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푸른 꿈
환락의 도시 마카오!
그 화려한 야경에 취한 사람들은 종종 간과하지만….
마카오의 주인은 그들이 거리에서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삼합회!
단순히 일정 지분을 소유했다는 정도가 아니다.
실질적인 실권 자체가 삼합회에 있는 것이다.
옛날부터 카지노나 유흥업소는 마피아들의 관리하에 운영되어왔다.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
거대한 음지의 세력이 지배하에 둠으로써, 감히 그 영업장에서 진상을 부리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게이트 폭발 이후 음지의 힘이 더욱 강해지며, 마카오는 완전히 실권을 삼합회에 내어주게 됐다.
현 시장조차 삼합회의 간부와 정기적인 미팅을 갖는 사이!
이제는 거리의 한복판에서 살인이 벌어져도 경찰이 출동하지 않는 지경이었다.
“꺄아악!”
비명이 퍼지며 사람들이 우르르 물러났다.
수십 장의 트럼프 카드가 하늘을 날았다.
한 남자가 시체 위에 앉아 있었다. 체셔햇을 쓰고 안감이 화려한 붉은 코트를 입어 마술사 같은 차림.
남자가 시체의 손목을 툭툭 쳤다.
“그러니까 내가 사기 치지 말고 정당하게 하자고 했잖아.”
곧장 검은 양복을 입은 삼합회 조직원들이 달려왔다.
그러나 험악하던 그들의 표정은 남자의 얼굴을 보고 꼬리 만 개로 바뀌었다.
“헉! 마인 님!”
“마인 님을 뵙습니다!”
삼합회의 열두 간부 중 한 명인 마인!
이곳 마카오에서 간부인 그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마인이 일어나 시체를 뒤꿈치로 툭 쳤다.
“어, 이거 치워라.”
그때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가 그를 질책했다.
“오자마자 살인인가.”
용이 그려진 새카만 치파오가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날씬한 몸매가 아름답지만, 눈매는 벼린 듯 차가웠다.
“…서희! 영화 찍는 거 아니었나?”
“산주(山主)께서 너와 내게 일을 맡겼다.”
서희가 마인을 스쳐 지나갔다. 마인은 한량 같은 걸음으로 서희의 옆에 붙었다.
“그래? 잠깐! 맞춰 보지… 노스트라 조직 보스가 목표지?”
서희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이현의 사진이 떠 있었다.
“이자를 죽이라고 하신다.”
“사람 한 놈 잡는데, 간부가 둘이나 간다고?”
“그가 블라디미르를 죽였다.”
건들거리던 마인의 태도가 진지해졌다.
“그 뱀파이어를?”
그렇다면 간부가 둘이나 가야 하는 이유로는 충분했다.
“그래, 그리고… 최근 골칫거리인 S급 헌터 불스아이 병장과 결탁해 하부 조직을 습격하고 있다더군.”
마인의 손가락이 사진을 넘겼다. 모두 CCTV를 조작해 찍은 저화질 사진이었다.
핸드폰 대리점에서 조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를 꿇어 앉힌 이현…….
불스아이 병장으로 추정되는 남자와 유모차를 끄는 이현…….
마인이 카드를 손에서 돌리며 여유롭게 웃었다.
“간만에 몸 좀 풀겠네.”
서희가 걸음을 멈췄다. 도로에 링컨 컨티넨탈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조직원이 뒷문을 열었다.
“바쁘니 바로 한국에 가지.”
“지금? 나 산둥에서 방금 비행기 타고 마카오 왔는데, 지금?”
서희가 말없이 리무진에 탔다.
“타기 싫으면 혼자 가겠다.”
“아! 알았다, 알았어! 하…….”
빛이 반짝이는 야경에서 리무진이 서서히 멀어졌다.
* * *
남우는 초인종을 꾹 눌렀다.
딩동.
스르륵 문이 열리며, 그늘진 이현의 얼굴이 나타났다.
“중요한 용건이 아닐 경우, 빈이의 낮잠을 깨운 죄로 극형에 처하겠다.”
남우는 말없이 손에 든 물건을 내밀었다.
한우 선물 세트 3.8kg!
이현의 눈에 광채가 피어났다.
“오랜만이다, 남우야. 몸은 괜찮니?”
갑자기 상냥해진 말투가 징그러웠지만 이미 이현에게 익숙해진 남우는 담담히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이제 게이트에 들어가도 될 것 같아요.”
“오, 사나이.”
그때 빈이가 이현의 다리 사이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아뺘.”
이현이 헤실헤실 웃으며 빈이를 안아 들었다. 남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래 이 나이 때 아이들이 쑥쑥 크지만… 오랜만에 보니까 정말 많이 컸다.
이목구비도 더 선명해졌고… 머리도 많이 길었다. 날갯죽지에는 비늘이 덮이기 시작했다.
“응, 빈아. 남우 오빠 알아보겠어? 남우. 남우, 해 봐, 남우.”
빤히 보던 빈이가 말했다.
“냐, 무.”
남우는 깜짝 놀랐다. 발육 상태로 봐서는 대충 8~9개월 아기인데 벌써 말을 따라 하다니!
이맘때 희수는 간신히 엄마, 아빠를 따라 했다.
놀란 남우의 얼굴에 이현이 흡족하게 웃었다.
“벌써 할아버지랑 아빠도 말할 줄 안다. 자기가 원하는 거 가리키면서 달라고 할 줄도 알고.”
“우와… 아니, 형님. 진짜 대단한데요?”
매번 하는 자랑이 팔불출 아빠의 흔한 착각인 줄 알았는데…….
빈이는 진짜로 천재일지도 모르겠다.
“크크큭.”
거실에 앉은 이현이 남우를 바라봤다.
뭔가를 강렬하게 원하는 눈빛!
남우가 어리둥절해 쳐다보자 이현이 흘끔 빈이를 보았다가 다시 그를 보았다.
“아.”
그의 뜻을 눈치챈 남우가 가부좌를 틀었다. 이현이 냉큼 빈이를 안아 그의 허벅지에 앉혔다.
“빈아~ 오빠랑 둥실둥실하자~”
거실을 천천히 돌던 남우는 문득 불길한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 이거… AS 받은 기계 테스트 느낌인데……?’
아냐, 착각일 것이다. 형님의 저 흡족한 웃음은 그냥 빈이가 귀여워서겠지!
“꺄하하!”
전보다 감정 표현이 풍부해져 맑게 웃는 빈이의 모습은 남우가 보기에도 무척 귀여웠다.
이현이 빙그레 웃었다.
‘나았다니 앞으로 자주 불러야지.’
둥실둥실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한우 세트 사줘도 괜찮냐? 너 형편도 넉넉하지 않잖아.”
못해도 수십만 원일 텐데…….
남우가 상쾌한 얼굴로 웃었다.
“희수 구해주셨잖아요. 이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죠.”
“이 정도까지 안 해도 된다.”
딱히 보상을 바라고 한 일도 아닐뿐더러…….
어려운 남우의 형편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감사하다는 말만으로도 족했다.
“괜찮습니다. 형님께만 말씀드리는 건데… 이번에 S급 게이트 공략 보수로 3억을 받았거든요.”
“3억?!”
지금까지 이현은 C, B급 게이트만 줄기차게 공략했다.
그래서 쌓인 돈이 현재 7억…….
그런데 S급 게이트 한 번에 3억이라니……!
심지어 공략한 것도 아니고 참여만 했는데!
“네. 그간 모은 돈이랑 합해서, 사당 쪽에 아파트 하나 구하려고 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덕인지 남우의 얼굴에서는 한창 빛이 나 보였다.
“사당? 그쪽 비쌀 텐데?”
“형님도 아시다시피 헌터들은 정부에서 집값이랑 관리비의 50%를 지원해주잖아요. 20평에 4억 5천인데, 어찌어찌 구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응?”
난생처음 듣는 소식에 이현이 그를 멀뚱히 보았다.
“지원을… 해줘?”
“…모르셨어요? 그, 헌터 되셨을 때 뭐 이런저런 안내 못 받으셨나요? 안내서 같은 것도 줬을 텐데.”
이현은 식탁을 바라봤다. 마침 오늘 점심에 라면받침으로 썼는데…….
가져와 펼쳐보니, 정말로 남우가 말한 내용이 나왔다.
[부동산 혜택]
―B급 헌터 최대 60%.
―A급 헌터 최대 70%.
―S급 헌터 최대 90%
“왜 이렇게까지 해줘?”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나.
특정 지역만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하다.
이현의 물음에 남우가 대답했다.
“헌터들이 거주하는 것만으로 치안에 도움이 되니까요. 근처에 게이트가 열리면 헌터들이 곧장 가잖아요.”
“그렇군.”
헌터들이 많이 살수록 그 지역은 자연히 안전해진다.
이현도 근처에 게이트가 생기면 협회에 보고고 뭐고 우선적으로 제거했다.
덕분에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보상보다는 당연히 가족이 우선이다.
여유를 부리며 제 안전만 챙기는 다른 헌터들도 가족이 걸린 문제라면 발 벗고 나설 터.
꽤나 합리적인 정책이었다.
“어? 그럼… 나도 이사 갈 수 있겠는데.”
“그래요? 형님 많이 모으셨어요?”
“응, 10억 정도?”
이현이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에 남우는 입이 떡 벌어졌다.
게이트에서 나온 지 이제 세 달 남짓 되지 않았나?
그런데 벌써 7억이라니?
이쯤 되면 마당을 팠더니 금괴가 나오더라는 말을 해도 납득이 갈 수준이다.
“형님 혹시… 한 달에 게이트 몇 개나 공략하셨어요?”
“스무 개 정도?”
뜨악.
남우는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그 돈도 납득이 간다.
B급쯤 되면 A급 딜러에 B~C급 여럿이 달라붙어 공략하는 것이 보통.
그리고 공략 후에는 부상이나 다른 여러 이유로 최소 나흘은 휴식기를 갖는다.
보통 B급 게이트의 보상이 4,000~5,000만 원이라… 기여도를 따지면 B급 헌터의 벌이는 평범하게 생각하면 월 2~3,000 수준이다.
하지만 이현은 쉬지도 않고, 공략도 혼자 한다. 공략금을 거의 혼자 받는 것이다.
1,200만원 어치 유모차를 턱 지를 때는 객기인가 싶었는데…….
“형님, 왜 S급으로 안 올라가십니까?”
S급쯤 되면 각국의 거대 길드에서 거액을 주고 모셔가려는 것은 물론…….
방송사에서도 섭외하고, 관련 상품도 만들어지면서 돈을 쓸어 담는다.
지금처럼 열심히 B급 게이트 따위를 공략할 것도 없다.
“귀찮아.”
이현은 발등을 발로 벅벅 긁었다.
“아뺘.”
빈이가 엉금엉금 기어와 이현의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이현이 헤벌쭉 웃으며 빈이를 안았다.
“그래, 우리 딸 왔어.”
“아뺘.”
빈이가 남우를 가리켰다.
“냐…무!”
“허어어! 우리 딸 기억력도 좋아~”
오구오구. 이현이 열심히 빈이를 둥기둥기 했다.
남우는 그 모습을 보며 납득했다.
‘형님은 돈보다 딸이 소중하신 거지.’
빈이의 용품만은 돈을 들여서라도 최고급으로 맞춰 놓은 집안의 풍경이, 이현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였다.
‘…근데 저것들… 아티팩트잖아?’
빈이의 아기방에 굴러다니는 몇몇 물건들이 마력을 뿜고 있었다.
특히 검은 공에서는 B급 정도 되는 강력한 마력이 느껴졌다.
‘설마 아티팩트를 아기 장난감으로 쓰시나?’
아무리 이현이 돈이 궁하지 않아도 하나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물건을 설마 아기 장난감으로 쓸까……?
그때, 한참 빈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던 이현이 말했다.
“말 나온 김에 갈까.”
“예? 어디를요?”
“아파트 알아보러. 사당이랬지?”
“형님도 사당에 사시게요?”
“이웃사촌 있으면 좋잖아. 왜, 싫냐?”
“아뇨!”
이현이 이웃사촌이면 어지간한 S급과 함께 사는 것보다 훨씬 든든하다.
게다가 이현은 빈이가 우선이니, 다른 S급들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도 않고 지금처럼 근처의 게이트만 공략할 터.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도시로 뽑힐지도……?’
일단 어머니와 희수도 안전할 테고…….
자연히 땅값도 장기적으로 우상향이…….
“너 왜 침을 흘리냐?”
“예? 츄릅, 오햅니다, 형님. 그럼 얼른 가실까요?”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