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27화 (27/150)

27화. 어떤 지옥

“하여간 한국 새끼들은 너무 착한 척을 한다니까?”

가리봉동의 어느 공장.

곱등이 우는 소리만 들리는 공장의 입구를 두 남자가 지키고 서 있었다.

땅에 떨어진 담배를 구둣발이 짓밟았다.

떡진 머리를 한데 묶은 남자였다.

“내가 그년 손가락 하나로 봐주겠다니까, 너무 심한 거 아니냐는 거야. 썅것들…….”

“거 그년이랑 이거, 이거 하고 싶던 거지.”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짝짝 박수를 쳤다. 킥킥 웃음이 번졌다.

그때… 어울리지 않게 음울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흔들거리며 걷는 그림자가 정면에서 가까워졌다.

달을 뒤로 하고 걷고 있어 얼굴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뭐야?”

담배를 밟았던 남자가 커다란 장도를 허리춤에서 꺼내 들고 나섰다.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아이~ 개새! 너 뭐야!”

그림자가 흔들렸다.

쐐액!

바람을 가르고 날아든 뭔가가 남자의 머리를 꿰뚫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인계철선이었다.

비명조차 못 지르고 남자가 뒤로 쓰러졌다.

“뭐… 뭐야!”

다른 남자가 무기를 꺼내 들기도 전에 그의 이마에도 인계철선이 박혔다.

먼저 쓰러진 동료와 정확히 같은 자리였다.

―가슴 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군용 판초우의를 쓴 남자가 흔들거리며 다가왔다.

판초우의 아래 드러난 것은 하회탈에 가려진 얼굴.

미소 띤 가면이 공장의 입구를 지그시 바라봤다.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공장에 들어갔다.

잠시 후, 공장 안에서 격렬한 총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시발! 저 새끼 뭐야!”

“죽엿!”

두두두두!

콩 볶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복도에서 불이 번뜩였다.

허름한 폐허를 가로지르는 것은 AK―47이 쏟아내는 수십 발의 7.62mm 탄환!

인간을 육편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닌 탄환이 쏟아지는 복도를, 판초우의를 입은 남자가 내달렸다.

쉬익!

별안간 남자의 몸 주위에서 흡사 위성의 고리 같은 불꽃의 선이 나타났다.

[쥐불놀이]

―불꽃의 결계. 투사체 및 화염 속성 마법에 대한 내성을 30% 상승시키며, 일정 확률로 완전히 무효화합니다. 효과 반경에 지능 스테이터스에 비례한 화염 속성 데미지를 입힙니다.

―설명 : 과거 마음에 안 드는 놈의 밭에 불을 지르는 용도였다고 합니다.

빙빙 도는 불꽃의 선에 닿은 총알이 그대로 증발해 재가 됐다!

순식간에 총을 든 두 남자의 앞에 도착한 판초우의가 다시 펄럭였다.

불꽃이 사라지며 날카로운 은색의 선이 빛났다.

쉬리릭!

“엇?”

“앗 뜨거!”

AK―47이 깔끔하게 절단되며, 동시에 총을 들고 있던 남자들의 몸도 수십 조각이 되어 떨어졌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인계철선이 판초우의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고개를 들어 복도 구석을 보았다. 구석에 매달린 CCTV가 조용히 그를 담고 있었다.

남자가 아무 말 없이 다시 걸었다.

CCTV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운록은 심장이 서늘해졌다.

“저… 저거 뭐야? 헌터?”

CCTV를 조작하던 조직원이 덜덜 떨며 말했다.

“그놈입니다! 불스아이 병장! 한국 S급 헌터 중 제일 싸이코라는 새끼입니다! 완전 악마 같은 새끼라고 소문 파다합니다!”

“이런 시팔! 근데 그 새끼가 우릴, 삼합회를 왜 노려?!”

조직원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 저거 때문 같습니다…….”

그들의 뒤에 있는 것은 다섯 개의 우리. 쇠창살로 된 내부에는 오크… 엘프… 각기 다른 아인들이 벌벌 떨고 있었다.

“막아! 다 나가서 저 새끼 조져! 못 오게 막아야 한다!”

십여 명의 조직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망설였다.

그들은 모두 C급 헌터 이상의 힘을 지녔다.

하지만… 상대는 S급!

운록이 책상을 내려쳤다.

“이런 등신 새끼들이! 안 막으면 어차피 우리 윗선한테 다 뒤져! 그래봤자 한 놈이야!”

결국 눈치를 보던 조직원들이 각자 무기를 챙겨 나갔다.

그런데 우르르 나가던 그들의 발밑으로 뭔가가 데구르르 굴러왔다.

“응?”

퍼엉!

폭음과 함께 뿌연 연기가 퍼졌다.

삽시간에 일어난 혼란 속을, 미끄러지듯 판초우의가 파고들었다.

쉬리릭!

탈춤을 추듯 장갑을 낀 양손이 사방을 그었다.

장갑 아래에서 뻗어나간 인계철선이 무정하게 공간과 함께 살점을 갈랐다.

“억?!”

“읏?”

짧은 비명 후, 화끈한 통증을 마지막으로 느끼며 거의 동시에 조직원들의 몸이 큐브 같은 고깃조각으로 흩어졌다.

촤아아!

뿜어지는 피를 맞으며 불스아이 병장이 뚜벅뚜벅 걸었다.

“이 개새끼야!”

갑자기 나타난 운록이 창으로 그의 배를 찔렀다.

휘릭!

판초우의가 크게 펄럭이며 창을 피했다. 군화가 운록의 턱을 강타해 벽으로 날려 보냈다.

퍽!

“크억!”

운록의 등이 벽에 닿고 튕겨진 순간, 네 가닥의 인계철선이 그의 사지를 꿰뚫었다.

파파파팍!

“끄아악!”

벽에 고정된 그를 보고 하회탈이 살며시 기울었다.

뚜벅뚜벅.

다가오는 그를 운록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응시했다.

“너… 너 이 새끼, 이거, 삼합회 전부를 적으로 돌린 거다… 알아?!”

“괴물은 전부 죽인다.”

서걱!

군용대검이 운록의 목을 갈랐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며 천장을 적셨다.

불스아이 병장이 몸을 돌려, 우리를 바라봤다. 책상에 있던 권총을 주워든 그가 약실을 확인했다.

총구가 천천히 우리로 향했다.

하회탈 아래에서 음울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타앙!

머리를 꿰뚫린 오크가 쓰러졌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타앙! 타앙!

고블린 두 마리가 쓰러졌다.

총구가 마지막 두 엘프를 향했다.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움찔 멈췄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 엘프가 아들로 보이는 작은 엘프를 안고 벌벌 떨고 있었다.

어떻게든 총구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고 했지만, 워낙 가냘픈 몸이라 다 가릴 수가 없었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하회탈 속에서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크… 윽.”

그의 손에서 총이 떨어졌다.

타앙!

충격으로 발사된 총알이 창살에 맞고 비껴 나갔다. 엘프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꺄악!”

“으… 으으으…….”

불스아이 병장이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비틀 물러났다.

잠시, 머리를 쥐고 엘프들을 노려보던 그가 냅다 대검을 휘둘렀다.

엘프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카앙!

감옥의 잠금장치가 불꽃을 튀기며 갈라졌다.

엘프들이 눈을 떴을 때, 방에 살아 있는 사람은 그들 외에 아무도 없었다.

* * *

[…이번 총격 사건은 삼합회와 알려지지 않은 조직 간의 항쟁, 원한에 의한 범죄로 보입니다. 경찰은 또한 빠른 시일 내에 헌터 협회와의 공조를 통해 사건을 해결할 것임을 언급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공원을 걷던 이현은 큐튜브 뉴스를 보며 혀를 찼다.

“서울이라고 다 안전하지는 않군.”

하긴, 어느 차원도 완벽히 안전하지는 않았다.

내부적으로 평화를 이룬 차원도 외부의 개입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있었고, 전염병이나 각종 재해로 인해 하루아침에 주민들이 몰살당하는 불행도 종종 봤다.

“삼합회라…….”

어디서 들은 이름인데.

이현은 잠시 미간에 정신을 집중해보았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뭐 조폭 같은 거겠지. 지나가다 뉴스에서 들은 게 뻔하다.

그때 이현의 눈에 공원 한구석에 앉아 비둘기에 먹이를 주는 남자가 보였다.

판초우의를 두른 모습이 탈영한 군인같다. 벤치에는 큼지막한 대물 저격총까지 기대놨다.

‘아니… 애들도 다니는 곳에 저런 위험한걸!’

교육에 좋지 않다!

맘카페 회원으로서 두고 볼 수 없는 광경!

이현은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남자가 그를 쳐다봤다. 퀭한 눈. 듬성듬성 깎은 수염.

‘진짜 탈영병인가?’

남자가 물었다.

“누구시죠?”

의외로 젊고 맑은 목소리였다. 생긴 것과 달리 순박한 시골 청년 느낌의 목소리다.

이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거기… 나 이 근처 사는 애아빤데… 그런 무기를 밖에 꺼내놓고 그럼 어떡해? 애들이 만지면 위험하잖아.”

“예? 아… 죄송합니다.”

남자가 주섬주섬 천을 꺼내더니 총을 감쌌다.

그의 시선이 유모차를 향했다.

“이 동네는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애랑 산책해도 괜찮냐. 그런 눈빛이었다. 이현은 끄덕였다.

“아, 그건 괜찮아.”

이현이 다시 유모차를 몰았다. 남자가 재빨리 옆에 따라붙었다.

“위험합니다.”

“괜찮다니까.”

“전 헌터입니다. 제가 자택까지 호위해드리죠.”

이현히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나도 헌턴데.”

“전 S급입니다.”

“…등급이 뭐가 중요하겠어.”

남자가 총을 메고 따라왔다.

따라오는 거야 지 자유다.

이현은 무시하고 걷기로 했다.

“세상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많습니다. 아이를 위해선 좀 더 조심하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존나 세서 괜찮아.”

“…저도 강하지만 지키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자조적인 어조였다.

“아무리 강해도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고요.”

그런가?

이현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브리엘… 메피스토… 이런저런 이름들이 떠올랐다.

“있는데.”

“예?”

“아냐, 아무것도.”

다시 생각해보니 되살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놈들은 ‘승천’이라고 했다.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 엄밀히 말해 부활과는 다르겠지.

그나저나 이 말투나 분위기, 과거 들어본 적이 있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나?’

멸망한 세계를 거닐던 스켈레톤 아낙톤의 분위기가 지금의 그와 비슷했다.

꽤 큰 고통을 안고 있겠지.

하지만 힘낼 수 없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해봐야 기분만 나빠질 뿐이다.

이현은 그냥 묵묵히 걸었다.

별로 먼 거리도 아니었기에 금방 집에 도착했다.

깨진 담. 우그러진 철문. 듬성듬성 잡초가 난 집을 들어가는 이현을 보고 남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런 곳에 사십니까?”

“응.”

“이럴 수가…….”

얼마나 찢어지게 가난하면 이렇게 위험한 동네에서 무너질 것 같은 폐가를 마이홈이라고 부르며 산단 말인가…….

그때 문을 열고 일성이 나왔다.

국의 간을 보다가 사레가 들린 상태.

“쿨럭쿨럭! 현… 쿨럭! 왔… 쿨럭쿨럭!”

얼굴을 가로지른 세 갈래의 흉터와 쿨럭거리는 소리…….

게이트 폭발로 상처 입고 병든 노부를 모시며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헌터가 틀림없다…….

남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잘 가.”

무덤덤한 이현의 태도조차, 가난을 숨기려는 필사적인 몸짓으로 여겨졌다.

남자는 그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잠깐!”

“응?”

남자가 뭘 주섬주섬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불스아이 아동재단]

이사 : 진명우

“시간 나시면 한번 들르세요. 이 명함을 보여주시면 이런저런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남자가 코를 훌쩍이며 멀어졌다. 이현은 명함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신종 다단계인가……?”

그 모습을, 상공에서 드론 하나가 지켜보고 있었다.

드론에 달린 카메라는 실시간으로 어떤 장소에 영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팔짱을 끼고 영상을 보던 삼합회의 조직원, 량웨이가 눈을 빛냈다.

“이건… 일이 어려워지겠군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