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모기 박멸 (2)
강필한은 항상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살인, 강도, 강간, 사채, 인신매매…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직업은 흔치 않다.
적성에도 잘 맞았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 그는 사채업자였다.
당시에는 법에 접촉하지 않는 선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고, 벌이도 별로였다. 경찰에 찔러 주는 돈도 커서 적자가 날 때도 흔히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게이트가 열렸다.
어쩌다 게이트에 빨려 들어간 그는 이틀 동안 안에 갇혀 헤맸다.
음지를 돌아다닌 눈치와 깡으로 버틴 이틀이었다.
그러다 ‘스킬’을 얻고 각성자가 됐다.
“상태창.”
[상태창]
이름 : 강필한
레벨 : 35
종족명 : 인간
보유 스킬 : 강인한 주먹, 각성 ― 야성의 힘
칭호 : [우두머리], [과부제조자]
레벨 35면 마력량으로 따지면 A급에서도 상위. 언젠가 거리에서 시비가 붙은 A급 딜러를 일방적으로 때려눕힌 적이 있다.
실전 경험의 차이와 ‘각성’ 스킬 덕분이었다.
게이트를 헤맨 자들 중 일부에게만 생긴다는 각성 스킬.
이 각성 스킬은 보편적인 스킬과는 달리 세계에 오직 소유자 하나뿐이라는 특징이 있다.
다람쥐를 조종할 수 있다거나 하는 쓸모없는 스킬도 있었지만, 운 좋게도 그는 엄청나게 강력한 스킬을 얻었다.
이 스킬 하나 때문에 전투에 있어서는 어떤 A급이 와도 두렵지 않았다.
물론 위에는 위가 있는 법이지만… 설사 S급이 오더라도 소용없을 것이다.
‘내 뒤에는 그분들이 있으니…….’
쓸데없는 걱정을 필한은 가볍게 날려 보냈다.
지금 그는 호화스러운 펜트하우스에서 수많은 여자에 둘러싸인 채 술을 즐기고 있었다.
인생을 즐길 시간이다.
“크하하핫!”
“오빠,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그의 옆에 비키니 차림으로 앉아 있던 여자가 물었다.
배우 출신인 새롬. 필한이 가장 아끼는 여자였다.
옛날 같았으면 멀리서도 구경하기 힘들었을 여잔데… 필한은 그녀의 몸매를 아래위로 훑고는 씩 웃었다.
“인생! 흐하핫!”
“뭐야, 이상해.”
“이상하긴! 너 이 오빠가 아주 오늘 이상하게 만들어줄까? 응?”
그때, 갑자기 노래가 꺼지고 붉은 등이 들어왔다. 춤을 추고 놀던 여자들이 소스라쳤다.
“꺅!”
“뭐야?”
침입자를 알리는 경고등. 혹시 몰라 설치는 했지만, 작동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필한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무전기를 들었다. 어차피 고장이겠지.
“어이! 뭔 일이야?”
“살려… 크억!”
“두목! 괴물이… 으아악!”
지지직!
빠직.
필한의 손에서 무전기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뭐지?’
대한민국에 감히 모기파와 대립하는 조폭은 없다.
처음에는 잠시 반기를 든 놈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필한 만큼 강한 놈도 있었다.
신촌의 개파이.
인천의 고릴라.
부산의 대가리.
모두 ‘그분들’께서 직접 나서 정리했다.
단 하룻밤 만에.
살아남은 것은 그분들의 강함을 진즉에 알아차리고 엎드렸던 필한뿐.
이제 와서 반기를 드는 놈이 나타날 리가 없다.
뭔가가 있다면…….
‘게이트인가?’
파주에도 당연히 게이트는 나타난다. 레벨이 낮은 게이트인 경우, 직접 정리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협회에 돈을 받고 게이트 입장권을 파는 것도 꽤 쏠쏠한 수입원이었다.
물론 그렇게 뜯어낸 돈 중 일부는 헌터 협회의 고위 직원들에게 들어가기도 한다.
일종의 상부상조하는 관계인 것이다.
‘괴물’이라고 했으니 분명 근처에서 게이트라도 열린 거겠지.
“양태! 애들이랑 확인하고 와!”
양태가 머리를 긁적였다. 막 여자의 등에 뿌려놓은 마약을 흡입하려던 찰나였다. 한창 재미있었는데.
“예? 제가 말입니까? 두식이 보내시죠?”
“네가 가! 그게 빠르잖아!”
“쓰흡, 알겠슴다.”
싸가지는 없지만, 양태의 강함은 B급 상위. 간부 중에서는 가장 강하다. 방어 계열 스킬도 있으니 지더라도 사태를 파악하고 올 수는 있겠지.
필한은 느긋이 소파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1분 후.
콰앙!
강철로 된 문이 휴짓조각처럼 날아갔다.
“컥!”
“으악!”
“꺄악!”
즐겁던 파티장이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 됐다. 필한은 반사적으로 스킬을 발동했다.
그의 주먹에 노란빛이 깃들었다.
[강인한 주먹]
―300초 동안 주먹을 힘 스테이터스에 비례해 강화한다. 주먹에 맞은 상대가 상태이상 ‘그로기’에 빠질 가능성이 5% 증가한다.
―설명 : 강철 같은 주먹!
“어떤 새끼야!”
마력이 실린 외침이 흙먼지를 날려 보냈다. 걷히는 흙먼지 사이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봉두난발에 붉은 눈.
이현이었다.
한 손에는 피투성이가 된 양태가 뒷덜미가 잡힌 채 늘어져 있었다.
“네가 강필한이냐?”
필한이 외쳤다.
“죽여!”
조직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이현은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무기를 치켜든 순간, 이현의 발이 흐릿해졌다.
콰콰쾅!
기관총 같은 소리가 나더니 발등이 죄다 납작해졌다.
“끄아악!”
“뜨악!”
“내 발!”
나뒹구는 조직원들을 뒤로하고 이현이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의 손에 초주검이 된 양태가 질질 끌려 나왔다.
얼굴이 알아보기 힘들 만큼 뭉개져 있었다. 필한은 경악했다.
‘저 양태가? 고작 몇 분 만에?’
게다가 이현은 상처도 없었다.
툭.
이현이 양태를 들어 올렸다.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필한과 눈이 마주친 양태가 움찔 떨었다. 그 싸가지 없던 놈이 완전히 겁에 질렸다.
이현이 양태를 한 손으로 든 채 물었다.
“이놈이 강필한이야?”
“쿨럭.”
양태의 입에서 옥수수 낱알 같은 것이 우수수 터져 나왔다. 피가 한 움큼 흘러나왔다.
“맞냐니까?”
“끄…르륵…….”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는지 양태가 끄덕였다. 이현이 양태를 휙 뒤로 던졌다.
쿠당탕!
땅에 떨어진 양태가 한 번 꿈틀하더니 축 늘어졌다.
피에 젖은 손을 툭툭 턴 이현이 필한을 올려다보았다.
이현이 필한을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말단 조직원 한두 놈을 잡아와 봐야 교체가 될 뿐 끝이 없다. 앞으로 당분간은 파주에서 살아야 할 텐데, 이런 놈들이 계속 찾아와서 빈이가 놀라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교육에도 안 좋고.
그러니 머리를 자를 생각이었다.
앞으로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
“꿇어.”
필한의 두터운 눈두덩이가 꿈틀 움직였다.
“…뭐?”
“꿇으라고. 그게 너와 나의 눈높… 아니, 자연스럽게 나왔네. 아무튼 꿇으면 목숨은 살려주지. 꿇어.”
필한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놈 같다.
‘하지만 강하다.’
양태를 초주검으로 만들고 저 문짝을 파괴한 힘은 얕잡아 볼 것이 아니다.
이래 봬도 필한은 전투 경험이 많았다.
필한은 뚜벅뚜벅 다가가 그의 앞에 섰다. 바윗돌처럼 단단한 주먹의 뼈마디에서 우둑우둑 소리가 났다.
“아주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어떻게 죽고 싶냐?”
“자연사.”
이현의 손가락이 그의 명치를 톡 찔렀다.
쾅!
“크악?!”
순간 떠오른 것은 날아든 철근.
대비하고 있었건만, 몸이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 수영장에 빠졌다. 물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꺄악!”
“엄마악!”
수영장에 있던 여자들이 벌벌 떨며 허우적거렸다. 필한은 쿨럭, 물을 토하고 빠져나왔다.
명치가 욱신거렸다. 단 한 방에 내장까지 흔들렸다.
“씨이…발…….”
“오, 넌 좀 강하구나. 두목은 두목이네?”
양태 수준이겠거니 하고 그 정도의 힘을 실어서 쳤는데 제법 멀쩡해서 하는 말이었다.
그래봐야 큰 차이는 없었지만.
“입 닥쳐! 우오오오!”
필한이 수영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물 안에서의 도약이었음에도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뛰어올랐다.
동시에 스킬이 발동했다.
[각성 ― 야성의 힘]
―180초간 LV 5상승. 모든 스테이터스가 20% 상승하며 ‘LV 3 재생’, ‘LV 3 야수의 털가죽’을 얻는다. 보름달이 뜬 밤에는 모든 효과가 30% 증가한다.
―설명 : 야수 같은 삶을 살아온 남자에게는 야성이 깃든다.
쿠웅!
필한이 대리석 바닥을 깨부수며 착지했다.
머리카락과 온몸의 털이 황금빛으로 일렁이며 길게 자랐다. 숙였던 몸을 펴자 원래도 컸던 몸이 3미터의 거구로 변했다. 이현의 눈이 흔들렸다.
“길가메시?”
먼 옛날 어떤 숲에서 맞닥트렸던 강자.
그 당시 이현은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다. 죽을 뻔했지.
그때 느꼈던 긴장이 살며시 떠오르려다가… 가라앉았다.
“크크크…….”
필한은 재생의 능력으로 명치의 통증이 가시는 것을 느끼며 웃었다.
이 각성 스킬을 쓰고 있는 동안, 순수한 신체 능력만큼은 A급을 초월… 그의 생각으로는 S급에도 준하는 힘을 갖게 된다.
단 3분이라는 제약이 있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적을 분쇄하기에는 충분했다.
심지어 오늘은 만월의 밤!
각성의 힘이 훨씬 강해지는 순간이었다.
“하필 오늘 여기를 찾아오다니, 멍청한 놈…….”
몸에 흐르는 충만한 힘에 자신감도 함께 차올랐다.
지금이라면 ‘그분들’과도 일 대 일이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감히 입밖에는 낼 수 없는 말이지만.
“크르르…….”
짐승처럼 튀어나온 주둥이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럴…수가…….”
“크크크… 놀랐나? 내가 이렇게 강화될 줄은 몰랐겠지.”
스킬 ‘강인한 주먹’까지 사용한 필한은 온몸의 마력을 오른손에 집중했다.
필살기.
이름하여 ‘대포권’.
단순히 마력을 담은 라이트 스트레이트지만, 그 위력은 대전차포에 필적한다. 만월에 강화된 지금은 어느 정도일지 스스로도 상상이 안 됐다.
“뒈져랏!”
후웅!
필한의 몸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일어나며 돌을 깨부수고 파편을 흩날렸다.
멍한 표정으로 선 얼굴에 주먹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앙!
거세게 폭발한 바람이 방을 온통 휩쓸었다. 창문이 깨지고 벽이 흔들렸다.
완벽하게 들어갔다. 필한은 이현이 죽었으리라 확신했다. 방어라도 했으면 모를까, 무방비하게 이걸 얼굴에 처맞고 살아남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먼지가 가라앉자 멀쩡하게 선 이현이 나타났다.
“뭣?!”
실망에 찬 이현이 손등으로 그의 배를 툭 쳤다.
“얌마. 흉내를 낼 거면 제대로 내라.”
쾅!
“크아아아악!”
포탄에 맞은 듯 일직선으로 날아간 필한이 깨진 유리창을 넘어 맞은편 빌딩의 안에 떨어졌다.
공사 중이라 툭 튀어나온 철골에 허리가 부딪쳤다.
우직!
“크웩?!”
툭 떨어진 필한이 눈을 깜박였다.
허리 위는 불타는 듯이 아픈데, 하반신은 사라진 듯 감각이 없었다.
이현의 신형이 그의 앞에 훅 나타났다.
“응? 척추가 부러졌군. 그러게 착하게 살았어야지.”
지가 때려놓고 천벌이라도 받은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필한은 순간 억울함에 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피거품을 게워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뭐… 그렇게 된 이상 나쁜 짓은 더 못하겠지. 잘 있어라.”
잠시 후, 난장판이 된 펜트하우스의 소파 뒤에서 한 남자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간부 중 하나인 성락이었다.
‘괴… 괴물이다. 저 보스를 단숨에…….’
하지만 이건 자신이 다음 보스가 될 기회이기도 하다. 양태가 멀쩡했다면 하지 못했을 생각이지만 그도 지금은 걸레짝.
성락은 후다닥 어디론가 달려갔다.
안쪽의 침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성락은 전화기를 들었다. 3초 정도 발신음이 간 후, 매끄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H&M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모기상사 성락이다! 중요한 일이야. 사장님과 직접 통화하고 싶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