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권 21화
521 화
‘1시간은커녕 1분도 벌지 못할 줄이야.’
물론, 이 정도만으로는 단순한 착각이라고 볼 수 있었다.
허나 이후 벌어진 전투들은 위지 강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 분했다.
‘상대가 고대 신에 필적하는 존재인 만큼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치고받는 전투에는 자신이 있었던 만큼 꽤나 많은 시 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모두 헛된 착각이었다.
‘슬슬 한계가 보이는군.’
광활한 우주와 같다고 생각했던 내공이 소모되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총량으로 보자면 아직도 많은 양의 내공이 남아있긴 했지만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니오그타의 공세는 여전하다.’
처음과 똑같다.
아니, 처음보다 더 매서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위험하군.’
씁쓸한 미소가 피어나던 위지강 은 다급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나약해져서는 안 된다.’
마음을 다잡은 위지강은 입가에서 흐르는 핏물을 닦아내며 결의를 다졌다.
허나 세상 일이 그렇듯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상이 생각보다 심하군.’
계속해서 이어진 공방 속, 제아
무리 위지강이라 할지라도 몇 번의 타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별것 아닌 타격이라 생 각했는데 체내로 파고든 부정은 몸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제약을 주고 있었다.
‘더러운 부정다운 능력이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위지강의 시선이 눈앞에서 허공에 떠있는 니 오그타를 바라본다.
“이제야 부정의 힘을 느꼈나 보 군.”
그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최대한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변 화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실 제로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던 힘의 균형 이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는 확실한 열세에 몰린 상황 이었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한계에 다다른 육신은 곳곳에서 비 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좋지 못한 상황에 위지강의 미간 이 찌푸려진다.
‘ 최악이군.’
패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 었지만 충분히 시간을 끌어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고, 실제로도 제 법 오랜 시간을 벌어냈다.
헌데 지원군이라 부를 만한 인원 들이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어.’
여태껏 보아 온 카터라는 인물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배신을 했을 리 는 없었다.
아마도 니오그타가 무슨 술수를 펼쳐놓은 것이 분명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시간을 벌 어내야 한다.’
니오그타가 펼쳐놓은 함정이 무 엇인지 모르는 만큼 얼마나 시간을 더 벌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최대한으로 버텨내야 한 다.’
남아있는 내력만 보자면 니오그 타와 접전을 벌일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6시간.
하지만 현재의 몸 상태, 점점 더 거세지는 니오그타의 공세를 고려 한다면 기껏해야 1시간이 한계일 것이다.
‘최후를 준비해야 할 수도 있겠 군……
차가운 눈동자를 한 위지강은 자 세를 다잡아 낸다.
후들거리고 있는 위지강의 두 다 리를 확인한 니오그타는 공세를 줄 여냈다.
대신하여 솟구친 부정을 다시 한 번 공허의 힘을 흡수해내는 데 사 용했다.
전처럼 오만을 부리는 것은 아니 었다.
‘굳이 귀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 는 없지.’
부정에서 태어났으며, 모든 부정 을 품고 있는 존재라 불리는 니오 그타.
누구보다도 부정적인 변화를 빠 르게 잡아낼 수 있었다.
‘위지강은 나약해졌다.’
비록 마음 자체가 꺾인 것은 아 니었지만, 이미 육신은 본래의 능 력을 잃은 지 오래였다.
이미 승기가 기울었다 해도 과언 이 아니었다.
‘천천히 갉아낸다.’
넓게 펼쳐낸 촉수에서 회색빛 섬 광을 쏘아내며, 위지강을 압박해낸 다.
콰과과광-!
폭음과 함께 우주의 공간이 일그 러지는 상황, 멈춰 있는 장막의 모 습을 확인한 니오그타의 몸이 한 줄기의 빛살이 되어 접근한다.
콰직-!
“크홉-!”
일그러진 위지강의 얼굴을 마주 한 니오그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 가 흐른다.
“육신은 시작에 불과하다, 곧 네 놈의 기운, 그리고 뒤이어 정신까 지 뜻대로 움직이지 않게 될 거다.”
“닥쳐라!”
눈앞의 니오그타를 가볍게 밀쳐 낸 위지강의 전신에서 묵색의 불꽃 이 폭발한다.
화르륵-!
이내 묵색의 기운은 거대한 천마 의 형상이 되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를 뒤덮으며, 불타오른다.
천마의 형상을 강림시킨 위지강 은 차가운 눈동자로 니오그타를 바 라본다.
하나 니오그타의 입가에 여유로 운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얼마 가지 못하겠군.’
지금 위지강은 스스로가 불구덩 이로 뛰어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몸 상태를 부정하기 위 해서 발버둥 친다.
‘자기 자신이 부정을 키워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
부정을 부정하려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로 인해 부정은 더욱더 커 진다.
더욱더 빠르게 육신을 잠식해간 다.
‘빠져나올 수 없는 부정에 빠져 버렸군.’
짧은 시간이었지만 위지강과 끊 임없이 격돌해봤기에 알고 있었다.
그는 강인하며 우직한 사람이다.
스스로의 육신을 한계까지 밀어 붙이면서 더욱더 앞으로 나아가려 고 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지금 속박된 부정의 굴 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후웅-! 후웅-!
여유로운 표정으로 촉수들을 쏘 아내고 있는 니오그타의 시선이 위 지강의 육신을 훑는다.
계속해서 발버둥 쳐가며, 스스로 의 한계점을 부정해가는 모습은 부 정에게 더욱더 강대한 힘을 준다.
자연스레 위지강의 몸과 마음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파국 으로 치닫게 된다.
‘끝이 보이는군.’
퍼져나간 부정은 육신을 넘어선 다.
이제는 기운을 부정해내고 흩어 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쏘아지는 촉수들을 가까스로 쳐내고 있었다.
허나 부정의 힘이 가하는 압박은 시작에 불과했다.
‘내면,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갈 것이다.’
어떠한 맹독보다도 빠르게 퍼져 나간 부정은 정신까지 갉아먹어간 다.
아무리 단단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차오르는 의혹과 공포를 모두 떨쳐낼 수는 없을 것이다.
찰나의 틈, 그것만으로도 니오그 타의 부정은 내면을 부숴낼 것이다.
“결단코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 을 이제는 네놈도 느꼈을 텐데. 흐
아마 지금쯤이면 위지강 역시 마 음 한편에서 피어나고 있는 감정들을 눈치채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실 니오그타가 바란 것은 위지 강이 그 감정마저 부정하려는 것이 었다.
한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눈치가 빠르군.’
괜히 고대의 존재들이 두려워했 던 것이 아니었다.
부정하면 할수록 부정의 힘은 더 욱더 커져간다는 것을 눈치챘다.
때문에 어떻게든 빠르게 마음속 미혹을 떨쳐내려 하고 있었지만 이 미 전신에 퍼져 간 부정을 일순간 에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정신까지 부정이 침투한 이 상, 어떠한 행동을 보이든 모두 무 의미한 발버둥에 불과했다.
“그만 네놈의 패배를 받아들이거 라.”
받아들이며 패배한다.
거부하면 부정이 커진다.
피할 수 없는 공격이다.
자연스레 흔들림 없었던 위지강 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눈동자는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만 끝을 내도록 하지.”
니오그타가 허공으로 떠올라 인 형과 같은 모습으로 멈춰 버린 위 지강의 육신을 향해 촉수를 쏘아내 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일대에 머물고 있던 소 행성들이 갑작스레 움직이기 시작 했다.
니오그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소행성들의 이동과 충돌은 우주 에서 혼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허나 뒤를 이어 소행성들이 한자 리에 뭉치는 모습은 니오그타에게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언가 잘못됐군.’
머릿속으로 인지를 하는 순간, 뭉쳐있던 소행성들이 일제히 움직 이기 시작한다.
콰과광-!
쏘아지는 촉수들의 앞길을 가로 막아내며 위지강을 지켜낸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소행성들의 모습을 확인한 니오그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누구냐-!”
의문을 길게 이어갈 수는 없었다.
방대한 마나가 일대의 우주에 퍼 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당황할 것 없었다.
‘어차피 위지강은 제압된 상태
다.’
심지어 그리 위협적인 힘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찾아내서 함께 죽여주도록 하 지.”
비릿한 미소를 홀린 니오그타가 부정의 힘을 퍼뜨리는 순간이었다.
콰과광-!
우주를 가르고 날아온 붉은 불꽃 이 니오그타의 시야를 뒤덮는다.
동시에, 푸른빛 물결이 일대에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파지직-!
퍼져나간 푸른 빛줄기가 위지강 의 육신을 휘감아내고 이동시키려 한다.
허나 니오그타가 이를 가만히 두 고만 볼 리가 만무했다.
“그리 순순히 내어줄 것이라 생 각한 것이냐!”
고함을 내지른 니오그타가 촉수 를 쏘아내며 푸른빛 기운들을 갈기 갈기 찢어발겨낸다.
방대한 양의 마나를 이용해 위지 강의 육신을 공간 이동시키려 했던 수호룡, 위지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괴물이네.”
분명 완벽하게 시선을 돌려냈다 고 생각했는데, 니오그타의 촉수들 이 마법의 발현을 부정해냈다.
“ 네놈은?”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있는 용의 형상을 마주한 니오그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위지율.”
천마, 위지강을 지킨다는 수호룡 이 개입해버린 것이다.
‘시간을 너무 오래 끌어버렸군.’
리벨리온 연합에 소식이 전해졌
다는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이곳을 정리해내 고 자리를 떠나는 것이 현명했다.
콰아앙-!
단번에 솟구친 부정은 거대한 해 일이 되어 위지율의 머리 위로 떨 어져 내린다.
당연하지만, 위지강의 위험에 다 급하게 전장에 합류한 위지율이 혼 자서 니오그타가 쏟아내는 부정의 힘을 받아칠 방도는 없었다.
“죽어라.”
서서히 다가오는 부정에 위지율 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있을 때였다.
콰아아앙-!
사방에서 날아온 형형색색의 기 운들이 부정의 해일과 부딪쳤다.
맞부딪힌 기운들이 부정에 집어 삼켜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허나 그 짧은 순간은 위지율이 마법을 발현시키기에는 충분한 시 간이었다.
‘메스 텔레포트.’
공간 이동 마법을 통해 부정의 해일로부터 멀리 벗어난 위지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둠뿐인 우 주를 웅시하는 순간, 형형색색의 섬광들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군요.”
각기 다른 종족,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로 엮여 있는 존재들이었다.
“리벨리온 연합……
당황한 니오그타는 빠르게 눈동 자를 굴리며 주변에 도착한 인물들을 훑어낸다.
‘한서준은 보이지 않는군.’
자연스레 니오그타의 입가에 비 릿한 미소가 흘렀다.
당연한 것이다.
리벨리온 연합을 경계했던 것은
모두 한서준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한서준이 없다면 두려 워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었다.
니오그타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흘리며 허공에 육신을 띄워낸다.
“모조리 다 죽여주지.”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일으킨 부정의 해일은 쏘아지는 공격들을 집어삼켜내며 나아가고 있었다.
몇몇 공격들이 잠시 막아내기는 했지만,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부정당하고 소멸해버린다.
힘의 차가 역력했다.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곧장 자리를 떠나야 했지만 어째서인지 리벨리온 연합군들은 우두커니 자 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러나지 마라!”
“니오그타가 도망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애초부터 리벨리온 연합군이 노 리는 것은 추가적인 시간을 벌어주 는 것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