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32화 (32/150)

32화. 이사

푸탈탈탈…….

낡은 승합차 한 대가 사당 미리내 아파트 단지 내로 힘겹게 들어섰다.

‘이만 죽여줘…’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애처로운 엔진 소음에 지나던 사람들이 한 번씩 돌아보았다.

승합차에는 세 남자가 구겨지듯 몸을 웅크린 채 타고 있었다.

운전석에는 일성이… 조수석에는 남우가, 뒷좌석에는 이현이 빈이를 안고 탔다.

남우가 말했다.

“형님, 차 한 대 사시는 거 어떨까요?”

“응, 그래야겠어.”

일성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제 차가 그렇게 안 좋나요……?”

“아닙니다.”

사고가 걱정될 뿐이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이러다 차가 폭발하면 9시 뉴스에 나올 텐데…….

이현은 빈이를 꼭 껴안았다.

집을 알아본 지도 어언 한 달… 인테리어 공사와 청소를 끝낸 것이 어제.

오늘부터 사당동 주민이 될 텐데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하다.

그런데 주차장을 돌던 일성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어떤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저런 주차를……!”

차에 타면 다 여포가 된다더니, 일성도 마찬가지였다.

놀란 이현과 남우는 일성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았다가 함께 인상을 찌푸렸다.

BMW 한 대가 주차장 두 칸을 차지하고 서 있었다.

이현은 빈이를 안고 냉큼 내렸다.

“제가 가서 확인하고 오죠.”

유모차에 빈이를 태우고 다가간 이현이 차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전화번호가 없다…….

“매너가 부족한 놈이군.”

그럼 어쩔 수 없지.

이현은 차를 번쩍 들어 옆에 내려놓았다.

텅.

이현이 일성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라이 오라이!”

노련한 솜씨로 주차한 일성이 바퀴를 살짝 꺾어 BMW 앞을 막아놓았다.

“이런 놈은 지가 당해봐야 정신 차려요.”

남우가 엄지를 들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어르신.”

그런데 몇 걸음 걷지도 않아 웬 남자가 벌게진 얼굴로 그들에게 달려왔다.

달라붙는 까만 티에 금목걸이가 목에서 번쩍였다. 손에는 뱀이 그려진 가방을 들었다.

근육이 아니라 살로 투실투실한 팔뚝에도 뱀이 그려졌다.

정글에서 너무 잘 먹은 파충류 애호가 같은 남자였다.

“어이!!”

“응?”

남자가 BMW를 가리키며 씩씩거렸다.

“저거 내 찬데, 당신들이 옮겼어?”

이현이 눈썹을 꿈틀했다.

“그런데?”

“그런데는 이런 시팔! 뭔데 남의 차에 멋대로 손을 대!”

이현의 눈이 유모차를 흘끔 내려다보았다. 하필 빈이가 있는데 이런 저급한 단어라니… 좋지 못하다.

“애 있는데 말 가려서 하지.”

“애? 닝기미, 애새끼 있든 말든 내 알 바…….”

덥석.

이현의 손이 그의 턱을 붙잡았다. 한 손으로 번쩍 들자 남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말, 가려서 하라고.”

사람을 가볍게 한 손으로 드는 힘!

‘이… 이놈, 헌터다!’

생물로서 상대가 안 되는 괴물!

하지만 남자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니… 니 내가 누군지 알아!”

이현이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니가 뭔데.”

“내가 임마, 여기 사당 장춘모야! 이 동 사시는 A급 형님이랑! 사우나도 같이 가고! 밥도 같이 먹고! 마 다 했어!”

“근데?”

“근데라니, 이… 이…….”

육두문자를 내뱉으면 턱이 부서질지도 모른다…….

“이 자식아! A급이라고! A급!”

“A급인데 어쩌라고.”

“…나한테 이러면 A급 형님이 오신다, 이 말이야!”

“근데?”

“그분은 삼합회하고도 연줄이….”

“그래서?”

미친놈이다! 춘모는 확신했다. 미친놈이 틀림없었다.

사당에 사는 A급 헌터는 거의 중국인… 거대 길드에 소속되어 있음은 물론, 저 삼합회의 간부들과도 연줄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연줄이 아니더라도 본신의 힘만으로 인류의 보루라고 불리는 괴물들 아닌가!

이놈처럼 사람을 한 손으로 쥐고 집어 던지는 것은 물론… 집보다 커다란 괴물을 칼질로 단숨에 두 동강 내는 장면도 보았다.

그런 A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신병자로밖에 생각이 안 됐다.

미친놈한테는 약도 없다.

“아… 알았다. 내려줘.”

“사과.”

이현이 그를 든 채 슬쩍 흔들었다.

“…미안하다.”

“쓰흡.”

“죄, 죄송합니다.”

“크게.”

‘이 새끼!’

어느새 주민들이 몰려와 보고 있는 와중.

항의할 때마다 A급을 들먹이며 찍어 누른 탓인지… 그들은 꽤나 통쾌하다는 표정이었다.

자존심이 뭉개졌다. 하지만 우선은 이 미친놈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춘모는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죄송합니다!”

“옳지.”

이현이 춘모를 팽개치듯 내려놓았다.

“어이쿠!”

엉덩방아를 찧은 그가 억울한 얼굴로 이현을 쳐다봤다. 꼬리뼈가 아프다. 상한 자존심은 더 아프다.

하지만 감히 눈을 들 수가 없었다.

춘모는 아파트에 들어가는 이현을 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내 이 새끼… 가만두지 않겠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형님! 접니다!”

그러든가 말든가 이현은 깔끔하게 그를 잊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새집은 15층. 빈이는 날개가 달렸으니 고층을 좋아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고층으로 정했다.

1… 3… 10… 점점 오르는 전광판의 숫자를 보자 약간이지만… 두근거렸다.

‘빈이가 새집을 좋아해야 할 텐데…….’

다른 것보다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만약 빈이가 싫어하면… 기껏 이사한 집도 의미가 없으니까.

삡삡삡삡… 삐로리로~

전자식 잠금장치의 키패드를 누르는 영롱한 소리 이후, 문이 열렸다.

“빠라바라빰~”

이현이 내는 소리에 남우가 질색했다.

“형님… 언제적 BGM을…….”

“…요즘 안 해?”

“안 합니다. 요즘 그런 거하면 틀딱 소리 들어요…….”

틀딱이라니!

세월의 흐름이 묵직하게 이현의 가슴을 쳤다.

“…크흠! 자, 빈아! 우리 새집 보자~”

유모차에서 나온 빈이가 빨간 눈을 크게 뜨고 집을 보았다.

북유럽식의 인테리어. 가구부터 장판까지 모두 빈이를 위한 천연재료로 만들어졌다.

거실 바닥에는 층간소음 예방과 빈이의 안전을 겸하는 두꺼운 매트가 깔렸다. 가구의 날카로운 모서리에도 말랑한 스펀지를 붙여놓았다.

빈이는 멍한 표정이었다.

남우가 속삭였다.

“형님. 빈이가 몸으로 느껴보게 하시는 게…….”

“아, 그렇지.”

이현은 빈이를 매트 위에 내려놓았다. 잠시 앉아서 멀뚱거리던 빈이가 날개를 파닥이며 엉금엉금 기었다.

베란다로 간 빈이가 유리창을 짚고 일어나더니 입을 벌리고 밖을 보았다.

“따!”

“응……?”

남우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빈이가 베란다가 신기한 모양인데요.”

“아……!”

일성의 집에는 베란다가 없었다. 거실 한 면을 통째로 차지한 큼지막한 통유리를 빈이는 처음 보는 것이다.

“따!”

빈이가 유리창을 탕탕 내리치며 웃었다. 빈이의 힘을 아는 남우가 불안하게 그 모습을 보았다.

“저러다 깨서 다치는 거 아니에요?”

팔짱을 끼고 보던 이현이 훗, 웃었다.

“괜찮아. A급 게이트에서 나온 크리스털로 만든 특수 유리래.”

“…….”

철저하다고 해야 할지… 극성이라고 해야 할지… 남우는 이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엉뚱한 거에 좋아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좋아하니 됐다. 이현은 빙그레 웃었다.

앞으로 펼쳐질 새집에서의 행복한 나날을 그리니 뿌듯하고 좋았다.

그때 일성의 핸드폰이 울렸다.

뚜루루…….

일성이 핸드폰을 받았다.

“예?”

―야이, 개새끼야! 차 안 빼!

요새 귀가 안 좋은 일성조차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고음이었다. 빈이가 홱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보았다.

이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어떤 새끼가…….”

무작정 싸우기는 싫었던 일성이 핸드폰을 가리고 침착하게 응대했다.

“차라니요?”

―2885! 개새끼야! 차 안 빼, 시발! 5분 안에 안 나오면 차 부숴버린다!

전화가 뚝 끊겼다. 일성은 어처구니가 없어 잠시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이런…….”

“제가 나가죠.”

이현이 벌떡 일어났다. 빈이가 그에게 양팔을 뻗었다.

“아뺘…….”

고성 때문에 놀랐던 것일까. 이현은 푸근한 미소로 다가가 빈이를 안았다.

“아빠 잠깐 나갔다 올게요. 우리 빈이 집 구경하고 있을 수 있쬬?”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빈이가 이현의 가슴을 턱 짚었다.

“뺘.”

이현은 빈이를 일성에게 넘겼다.

“금방 갔다 오죠.”

그의 말을 들은 일성이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물론 이현이 아니라… 욕설을 한 상대가 걱정이 돼서.

“현 군, 살인사건은 안 됩니다.”

“걱정 마세요. 조용히 해결하죠.”

이현이 내려가자 일성의 차 앞에 네 남자가 모여 있었다.

한 남자가 일성의 차 보닛 위에 앉아 있다가 이현을 보고는 풀쩍 뛰어내렸다.

회색 정장에 붉은 셔츠. 시가를 물고 머리는 말끔하게 왁스를 바른 모습이 옛 홍콩 영화에서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중국의 A급 헌터 류성이었다.

그가 옆에 서 있던 춘모에게 물었다.

“저놈이야?”

“네, 형님!”

류성이 시가를 문 입으로 웃었다.

“헌터란 말이지?”

“마력을 쓸 줄 아는 놈이 틀림없습니다!”

“제깟 놈이 그래봤자…….”

마력이란 축복… 선택받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힘!

A급 헌터란 그 선택받은 자들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문자 그대로의 신인류!

“꼬~옥~ 이제 갓 마력을 깨우친 어중이떠중이들이 잘난 척 까불어.”

춘모에게 사건의 전말은 대강 들었다.

한 손으로 100kg이 넘는 춘모의 거구를 들었다… 그야, 일반인이 들으면 대단한 일이겠지.

그러나 류성에게는 우스운 일이었다. ‘힘’에 특화된 A급인 그는 새끼손가락으로도 춘모를 들 수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선 류성에게 이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류성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응? 가만? 저놈…….’

삼합회에서 수배를 때린 남자!

살아서 데려가면 5억… 죽이면 1억이 걸린 목이었다. 저놈이 데리고 있다는 아인 새끼의 목에는 자그마치 3억이 걸렸다.

“잘됐군!”

이현이 그의 앞에 섰다.

“너냐? 욕한 놈이?”

“나다. 어쩔래?”

류성이 담배 연기를 후, 이현에게 내뱉었다.

이현이 홱 손을 내저었다.

후우웅!

강맹한 바람이 담배 연기를 날리고, 그의 앞으로 부채꼴의 공간을 거칠게 휩쓸었다.

앞에 서 있던 류성의 안면근육이 중력을 거부하고 위로 치솟았다가 내려앉았다. 주변에 있던 남자들은 바람을 못 견디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악!”

“헉!”

“컥!”

이현이 손을 휘휘 저었다.

“담배 연기가 묻으면 얼마나 오래 가는데…….”

빈이에게 담배 연기가 옮으면 어쩌려고…….

류성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이 새끼가, 다짜고짜 스킬을……!”

“응? 스킬?”

뭐 이런 뻔뻔한 놈이!

고개를 갸웃하는 이현의 모습에 류성은 열불이 터졌다.

하지만 잘됐다. 이제부터는 정당방위! 류성이 다섯 손가락에 힘을 주고 이현을 할퀴었다.

[전사의 붉은 손]

―마력을 두른 손톱으로 상대방을 공격합니다. 손톱에 할퀸 대상의 마력과 체력을 일시적으로 빼앗으며 ‘출혈’ 상태이상에 빠트립니다.

―설명 : 맨손으로 천 명의 목숨을 앗은 한 전사의 손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춘모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래, 형님은 A급 헌터! 이놈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당할 분이 아니다!

붉은 마력에 감싸인 커다란 손이 이현을 땅과 함께 뜯어버릴 기세로 덮쳤다.

그 손을, 이현이 깍지를 끼듯 덥석 잡고 뒤로 꺾었다.

뿌직!

“끄아악!”

류성이 뒤로 꺾인 손목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 압착기가 아닌가 싶은 무지막지한 악력에 얼굴이 추하게 일그러졌다.

“끄르륵! 이, 이 개새끼가아! 이, 이거 안 놔아!”

A급 헌터인 류성이 꼼짝없이 제압된 모습에 그의 동생들이 모두 얼음이 됐다.

이현이 냅다 그의 뺨을 후려쳤다.

“바른 말.”

짜악!

피가 터지며 옥수수 낱알 같은 것이 아스팔트 바닥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고운 말.”

짜악!

두 번의 타격에 류성의 얼굴이 보라색 피부의 외계인처럼 변했다. 초점 없는 눈은 이미 조상님과 랑데뷰 중이었다.

“애 듣는데. 알았어, 몰랐어?”

류성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입에서 핏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이현은 그를 대충 던져놓고 춘모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춘모가 움찔하고 외쳤다.

“죄, 죄송합니다!”

“시끄러.”

이현이 서늘하게 말했다.

“동네 시끄럽게 떠들지 마.”

“네…….”

한숨을 쉰 이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갔다.

“하여간 요즘 어린 것들은… 라떼는 말이야…….”

뭐라 중얼거리며 멀어지는 이현의 등을 남은 세 남자가 오들오들 떨며 바라보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