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5화 (5/150)

5화. 이게 게이트? (1)

거대한 괴물이 팔을 들었다.

“허억, 헉!”

남우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러나 늪과 같은 땅이 디딜 때마다 발목까지 빨아들였다.

결국 괴물의 손이 그를 낚아채 들어 올렸다.

새카만 그림자 속에서 세 줄기 흉터로 일그러진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날 버리고 도망쳤나.

괴물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팔이 멈췄다. 남우의 볼에서 눈물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 쿵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헉!”

남우는 땀과 눈물에 젖은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꿈이었다.

다시 한번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쿵쿵쿵!

“오빠! 오빠! 밥 먹어!”

눈물을 닦고 나가자 거실에 여동생인 희수가 상을 펴놓고 앉아 있었다. 희수가 걱정스레 그를 보았다.

“오빠 또 악몽 꿨어?”

남우는 고개를 젓고 애써 웃었다.

“괜찮으니까 너나 신경 써. 연예인 한다고 바쁘면서 무슨 아침밥을 매일 차리냐.”

“나 아니면 오빠 밥 안 먹잖아. 꼬우면 밥 좀 잘 챙겨 드시던가.”

남우는 피식 웃고는 밥상에 앉았다가 문득 희수를 보았다.

피를 나눈 동생이지만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갸름한 얼굴에 쌍커풀 짙은 눈, 늘씬한 팔다리. 아직 중학생이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미모였다.

문제는 아이돌이 되고 싶은 예쁜 아이들은 널렸다는 것이다.

희수가 하고 싶은 걸 시켜주고 싶지만, 희망이 안 보이니 걱정만 됐다.

“근데 오빠, 오늘 일찍 게이트 간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8신데.”

“응?”

맞다. C급 게이트에 서포터로 지원했는데, 운 좋게도 받아주었다.

벼락이 정수리를 찔렀다.

“으아! 늦었다! 희수야, 미안! 오빠 갈게!”

“몸조심해!”

부랴부랴 게이트 앞에 도착한 남우는 쏟아지는 싸늘한 눈길에 뱃속이 시큰거렸다.

D급 서포터에 불과한 그를 받아준 것만으로 고마운 일인데 지각을 해버렸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댁이 D급 서포터 김남우?”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다가왔다. 민머리에 목까지 기어오르는 뱀 문신이 조폭 같았다.

묘한 사투리가 섞인 억양 탓에 더욱 분위기가 험악했다.

“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아… 파티장 B급 딜러 유양구요. 바쁘니 대충 앉아.”

남우는 거듭 사과하며 양구가 가리킨 자리에 앉으려다 흠칫했다.

‘뭐야, 이 사람은?’

봉두난발에 덥수룩한 수염. 체구는 좋은 것 같지만 꼴이 방금 아오지에서 탈출한 모습이다.

‘사람을 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지.’

“반갑습니다. D급 서포터인 김남우입니다.”

남우는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남자가 손을 잡고 데면데면하게 흔들었다.

“C급. 딜러. 이현.”

“그럼 다 모였으니 브리핑 시작하겠소.”

그때 양구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홀로그램으로 된 전광판이 공중에 떠오르자 이현이 오, 하고 입술을 모았다. 외형과 어울리게 원시인 같은 태도다. 남우는 웃음을 꾹 참았다.

“들어갈 게이트 이름은 ‘늑대왕의 삼림’.”

이름은 중요하다. 운이 좋으면 이름만으로 게이트의 환경은 물론 나타나는 몬스터와 그 레벨까지 알 수 있다.

남우도 미리 예상하고 밀림에 좋은 장비들을 챙겨왔다.

“아마 야생 짐승형 몬스터와 식물형 몬스터가 출몰할 것으로 예상되고, 독도 나올 거요. C급 게이트니 아마 보스는 B에서 C급이겠고.”

양구가 척, 턱을 올리고 고압적으로 말했다.

“B급은 나뿐이지? 어차피 보스는 내 거이니, 나머지 여러분들이 잡몹 정리나 해주오. 물론 보스 보상은 내가 갖고. 이의 있소?”

여섯 명의 파티원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있는데.”

이현의 목소리였다. 양구가 그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이현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기여도에 따라 정확히 분배해야지.”

우리 빈이의 분유 재료를 양보할 순 없다.

일부러 동물이 많이 나올 것 같은 게이트로 골랐는데 어림없지.

거기다 보스라면 가장 맛있는 놈일 것이다.

이현은 진지했다.

“하… 지금 같은 딜러라고 맞먹나 본데, 난 B급, 댁은 C. 평균 전투력이라고 아오? 수치상 세 배 차이가 나오. 바보도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내가 댁보다 세 배 강하다, 이 말이야.”

C급에서 게이트를 열 번 클리어해야 B급으로 승급할 자격이 주어진다.

전투력뿐만이 아니라 경험치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하물며 양구의 클리어 경험은 무려 삼십 회.

양구에게 이현은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하룻강아지처럼 보였다.

이현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건 그거고 기여도는 다르지. 내가 당신 목숨을 구할 수도 있잖아?”

“뭐……?”

순간 발끈한 양구에게 이현이 비웃는 웃음을 보냈다.

“왜, 나보다 기여도 낮을 것 같아 겁나나?”

“이 얼류즈 새끼가… 좋다. 기여도 순으로 하지. 구해달라고 징징대지나 말라.”

“오, 좋지.”

게이트 내부는 아마존을 연상시키는 빽빽한 삼림이었다. 기묘한 새소리와 벌레 소리가 들렸다.

단숨에 덥고 습해진 공기, 진한 풀 냄새가 다른 차원에 들어왔음을 실감시켰다.

[늑대왕의 삼림]

―한때 삼림을 지배한 늑대왕의 포효가 들려오는 곳. 이곳에서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어차피 전부 늑대왕의 한 끼가 될 것이니…….

이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건?’

스킬이니 딜러니 서포터니 하는 말이 어째 게임 같다고는 생각했는데, 진짜 게임 같은 인터페이스의 설명이 나타났다.

게이트는 차원 균열, 포탈, 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이현도 이런 차원 균열들을 이용해 수많은 차원을 돌아다녔다. 덕분에 여러 차원의 다양한 친구를 사귀고, 때로는 지배하고 구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곳은 지구가 처음이었다.

‘아닌가. 판데모니움이랑 천상의 탑도 이런 게 나왔지.’

하지만 그건 그냥 겉멋이었다. 이런 겁주려는 멘트가 아니라.

‘메피스토나 메타트론을 찾아가서 물어봐야 하나…….’

그때 남우가 앞에서 말했다.

“상태창.”

“……?”

자신한테만 보이는 뭔가가 있는 듯 손을 허공에서 조작한다.

이현은 혹시, 싶은 마음에 따라 했다.

“상태창.”

[이름 : ?이현???]

레벨 : ???

종족명 : ?인?간??

보유 스킬 : ???

칭호 : [판데모니엄의 친구] [위대한 천상의 순례자] [키르단의 황제] [구원자]

갈고리들한테 습격을 받은 상태창을 보니 심히 당혹스럽다.

이 칭호는 다 뭐고.

“진짜 게임 같네?”

이런 현상은 어느 차원에서도 겪어본 적이 없다.

지구에 어떤 개입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뭐… 상관없나.’

위험한 것도 아니고 빈이에게 위험이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더 이상한 일도 많았다.

차원 균열의 틈새에 서식하다가 이동자를 잡아먹는 벌레라던가, 성운의 가스 속을 헤엄치는 해파리, 무한에 가까운 호텔, 모든 색을 빼앗는 태양…….

그런 것들에 비하면 이 일은 사소한 해프닝이다.

앞서가던 남우가 걸음을 멈췄다.

“전방 50미터에서 몰려옵니다! 열… 아니, 열셋! 빠릅니다!”

양구가 양손에 도끼를 들고 나섰다.

“각자 자기 포지션 확인하고 대열 지켜!”

사신의 낫이 풀을 스치며 다가오는 것 같은 소리가 사방을 둘러쌌다. 남우가 다시 외쳤다.

“포위됐습니다! 다들 조심하세요!”

갑자기 덩굴 하나가 홱 날아들었다. 정확히 남우의 목을 노렸다.

“뭐야, 이건?”

이현이 덩굴을 낚아챘다. 슬쩍 당기자 숲에서 커다란 꽃 하나가 딸려와 나동그라졌다.

“키에엑!”

붉은 꽃잎 안에 장어 같은 입이 있다. 뿌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수십 개의 촉수가 다리를 대신했다. 초록색 녹즙을 질질 흘리며 꿈틀대는 모습이 징그러웠다.

[식인 칡]

“오, 채소.”

빈이 밥에 영양가 좋은 채소는 필수지. 이현은 신이 났다.

퍽!

내리꽂은 발에 식인 칡이 뭉개졌다.

그때 연달아 세 개의 촉수가 숲에서 이현에게 날아왔다.

남우가 그 광경에 당황했다.

“위험……!”

이현의 손이 흐릿해졌다. 순식간에 세 개의 촉수가 팔에 감겼다.

이현이 휙 팔을 당기자 꽃들이 허공을 날아왔다. 이현의 발이 세 개의 잔상을 만들었다.

쾅쾅쾅!

폭발한 것처럼 터진 칡들이 땅에 누웠다.

남우는 입을 떡 벌렸다.

C급은 물론, B급 딜러도 몇 번 본 적이 있기에 잘 안다. 이현이 지금 보인 무위는 C급의 수준이 절대 아니었다.

그때 이현이 쪼그려 앉더니 뭘 주섬주섬 챙겼다.

“…뭐하십니까?”

“채집.”

짧게 대답한 이현이 식인 칡의 다리를 해체해 가방에 넣었다.

그런 기행은 숲을 지나는 동안 계속됐다.

[거대 모기]

[광기의 원숭이]

[피바람 멧돼지]

이현이 멧돼지를 어깨에 메며 입맛을 다셨다.

“더는 못 들고 가겠네.”

가방 세 개에 멧돼지 한 마리.

족히 수백 킬로그램은 될 법한 무게를 등에 지고도 이현은 힘든 기색 하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짐을 져서 두 팔이 묶인 상태에서 오직 발만으로 다가오는 괴물들을 분쇄했다.

그 와중 상처 하나 입지 않았으니…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신위였다.

남우는 쓰게 웃었다.

말로만 듣던 S급의 인재일지도 모른다.

현행 헌터 제도는 S급의 전투력을 지녔어도 일단 C급부터 시작하고 있으니.

‘내게도 저런 힘만 있었어도…….’

어머니께 약을 사다 드릴 수도 있었을 테고, 여동생 희수도 중소 기획사에서 고생하지는 않았겠지.

‘질투하지 말자.’

사람은 각자의 삶이 있다. 저 사람도 모습을 보면 무척 고생한 티가 난다.

뭐라도 도움이 되어야지. 남우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현 씨, 짐 좀 들어드릴까요?”

“오, 고맙지.”

이현이 건넨 가방은 꽤 무거웠다. 이 정도면 거의 군장이다.

하지만 남우는 군말 없이 받아들었다.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근데 이건 왜 가져가시나요?”

“취미. 좀 나눠줄까요? 멧돼지 빼고.”

“아… 아뇨, 전 됐습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던 양구가 이를 갈았다.

‘저 자식, 정체가 뭐야?’

양구는 믿을 수가 없었다.

B급 딜러로, 운 좋게도 공격에 특화된 스킬까지 지닌 덕에 그의 능력은 B급에서도 상위권이었다.

그런데 저자가 짐을 지고 싸우는 것조차 따라갈 수가 없었다.

가장 앞에서 적들을 죄다 분쇄하고 있으니, 이대로는 보스를 잡아도 기여도에서 밀릴 지경이다.

아니… 이 게이트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강력한 딜러가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게이트 할당량도 줄어든다는 뜻.

양구의 눈에 살기가 맺혔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