.
이현이 다가가자, 버섯 같은 머리의 괴물이 불쑥 나타났다.
“손님이시군요.”
[머쉬룸헤드]
“윽!”
검을 빼 드는 남우를 이현이 막았다.
“직원이잖아.”
“예?”
그러고 보니… 이름표까지 있는 파란 유니폼이 직원이라는 느낌이기는 했다.
치마와 검은 스타킹을 입은 매끈하게 잘 빠진 다리가 꽤나 요염한 자태라 하겠다.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황록색의 고름 같은 것이 출렁거리는 버섯이 있어서 끔찍할 뿐이지만.
머쉬룸헤드가 다가와 인사했다.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축하드립니다. 오늘 첫 손님이시군요. 두 분은 특별히 무료로 모시겠습니다.”
흰 장갑을 낀 손이 티켓 두 장을 슥 내밀었다.
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우는 오물을 만지듯 집게손가락으로 티켓을 받았다. 머쉬룸헤드가 흔한 놀이공원 알바생 같은 말투로 말했다.
“티켓을 보시면 7개의 빈칸이 보이실 겁니다.”
“아, 그렇군.”
“어트랙션을 하나 타신 후, 출구로 나오시면 직원이 빈칸에 도장을 찍어드립니다.”
장갑을 낀 손가락이 일곱 개 펼쳐졌다.
“7개의 어트랙션을 타시면 7칸을 채우시는 거지요. 전부 채우신 티켓은 기프트숍에 가시면 선물과 교환이 되세요. 기프트숍은 놀이공원의 중앙에 있답니다.”
그러니까 7개의 어트랙션을 모두 타고 선물을 받는 것이 게이트의 공략 조건이라는 얘기였다.
“이것 참, 수련하러 왔더니 놀이공원이냐. 이럴 줄 알았으면 빈이 데리고 올 걸 그랬다.”
“…아니, 그럼 안 되죠. 엄청 위험한 함정이 숨어있을 게 뻔하잖아요.”
하물며 이곳은 A급 게이트. 당연히 평범한 놀이동산일 리가 없다.
‘함정형 게이트가 분명해!’
머쉬룸헤드가 고름을 출렁거리며 말했다.
“본 놀이공원에는 모두 10개의 어트랙션이 있답니다.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실 수도 있고, 실패해도 같은 놀이기구에 언제든 다시 도전하실 수 있으니, 마음껏 즐겨주세요!”
이현이 티켓을 주머니에 대충 접어 넣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그럼 롤러코스터부터 가볼까!”
“혀…형님! 이럴 땐 신중하게 생각을…….”
롤러코스터에서 티켓을 끊는 직원도 머쉬룸헤드였다.
손님은 남우와 이현뿐.
입구에서 해골 장식을 본 남우는 잔뜩 긴장하며 롤러코스터에 앉았다.
―리퍼 익스프레스! 열차 출발합니다~
이름부터 수상쩍은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궤도를 따라 올랐다. 이현이 해맑게 웃었다.
“봐, 평범한 놀이기구잖아.”
―탑승객 여러분께서는 부디 살아 남아주시기를…….
별안간 스산해진 안내 음성에 남우는 안전바를 움켜쥐고 벌벌 떨었다.
“완전 아닌 것 같은데요?!”
쿠르르르…….
최고도에 오른 롤러코스터가 아래로 급강하를 시작했다. 엉덩이가 붕 뜨는 감각에 남우는 안전바를 힘껏 붙들었다.
레일이 이어진 아래는 동굴.
그런데 동굴의 안쪽에서 칼을 쥔 괴물들이 잔뜩 매달려 있다가 이현과 남우에게 떨어졌다. 광대같은 복장에 분장까지 완벽하게 한 모습이지만 기세가 흉흉했다.
[놀이공원의 고블린]
“오.”
“뜨아악!”
대략 3분 뒤,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남우가 허리를 숙이고 토를 쏟았다.
“으웨에엑!”
“저런. 넌 여친 사귀어도 놀이공원은 오지 마라.”
등을 토닥이며 이현이 하는 말에 남우는 어처구니가 없어 반박했다.
“저… 저도 평소에는 잘 탑니다!”
헌터가 되며 전반적으로 상승한 신체 능력에는 균형감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롤러코스터의 압박은 미끄럼틀 수준이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와중에 검을 휘두르고 피하고 찌르는 일은 헌터가 아니라 헌터 할아버지라도 쉬울 리가 없다.
게다가 중간 즈음 가서는 화염이 쏟아지거나 창이 날아들었다.
앞에서 대부분의 괴물을 피떡으로 만든 이현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어어, 그래. 야, 다음은 저거 타자. 샤크의 세계.”
상어가 쫓는 배가 그려진 간판을 이현의 손끝이 가리켰다.
불길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에 남우는 질겁했다.
또 배 위에서 왔다 갔다 했다가는 아예 멀미로 기절해버리지 않을까.
“자… 잠깐만요. 저거 가죠! 유령의 집!”
“그래? 그러던가.”
그리고 남우는 5분이 채 되지 않아 후회했다.
[놀이공원의 처녀귀신]
“피를 돌려줘~”
창백한 머리를 늘어트린 반투명한 여자가 허공을 미끄러져 달려왔다. 홱 휘두른 검이 몸을 허무하게 빠져나가며, 얼음 같은 한기가 남우를 덮쳤다.
“끄엑!”
서리투성이가 된 남우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이현이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아니, 인마. 언데드는 영체를 이루는 핵을 때려야지.”
이렇게.
이현의 주먹에 가슴을 가격당한 귀신이 단말마를 남기며 희뿌연 액토플라즘으로 녹아내렸다. 그런데 하필 녹아내린 부위가 남우의 사타구니 위였다.
“으악!”
“오… 이따 비뇨기과 가봐라. 거기에 안 좋은 기운이 깃들면 큰일이잖아.”
그 말을 들은 남우가 축축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표정이 심각해졌다.
“…진짜요?”
“가짜요. 진짜면 무당을 찾아가야지, 비뇨기과를 왜 가.”
얄밉다.
얄밉지만… 뭔가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알짜배기 전투 경험을 쏙쏙 알려주니 뭐라 하지도 못하겠다.
안 알려주더라도 무서워서 반항 못 하겠지만…….
삐걱삐걱.
그때, 어두운 복도 저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삐걱… 삐걱.
호롱불이 흔들렸다. 먼 저편에서부터 불이 지지직거리며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가까워진다.
남우는 꿀꺽, 침을 삼켰다.
별안간, 바로 앞에서 불이 확 켜지더니 시커먼 여자가 나타났다. 복도가 좁은지 허리를 숙이고 기괴하게 꺾인 사지로 몸을 지탱했는데… 검은 구멍만 남은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놀이공원의 팔척귀신]
“캬아… 악?!”
펑!
날아든 주먹이 마녀의 머리를 터트렸다.
주먹을 든 이현이 후, 숨을 쉬었다.
“깜짝이야.”
“…놀라면 주먹이 나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