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30화 (30/150)

30화. 풍운객잔

사당을 한 바퀴 도니 슬슬 점심시간.

시내로 나온 이현과 남우의 눈에 커다란 5층짜리 누각이 들어왔다.

용화루.

“집 보고 먹는 짬뽕은 국룰이지.”

“그렇죠?”

두 남자는 홀린 듯이 용화루에 들어갔다.

“어서 오십셔!”

하얀 모자를 쓴 만두처럼 생긴 직원이 둘을 맞이했다. 앞치마에 쓰인 한자 하며… 무협 만화에서 튀어나온 생김새였다.

이현은 내심 놀랐다.

‘여기는 알바를 비주얼로 뽑나?’

“두 분이십니까?”

“네.”

“1층으로 모시겠습니다. 여기 두 분!”

1층, 2층, 3층이 전부 가운데가 뻥 뚫려 올려다보면 위가 훤히 보였다.

안내된 식탁은 커다란 원형이었다.

“사당… 꽤 괜찮네.”

공원과 놀이터가 많은 점도 좋고, 조금 걸었더니 번화가에 큰 식당이 나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가끔은 이현도 외식을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일산은 상권이 다 죽어서 치킨 배달조차 안 됐다.

남우가 눈을 번쩍 빛냈다.

“그렇죠? 깨끗하고, 치안도 좋고요.”

이웃사촌으로 이현을 둬야 집값을 사수할 수 있다! 남우는 적극적으로 사당을 칭찬했다.

“치안은… 아슬아슬했지.”

GEM 팀이 도착한 것이 게이트가 발생하고 약 5분 42초…….

솔직히 이현의 기준에는 미달이었다.

하지만 아예 사람이 올 생각을 안 하던 일산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 정도가 지구의 최선일지도 모르니…….

“손님, 뭐 드릴까요?”

“짬뽕이랑 탕수육.”

“그럼 짬뽕 둘에 탕수육 세트 있는데, 그렇게 드릴까요?”

“예.”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이현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위층에서 차가운 인상의 여자가 그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뭐야?”

남우가 덩달아 올려다보자 여자가 눈을 떼고 안으로 사라졌다.

‘아니… 내 얼굴은 보기도 싫었나?’

남우는 심란해졌다.

한편, 이현과 눈이 마주쳤던 여인은 자신의 행동이 한 남자에게 미친 영향 따위 관심 없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꽤 놀란 상태였다.

‘이현… 저자가 이곳에 오다니?’

그녀의 이름은 서희…….

삼합회의 열두 간부 중 하나이자, 이현을 암살하러 온 살수!

“이봐, 표정이 왜 그래?”

식탁으로 돌아오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마인이 물었다.

서희가 치파오를 훽 젖히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하얗게 드러난 육감적인 허벅지로 주변 사내들의 시선이 향했다가, 차가운 시선에 닿고 흠칫 떨어졌다.

차를 들이켠 서희가 말했다.

“이현이다.”

“이현이 뭐?”

“이현이 1층에 있다.”

유들유들하던 마인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상대는 블라디미르를 죽인 S급! 흔한 우연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놈은 눈치챘나?”

“우리를 알아보는 눈치는 아니었다. 우연이 아닐까?”

마인이 염소처럼 난 수염을 배배 꼬았다.

“그럴 리가 있겠냐.”

그들은 어젯밤 한국에 도착했다.

이곳 용화루는 그들이 자주 들르는 단골집.

딱히 숨긴 적이 없기에, 이곳 점원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터였다.

용화루 또한 삼합회의 비호를 받고 있기에 모를 수가 없다.

정보를 얻기란 어렵지 않았다.

“이번 암살이 새어나갔다고?”

“간부 중에 배신자가 있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

삼합회는 하나의 조직이지만… 결코 단단하지는 않았다.

세를 불리는 과정에서 마구잡이로 이런저런 조직을 흡수했고, 그 와중에 반발심을 품은 자도 적지 않다.

애당초 대의명분 따위 없는 순수한 이익 집단!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악의와 욕망, 공포뿐…….

당장 마인조차 더 크고, 강한 조직이 더 많은 돈을 내놓는다면 기꺼이 자리를 옮길 것이다.

“선수를 칠까?”

선수필승!

설령 더 강한 자일지라도… 일단 한 방 맞고 밸런스가 무너진 채로 싸움을 시작하면 수세를 뒤엎기란 쉽지 않다.

“너나 나나 암살에 특화된 스킬을 갖고 있으니… 애초에 산주께서도 그걸 고려해 보내신 것 아니겠어?”

“선수를 잡을 수 있을까?”

서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놈은 우리가 이곳에 오는 거 알고 있었다. 어디선가 불스아이 병장이 우리를 노리고 있을지 모르지. 놈은 원거리 저격이 특기야.”

보통 총에는 마력을 실을 수 없지만… 불스아이 병장은 특별한 스킬을 지녀 그것이 가능하다.

현대 무기의 화력에 마력을 심어 운용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는 경계 대상이었다.

“우리가 지금 노려지고 있다고?”

“가능성은 있다.”

두 간부의 눈이 빠르게 용화루의 출입구와 창문을 살폈다.

저격이 가능한 포인트와 탈출로를 확인한 그들이 서로를 마주 봤다.

“마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노렸다면 이현이 들어온 시점에서 쐈겠지.”

“그럼 이현은 불스아이 병장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역시 선수를 쳐야겠군.”

마인이 카드를 꺼냈다.

“내가 할까?”

“아니, 내가 하지.”

그녀의 손이 식탁을 내려쳤다.

타악!

손이 식탁과 닿은 순간, 새하얀 냉기가 식탁을 얼리고 바닥으로 내려가 복도로 달렸다.

마침 복도를 지나던 사람이 얼음을 밟고 쭉 미끄러져 앞사람과 부딪쳤다.

“뜨악!”

“컥!”

엉켜 버둥거리던 두 남자가 아래층으로 추락했다.

쾅!

별안간 떨어진 두 남자가 옆 테이블을 박살 내는 모습을 보고 이현이 흠칫 놀랐다.

무림이라는 차원에서 객잔을 들르면 종종 생기던 일이 발생하니… 매우 당황스러웠다.

“아니… 내가 차원이동을 했나?”

남우가 벌떡 일어났다.

“이런! 구급차를 부르죠!”

“아냐, 기다려봐. 이제 좀 있으면 칼 든 놈들이 위에서 내려와서 싸울 거야.”

객잔에서는 흔히 있는 일…….

무림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고 이현이 진지하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봤다.

남우가 어처구니가 없어 그를 쳐다봤다.

“형님, 무협지를 너무 많이 보신 것 아니에요?”

그때, 새하얀 얼음 화살이 남우의 목을 노렸다!

쐐액!

이현이 벌떡 일어나 얼음을 쳐냈다.

콰직!

“끼효옷!”

남우가 놀랄 틈도 없이 기묘한 소리를 내며 양손에 검을 쥔 마인이 2층에서 뛰어내렸다.

화르륵!

검에서 별안간 불이 솟구쳤다. 그가 검을 마구 휘두르자 화염이 현란하게 눈을 어지럽혔다.

이현이 턱으로 그를 가리켰다.

“거봐, 온댔지.”

“아… 아니.”

어처구니가 없어 쳐다보는 남우의 뒷덜미를 이현이 홱 끌어당겼다. 마인의 불검이 남우의 목이 있던 자리를 스쳤다.

마인이 킬킬 웃었다.

“이거 이거… 떨거지부터 제거하려고 했는데, 역시 제법이군!”

그의 옆에 서희가 고아한 자세로 뛰어내렸다. 가지런히 내린 두 손은 기묘한 한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역시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이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싸움 구경을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이놈들의 목적은 자신 같았다.

“뭐냐, 너희들은?”

서희와 마인이 눈빛을 교환했다.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 틀림없다. 어쩌면 불스아이 병장이 바로 근처에 와 있을 수도 있다.

서희는 문답무용으로 손을 뻗었다.

“빙백신장!”

그녀의 손에 복잡한 마법진이 얽히더니 화살 모양의 얼음이 연달아 발사됐다.

이현이 홱 몸을 젖히자 얼음 화살이 벽에 박히며 폭발했다.

분명 작은 화살인데 단숨에 벽 한 면을 얼리며 오싹한 한기를 뿜어냈다!

마법을 쓰는 헌터들을 몇 번 본 남우는 그 기술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봤다.

비록 그녀가 외친 스킬 명이나 파괴력은 다르지만 분명…….

[아이스 애로우]

―얼음의 화살을 발사한다. 지능 스테이터스에 비례한 데미지를 준다.

―설명 : 눈싸움할 때 꽤 유리하다.

남우는 어이가 없어 외쳤다.

“빙백신장, 아니네!”

서희가 움찔 멈추더니 그에게 살기를 쏘아 보냈다. 무척 미인이었지만 그렇게 쏘아보니 마녀 같은 분위기가 무시무시했다.

어쨌든 그녀는 삼합회의 간부! 그 힘은 남우에게 빗댈 것이 아니었다.

“제법 눈썰미가 좋은 녀석이군.”

“아니, 그거 흔한 기술…….”

“너부터 죽어랏! 빙백신장!”

그 순간, 이현이 자신을 노리고 휘둘러진 화염이 둘려진 칼을 걷어찼다.

“헉!”

마인의 칼이 팽글 돌다가 서희의 손을 쳤다.

퍼엉!

“꺅!”

“으억!”

한기와 열기가 한데 만나 폭발했다.

마력이 뒤섞인 폭풍 같은 수증기의 방출!

남우는 급히 양팔로 앞을 가렸지만, 몸이 나뒹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크윽!”

서희는 베이고 데인 손을 덜덜 떨며 기둥을 짚었다. 기둥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크윽, 내 빙공이…….”

[아이스 터치]

―일정 시간 동안 손을 강화해 물리 내성을 60%, 냉기 내성을 70% 상승시킵니다. 손에서 냉기를 방출해 닿은 대상에게 냉기 데미지를 입힙니다.

설명 : LET IT GO~

그때 수증기를 뚫고 이현의 주먹이 서희를 향해 날아들었다!

서희는 급히 양팔로 몸을 가렸다. 다시 푸른색의 화려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호신빙벽!”

[글래시어 실드]

―얼음으로 된 방패를 소환합니다. 방패는 물리 공격에 강한 내성을 지닙니다. 공격자에게 지능 스테이터스에 비례한 냉기 데미지를 입힙니다.

설명 : 오래 묵은 얼음이라고 딱히 더 단단하지는 않습니다.

카직!

얼음 방패가 단숨에 깨지며 이현의 주먹이 서희의 양팔을 직격했다!

양팔의 뼈가 가슴 안쪽으로 으스러지며 충격이 심장까지 강타했다.

우드득!

“커헉!”

왈칵 피를 토한 그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이현의 목을 칼이 노리고 날아들었다.

“끼요홋!”

이현은 화염이 일렁이는 칼을 손등으로 후려쳤다. 그러자 칼이 별안간 카드 더미로 변해 흩어졌다.

파락파락!

흩날린 카드들이 순식간에 마인으로 변했다.

하나… 둘…….

원을 그리며 이현을 포위한 마인이 모두 열 명!

그들이 껄껄 웃으며 각자 양손에 칼을 꺼내 들었다.

“마술쇼는 좋아하나?”

열 명의 마인이 망토를 휘둘렀다. 트럼프 카드가 날아오르더니, 펑펑 터지며 칼로 변했다.

허공에서 칼이 저절로 방향을 꺾어 이현을 노렸다.

[댄싱 소드]

―지정한 무기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무기의 수는 지능에, 속도는 민첩에 비례합니다.

―설명 : 에고소드가 이 스킬로 사람을 조종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전후좌우는 물론 위까지!

불타는 칼이 완벽히 포위하고 날아들었다.

마인이 만들어낸 환상의 정교함은 감각에까지 영향을 미쳐 열기와 바람 소리까지 구현했다.

그러나… 칼이 방향을 꺾고 추진력을 얻은 순간, 이현의 수도가 마인의 목을 갈랐다.

서걱!

이현의 죽음을 확신하고 웃음을 띤 마인의 얼굴이 그대로 하늘을 날아… 식탁에 툭 떨어졌다.

‘어?’

마인의 눈에 허공을 떠돌다 추락하는 자신의 검들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왜 내가…….’

그의 의식이 까맣게 추락했다.

수증기가 걷혔다.

주저앉아 있던 남우의 눈에 쓰러진 서희와… 목을 잃은 몸이 털썩 무릎을 꿇는 광경이 들어왔다.

이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객잔이 꼭 이렇더라니까.”

“그…런가요?”

다짜고짜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 이현의 이론이 매우 그럴듯하게 다가왔다.

객잔… 객잔은 무서운 곳이구나.

‘근데… 보통 이런 곳을 객잔이라 하나? 무협지처럼?’

“글렀으니까 다른 데 가서 밥 먹자. 배고프다.”

“예에… 아, 가기 전에 구급차 부르죠!”

“어, 그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