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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35화 (35/150)

35화. 전조 (2)

쐐액!

붉은 구슬이 원을 그리며 돌다가 일시에 이현에게 쏘아졌다!

달이 밝은 밤이었지만 광택이 없는 구슬들은 음속이 넘는 속도로 쏘아진 순간 시인할 수 없는 흉기가 됐다.

노리는 부위는 안구, 관절 부위 등 전부 인체의 급소!

만약 이현이 팔을 들어 막더라도 신체에 박힌 순간 구슬은 더욱 악랄한 흉기가 된다.

기청융의 의지에 따라 인체 내부를 마음대로 휘젓는 것이다. 방어력에 자신이 있는 자들도 신체 내부가 휘저어지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마련!

일부러 구슬을 몸에 박아 고문을 하는 식으로 사용한 적도 있었다.

“응?”

이현의 손이 홱 허공을 돌았다.

기청융은 그의 손에 잡힌 혈마옥들을 보고 소름이 오싹 끼쳤다.

튕겨 내거나 피했다고 해도 놀랐을 텐데 전부 잡아내다니!

이현이 손에 잡힌 구슬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뭐야? 비비탄이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이런 것을 갖고 놀다니… 하긴, 그러니까 남들 신경 안 쓰고 폭주족 놀이나 하고 다니겠지.

한마디로 말하면 철없는 인간인 것이다.

이렇게 한심스러운 놈 하나 잡겠다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달려왔다니 덩달아 한심한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이익!”

구슬들이 우르르 기청융의 주위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런데 하나가 되돌아가지 않았다.

이현이 집게손가락으로 구슬 하나를 잡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는 딴생각에 빠진 상태였다.

‘우리 빈이가 나중에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팔뚝에 그림을 그리고 이런 양아치의 뒤에 타서 ‘아빠, 난 자유롭게 살래요!’ 같은 소리를 하는 빈이를 떠올리자 원인 모를 흉통이 날카롭게 엄습했다.

“크윽!”

아파하는 이현을 보자 기청융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전부 막아낸 척했을 뿐 몇 발이 명중한 것이다!

놈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근거리에서 기습적으로 날린 혈마옥을 아무런 피해도 없이 막아낼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승기를 잡은 이상 더 망설일 것이 없다. 잔악한 가학심이 피어올랐다.

자신만만하게 찾아온 대가를 고통으로 치르게 해주리라.

[엘리멘탈 인챈트]

―무기에 속성을 부여합니다. 지능 스테이터스에 따라 데미지가 증가합니다.

―설명 : 숨겨진 여섯 번째 속성이 있다지만 증거는 없습니다.

혈마옥은 무기로 취급되어 인챈트에 의한 속성 부여가 가능하다.

어떤 괴물이 상대든 상성에 맞는 인챈트를 할 수 있는 대응능력이야말로 그의 최대의 강점!

화르륵!

혈마옥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이번에 기청융이 인챈트한 것은 화염 속성. 열기가 얼마나 강한지 기청융의 근처가 일그러져 보일 지경이었다.

쐐액!

열아홉 개의 혈마옥이 맹렬하게 이현을 노렸다. 복잡하게 얽히는 붉은 광점이 마치 레이저 같은 잔상을 남겼다.

이현이 구슬을 들고 있던 손을 홱 내저었다.

기청융이 스킬로 날린 것보다 빠른, 그야말로 빛살 같은 속도로 구슬이 날아갔다!

구슬이 날아가며 일으킨 원형의 소닉붐이 이현에게로 날아오던 구슬들을 전부 튕겨내며 굉음을 일으켰다. 그 중앙을 꿰뚫고 날아간 구슬이 기청융의 얼굴 옆을 스치고 하늘 저편으로 날아갔다.

씨융! 핏.

바람이 스친 기청융의 볼에서 주륵 피가 흘렀다. 전의를 잃게 만드는 퍼포먼스에 기청융은 구슬을 날린 자세 그대로 굳었다.

‘괴… 괴물이다!’

방금 그 공격이 직격했다면 몸 어딘가에 반드시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그에게 이현이 뚜벅뚜벅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그를 지나친 이현이 오토바이의 키를 뽑아 홱 던졌다. 키가 밤하늘을 향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가 만화처럼 한순간 반짝 빛났다.

베란다를 뛰어나올 때는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비비탄을 쏴대는 한심한 꼴을 보니 살의가 식었다. 소음공해가 일어날 때마다 사람을 죽였으면 서울 인구는 100만도 넘기 힘들었을 것이다.

“조용히 살아라.”

이현이 훌쩍 다리를 뛰어 사라졌다.

기청융은 꿀꺽 침을 삼켰다.

‘이건… 내일 거사에 대한 경고인가…! 날 살려둔 것은 경고를 산주께 전하라는 의미……?’

* * *

쿠르르릉……!

하늘에 생긴 거대한 균열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푸른색과 녹색이 번뜩이는 균열의 안쪽에서는 기묘한 풍경이 일렁거렸다.

그 크기는 강남 일대를 전부 덮고도 남을 지경!

두 대의 헬기가 균열의 주위를 날아다니며 서치라이트를 비췄다. 헬기 안에서는 한창 아나운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떠드는 중이었다.

“보이십니까, 여러분! 그야말로 종말에 가까운 광경입니다!”

그때 게이트에서 몇 개의 점이 떨어졌다. 카메라가 점을 확대했다.

뿔이 달리고 날개가 난 인간 형상의 괴물!

머리가 뒤통수까지 붉은 동공의 눈으로 덮인 괴물이 헬기를 향해 날아왔다.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 찬 입이 탐욕스럽게 침이 줄줄 흘렀다.

“으, 으아앗! 헬기 돌려! 빨리 헬기 돌려!”

그때, 한 발의 총성이 괴물을 꿰뚫었다.

타앙!

괴물의 몸통에 원추형으로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헌터협회의 옥상에 앉아있던 불스아이 병장… 명우는 총을 내렸다. 인기척이 느껴진 탓이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헌터협회의 직원이었다.

“불스아이 병장님! 작전 회의 시간입니다!”

명우는 다시 게이트를 보았다. 괴물들이 십 초에 거의 수십 마리씩 내려오고 있었다.

여기서 놓친 한 마리가 열 명의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리를 뜰 수 없었지만… 게이트 공략을 위한 회의를 빠질 수도 없다. 신속한 게이트 공략이야말로 대의이니….

지금은 저 아래에서 분투하는 다른 헌터들을 믿고 맡길 수밖에.

“…가죠.”

명우는 직원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넓은 회의실에는 이미 5명의 S급이 앉아 있었다.

성녀, 웨어울프걸, 먹필도사… 그리고…….

구석에 앉은 두 남녀의 모습에 명우의 눈에 날카롭게 힘이 들어갔다.

남자는 새카만 망토로 온몸을 가렸다. 어깨부터 머리까지 덮은 광택이 도는 갑옷은 폭력을 형상화한 듯 날카롭다. 얼굴에는 우는 표정의 은색 가면을 썼다.

바로 옆에 앉은 여자는 피처럼 붉은 수녀복을 입었는데… 치마의 허벅지가 치파오처럼 쫙 트인 데다 붉은 스타킹에 가터벨트를 차고 있어 교황청에서 고소장이 날아와도 겸허하게 올 게 왔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할 차림새였다.

길드 ‘블랙벤더’의 쉐도우 로드와 붉은 수녀.

얼핏 보면 중2병에 걸린 오컬트 마니아 같은 모습이지만, 명우는 그들을 경계하고… 증오했다.

S급 헌터라는 직위에 앉았으면서 범죄로 재산을 모으는 자들. 대한민국의 아인과 괴물 유통망은 거의 블랙벤더의 손아귀에 있었다.

헌터의 직위를 악용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삼합회보다 더 질이 나빴다.

그럼에도 명우가 지금껏 그들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쉐도우 로드가 강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규격 외로.

그는 불과 2년 전 헌터가 되었다. 데뷔전은 무려 S급 게이트…….

그걸 홀로 유유히 공략하고 나온 그를 헌터협회에서 모셔가 S급 헌터의 자리에 앉혔다.

S급 게이트는 적어도 세 명의 S급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귀문!

그걸 홀로 공략했다는 이야기는, 쉐도우 로드 단신의 전력이 최소 S급 세 명이라는 의미다.

그 후로도 어지간한 A급 게이트는 붉은 수녀와 단둘이서만 공략하며 이름을 날렸다.

아무리 괴물을 증오하는 명우라도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다.

시선을 느꼈는지 은색의 가면이 명우를 향했다. 가면의 눈구멍 안쪽에서 의외로 평범한 갈색 눈이 명우를 보았다.

인사라도 하는지 그가 검은 장갑을 낀 한 손을 슬쩍 들었다.

명우는 홱 고개를 돌려 무시했다. 살생부에 적어놓은 놈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싶지 않음은 당연지사.

“저놈이 감히……!”

붉은 수녀가 대신 모욕을 당한 것처럼 서슬 퍼런 살기를 내뿜었다.

그때 헌터협회의 이사, 유지애의 목소리가 울렸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살기가 걷혔다. 지애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블랙벤더가 음지의 인물들임을 지애나 헌터협회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마 이번 S급 게이트 공략에 참여한 이유도 공략에 따른 부산물을 얻기 위함이겠지.

하지만 사실을 알아도 대한민국의 멸망이라는 거악보다는 블랙벤더를 살찌우는 차악이 나았다.

지애의 손짓을 따라 탁자 위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이번 S급 게이트의 명칭은 ‘길항하는 힘의 회랑’입니다.”

폐허가 된 도시의 풍경과 부서져 파편이 흩날리는 달이 뜬 붉은 하늘이 보였다. 먹필도사가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지애는 잠깐 그에게 눈총을 보낸 후 말을 이었다.

“…GEM 팀이 확인해본 결과 서식하는 괴물은 악마형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삐빅.

단조로운 비프음과 함께 영상이 재생됐다.

붉은 피부를 지닌 악마 수십 마리가 사람들을 끌고 왔다.

겁에 질린 얼굴들. GEM 대원들이었다. 찍던 사람이 동요했는지 영상이 잠시 흔들렸다.

산양같은 얼굴에 정장을 입은 악마가 나타났다. 악마가 지휘봉을 휘두르자, 대원들의 몸에 수십 개의 종양이 돋아나 터졌다.

터진 종양에서 녹색의 걸쭉한 액이 흐르더니, 녹색 피부의 새로운 악마로 자라났다. 악마의 시선이 카메라로 향하자 카메라가 흔들리더니 까맣게 암전됐다.

마치 영화와 같은 광경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임을 감안하면… 모골이 섬뜩해지는 광경이었다.

“S급이 악마형이라니… 골치 아프겠소.”

먹필도사가 투덜거렸다.

악마형은 요괴형과 비슷하게 온갖 특수한 능력을 사용한다. 개중에는 ‘계약’을 매개로 인간을 현혹하여 재앙을 낳는 놈들도 있었다.

고작 B급 게이트에서 나온 악마가 ‘새누리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현혹하여 백 명도 넘는 인간을 죽이고 천 명이 넘는 인간을 재기불능으로 만든 새누리교 사건은 유명하다.

그때 웨어울프걸이 손을 들었다. 수화(獸化)하지 않은 그녀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내기 대학생 같았다.

“악마형이면 이탈하는 괴물들 수준도 만만치 않을 텐데, 대책은요?”

“현재 강남 시민 75% 이상이 대피에 성공했습니다. B에서 C급의 헌터분들이 라인을 구축해 이탈하는 괴물들을 최대한 저지해주실 예정입니다.”

지애가 지도의 곳곳을 막대로 짚으며 아나운서 같은 말투로 말했다.

“그 사이, 여러분께서는 최대한 빨리 보스를 공략해주시면 되겠습니다. 협력해서 말이죠. 다만….”

지애는 목소리를 낮췄다. 사실, 이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회의를 열기 직전까지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게이트에서 측정된 마력은 멸망급 게이트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중에 가장 높습니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먹필도사는 바로 이전에 싸웠던 S급 게이트의 괴물 지하국대적을 떠올렸다.

크기로 예상은 했지만… 그놈보다 강한 보스가 있다고?

게다가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글거리는 악마들도 만만한 놈들이 아닐 텐데….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이군.”

아니… 이 경우에는 문자 그대로의 지옥인가.

“와주신 여러분들께는 협회에서 최대한 지원을 약속드립니다.”

직원 한 명이 커다란 서류 가방을 안고 들어왔다.

서류 가방을 열자, 가지런히 놓인 여섯 개의 꽃이 보였다. 꽃들은 잎사귀 하나 다칠세라 섬세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심드렁하니 보던 먹필도사가 자세를 고치고 몸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아니!”

“바리데기의 꽃!”

지애가 씨익 웃었다.

“네, 다들 아시겠죠.”

A급 헌터 바리데기만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효과를 지닌 꽃!

각각 피살이, 뼈살이, 살살이, 혼살이의 네 종류가 있으며…….

혼살이꽃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대신 그 값은 경매가로 3,000억이 넘는다.

가장 싼 살살이 꽃조차 1억을 호가한다.

가방이 하나씩 S급들에게 전달됐다.

“지금 여기 있는 건 피살이, 살살이, 뼈살이 꽃의 세트입니다. 이 세트면 죽지만 않으면 모든 부상을 치료하실 수 있죠.”

게임으로 치면 목숨 하나를 더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값도 값이지만 희소성 때문에 구하기 어려운… 어지간한 아티팩트보다 훨씬 귀한 꽃들이었다.

먹필도사가 윙크했다.

“난 지애 양의 전화번호도 받고 싶소만.”

지애가 생긋 웃었다.

“어머, 그럼 도사님께는 꽃 대신 드릴 수도 있는데요?”

“거 농담도 참. 하하하하!”

먹필도사가 황급히 가방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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