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26화 (26/150)

26화. 착하게 살자

“흐에에엥!”

이현은 머리에 묻은 샴푸를 닦지도 못한 상태로 급히 화장실에서 뛰어나왔다.

빈이가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있었다.

허겁지겁 달려간 이현이 안아 들자, 빈이가 그의 품을 꼭 붙잡더니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쁘아…….”

“그래그래, 아빠 여기 있어.”

이현은 빈이를 둥기둥기 하고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혼자서도 잘 놀던 애가 요새 이상하게 아빠를 많이 찾았다.

흘끔 아기방을 본 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분명 들어가기 전 정리했던 방이 죄다 난장판이었다.

조립이 까다로운 ‘공주님 성문 세트’까지 산산조각 났다.

“자, 아빠 머리만 감고 올게…….”

슬며시 내려놓자마자 빈이가 칭얼거렸다.

“흐… 흐에…….”

이현은 얼른 빈이를 번쩍 들었다. 언제 칭얼거렸냐는 듯 빈이가 찰싹 붙었다.

“…별수 없군.”

이현은 한 손으로 빈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열심히 머리를 감았다.

물이 튀어서 셔츠 절반이 젖었지만, 그 정도는 값진 희생이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비비고 있으니, 어느새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빈이가 그새 잠들어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코에서 양쪽 눈썹으로 이어지는 또렷한 T존과 긴 속눈썹이 참 예뻤다.

이대로 계속 감상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기회다!’

이현은 상체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발만 사용해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그야말로 일류 댄서도 울고 갈 현란한 스텝!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코어 근육이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잠든 빈이에게 어떤 흔들림도 전달하지 않는 것!

입술을 오물거리며 잠든 빈이를 이현은 최대한 조심스레 침대에 뉘었다.

‘마지막까지 방심해선 안 된다.’

이현은 살짝만 건드려도 찢어질 만두피처럼, 검지와 엄지만으로 이불을 조심스레 들었다.

꿀꺽.

마침내 이불이 빈이의 어깨를 덮었다.

이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 없이 환호했다.

그때 벌컥 문이 열렸다. 일성이었다.

“현 군!”

“헉!”

빈이가 다시 눈을 반짝 떴다.

“뺘!”

방긋 웃으며 손을 내민다. 거부할 수 없는 귀여움이었다.

“오늘 고등어가 아주 싱싱…….”

일성은 원망 섞인 이현의 눈빛에 움찔했다.

“고등어 싫어요?”

“…아닙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자려다가 깼으니 앞으로 한 시간… 아니, 두 시간만 더 놀아주면 될 거야.

이렇게 된 거 사진이나 찍자.

이현은 빈이의 옆에 누운 후 핸드폰을 들어 각도를 잘 조절했다.

한 달 전 새로 바꾼 핸드폰은 카메라 화질이 무척 좋았다.

즉, 빈이를 더 선명하게 담을 수 있다는 것!

덕분에 요새 사진 찍기에 재미가 들렸다.

빈이가 화면에 뜬 자신을 어리둥절해 쳐다봤다.

지금이다!

찰칵!

부녀의 얼굴이 카메라에 담겼다.

“크크큭…….”

훌륭하군. 이현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빈이의 귀여운 순간을 손에 들고 다니며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니… 역시 지구가 최고다.

그때,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KST 9월 명세서]

“응?”

[납부하실 금액 : 478,500원]

이현은 벌떡 일어났다.

“아니 뭔 요금이……!”

명세서를 자세히 보니 가입한 적도 없는 카드며 TV 약정 같은 것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뭐 실수가 있었나?’

이현은 바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보았다.

―네~ 고객께 최선을 다하는 KST 김미영 팀장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휴대폰 요금이 이상하게 나와서 그런데요.”

―아~ 네~ 고객님께서 휴대폰 요금이 이상하게 나왔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이상하다고 느끼셨을까요?

어린애를 대하듯 명랑하고 친절한 어조에 분노가 약간 가라앉았다.

그래… 실수가 있을 수 있다. 참자…….

“요금이 너무 높게 나왔습니다.”

―네~ 제가 지금 고객님 요금을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성함이랑 핸드폰 번호 뒷자리를 말씀해주시겠어요~?

“이현. XXXX.”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 후 상담사가 말했다.

―네, 고객님. 현재 알뜰 플렉스 2―8 할인 요금제와 TV 인터넷 유선 할인 및 BJ카드사 제휴, 유력제당 결합 블랙 VVIP 요즘제 가입되어 있으신데 맞으신가요?

“아뇨, 전 그런 거 가입한 적 없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현재 요금제에는 가입이 되어 있다고 나오셔서요.

“그런 알뜰 어쩌구부터 전부 해지하고 다른 걸로 가입해 주시죠.”

잠깐 침묵 후 상담사가 대답했다.

―아~ 이 점은 본사에서 해결이 불가능한 부분이라 대리점에 직접 가셔서 확인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으세요~

지금 서울에 있는 대리점까지 가라고?

가라앉던 마음이 다시 불편해졌다.

하지만 478,500원이라는 거금을 그냥 낼 수도 없는 노릇!

나가는 돈 관리를 소홀히 했다가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거지가 된다.

빈이에게 집을 사주려면 아직 벌어야 하는 돈이 한참이다.

이후 고급 교육을 시키려면 또 학비도 무시하지 못할 테고… 시집보낼 때 좋은 집 하나도 챙겨주고 싶은데…….

이현은 벌떡 일어났다.

‘당장 해결해야겠어.’

* * *

핸드폰을 개통했던 대리점의 앞에서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판촉 행사 중이었다.

정장을 입은 직원이 거리를 살피다가 지나가던 여자의 손목을 대뜸 붙잡았다.

“고객님! 할인 행사 중인데 한번 보고 가시죠?”

“예? 아, 아니, 전 핸드폰 있는데…….”

직원은 척 봐도 양아치 같은 인상이었다. 목부터 가슴으로 이어지는 이레즈미가 슬쩍 보였다.

“에이~ 그냥 제가 액정만 교환해드릴게요. 싸게 싸게, 어?”

힘에 질질 끌려가던 여성이 눈빛으로 주위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다들 제 갈 길이 바쁠 뿐.

그때 옆에서 쑥 뻗어온 손이 직원의 손목을 잡았다.

“싫다잖아.”

직원은 홱 남자를 노려봤다.

이현의 붉은 눈이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

“손님 급하면 나랑 얘기하지.”

“예? 아… 예.”

손목을 잡은 힘이 바이스처럼 강했다. 뭔지 모를 위압감에 직원은 여자를 놓았다.

여자가 몽롱한 눈빛으로 이현을 쳐다보았다.

“감사합니다…….”

이현은 그녀와 직원을 둘 다 무시하고 대리점에 쑥 들어갔다.

직원이 재빨리 그를 따라 들어갔다.

“손님,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현은 빠르게 매장을 살폈다. 형광색 셔츠를 입은 직원이 보였다.

전에 핸드폰을 팔았던 남자였다.

이현은 대뜸 그의 앞에 앉았다.

“핸드폰 요금이 너무 비싸게 나와서 그런데, 어떻게 된 겁니까?”

“예?”

다짜고짜 뭐야.

남자, 윤석은 인상을 팍 찡그리고 이현을 아래위로 훑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잘생긴 놈에게 핸드폰을 팔았던 것 같기도 하다.

“손님, 요금이 비싸게 나오셨으면 비싼 요금제를 하신 게 아닐까요?”

“아니, 난 한 적 없습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마찬가지. 황제로 있을 때, 이현도 종종 실수했다.

배수로 길이 단위를 더 낮은 단위로 착각해서 적는다든지… 세금에서 0 하나를 뗀다든지…….

명세서가 비싸게 나왔어도 아직 통장에서 빠져나간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정정할 수 있다.

“고객님, 보세요. 이거 다 고객님 사인이 들어간 요금제잖아요.”

그가 테블릿에 계약서를 띄워 보였다. 각기 다른 계약서에 똑같은 사인이 들어가 있었다.

선 하나 다르지 않은.

사기다. 사인을 복사해서 붙여넣고 멋대로 계약서를 위조한 것이다.

이현은 코웃음을 쳤다.

“맘대로 장난을 쳐놨네. 한 번 봐줄 테니 조용히 돌려놓죠?”

이 정도면 사기당한 입장치고는 매우 온건한 말투였다.

하지만 윤석은 뻔뻔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아니, 장난이라뇨. 지금 저희가 뭐 사기라도 쳤다 이 말입니까?”

“응.”

“하, 참나.”

윤석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다른 직원에게 외쳤다.

“야! 문 닫아봐!”

“네, 형님.”

직원이 문을 잠갔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다. 사기당한 피해자는 아마 수십 명도 넘을 것이다.

그들 중 대다수가 항의하러 왔지만… 그냥 갈 수밖에 없었다.

윤석이 팔을 걷었다. 두꺼운 팔에 이레즈미가 보였다.

윤석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어이, 손님. 우리가 사기 쳤다는 증거라도 있어?”

이현의 눈이 테블릿으로 향했다.

“엄밀히 따지면 그게 증거겠지.”

“아, 그러셔? 별 시발 돈도 없는 그지 새끼가 사람을 사기꾼으로 모네, 빡치게.”

핏대를 세우며 일어난 윤석이 책상을 넘어 이현의 옆에 섰다.

그의 발이 이현이 앉은 의자 다리를 툭, 툭 쳤다.

“너 내가 누군지 아냐? 어?”

이현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일어났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네가 누군데.”

“허, 이 새끼가. 너 뭐 아직도 손님은 왕이라고 왕 취급해줄 줄 아나…….”

이현이 윤석의 어깨를 턱 붙잡았다.

무지막지한 악력이 윤석을 아래로 짓눌렀다.

쿵!

“끄억!”

강제로 땅과 부딪친 무릎에서 시큰한 통증이 올라왔다. 몸이 덜덜 떨렸다.

이현이 차갑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네 왕이다.”

“뭐… 뭐?”

“돌아가서 앉아. 그리고 네가 사기 친 계약서 전부 해제해.”

“이… 이 새끼가!”

윤석은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눈빛을 받은 직원이 폴딩 나이프를 꺼냈다.

“그 손 안 놔!”

팅!

쇳소리가 울리더니 폴딩 나이프의 날이 사라졌다.

마법처럼 이현이 집게손가락으로 부러진 나이프의 날을 잡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직원이 털썩 주저앉았다.

“너…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그걸 왜 자꾸 나한테 물어. 자기소개는 본인이 직접 해라.”

“나 여기 일대 관리하시는 삼합회 조직원 왕찬 님, 아는 동생이야!”

삼합회.

그 이름이 통하지 않는 곳은 없었다. 경찰조차 그 이름을 듣고는 모르는 척 돌아갔다.

그러나 이현은 달랐다. 그의 눈이 무시무시하게 빛났다.

“난 일산 맘카페 회원이다. 애 보러 가야 하지. 내 시간 자꾸 뺏으면 뒤진다?”

이현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 한 손으로 들었다.

백 킬로가 넘는 거구를!

“뭐… 뭐야?! 허, 헌터?”

“앉아.”

강제로 의자에 앉혀진 윤석도 눈이 휘둥그레져 이현을 보았다.

곰… 아니, 그 이상의 야생동물을 보는 것 같은 공포였다.

이현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고압적인 눈빛이 윤석을 꿰뚫었다.

“해.”

뭘 하라는지는 명백했다. 윤석은 땀을 뻘뻘 흘리며 황급히 태블릿을 조작했다.

잠시 후, 그가 공손히 테블릿을 내밀었다.

“해… 했습니다…….”

이현은 꼼꼼히 계약서를 확인했다.

전부 해지됐다.

끄덕인 이현이 일어났다.

“착하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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