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귀환
오늘 아침 아이돌이 죽었다. 저녁은 누굴까? 재수생? 할아범?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
D급 헌터인 ‘백수신선’ 남우는 점심으로 먹은 보급 식량이 뱃속에서 체조하는 기분이 들었다.
남우는 2037년 5월 7일 파주로 왔다. 별안간 나타난 D등급 게이트 때문이었다.
협회에서는 C급 딜러 한 명과 C급 탱커 한 명, 남우를 포함한 D급 서포터 두 명으로 이루어진 분대를 구성해 게이트로 보냈다.
언제나처럼 위험하지만 지루한 임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떨리는 손은 무시했다. PTSD 하나쯤 없는 헌터는 없다.
어제 저녁까지는 예상이 들어맞았다.
게이트 안쪽은 황량한 바위산이었다. 보랏빛 하늘 아래, 멀리 마녀의 고깔모자 같은 산 하나가 인상적인 풍경.
D급 정도로 보이는 괴물들이 바위산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검은 악몽의 유생]
뒤엉킨 먼지 같은 모습의 시커먼 괴물이었다. 하나하나가 최소 D급의 마력을 지녔지만, 그것뿐이었다.
산이나 독을 뱉지도 못하고, 오크들처럼 무리를 짓고 진형을 짜지도 못하는 짐승 수준.
솔직히 쉬웠다.
일은 고깔모자 같은 산 아래에 도착한 순간에 벌어졌다.
축 늘어져 있던 고깔모자의 끄트머리가 스르르 들렸다. 수백 개의 황색 눈이 그들을 주시했다. 산인 줄 알았던 것은 산이 아니었다. 산처럼 거대한 생물이었다.
[검은 악몽의 주신]
오… 오오오오… 오오…….
그것의 울음소리는 사탄이 지옥의 성경을 읊는 소리처럼 장엄하면서 불경하고, 끔찍했다. 남우는 본 순간 깨달았다. 모두가 알았다.
저건 감당할 수 없다.
본능적으로 모두가 동시에 몸을 돌려 도망쳤다. 주신의 아래에서 우글우글 몰려나오기 시작한 작은 괴물들에게 둘러싸이지 않은 것은 천운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도망칠 순 없었다.
탱커인 재훈이 시간을 벌었다. 남우와 나머지 헌터들은 게이트 밖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가는 길목의 병목 지형에 괴물들이 득실대고 있었다.
다행히 근처에서 동굴 하나를 발견하고 숨었다. 천우신조로 들키지 않았다.
아직은.
남우는 바위산 위로 기어 올라갔다.
멀리 게이트 앞까지 새카만 괴물들이 50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들어올 때는 쉽게 처치했던 놈들이지만, 딜러와 서포터만 남은 지금은 난적이었다.
―남우 학생, 어떻습니까?
인이어로 들려온 목소리에 남우는 놀라서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같은 서포터인 일성이었다.
“아직 득실거립니다. 그쪽은요?”
떨리는 목소리가 대답했다.
―안전합니다. 아직은.
“다행이네요.”
아니, 이 상황을 과연 다행이라고 할 수 있나. 남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살아남은 건 셋. 남우와 서포터인 일성, 딜러인 성찬.
식량은 셋이서 이틀 치. 밖으로 구조를 요청하는 무인 드론을 보냈지만 무사히 갔는지, 언제 구조가 올지도 모른다.
구조대가 구하러 오는 것이 가능할까. 저 괴물은 어쩌면 과거 중국을 초토화시킨 멸망 등급에 준할지도 모른다. 헌터 협회가 인류를 위해 소수를 포기하겠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불현듯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3년 전 뇌졸증으로 한 번 쓰러지신 후, 아직 몸이 불편하셔서 제대로 된 일은 하실 수 없다.
8살 어린 여동생은 이제 갓 중소 기획사의 연습생이 됐다. 중소의 신화를 보여주겠다며 당차게 포부를 밝히던 여동생의 얼굴이 떠오르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가 여기서 죽으면 지원이 끊긴 여동생의 꿈도 끝이다. 꿈이 뭐냐. 밥 먹는 것부터 문제다.
그 녀석,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컸는데.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5년 전 첫 게이트 폭발 이후, 수많은 사람이 죽는 가운데 지금껏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남우 학생. 우선 돌아와요. 저녁이라도 먹으며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보죠.
“…알겠습니다.”
동굴로 돌아오자 일성이 싸구려 전투식량을 데우고 있었다. 딜러인 성찬은 부상을 입은 몸을 벽에 기대고 헐떡이고 있었다. 포션을 먹었지만,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일성이 주름진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띠고 전투식량을 내밀었다. 얼굴을 가로지른 세 줄기의 흉터가 무시무시했다.
첫 게이트 폭발 때 일성은 불행하게도 근방에 살았다. 아파트 외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가고일을 막다가 발톱에 얼굴을 당했다. 당시의 혼란 탓에 수술하지 못했는데, 상처로 스며든 마력이 그에게 탐지 능력과 함께 뒤틀린 비웃음을 각인시켰다.
일성은 영광의 흉터라고 말했다. 남우에게는 공포를 상기시키는 흉터였다.
“고생했어요. 어서 들죠.”
남우는 김이 따끈따끈 오르는 전투식량을 가만히 보았다. 이걸 먹고 몸무게를 불리면 오히려 괴물들에게 좋은 일 아닌가?
“남우 학생,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살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요?”
물은 것은 벽에 기대어 있던 성찬이었다. 딜러로서 가장 앞에서 길을 뚫느라 그의 목소리는 피리처럼 가늘었다.
“무슨 수로, 삽니까? 시발, 밖에 봤잖아요. 놈들이 득실거리는 거.”
일성이 점잖게 말했다.
“성찬 씨. 우선 먹고 회복해요.”
“다 죽을 겁니다. 우린, 다 죽을 거예요…….”
아마 존댓말을 쓰는 게 성찬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중이었을 것이다.
남우도 마찬가지의 심정이었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때 일성이 밥을 뜨며 말했다.
“제가 미끼가 될게요.”
“예?”
멍하니 보는 남우의 시선을 무시하고 일성이 말했다. 산책이라도 나가는 듯한 말투였다.
“내 얼굴에 이 상처 생겼을 때… 할멈이 하늘로 갔어요. 깨어나서 나중에 알았지요.”
그의 눈에서 눈물 대신 회한과 쓰라린 추억이 흘렀다.
“항상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보고 싶다고 내 마음대로 갈 수가 있나.”
그리움에 옥상이라도 올라갔다 온 날이면, 여지없이 꿈에 나타나 말렸다.
―영감, 내 생각 말고 열심히 사시오.
―최대한, 최대한 늦게 오세요.
젖은 베개만 두고 일어나 그러겠다, 당신 위해서라도 살겠다, 홀로 되뇌었다.
“두 목숨 살리고 가면… 할멈도 잔소리 안 하겠지.”
남우는 가슴이 먹먹해 말을 할 수 없었다. 늙은이가 뭘 알겠냐고 무시하던 마음이 죄스러웠다. 일성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니, 어서 드시고 체력 보전해요. 달리려면 힘이 있어야지요.”
“어르신…….”
일성의 손을 잡은 남우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대신 하겠습니다. 어떻게 할아버님께 그런 일을 맡깁니까.
하지만 내가 죽으면 여동생도, 어머니도 죽는다. 이 험한 세상, 더 심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겁한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죄송합니다…….”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 * *
18:30.
네 시간을 기다렸지만, 구조대는 소식이 없었다.
이제 움직여야 했다.
남우는 성찬과 함께 바위틈에 몸을 움츠리고 앉았다.
멀리, 나이에 맞지 않게 꼿꼿이 걸어가는 일성의 등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남우는 중얼거리고는 검은 악몽의 주신을 보았다. 그것은 여전히 산처럼 우뚝 서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계속 그래야만 하는데.
그때, 일성이 앞으로 달렸다.
계획은 간단했다. 일성이 게이트 쪽에 몰려 있는 괴물들을 바깥으로 유인한다. 그러면 생기는 공백을 파고들어 탈출한다.
일성이 스킬을 발동했다.
[토끼뜀]
―300초 동안 이동속도 5%, 점프력 5% 상승. 체력이 50% 이하일 때 효과 두 배 증가.
―설명 : 때로는 포식자에게서 도망치는 토끼처럼 목숨을 걸고 달려야 살아남는다.
이 스킬이 있기에 미끼를 자처했던 것이다. 희생하겠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일성은 완전히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가능하면 살고 싶었다.
“후욱, 훅!”
헌터 일을 하는 데에는 꾸준한 체력 관리는 필수다. 매일 두 시간 동안 사이클을 탄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괴물들의 속도도 만만치 않았다. 일성은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새카맣게 우글거리는 파도가 바위 사이로 흐르고 넘쳤다. 엎치락뒤치락 게걸스럽게 촉수를 흔드는 모습은 춤을 추는 것처럼도 보였다.
‘종말 직전 같구만!’
그래도 멀리, 게이트에 가까이 가는 두 인영이 보였다. 주름진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마음은 상쾌했다.
일성은 길을 찾을 생각은 않고 무작정 뛰었다. 어느새 절벽이었다.
돌아갈 수는 없겠다. 일성은 절벽에 서서 앞을 보았다.
하늘을 가릴 듯 선 거대한 괴물의 몸에서 황색 눈이 돋아났다. 울퉁불퉁한 그림자가 움직이더니 불규칙적으로 꺾인 팔과 촉수가 나타났다.
“오… 오오오…….”
팔과 촉수가 천천히 그에게 향했다. 어머니가 아이를 끌어안으려는 듯 자애롭게까지 보이는 동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파괴적이었다.
대기가 진동했다. 대기를 구성하는 마력 자체가 팔의 움직임을 따라 떨리고 있었다.
코피가 주륵 흘렀다. 온몸이 와이어로 찢기는 것 같은 고통이 일었다. 그러나 일성은 알 수 있었다. 지금 그가 겪는 이 현상은 저것에게는 공격도 아니었다. 아마 복서가 잽을 지르기 전에 잠깐 숨을 멈추는 것과 같은, 준비운동조차 아닌 무엇인가다.
일성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에 보는 풍경으로는 제법 장관이었다.
‘할멈… 금방 가요…….’
폭음이 울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콰앙!
산처럼 거대한 괴물의 몸 중앙에 거대한 원형의 구멍이 뚫렸다. 폭풍 같은 충격의 여파가 일성을 휩쓸어 쓰러트렸다. 이후 검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일성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쳐다봤다.
그때, 그의 앞에 한 남자가 착지했다. 절벽 전체가 진동했다.
쿠웅!
커다란 붉은 알을 옆구리에 낀 남자였다.
간편한 셔츠에 바지 차림. 덥수룩한 수염과 아무렇게나 목 뒤에서 묶은 검은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천천히 허물어지는 괴물을 뒤로하고 남자가 붉은 안광을 빛냈다.
입을 떡 벌리고 주저앉은 일성에게 남자가 물었다.
“지구로 가는 길이 어딥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