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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3화 (3/150)

3화. 헌터가 되다 (1)

“떠나…십니까?”

옥좌에 앉은 갑옷이 물었다. 괴물처럼 흉악한 해골의 얼굴에 보석으로 치장된 황금 왕관을 쓰고, 새카만 망토를 걸친 기사는 죽음의 왕이라는 이명이 어울릴 듯 보였다.

반면, 그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는 남자는 봉두난발에 수염이 난 얼굴, 허름한 옷을 입었다. 좋게 보면 자연인, 나쁘게 보면 걸인이었다.

커다란 보따리를 어깨에 들쳐 멘 남자가 끄덕였다.

“엉, 가련다.”

“먼 길이 될 겁니다.”

남자가 시선을 하늘로 올리고 중얼거렸다.

“멀겠지…….”

“닿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안다.”

“그래도 가셔야겠습니까?”

“네가 옛날에 그랬잖냐. 하늘 아래 두 왕은 필요 없다고.”

기사의 안광이 부드럽게 휘었다.

“그때 맞은 뼈마디가 아직도 비만 오면 쑤십니다.”

“그렇게 엄살만 안 부리면 더 좋은 왕이 될 수 있을 거야.”

더 이상 말은 필요 없겠지. 남자는 미소 띤 얼굴을 끄덕임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몸을 돌렸다. 그때, 기사가 일어났다.

“은인께 대하여! 경례!”

좌우에 도열해 있던 종족과 성별이 다 제각각인 병사들이 우르르 무릎을 꿇었다.

남자가 쑥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아이~ 오버는.”

기사는 생각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저분이 하는 바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으니…….’

그의 예상은 틀렸다.

이현은 지금, 필사적인 의지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막히는 시도에 분개하고 있었다.

“빈아, 왜 분유를 안 먹니……!”

“부아아!”

일성에게 빌린 돈으로 기껏 사온 분유가 통통한 꼬리에 채여 떨어졌다. 이현은 빈이를 소파에 눕히고 한숨을 쉬며 분유를 치웠다. 벌써 세 컵째였다.

‘그냥 먹이지 말까?’

이렇게 싫어하는데 강제로 먹이려는 것도 가슴이 아프다. 게다가 제 돈으로 산 것도 아닌데 비싼 분유를 낭비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끄흥.”

어렵다.

부모가 된다는 게 이렇게 어려웠다니.

갑자기 전 차원의 모든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그 힘듦을 감내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빠.”

빈이가 그의 품에 매달려 커다랗고 맑은 빨간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언젠가 본, 화산의 심장이라는 붉은 보석이 떠올랐다.

그 아름다운 광채에 감탄했었는데, 빈이의 눈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빛날 빈(彬)자를 써서 빈이라고 지은 것이다.

그럴 리는 없지만, 이현 자신을 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저 입이라던가.

빙긋.

“…그래, 싫으면 조금 이따 먹자.”

이현은 빈이를 안고 TV를 켰다.

[안녕하세요. 티거 그릴스입니다. 오늘은 밀림형 게이트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삑.

[2주 전, 운정에서 실종된 전모 씨와 이모 양의 실종에 중국 동포로 이루어진 폭력조직, 모기파가 개입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모기파는 경기 북부를 광범위하게 장악한 폭력조직으로 거대 중국 마피아인 삼합회와도 커넥션이…….]

삑.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국방도, 중국 의존도가 심하다는 겁니다. 한국인 S급 헌터가 고작 열셋인 데 반해,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중국의 S급 헌터들이 서른 명이 넘지 않습니까?]

[아시다시피 헌터들은 수익도 높습니다. 가장 낮은 C급만 해도 평균 수익이 자그마치 오천이지요.]

[헌터의 힘이 곧 나라의 힘이라고 일컬어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상위 헌터들이 대거로 게이트를 독식하고, 우리나라 헌터들은 지나치게 위험한 게이트로 몰리거나 승급을 못 하고 있어요.]

[헌터 협회 한국 지부에도 중국인 이사가 절반이 넘는다더군요. 돈은 돈대로 나가고, 인재는 다 잃고. 이러다 나라가 홀라당 넘어가게 생겼어요!]

“흠.”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이현은 채널을 자연 다큐멘터리로 돌렸다.

빈이에게 안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설령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다큐에서는 게이트 내의 자연 생물에 대해 CG로 설명 중이었다. 얼마나 기술이 발전했는지 마치 실제 같았다.

푸른 비닐을 지닌 커다란 도마뱀이 생고기를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었다.

근데 어째 빈이가 조용하다. 이현이 아래를 보니, 빈이는 양손을 공룡처럼 하고는 씹어 먹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응?”

빈이가 입을 크게 벌렸다가 양손을 모아 입을 가렸다.

“아우.”

설마?

이현은 구석에 있던 배양육 캔을 가져와서 땄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슬쩍 입에 들이밀자 빈이가 와락 양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꿀꺽.

“우야!”

맛있었는지 손을 팡팡 위아래로 치며 더 달라고 보챘다.

정답이었다. 인간이 아니니 먹는 것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이현은 도마뱀 흉내를 내며 수저를 들었다.

“크아앙~ 냠.”

“마아!”

우물우물.

“빠아!”

고기 하나를 삼킬 때마다 방긋방긋 웃는다. 이현도 절로 미소가 나왔다.

캔 하나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원래 이렇게 많이 먹나?’

아직도 모자라다는 듯 빈이는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렇게 먹었는데 이상하게 배가 나온 기미도 안 보였다.

잘 먹어서 이상하다. 좀 이상하지만 그랬다.

혹시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 이현은 마력을 집중해 빈이의 몸을 살폈다.

“응? 이건…….”

빈이의 심장을 두른 세 개의 마력 띠가 보였다.

‘이건 마력 서클… 아직 갓난아이가, 셋이라고?

지구에서는 마력으로 불리는 이 힘은 기력, 생명력, 존재력 등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생명의 근원이자 원천. 보통 사람의 경우 몸에 그저 흩어져 있을 뿐, 활용할 수 없다.

이것을 활용하는 자들은 공통적으로 심장에 고리 형태로 마력이 묶였다. 이현의 심장에도 10개가 형성돼 있다.

빈이는 이 어린 나이에도 마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마력의 고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 먹성도 당연했다.

“훗.”

역시 내 딸. 천재로군.

이현은 우쭐했다. 다른 대륙에서는 평생 수련해도 3서클이 못 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빈이는 벌써 3서클인 것이다.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천부적 재능.

‘우주 제일 천재일 거야.’

그러나 우쭐함도 잠시, 걱정이 들었다.

마력은 휘발성이 강하다. 생명이 살아가며 쌓는 것이라 배양육 같은 인공 합성물에는 극히 적다.

당연히 죽은 지 오래된 고기에도 마력이 적다.

빈이를 위해서는 갓 죽은… 그것도 마력이 풍부한 고기가 필요했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할 것이다. 뉴스에서 헌터는 돈을 잘 번다고 했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헌터 자격증이 필요하다.

‘헌터가 돼야겠군.’

이현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화분에 물을 주고 있던 일성이 그를 보았다.

“왜요?”

“헌터가 되려고 합니다. 방법을 좀 알려주십시오.”

일성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언제고 이현에게 헌터가 되기를 추천할 생각이었다. 그라면 분명 훌륭한 헌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걱정이 되어 망설이고 있었다.

만약 그가 게이트에서 죽기라도 하면 아이는 어쩌겠는가.

“현 군. 헌터는 위험한 일이에요.”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심이 확고한 눈이다. 일성은 말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당장 헌터가 될 순 없어요. 헌터 시험은 일 년에 네 번 있거든요. 필기, 실기가 있어서 공부도 하고, 준비도 해야 해요.”

“아… 그럼 가장 가까운 시험이 언제죠?”

“잠시만요.”

일성이 핸드폰을 만지더니 말했다.

“이런, 일주일 후군요. 다음 시험을 보는 게 좋겠어요.”

“일주일…….”

그 정도는 배양육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일성이 빙그레 웃었다.

“일단 귀환 신고부터 하죠. 돈이랑 여러 지원도 받을 수 있거든요.”

* * *

헌터 협회의 건물은 언제나 붐빈다.

새로 헌터가 되려는 사람, 헌터 협회의 직원들, 게이트 진압 과정에 휘말려 민원을 제기하러 온 민간인 등…….

그리고 사람이 열 명이 있으면 그중에는 반드시 병신이 한 명 있다.

헌터 협회 접수처 직원 아영은 이를 병신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명명하고 깊이 신뢰했다.

경험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봉두난발의 남자를 본 아영은 또다시 병신 질량 보존의 법칙이 발동했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긴장했다.

“네, 어떻게 오셨어요?”

“실은 제가 5년 만에 게이트에서 귀환을 했는데요.”

생긴 것과 다르게 깊이 있는 목소리에 놀란 것도 잠시, 말의 내용에 아영은 당황했다.

“네? 5년…이시라고요?”

“네.”

이 인간이 무슨 개뻥을.

아영은 한숨을 간신히 틀어막았다.

가끔 있다.

협회에서 제공하는 복지 혜택을 공짜로 받으려는 사기꾼들.

헌터 협회에서는 게이트 생환자들에게 정보를 받는 대가로 다양한 생필품을 제공하며 정착을 도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부정한 방법으로 지원금을 받으려는 자들도 늘어난 것이다.

그렇게 부정 수급을 해갈 경우, 정말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못 받게 된다는 점에서 어지간한 진상보다 더 악질이었다.

“네, 그럼 여기 서류에 동그라미 친 부분 작성해주시겠어요?”

이현이 서류를 써서 건넸다.

그의 정보를 검색한 아영의 미간에 힘이 모였다.

‘전산 기록이 5년 전이 끝이기는 한데… 실종신고는 안 됐는데?’

“마력을 측정해야 하니, 거기 보이시는 검은 패널에 손 올려주시겠어요?”

이현이 패널에 손을 올렸다.

대부분의 진상이 이 단계에서 걸러진다. 게이트에 들어간 적이 없으면 마력 측정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측정기에 곧장 ‘측정 불가’가 떴다. 아영은 생긋 웃었다.

“마력 측정이 안 되시네요. 게이트에 있다 오셨으면 돼야 정상이시거든요.”

이현이 제 손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럴 리가…….”

“측정이 안 되는 경우는 두 경우예요. 측정기 임계 수치를 넘으실 정도로 너무 높거나, 일반인 수준으로 낮거나. 참고로 S급 헌터분들께서도 임계 수치를 넘지는 않으시답니다.”

그러니까 사기 치지 말고 얼른 집에 가라.

이현은 생긋 웃는 눈에 쓰인 말을 읽지 못했다.

‘그렇군. 너무 높단 말이지.’

이현은 일성의 마력을 떠올렸다.

주목을 받고 싶지는 않다. 매스컴에 노출되기라도 하면 빈이를 키우기가 곤란해진다. 하지만 너무 낮으면 게이트 출입에도 불이익이 있다고 일성이 말했다.

적당히… 일성보다 조금 강한 정도가 좋지 않을까.

“다시 측정 부탁드립니다.”

진상들은 원하는 걸 얻기 전까지는 실랑이를 벌여도 나가지 않는다. 아영은 심드렁하니 기계를 다시 켰다.

“올리세요.”

이현이 척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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