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한 남자가 있어 (1)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헌터 협회.
고봉철은 선글라스를 끼고 1층의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신문을 보는 척하고 있었지만, 초조하게 한쪽 다리를 떨며 문을 힐끔대는 모습이 누가 봐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카운터 직원은 물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그 사실을 눈치챘다.
‘A급 헌터 고봉철이잖아?’
‘누굴 기다리지?’
‘새로운 헌터 스카웃인가?’
고봉철이 이를 뿌득 갈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 빨았다.
“씨잇팔… 왜 이렇게 안 와?”
그는 이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헌터 협회의 직원에게 뇌물을 주고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이현은 오늘 B급 헌터 심사를 받으러 온다.
심사를 받으려면 당연히 1층으로 들어와 카운터에서 접수를 해야 하니, 마주칠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부하를 시키고 싶었지만….
―네가 직접 해라. 네가 그놈 얼굴을 안다며?
형이면서 길드장이자 S급 헌터인 두철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이렇게 오게 된 것이다.
두철은 이현을 흑룡단에 끌어들일 속셈이었다. 어떤 조건을 제시하든 일단 받아준다고 하라는 파격적인 조건과 함께.
하긴, 그도 당연했다.
‘그놈은 괴물이야.’
그날 개미굴 안쪽에 남은 흔적들은 다시 떠올려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분쇄된 사체들. 보스방까지 깔끔하게 원형으로 뚫린 구멍은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보스인 흰개미 여왕 샤르가이아 근처에 있던 개미의 시체들은 봉철이 온 힘을 다해 두드려야 간신히 우그러질 정도로 단단했다.
그런데 그런 괴물의 몸이 풍선처럼 터져 있었다.
형의 말이 떠올랐다.
―이놈은 S급… 어쩌면 나만큼 강할지도 모른다.
―예? 형님만큼 말입니까?
봉철이 알기로 두철은 한국계 S급 헌터 중에서는 ‘먹필도사’나 ‘섀도우로드’를 제외하고는 순위권에 드는 강력한 S급 헌터였다.
그런 형님과 비슷하게 강하다는 말은, 단적으로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헌터라는 의미!
―반드시 우리 길드로 끌어들여야 한다. 네가 시험 때 편의를 봐줬다며? 그럼 빚도 있겠다, 쉽겠지.
―아니, 그… 그게.
아무나 게이트에 들여보냈다고 말하면 욕을 먹을 게 뻔하다.
그래서 두철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미리 잠재력을 알아보고 게이트에 먼저 출입하게 해주는 호의를 베풀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설마 형님이 길드에 끌어들이라는 말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아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놈은 멍청이야. 몇 번이나 본 나를 모르는 눈치였어.’
마지막으로 봤을 때 나쁜 인상을 심어주지도 않았으니 이야기가 잘되면 길드에 정말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사람들의 시선이 문으로 쏠렸다. 자연스레 문을 감시하고 있던 봉철의 신경도 문으로 집중됐다.
“어머나.”
“와…….”
“모델인가?”
청바지에 검은 티를 입은 단순한 차림. 하지만 퇴폐미가 느껴지는 차가운 얼굴이 잘생겼다.
어디 느와르 영화 표지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상의 미남이었다.
거리가 멀어서 눈 색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옆에서 함께 걷는 평범한 인상의 남자가 이족보행을 터득한 오징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현은 아니군.’
한숨을 쉰 봉철이 다시 신문을 들었다.
봉철이 앉은 탁자 앞을 가로지른 이현과 남우는 곧장 접수처로 향했다.
“예, 어서오세…요!”
세상이 멸망하기를 바라는 표정으로 업무를 보고 있던 접수처 직원, 아영이 이현을 보고는 활짝 웃었다.
잘생긴 얼굴을 보니 참 좋았다. 지루한 회사 생활에 이런 낙이라도 있어야지.
“B급 헌터 승급 시험 보러 왔는데요.”
“아~ 승급 시험 말씀이시구나! 대단하시네요! 아직 젊으신 것 같은데 벌써 B급이라니!”
게이트 폭발은 5년밖에 안 돼서 헌터는 대부분 젊지만, 그런 사실이야 아영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현.”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타자 소리도 경쾌하게 이현의 이름을 입력한 아영의 몸이 순간 굳었다.
컴퓨터에 떠오른 털이 수북한 얼굴이 이현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어… 죄송합니다. 성함 다시 한번 확인 부탁드릴게요. 이, 현 씨 맞나요?”
“앙.”
“…그, 죄송한데 사진과 얼굴이 좀… 차이가 있네요.”
이현이 턱을 매만졌다.
“응? 아… 수염 밀었습니다.”
얼굴을 민 게 아니고?
목울대를 친 말을 억지로 삼킨 아영이 다시 생긋 웃었다.
“본인 확인 좀 하겠습니다. 여기 지문 좀 찍어주시겠어요?”
삐빅.
본인이 맞았다.
‘이게 되네…….’
아영은 인체의 신비를 느끼며 서류를 내밀었다.
“이거 들고 3층 B―3번 방에 가시면 되세요~”
턱을 슬쩍 까닥인 이현이 계단으로 향했다. 아영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그 등을 바라봤다.
‘시크한 모습도 멋있네.’
“크흠.”
남우가 헛기침하며 섰다. 아영의 얼굴이 곧바로 싸늘하게 식었다.
“아, 네. 무슨 일이세요?”
“저도 C급으로 승급…….”
“여기 서류요.”
슥 서류를 내민 아영이 핸드폰을 보며 딴짓을 했다. 남우는 세상의 불합리함을 다시금 실감하며 서류에 코를 박았다.
“여긴가?”
커다란 원형 탁자에 앉아 기다린 지 5분쯤 지났을까. 조용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정장을 입은 남녀 셋이 불쑥 들어왔다.
면담이라고 해서 일 대 일인 줄 알았더니 의외다. 이현은 예의상 일어났다.
선두에 선 남자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헌터 협회 승급심사과 팀장인 차병진입니다. 반갑습니다. 이현 님…이시죠?”
“네.”
“앉으시죠.”
병진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면접 심사라고는 하지만 간단한 질의응답일 뿐이니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대화는 기밀로 분류되어 밖으로 유출될 일 없으니 염려 않으셔도 되고요.”
서류를 휙 넘긴 그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이현 님은 서류를 보니 5년간 게이트에 있으셨다더군요. 사실…이십니까?”
“예.”
직원들이 서로를 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병진이 크흠 헛기침하고는 물었다.
“저희는 이현 님께서 ‘각성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입니까?”
“각성자…라.”
남우에게 들어 얼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이현도 알고 있었다.
현재 지구에서 헌터들에게 부여되는 스킬은 고유한 것이 아니다. 그가 다른 차원에서 본 ‘마법’이나 ‘무공’처럼 어떤 특정한 형태로 만들어진 것을 나눠 가진 것.
그러나 ‘각성 스킬’은 다르다. 남우의 가부좌처럼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하고 고유한 스킬.
이러한 각성 스킬을 소유한 이를 각성자라 부른다.
“아닌데요.”
“아니시라고요?”
“전 각성 스킬 같은 거 없습니다.”
그렇기는커녕 일반 스킬도 없다.
병진이 펜 끝으로 책상을 톡톡 때렸다.
“그러시군요. 그럴…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으음.”
병진 대신 옆에 앉아 있던 숏컷의 여자 직원이 나섰다.
‘유지애’라는 명찰이 금빛으로 빛났다.
“이현 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헌터 협회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B급 이상부터는 딜러가 무척 부족하죠.”
그야 그렇겠지.
이현은 팔짱을 끼고 들었다.
무엇이 도사리는지 모를 장소에 최소한의 정보만 갖고 돌입해 요충지를 탈환하거나 적을 죽인다.
그 형태만 따지고 보면 헌터들이 하는 일은 어느 차원에서건 소위 ‘특공대’라 불리는 이들…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자들이 하는 일이었다.
너무 이 사람, 저 사람 하고 있어서 저평가받을 뿐…….
사실은 모두가 영웅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것이 숭고하며 필요한 일임을 알더라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을 ‘영웅’이라고 부르며 숭배하는 것이다.
오히려 많은 것이 이상하다고 봐야 했다.
지애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입술 근처에 있는 점에 펜을 가져가며 그녀가 요염하게 웃었다.
“이현 님께서는 헌터 시험에서는 물론 게이트에서도 훌륭한 실적을 내셨습니다. 만약 강함을 증명해주신다면 바로 A급 승급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오, 파격적이네요?”
말투와 달리 이현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아시다시피 A급부터는 미디어 노출도 활발하고, 협회로부터 월급처럼 고정 급여도 드리고 있습니다. 일종의 품위 유지비죠.”
유명세, 돈.
평범한 사람이라면 끌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이만한 조건을 들일 가치가 그에게는 있다고 지애는 판단한 것이다.
특이한 이력. 말도 안 되는 게이트 공략 속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고다이.
모두 화제를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다.
설령 그가 예상대로 A급의 실력은 아니어도 상관없다.
잘만 프로듀싱한다면 일종의 아이돌로서 사람들의 헌터 지원을 독려하는 효과는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오호라.”
추임새와 달리 여전히 표정은 사막처럼 메말랐다. 지애는 당황스러웠지만, 미소를 유지하고 물었다.
“어떠신가요?”
“그거참 좋은 조건인데 아쉽군요.”
“…예?”
이현이 검지와 엄지를 약간 띠고 들어 보였다.
“요만큼만 더 강했으면 A급에 들어갔을 텐데… 정말 아쉽네요.”
“…정말이십니까?”
제정신이면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지애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무서워서 A급은 못 되겠네요.”
살짝 끌렸기는 했지만 ‘미디어 노출’이라는 부분이 거슬렸다.
일단 이름이 퍼지는 것도 귀찮다. 너무 바빠지면 빈이를 볼 시간이 없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빈이의 교육에 좋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지나친 관심과 사랑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오분영 박사님께서 말했지.’
최근 큐튜브로 빠지게 된 프로에 나오는 박사의 말을 떠올리며 이현이 일어났다.
“할 말 끝나셨으면 가도 되겠습니까?”
지애는 멍청히 그를 올려다봤다.
‘내가 잘못 봤나?’
정말 실력이 있다면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돈, 명예, 명성, 모든 것이 보장되는 A급 헌터로 바로 승급시켜준다고 하는데…….
하지만 본인이 약하다고 말하니 설득할 말이 궁했다. 지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수고…하셨습니다.”
1층으로 내려온 이현은 슥슥 주위를 살폈다. 남우가 없다.
‘아직 안 끝났나 보네.’
이현은 앉을 곳을 찾다가 봉철이 앉은 탁자를 보았다. 그는 신문을 두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무슨 다단계회사 사장처럼 생긴 놈이 앉아 있네.’
이현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 남우가 내려왔다. 잘됐는지 표정이 밝았다.
“형님! 면접은 어떠셨습니까?”
“응? 면접이라기보다는 질의응답 같은 느낌이더라.”
“오오… B급 승급 면접은 뭔가 다른가 보군요.”
협회를 나왔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저는 압박 면접이 들어왔는데… 잘된 것 같습니다. 전부 형님 덕입니다.”
“네가 잘한 거지 내가 뭘 했겠냐.”
“형님, 기념으로 가는 길에 술이라도 드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제가 쏘겠습니다.”
술. 그 말을 들으니 힘들 때 반지하 자취방에서 한 잔씩 걸쳤던 소주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돌아온 후, 빈이 돌보기에 바빠서 소주를 먹어볼 생각도 못 했다.
“소주에 삼겹살 어떠냐?”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