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15화 (15/150)

15화. 그림자의 칼날 (1)

[뉴스 속보입니다. 어제 열 시경 길드 흑룡단을 이끄는 S급 헌터 고두철 씨가 루진 타워에 있는 빌딩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정황상 피살로 보이며…….]

[…부길드장이었던 고봉철 씨가 새 길드장 자리에 오르게 됨에 따라 향후의 활동 방안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소파에 옆으로 누운 채 티비를 보던 이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디서 들은 것 같은 이름인데…….”

땀 흘리며 밥을 하던 일성이 허허 웃었다.

“S급 헌터니까요. 어디서 들었겠죠.”

“아, 그런가.”

이현은 금방 고두철의 이름을 잊고 바닥을 보았다. 매트가 깔린 바닥에 엎드린 빈이가 공룡 인형을 향해 열심히 기어가는 중이었다.

아. 어떻게 저렇게 바닥을 기는 것도 귀엽지? 귀여움의 천재가 아닐까.

“흐흐흐.”

그때, 공룡 인형 앞에 도착한 빈이가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멈췄다. 작은 양손이 팔굽혀펴기하듯이 바닥을 짚더니 몸을 밀었다.

“따.”

빈이가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허억!”

이현은 경악해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눈은 튀어나올 듯 부릅떴다.

“이… 이럴 수가.”

“응? 현 군, 무슨 일이죠?”

이현은 입을 틀어막은 채 떨리는 검지를 빈이에게 향했다. 솜이 터진 공룡 인형을 쥔 빈이가 갸우뚱하며 이현을 보았다.

“빈이가.”

“빈이가?”

“우리 빈이가… 스스로 앉았어요!”

일성도 놀라서 다가왔다.

“벌써 말인가요?”

“크흑… 우리 빈이… 다 컸구나……!”

이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성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축하해요, 현 군.”

“감사합니다… 아, 이럴 게 아니라 한 번 더 하는지 보죠!”

잠시 후, 이현의 집에 온 남우는 바닥에 엎드려 있는 두 남자를 보고 당황했다. 둘의 시선은 엎드린 빈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형님, 김치 좀 가져왔… 뭐 하세요?”

“쉿. 우리 빈이가 아까 ‘앉기’를 했어. 다시 하라고 기다리는 중이다.”

“오……!”

엎드린 남자가 둘에서 셋이 됐다.

그러기를 10여 분쯤 됐을까. 빈이가 갑자기 양팔로 땅을 짚었다. 세 남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오… 오오……!”

빈이의 팔에 힘이 들어가며 몸이 천천히 섰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현이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았다.

마침내 빈이가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세 남자가 와락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우아아!”

“일어났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환호하는 남자들을 보던 빈이가 동참하듯 방긋 웃으며 손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이현이 그 모습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크읏. 시, 심장에 해롭다.”

누구보다 이현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따스한 미소로 그 광경을 보던 남우가 퍼뜩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아, 그런데 형님.”

“응?”

“빈이도 이제 슬슬 돌아다닐 때 아닐까요?”

몸을 일으키는 빈이를 보니 든 생각이었다. 이제 곧 걷고 뛰고 할 텐데, 그러면 필연적으로 눈에 띄지 않겠는가.

이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햇빛도 쐬고 사람들 얼굴도 보고 해야 좋을 것 같은데요.”

“그래, 나도 그 생각은 했다.”

사실 누구보다 이현 자신이 빈이와 밖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저 뿔과 꼬리가 문제다. 특히 저 앞으로 툭 튀어나온 커다란 뿔이 너무 눈에 띈다.

남우가 말했다.

“형님, 혹시 코스프레라고 아십니까?”

“알지. 그게 왜?”

“빈이의 뿔, 코스프레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오!”

이현이 그의 어깨를 짚고 엄지를 들었다.

“똑똑한데.”

“큐튜버들이 그런 거 많이 하거든요. 애랑 같이 코스프레요. 형님은 눈이 붉으시니, 마왕과 그 딸이라는 느낌의 코스프레라고 하면 다들 믿지 않을까요?”

경청하던 이현이 갸웃했다.

“응? 그러면 코스프레가 아닌데.”

“왜요?”

“다른 차원에서 마왕이라고 불린 적이 있거든.”

황제로 있던 시절, 다른 대륙을 정벌하다가도 들었고 황색의 왕 교단이라는 것들을 때려눕힐 때도 들었다. 그리운 과거였다.

“…진짜요?”

수염을 깎은 후라 그런지 그럴듯하게 들렸다. 역시 사람은 외모가 중요했다.

“뭐 그건 됐고. 말 나온 김에 유모차 사러 가자. 네가 골라줘.”

너무 속전속결 아닌가. 당황한 남우가 되물었다.

“예? 제가요?”

“너 잘 알 거 아냐.”

“그렇긴 한데… 그럼 일단 중고천상 앱부터 까시죠. 유모차는 비싸서 보통 중고로 사거든요?”

이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우리 빈이를 중고에 태워?”

“…백화점 갈까요?”

* * *

“저놈인가.”

영귀는 핸드폰을 접고 이현을 바라봤다.

세찬 바람이 부는 서울의 한 빌딩 옥상. 이현과는 2KM쯤 떨어진 거리였지만, 영귀에게는 바로 앞에서 보듯 이현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현이 고개를 돌려 그를 정확히 보았다.

“응?”

눈이 마주쳤다. 영귀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이현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아무렇지 않게 옆의 남자와 대화를 이어갔다.

변검으로 가려진 얼굴에서 유일하게 드러난 눈이 가늘어졌다.

“착각…인가?”

착각이 아니었다.

이현은 그가 알아채기도 전부터 그를 포착했다.

잡아내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벽에 붙은 하루살이를 굳이 맹렬하게 뒤쫓아 때려잡을 이유가 없다.

‘볼일 있으면 지가 오겠지.’

“형님, 저깁니다.”

남우가 커다란 백화점을 가리켰다.

[헌터 10% 할인!]

[초특가!]

[게이트가 폭발해도 안전한 쉘터 구비!]

커다란 플래카드에 사회 전체에 스며든 공포가 느껴졌다.

“라떼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쏴도 다들 그러려니 했는데…….”

“예?”

“아냐.”

둘은 진정한 사나이들답게 다른 데 눈을 돌리는 일 없이 유모차가 있는 5층 매장으로 직진했다. 그곳에는 이미 아이를 안고 나온 부부들이 많았다. 대게 엄마들이었다.

‘엄마…라.’

아이가 자란다는 사실을 느낀 탓일까. 나중에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엄마가 없는 아이가 받을 시선이 걱정됐다.

어쩌면 따돌림을 받을지도 모른다.

‘나도 중학생 때까지 그랬으니.’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는 내내 왕따를 당했다. 한두 명 친구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이현처럼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이었다.

장애를 지녔거나, 집이 가난하거나.

끼리끼리 모였다.

다름을 배척함은 사회를 이루는 생물의 자연스러운 속성. 빈이는 더욱 심한 따돌림을 받을 수도 있다.

‘빈이를 건드는 놈에게는 지옥의 고통을 보여줄 테지만.’

메피스토가 지배하는 진짜 ‘지옥’으로 끌고 가 던져놓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고문 하나만큼은 잘하기로 정평이 난 차원이니…….

“크크크…….”

사악하게 웃는 이현을 보고 남우는 피식 웃었다.

‘유모차 태우는 게 그렇게 좋으신가?’

“형님, 저 유모차 어떠신가요?”

“응?”

남우가 가리킨 유모차는 차양막이 있고 손잡이가 달린…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였다. 바로 옆에 30% 특가 세일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닌 남우 입장에서는 이현의 지갑 사정을 생각해서 가능한 싼 것으로 추천할 수밖에 없었다.

이현이 다른 것을 가리켰다.

“저건?”

[저먼 컬러스 트릴로지 프리미엄 유모차]

문법에 신경 안 쓰는 쇼핑몰 호스트가 대충 갖다 붙인 것 같은 이름과 달리 가격은 이름값을 했다.

가까이 가자 직원이 빠르게 다가와 이현을 위아래로 스캔했다.

‘어머 훈남. 근데 남자 둘이…? 게이? 그래, 그럴 수 있지. 옷은 별로 안 좋아 보이네.’

오해를 감추기 위해 상냥한 미소를 장착한 직원이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이거 얼만가요?”

‘어차피 사지도 못할 거면서 물어보고 있네.’

직원의 미소가 흐려졌다.

“450만 원입니다.”

이현은 가만히 유모차를 살폈다. 하지만 처음 살펴보는 유모차라 뭐부터 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비싸면 좋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흐음. 야, 남우야. 뭐부터 봐야겠냐?”

“어… 일단 안정성이고, 그다음은 시트죠. 아이는 빨리 자라니까 높이 조절이 되는 시트가 필수거든요. 시트 재질도 중요하고요.”

역시 남우를 데려오기를 잘했다. 이현은 팔짱을 끼고 끄덕였다.

“그럼 네가 볼 때 이건 어때?”

“이 정도면 엄청 좋은데요.”

남우에게는 꿈도 못 꿔본 제품이다. 그러나 이현은 신중했다.

빈이가 직접 탈 제품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고르는 데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이현은 매장을 둘러보다가 안쪽에 있는 유모차에 눈길이 갔다.

혼자 번쩍이는 조명을 받으며 원형 받침대 위에서 돌고 있는 모습이 그냥 봐도 범상치가 않았다. 이현이 가까이 가서 보니 새카맣게 광택이 나는 뼈대에서 마력이 느껴졌다.

[플렉스 버티컬 가고일본 프리미엄 유모차]

“이건 얼마죠?”

직원은 슬슬 귀찮아졌다. 잘생기기는 했지만, 맨발에 샌들을 질질 끌고 와서는 고급 유모차를 보는 꼴이 썩 좋게 보이지 않았다.

‘하여간 거지새끼들이 더 진상이 많다니까.’

그녀도 부자는 아니다. 하지만 VIP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그녀는 자신도 부자들과 같은 수준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말투에서 예의가 빠져나갔다.

“거기 가격 붙어 있어요.”

이현은 옆에 붙은 가격표를 보았다.

[1,200만 원]

“흠.”

비싸다. 하지만 빈이를 위해서 못 살 정도는 아니다.

돈이 모자라면 게이트를 더 털면 그만이다.

“여기 이쪽에 가격대 좋은 제품들이 있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그녀가 가리킨 곳의 제품들은 척 봐도 중저가 브랜드였다.

이현은 직원의 말을 무시하고 방금 본 유모차를 이리저리 살폈다. 마음에 들었다.

마력이 느껴지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이걸로 하고 싶은데.”

“예?”

이현이 카드를 꺼냈다.

“사지. 일시불로.”

까만 카드를 받은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헌터다. 헌터는 돈이 많다.

C, D급은 가난하지만, 저 당당한 태도나 일시불로 사겠다는 말을 들으니 느낌이 왔다.

B급 이상, 돈 많은 헌터다!

“허… 헌터셨군요. 그럼 제가 서류 작성 도와드릴…….”

“아니, 당신 말고.”

이현이 매장 내부를 살피다 구석에 서 있던 다른 직원을 가리켰다.

보통 메인에 나서지 못하는 직원들은 이유가 있다.

짬에서 밀리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저 직원이 도와줬으면 좋겠군.”

‘얼마 전 큐튜브에서 본 백화점 사이다썰을 이렇게 빨리 쓰게 되다니.’

이런 대형 매장에서는 물건을 판 사람에게 인센티브가 붙는다. 그리고 그 인센티브는 구매 계약서에 사인을 한 직원이 받는다.

즉 지금 눈앞의 직원에게는 인센티브가 돌아가지 않게 된 것이다.

“고… 고객님, 혹시 제 응대가 불편하셨으면 사과…….”

“사과받죠. 그런데 계약서는 저 직원이 써줬으면 좋겠네.”

직원의 표정이 사색이 됐다. 1,200만 원짜리 제품의 인센티브도 인센티브지만, 사내 평판에도 문제가 생길 문제였다.

이현이 다른 직원에게 걸어갔다.

“고객님! 한 번만 다시 생각해주시면!”

“아니, 바꿔줄 마음 없습니다. 돌아가시죠.”

잠시 후, 이현은 희비가 엇갈린 직원들을 뒤로하고 백화점을 나왔다.

그런 그를 주시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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