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개미굴 (2)
파랗고 노란 두 개의 태양이 창날 같은 햇빛을 떨어트렸다.
메마른 땅도 평범한 사람이 맨발로 딛는다면 화상을 입을 만큼 뜨겁게 달궈진 상태.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거대한 산으로 향하는 두 남자의 그림자조차 불타는 듯했다.
이현의 눈도 함께 불탔다.
“여기… 우리 빈이가 소꿉놀이하기 좋을 것 같군요.”
불과 한 달 사이에 이현과의 상식을 넘나드는 대화에 익숙해진 일성이 허허 웃었다.
“괴물들을 물리친 다음에는 그렇겠지요.”
“으음.”
하지만 이번 일은 물리치는 게 아니라 ‘정찰’이다. 이현은 주머니에서 기계를 빼서 보았다.
작은 모니터가 달린 직사각형의 기계로 크기는 빈이의 손보다 조금 컸다.
초음파를 발산해서 주변 지형을 읽고 자동으로 기록한다고 했다. 터치하면 기록된 지형에 표시를 할 수 있고.
보스를 발견하면 터치를 해서 기록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류가 발전을 안 한 줄 알았더니, 헌터와 관련된 분야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진보를 이루었다.
이현과 일성은 작게 솟은 언덕으로 올랐다. 언덕의 중턱에도 구멍 하나가 뻥 뚫려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간 순간, 구멍에서 커다란 개미가 튀어나왔다.
[흰개미 병정]
하얗고 길쭉한, 애벌레 같은 몸. 유난히 큰 머리에 달린 갈고리 같은 턱은 인간의 몸은 단숨에 두 동강 낼 듯 컸다.
이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난 벌레는 싫은데.”
“키에에엑!”
병정개미가 기묘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이리저리 휘저었다. 초록색 액체가 주둥이에서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시끄러.”
이현이 날아올라 머리를 걷어찼다.
쾅!
움푹 파이며 분리된 머리가 하늘을 날아올랐다.
언덕을 넘어 떨어진 머리가 데굴데굴 구르다가 탑을 툭 건드리고 멈췄다.
그 순간, 대지가 울렸다.
쿠구구구…….
두두두두두…….
산에 스펀지처럼 뚫려 있던 구멍들에서 거대한 개미들이 우르르 기어 나왔다. 족히 수백은 될 법했다.
[흰개미 전투병정]
[흰개미 포병]
[흰개미 탐지병정]
“포병?”
이현이 갸웃한 순간 개미들이 대열을 맞추더니 일제히 뭘 쏘아 올렸다.
촤라라락!
초록색의 액체가 와르르 쏟아졌다.
‘할아버지는 못 피하겠지.’
이현은 땅에 손을 꽂아 냅다 들어 올렸다. 일성은 입을 떡 벌렸다.
땅이 일어났다.
이현의 앞, 반경 수백 미터의 대지가 일시에 뒤집히며 토사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날아간 토사는 개미들이 쏜 액체를 집어삼키고도 모자라 개미집을 산사태처럼 덮쳤다.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콰르르릉!
“키에엑!”
흙먼지가 가라앉자 엉망이 된 개미집이 드러났다. 지반을 뒤집어엎은 탓에 생긴 구덩이 아래로 미로 같은 개미굴 일부가 드러났다.
아래를 보자 작은 개미들이 이현을 보고는 황급히 흩어졌다.
[흰개미 일꾼]
“아차… 이러면 정찰이 아닌가. 흠… 뭐 어때.”
머리를 긁적인 이현이 구덩이로 휙 뛰어내렸다.
개미굴은 복잡했지만, 길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강력한 마력이 밀집한 곳을 따라가면 되니까.
이현에게는 모세혈관처럼 얽힌 개미굴의 모양이 마력의 흐름으로 샅샅이 읽혔다.
탑처럼 생긴 구조물들이 밖으로 나와 있어 보스룸은 당연히 꼭대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강한 마력은 지하에 밀집해 있었다.
“키에엑!”
[흰개미 전투병정]
세 갈래 길에서 동시에 개미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켜.”
이현이 주먹을 내질렀다. 빛줄기가 터지며 개미들의 머리통을 일렬로 박살 냈다. 그러나 금방 통로로 다른 개미들이 우글우글 들어왔다.
“이래서 벌레들이 싫다니까.”
그냥 이 둥지를 통째로 박살 낼까.
하지만 그건 계약에 어긋난다. 일성이 휘말릴 위험도 있고.
“아.”
‘어차피 다 잡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지?’
보스의 위치와 아티팩트의 위치만 기록하면 된다. 이현은 마력이 느껴지는 곳과 현재 위치를 대강 가늠했다.
대략 오십 미터 아래.
“이쯤인가. 할아버지, 잠깐 저한테 업히시죠.”
주름진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응? 뭘 하려고요?”
“지름길로 가게요.”
이현이 냅다 발을 굴렀다.
쿠앙!
단숨에 발밑으로 원형의 균열이 번지고 빛줄기가 솟았다. 폭음이 터진 순간, 하수구 통로 같은 구멍이 이현의 발밑에 뻥 뚫렸다. 일성은 다급히 이현을 끌어안았다.
“으어어억!”
쐐애애액!
어둠이 거칠게 볼을 스쳤다. 일성은 눈을 꼭 감고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무시하려고 애썼다. 몇 초의 짧은 낙하감을 느낀 후, 강렬한 충격이 몸을 뒤흔들었다.
쿠웅!
“좋아, 도착했다.”
흡족한 이현의 목소리에 눈을 뜬 일성은 눈앞의 광경에 질겁했다.
이런 공간을 벌레들이 어떻게 만들었을까. 집이 몇 채는 들어갈 만큼 거대한 공간이었다. 둥글게 깎인 벽은 번들거리는 빛을 냈다.
그 공간의 절반을 버스 몇 대를 이어놓은 것처럼 커다란 살덩이가 채웠다. 고름처럼 축축한 누런색의 피부. 반투명한 피부 아래 시커멓고 붉은 뭔가가 연신 꿈틀거리는 모양이 징그러웠다.
살덩이의 앞쪽에는 몸뚱이에 비해서는 작지만 그래도 커다란 벌레의 몸통이 붙었다. 앞서 본 개미들을 닮았지만 더 크고 흉악했다.
[흰개미 여왕 샤르가이아]
“캬아아아!”
샤르가이아가 포효했다. 사방에서 지금껏 본 흰개미들보다 훨씬 크고 단단한 갑피를 지닌 개미 네 마리가 나타났다. 몸에는 흉흉한 붉은색의 줄무늬까지 보였다.
[흰개미 근위대]
[샤르가이아의 포효]
―반경 30미터 내의 모든 흰개미들의 모든 스테이터스를 20% 증가시키고 5초마다 최대 체력의 3%를 재생합니다.
―설명 : 어쩌면 ‘살려줘’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이현은 주머니에서 기계를 꺼내 터치했다.
“이렇게…인가?”
붉은색의 표시가 뿅 떠올랐다.
“오, 신기하네.”
신문물에 감탄하고 있는 이현에게 흰개미 근위대들이 와르르 달려들었다. 낫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그에게 내리꽂혔다.
“가만. 너희들은 보스 아니지?”
이현의 손이 흐릿해지며 네 번의 충격파가 터졌다.
퍼퍼퍼펑!
흰개미 근위대들의 머리가 죄다 터져나갔다. 머리를 읽은 몸들이 거의 동시에 무너지며 끈적한 초록색의 체액을 주르륵 흘렸다.
“보스 공격 방식에 대한 정보가 50만 원이었지.”
50만 원이면 눈여겨 두었던 친환경 아기 옷을 4벌이나 살 수 있다.
“앉아서 노는 힐링 장난감이 29,800원… 드럼 놀이 세트가 47,800원… 쥬쥬 소꿉놀이 세트 139,500원…….”
웅얼웅얼 뭔지 모를 말을 뱉으며 다가오는 이현의 그림자가 샤르가이아의 주홍색 겹눈에 맺혔다.
잠시 후, 애처로운 비명이 동굴 밖으로 울려 퍼졌다.
* * *
타타타타…….
묵직한 검은 광택을 뽐내는 치누크 헬기 한 대가 게이트 앞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헬기가 착륙하는 곳 앞에는 이미 소식을 전달받은 흑룡단의 길드원들이 모두 모여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선두에는 고봉철이 있었다.
곧 헬기의 문이 열리고 군화를 신은 몸이 훌쩍 뛰어내렸다. 검은색을 기조로 황금색으로 치장된 두툼한 레인코트를 입고, 머리는 짧게 밀었다. 각진 얼굴은 무쇠처럼 단단한 인상이었다.
그가 바로 흑룡단의 길드장인 S급 헌터 고두철이었다.
고봉철이 벌떡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형님!”
“어, 봉철아.”
두철이 봉철의 어깨를 장갑 낀 손으로 짚었다.
“현장 상황은?”
“아직까지 ‘이탈’ 징후는 없습니다. 개미집이 무너졌다는 보고가 있어서 상황 파악 중입니다.”
그때 두철의 뒤로 세 명의 남녀가 헬기에서 내렸다. 봉철은 침을 꿀꺽 삼켰다.
중국의 거대 길드, ‘구룡성’에서 온 세 S급 헌터.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마력이 느껴지는 자들이었다.
중국의 S급은 기준이 한국보다 조금 낮아서 실력은 두철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A급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마력이었다.
이들이 있다면 저깟 A급쯤이야 무난히 클리어가 가능할 것이다.
“진입 준비는?”
“물론 다 끝났습니다.”
아직 정찰조로 투입됐던 이현들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봉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쯤 다 죽었겠지. 개미굴이 무너지기까지 했으니 시체도 매몰돼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게이트가 닫히면 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잊힐 테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계획대로였다.
“좋아, 바로 진입한다.”
두철이 장갑을 꽉 끼고는 게이트로 향했다. 그 뒤로 세 명의 S급과 오십 명의 흑룡단 정예 길드원들이 따랐다.
그야말로 무적의 군대.
봉철은 무엇이 도사리고 있더라도 전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자신감마저 들었다.
그런 강력한 힘이 형님을 제외하면 바로 자신의 발아래 있다는 사실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응?”
그때, 아지랑이가 흩날리는 산 아래에서 두 명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두철이 손을 들어 모두를 멈춰 세웠다.
“인간형 괴물인가?”
봉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이다.
이현과 일성, 그놈들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졌다. 이현이 손을 흔들었다.
두철이 꽉 쥐고 있던 주먹의 힘을 풀었다.
“사람…이군. 어떻게 된 거야?”
길드장으로서의 두철은 무섭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탐욕스럽게 달리는 인물.
그만큼 인사고과도 명확하다. 뭔가 일이 잘못됐을 경우 동생인 봉철에게도 무자비한 철퇴를 내릴 것이 분명했다. 봉철은 황급히 대답했다.
“그… 그게, C급들을 정찰조로 보냈었습니다. 깜빡했습니다.”
“정찰조라고?”
“제가 가서 정보를 듣고 오겠습니다!”
봉철이 헐레벌떡 이현에게 뛰어갔다.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자 어안이 벙벙했다.
‘상처 하나 없잖아?’
설마 그냥 근처에만 갔다 왔나? 그래, 그런 것이다. 그게 틀림없다…….
그런데 가까워지자 이현이 뭘 휙 던졌다.
탐색기였다.
“거기, 지도랑 보스 위치, 아티팩트 위치 전부 기록돼 있을 거야.”
이현이 손을 내밀었다.
“돈.”
어처구니없이 건방진 태도다. 하지만 이현의 강함을 몸으로 겪었기에 봉철은 입을 꾹 닫고 기계를 확인했다.
“…확인이 먼저요.”
봉철은 허겁지겁 기기를 확인했다.
‘진짜다!’
3D로 표시된 지도에 빛나는 두 개의 붉은 점이 보였다. 이현이 말했다.
“보스는 여왕개미고 아티팩트는… 자세히 확인 안 했는데, 열 개 정도? 시체 사이에 섞여 있어서 확인이 어렵더라고. 아, 사진도 찍어놨는데.”
기기의 디스플레이에 사진 하나가 떠올랐다. 이현이 웬 거대한 개미를 배경으로 브이를 하고 있었다. 얼굴은 무표정한 게 묘하게 괴기스러웠다.
어안이 벙벙해진 봉철에게 이현이 말했다.
“공격 패턴도 다 기록해놨다.”
정말이다.
이현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돈.”
봉철이 대답했다.
“…계약서에 적은 구좌로 입금하지.”
“지금 주지. 바쁜데?”
곧 빈이 밥 먹일 시간이다. 게다가 막노동으로 먹고 살아본 경험상 돈은 그 자리에서 받지 않으면 안 됐다. 까먹었다거나, 기록이 없다는 식으로 발뺌을 하며 안 주려는 놈들이 부지기수.
이놈들이 초반에 보였던 태도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봉철이 하는 수 없이 핸드폰으로 입금을 했다. 길드 자금에서 돈을 뺄 수는 없기에 일단 피눈물을 머금고 사비를 털었다.
380만 원.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고 이현이 씩 웃었다.
“오케이. 수고하쇼.”
이날, 흑룡단은 이례적으로 부상자 한 명, 사망자 0이라는 기적적인 수치로 A급 게이트 ‘하얀 탐식자들의 둥지’ 공략에 성공했다.
길드장 고두철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길드원 모집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공략 방법은 철저한 기밀에 붙여졌으며….…
어째선지 흑룡단이 은밀히 한 명의 C급 헌터를 찾는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