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개미굴 (1)
A급 게이트는 마치 번개가 번뜩이는 구름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이었다.
보랏빛의 번개가 섬뜩하게 번뜩이는 안쪽에는 이질적인 풍경이 아른거렸다.
아지랑이가 일 정도로 강하게 햇볕이 내리쬐는 평원. 구멍이 숭숭 뚫린 산과, 기묘한 형태의 탑이 멀리 보였다.
게이트의 등급이 높을수록 크기가 크고 안쪽의 풍경도 자세히 보인다. 이 정도면 A급 중에서도 꽤나 높은 등급이었다.
앞에는 벌써 협회의 직원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개중에는 민간인 구경꾼들에, 촬영을 준비하는 방송사의 사람들도 다수 보였다.
“뭐야? 이래도 돼?”
게이트에 도착한 이현은 어안이 벙벙해 물었다. 당장 저 게이트로 뭐가 나올 줄 알고 이렇게 사람이 몰려 있어?
옆에 선 일성이 대답했다.
“A급 게이트는 흔치 않아서 종종 이래요. 방송사 입장에서는 특종이죠.”
“저기 보이는 것들은 민간인 같은데요.”
긴 장대에 연결해놓은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시끄럽게 떠드는 이들이 보였다.
일성이 이현의 손가락을 얼른 막았다.
“큐튜버들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큐튜버가 뭡니까?”
“개인 방송을 하는 인간들인데… 큐튜브라는 플랫폼이 있어요. 거기에 자기 방송 송출하며 돈 버는 겁니다. 관심으로 먹고 사는 인간들이라 괜히 나쁘게 보이면 골치 아파요.”
게이트는 다른 차원으로부터의 위협이다. 지구는 다행히 아직 크게 위험한 것들이 나온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이현이 보기에는 운이 좋아서였다.
이현은 단 하나의 게이트에 의해 멸망한 차원도 본 적이 있다. 게이트를 직접 열고 다른 차원에 가서 멸망시킨 놈들도 있고.
“말세군.”
이렇게 경각심이 부족해서 되겠나.
게이트가 열렸다는 것은 곧 그곳이 전장이 되었다는 것!
전장에서 방심은 죽음으로 직결된다.
이현이 보기에 저 큐튜버란 놈들은 목숨 내놓고 사는 머저리들이었다. 지들 목숨뿐만이면 상관없지만, 저렇게 방송을 송출해서 보는 사람들의 경각심도 줄어들게 만드니 더더욱 악질이다.
‘내가 황제였을 때는 저런 놈들은 다 감방에 가뒀는데.’
어느 차원에든, 어느 종족이든 저런 인간들은 신기하게도 꼭 있었다. 재앙이 온다는데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부정하며 선동하는 놈들.
전염병이 번졌는데 치료약이라며 가짜 약을 팔거나, 신을 믿으면 명이 걸리지 않는다며 선동하는 사이비들 탓에 골머리 꽤나 썩었었다.
‘뭐, 난 이제 황제가 아니지.’
신경에 거슬리지만 그뿐이다. 이현은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런데 파란 옷을 입은 남자가 그들의 앞을 막았다.
“잠시만. 여긴 우리 ‘흑룡단’이 ‘통제’ 중이다. 못 들어간다.”
“엉?”
뭔 소린가 싶어서 쳐다보는 이현과 달리 일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순히 물러났다.
“그런가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아니, 잠깐만요. 뭐가 어쩔 수 없는데요?”
일성이 이현을 외곽으로 끌고 나온 후, 쓴 미소로 말했다.
“A급 게이트부터는 종종 이렇게 거대 길드가 먼저 선점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길드원들만 들여보내는데, 이걸 ‘통제’라고 해요.”
이곳의 게이트는 클리어하면 ‘보상’을 준다. 기여도에 따라 협회에서 보상을 주기도 하지만, 간혹 아티팩트라는 귀중한 물품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보상을 독식하고 아티팩트를 얻으면 당연히 길드는 강해지고, 강해질수록 더 돈을 벌 수 있게 되겠지.
마치 게임 같은 이곳의 특이한 게이트 특성상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됩니까? 그러다 못 막으면?”
5년 전에도 갑자기 열린 게이트를 못 막아서 전 지구적 재앙이 벌어졌다고 하지 않았나.
인류 전체에 트라우마가 깊이 박혔을 텐데 이런 일을 허용한다는 것이 황당했다.
일성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그런 경우는 없어요. 거대 길드 소속 헌터들은 강하거든요.”
한국에서 가장 큰 세 길드를 뽑으라면 흑룡단, 칠성검, 블랙밴더가 있다.
블랙밴더는 음지와 깊이 연관된 길드의 특성상 명확한 전력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제외한다면, 흑룡단은 칠성검과 함께 대한민국을 양분하는 거대 길드라고 볼 수 있었다.
길드장인 S급 헌터 고두철을 포함해 S급 헌터가 무려 셋이나 포함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S급 헌터가 고작 열셋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였다.
게다가 중국과의 커넥션으로 현재 파견된 중국 측 S급 헌터들도 대동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는 10명이나 되는 S급을 휘하에 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래도 기다리면 가끔 보수를 주고 동원해주는 경우가 있으니 기다릴까요?”
“그건 별로 안 내키는데…….”
돈은 좋다. 하지만 최근 열심히 게이트를 털어서 당분간은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돈이 모였다. 먹을 것도 충분하고.
선후관계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 게이트에 드나드는 것은 빈이에게 먹을 것을 구해주기 위해서다.
집에서 빈이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그냥 집에 갈…….”
그때, 앞을 가로막았던 남자가 그들에게 달려왔다.
“거기! 잠깐!”
“응?”
“정찰조에 사람을 구하는 중이다. 보수는 주지.”
턱을 척 올리고 감사한 줄 알라는 듯 고압적인 태도였다. 이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어? 열받네?’
하지만 기껏 여기까지 와서 성과 없이 돌아가는 것도 아깝다. 이현 자신이야 그렇다 쳐도 일성은 무릎도 안 좋고 사는 것도 팍팍한 노인네지 않나.
“보수는 얼마나 주는데?”
“기본급 오십이고 기여도에 따라 다르지.”
그가 뭘 주섬주섬 꺼내 내밀었다. 이런 일이 많은지, 기여도 보상이 깔끔한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김밥천국 메뉴판 같군.’
“아티팩트 위치 발견은 오십, 보스 위치는 백… 응? 잠깐, 이 말은 내가 아티팩트를 갖거나 보스를 잡을 순 없다는 의민가?”
남자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당연하지 뭘 물어. 뭐 일단…….”
그가 이현을 아래위로 훑었다.
“당신이 뭘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게이트 내부의 괴물과 아티팩트는 전부 흑룡단 거다. 당신네는 정찰조야, 정찰조.”
두툼한 검지가 이현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끼워주는 것만으로 감사한 줄 알아야지.”
“실수로 잡을 수도 있잖아?”
남자는 들을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부길장님 명령만 아니면…….’
원래 흑룡단은 어지간하면 통제하는 게이트에 다른 헌터들을 받지 않았다.
여태까지 철저하게 게이트를 통제한 후 모든 보상을 독식하는 방법으로 성장해 왔다.
그런데 흑룡단의 부길드장인 A급 헌터 고봉철.
그가 갑자기 연락해 이현을 정찰조에 넣으라고 지시했다. 콕 집어서 이현과 일성 둘을.
정찰조는 위험하다.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게이트에 가장 먼저 들어가 내부의 지형이나 몬스터를 파악하는 것이다.
원래는 노련한 탐지 계열 헌터가 하는 일.
그런데 그걸 C급 헌터들에게 시킨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버리는 패.’
게이트가 너무나도 위험해서 길드원들 대신 이들을 제물로 바치고 정보를 얻는 것이다. 이들이 위기에 빠져도 당연히 구해주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놈들에게 화내봤자 뭐하나. 남자는 꾹꾹 화를 눌러 참고 말했다.
“보스와 아티팩트는 흑룡단 소유다. 실수로 잡으면 네가 오히려 보상을 해야지.”
“째째하기는.”
하지만 보스나 아티팩트를 제외하더라도 꽤 짭짤하기는 하다. 결심은 섰으니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이현이 손을 내밀었다.
“계약서.”
“…여기 있다.”
이현은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폈다.
[‘을’의 계약사항 위반 혹은 중대한 과실로 인해 발생한 손실에 대하여 ‘을’은 변상책임을 진다. 우선적으로 본 계약에 의거 수령하는 보상 금액에서 변상액을 제한다.]
[게이트 내부에서 발생한 ‘을’의 신체적, 정신적인 부상, 장애, 후유증에 대하여 ‘갑’은 책임을 질 의무가 없다.]
상당히 불리한 조항들이었지만 뭐 어떠랴 싶어 이현은 가볍게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어차피 부상을 당할 위험은 없으니까.
“그럼 이제 들어가면 되나?”
“아직이다. 우리 길드에서 두 명이 보조로 붙을 거다.”
말이 보조지, 감시지만.
게이트 앞에 서자 하얀 갑옷을 입은 두 남자가 다가왔다. 갑옷 가운데에는 검은 흑룡이 그려져 있었다.
이현은 미간을 모으고 그들을 보았다.
“궁금한 게 있는데.”
“뭐지?”
“그 옷, 안 쪽팔려? 싸구려 코스프레 같은데.”
“…….”
“…….”
두 남자가 먼저 게이트로 들어갔다. 그 뒤를 이현과 일성이 따라갔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남자가 있었다.
흑룡단의 부길드장, A급 헌터 고봉철이었다.
“크크…….”
찾아온 이현을 봤을 때는 눈을 의심했다. 처음에는 뭘 알고 찾아온 건가 싶어서 숨어 있었다.
다행히 그는 그냥 게이트를 찾아온 것일 뿐이었다.
헌터 시험에서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던 봉철은 나름 이현에 대해 조사했다.
서류를 보니 그는 놀랍게도 스스로 게이트에서 5년간 생존했다고 밝혔다.
아마 뻥이겠지만, 시험에서 봉철 자신을 압도했던 실력을 생각하면 완전히 거짓말도 아닌 듯했다.
게이트에서 갇혀 있다 나온 압도적 힘을 가진 자들.
아마 이현도 모종의 강력한 각성 스킬을 체득한 자일 것이다.
장차 흑룡단에 방해가 될 강자.
포섭하거나 미리 없애놔야 했다. 정식으로 한 계약이니 의심을 받을 여지도 없다.
애초에 누가 C급과 D급 헌터에게 관심이나 줄까.
‘안 됐구나. 장차 S급까지 갈 인재일지도 모르지만… 넌 세상을, 나를 너무 얕봤어.’
저 A급 게이트의 이름은 ‘하얀 탐식자들의 둥지’.
수많은 게이트 클리어로 쌓인 데이터에 의하면, ‘둥지’라는 단어가 붙은 게이트에서는 일반적인 수준보다 훨씬 많은 수의 괴물이 등장했다.
그리고 게이트 클리어의 중점이 보스 사냥인 경우가 9할.
A급 게이트이니 나타날 보스는 최소 S급… 수많은 괴물을 상대하다가 지친 후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고봉철은 딱 한 번 S급 보스와 마주한 적이 있었다.
‘설인의 산’의 보스였던 ‘백색의 침묵’.
당시 봉철은 오로지 방어에만 전념했지만 죽을 뻔했다. 하필 눈바람을 일으키는 패시브 스킬도 갖고 있어,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때 느꼈던 공포는… 문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그조차 그야말로 오줌이 지릴 지경이었다.
길드장인 고두철도 자신과 다른 S급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게이트 공략은 절대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정석대로라면 흑룡단 같은 거대 길드도 길드원 수십을 이끌고 공략해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지옥이 바로 A급 게이트인 것이다.
함께 들어간 길드원들은 절대 이현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임무는 둥지 입구까지의 안내.
괴물의 확인만 끝나면 곧장 돌아올 예정이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이현과 함께 갔던 두 길드원이 게이트를 나와 엄지를 들어 올렸다.
계획 성공의 의미였다.
고봉철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