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권 24화
524화
‘……이 기세라면 길어 봐야 5분 남짓인가.’
절대 길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 었다.
헌데 서준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지금의 상태라면 충분히 가능 해.’
이번 휴식을 통해 단순히 몸을 회복한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 강력한 무공 들을 얻어냈고, 또 새로이 만들어 냈다.
‘무공.’
지금의 서준이 존재할 수 있게끔 해준 힘, 근간이라 불려도 손색없 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니오그타가 공멸을 꿈꾸며 빚어 낸 블랙홀을 충분히 제거해낼 수 있었다.
아주 먼 과거, 고대 신들과 전쟁 을 벌였던 그 기억 속의 무공을 펼 쳐낸다.
복잡하거나 화려한 동작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식이라 할 것 도 없었다.
그저 검이 이끄는 대로, 최고의 검로를 그려낸다.
단 한 번, 혼돈기로 빚어낸 검이 회색빛 기운을 흩뿌리며 일(一)자 로 그어진다.
겉모습만 보자면 별것 없어 보이 는 그 일격이다.
허나 그 여파는 실로 대단했다.
서걱-!
우주 전체로 퍼져나가던 암흑 물 질들이 갈라진다.
아니,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절 단됐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그 검격을 본 니오그타의 눈이 휘 둥그레졌다.
‘암흑물질이……
완전히 베어졌다.
놀라는 시간조차 사치였다.
다시 한번 서준의 팔이 휘둘러진 다.
완벽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차원
자체를 절단시켜버린 검격이 이번 에는 니오그타의 육신을 향해 날아 온다.
서걱-!
“끄아아아-!”
니오그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전신에 두르고 있던 암흑물질이 볼품없이 베어졌다.
그 안에 있던 육체가 갈라지며 근육이 끊어지고, 뼈가 잘려나간다.
끔찍한 고통이 밀려온다.
원래라면 이러한 상처쯤은 삽시
간에 회복해낼 수 있었다.
허나 어째서인지 상처가 회복되 지 않고 있었다.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돌아올 수 없는 상처, 차원이라 불리는 세계 선 자체가 완전히 절단된 느낌이 든다.
베어진 상처에서 뜨거운 피가 쏟 아지며, 끔찍한 고통이 계속 이어 진다.
고대의 존재로서 살아온 니오그 타에게는 익숙지 않은 고통이다.
‘제발……! 살려줘-!’
속으로 간절하게 외쳤지만 눈앞
의 현실은 냉혹했다.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진 육신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허나 기이하게도 미쳐버릴 것만 같은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강타한 다.
마음 같아서는 차라리 영멸을 맞 이하고 싶었다.
허나 끈질긴 생명력은 니오그타 의 의식을 계속해서 잡아내주었다.
때문에 고통의 시간은 영겁과 같 이 계속된다.
“끄아아아-!”
거대한 괴성을 내지르고 있던 니 오그타의 신형이 눈이 뒤집혀 바닥 으로 떨어져 내린다.
쿵-!
고대의 존재로서, 신의 자리를 노렸던 또 하나의 이레귤러인 니오 그타는 그렇게 지상으로 추락했다.
우주 변방의 한 행성.
서준은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신음만을 흘리고 있는 니오그타를 방치해둔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스승, 위지강이 있는 곳이다.
위지강은 먼 거리까지 도망간 리 벨리온 연합군과 다르게, 주변에 남아서 전황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 문에 쉽사리 도착할 수 있었다.
뒤이어, 빠른 속도로 지상에 안 착하고 있는 서준을 보며 위지강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정말 괴물이 됐구나.”
고대 신에 오른 이후로 어느 정
도 격차가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리 크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언젠가는 분명 닿을 수 있을 것 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방금 전 일격은 확실하게 달랐다.
절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압도 적인 격차였다.
“그냥 기억을 찾아왔을 뿐입니 다.”
“기억?”
“잘못된 과거이기도 합니다, 그 래서 지금이라도 바로잡으려 합니 다……
서준의 시선이 위지강의 눈동자 를 웅시한다.
“……설마 이 늙어 빠진 스승님 을 부려먹을 심산인거냐?”
“확실하게 보답하도록 하겠습니 다.”
“방금 사용한 무공이라도 가르쳐 줄 셈이냐?”
“차원 절단이라면 얼마든지 가르 쳐드릴 수 있습니다.”
위지강이 없었다면 니오그타는 서연의 힘과 육신을 모두 흡수해냈 을 것이다.
방금 전처럼 니오그타를 쉽게 제 압해내지도 못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고작 무공 하나를 가르쳐주는 것 은 그리 큰 대가도 아니었다.
“차원 절단이라……. 허무맹랑한 것 같은데, 직접 본 것이 있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름이구나.”
문득, 그토록 강력해 보였던 니 오그타가 저처럼 처참한 몰골이 되 어 지면을 나뒹굴고 있는 게 당연 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를 베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차원 자체를 갈라내고 완전히 분리시켜냈다.
무극에 달해있는 위지강이라 할 지라도 그 검격을 정면에서 받아낼 도리가 없었다.
“지금 곧장 이론 정도는 가르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위지강이 고개를 내저으며 미소 를 보인다.
“농담이었다, 스승이 제자에게 배워서야 체면이 서겠느냐, 맡기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나 말해 보거 라.”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
니다.”
위지강의 입가에서 헛웃음이 흐 른다.
“또? 얼마나?”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시 간 축이 다른 곳인지라.”
“걱정 말고 갔다 오도록 하여 라.”
서준이 허리를 기역자로 꺾으며 인사를 건넸다.
“최대한 빠르게 돌아오도록 하겠 습니다.”
“그래, 그래, 이야기는 잘 전해주
도록 하마.”
위지강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서준의 신형이 곧장 사라진다.
멀지 않은 거리, 니오그타가 널 브러져 있는 행성으로 이동을 한 것이었다.
후웅-!
바람 소리와 함께, 서준의 신형 이 니오그타가 추락한 차원 내부에 안착하는 순간이었다.
“죽여......!”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와 함께 니오그타의 육신에서 다시금 암흑 물질들이 퍼져 나온다.
허나 서준의 눈동자에는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
그저 차가운 눈동자로 니오그타 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니오그타.”
애초에 죽이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니오그타의 목숨으로 인한 계약 이 남아있기에 살려두었을 뿐이었다.
때문에 니오그타가 분노하고 있 다 할지라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닥치고 찌그러져 있어.”
동시에 억눌러두었던 기운을 발 산하자, 니오그타의 몸이 사시나무 처럼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내, 힘겹게 발산해내던 암흑 물질이 허무하게 사라져간다.
온전한 상태에서도 이미 비참한 패배를 맞이했다.
그런데 이미 육신의 반이 날아간 상태에서 서준의 힘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볼품없이 바닥에 널브러지게 된 니오그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다.
치욕스럽다.
동시에 고대 신을 노렸던 존재의 결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허 무하기도 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니 오그타의 정신을 고통스럽게 어지 럽혔다.
“으아아아-!”
내뱉는 절규에 어려 있는 한(恨) 이 세계를 떨게 만든다.
허나 딱 거기까지였다.
니오그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 무것도 없었다.
무심한 눈동자를 한서준은 니오 그타의 머리를 혼돈기로 가격해낸 다.
“끄읍-!”
그렇게 정신을 잃은 니오그타를 허공으로 들어 올린 서준은 찢어진 균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차원의 균열이 일어나며, 아무것
도 없는 회색빛 세계가 모습을 드 러낸다.
동시에 기이한 사내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려 퍼진다.
-그리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오도록 하지.
뒤엉켜 있던 세계가 갈라지며, 눈앞에 잿빛 문이 형성된다.
‘감정이 마모되어있다고 생각했 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군.’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와 성급 해진 행동들까지.
사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쉬워질 수도 있겠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서준은 곧장 걸음을 옮기어 잿빛 문의 너머로 향하였다.
“서준......
“괜찮아, 모두 끝났으니까.”
테이블 앞, 떨리고 있는 정복왕 의 두 눈동자를 바라보며 환한 미 소를 보인 서준은 곧장 고개를 돌 린다.
그곳에는 평범한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고대 신이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사내의 말에서준은 어깨를 으쓱 이며 허공에 속박해두었던 니오그 타의 신형을 사내의 앞으로 내던져 주었다.
“미룰 일이 아니잖아.”
“훌륭한 태도구나.”
비릿한 미소를 홀린 사내의 얼굴 이 수십 갈래로 쩌억- 갈라지더니 얼굴에서 촉수들이 튀어나온다.
직후, 니오그타의 신형이 사내의 얼굴 내부로 빨려 들어간다.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니
오그타의 신형이 삽시간에 자취를 감춘다.
영멸을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내가 가진 무수히 많은 얼굴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었다.
어느새 사내의 얼굴은 처음 봤을 때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얼굴 전 체에 흥건하게 묻어 있는 혈흔과 니오그타의 흔적들이 남아있다는 점 정도였다.
“식사는 만족스러웠나?”
“그럭저럭.”
내뱉는 말과 달리 사내의 얼굴에 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제 약속을 지켜줘야지.”
“그리 재촉하지 않아도 들어줄 생각이었네.”
사내가 피식- 미소를 흘리더니 걸음을 옮기더니, 테이블 앞에 앉 아 있는 정복왕의 심장 위에 손바 닥을 얹었다.
그러자 회색빛 혼돈이 정복왕의 전신에서 솟구쳐 나오기 시작한다.
허나 제멋대로 폭주하지는 않는 다, 그저 사내의 육신으로 빨려 들 어가고 있었다.
본래 정복왕이 짊어져야 할 대가 를 넘겨받고 있는 것이었다.
파지직-!
우주가 준동하며 거부하려 한다.
허나 사내가 빚어낸 성역은 견고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변화무쌍했다.
제약이 닿기 전 시시각각 변화하 며 우주를 속여 낸다.
천 개에 달하는 얼굴, 능력을 가 진 존재, 눈앞의 사내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쿠구궁-!
하지만 결단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대 신의 성역이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사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쯔 ”
2스 .
혀를 찬 사내의 얼굴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미남이라 불려도 손색 이 없는 사내의 얼굴로 변화한 고 대 신이 다시 한번 정복왕의 육신 에서 홀러나오던 혼돈을 빨아들여 낸다.
이윽고 모든 혼돈이 사내 쪽으로 넘어온다.
마침내 사내가 정복왕의 심장 위 에 얹어 놓은 손바닥을 천천히 들 어올렸다.
“얼굴을 두 개나 소모할 줄이야, 손해 보는 장사를 해버렸군.”
말을 내뱉는 존재는 더 이상 사 내가 아니었다.
절세미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 는 여인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냥 손해는 아닐 텐데.”
충돌은 할 수 있으나 서로의 영 역은 침범하지 않는다는 맹약.
그것이 존재하는 한, 태초부터 존재해온 고대 신들은 니오그타의 얼굴을 한 존재를 노릴 수 없었다.
모략과 혼란을 만들어, 어둠 속 에서 우주를 좌지우지하는 고대 신 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얼굴이 라고 말할 수 있었다.
“뭐, 사용하기 나름이긴 하겠지.”
여인이 된 고대 신이 피식- 미소 를 흘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정복왕의 존재감이 빠른 속도로
부풀기 시작한다.
“고마워……
“고맙기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