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권 18화
518화
따사로운 햇살이 얼굴을 매만짐 에 따라 감겨있던 서준의 눈이 천 천히 들어올려졌다.
‘아침인가……?’
단순히 하루만 잔 것 같은 느낌 은 아니었다.
좋지 않았던 몸 상태가 수준급으로 회복되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물에 젖은 것같이 무거웠 던 감각은 완전히 사라진 채였다.
이제 느껴지는 피로는 아예 없다 고 봐도 무방한 상태였다.
“괜찮네.”
허나 몸이 가벼워졌음에도 알 수 없는 찝찝함이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뭐지?’
머리를 회전시켜 의문을 쫓아가 자 머지않아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다고?’
서준은 다급하게 기감을 퍼뜨려 본다.
허나 애석하게도 집 안에서 느껴 지는 기척이 전혀 없었다.
‘ 이상해.’
잠들기 전에 느꼈었던 불안감이 다시 한번 마음속에서 피어오른다.
‘설마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다급하게 스마트 폰을 확인해 보 았지만 남겨져 있는 메시지는 없었다.
부풀어가는 불안함을 억누르기 위해서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 았지만 신호음 외의 다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방금 전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서 스마트 폰의 전원을 켰던 때, 자연스레 날짜까지 확인을 하게 되 었다.
그리고 지금은 분명, 마지막으로 잠들기 전 확인했던 날짜에서 3일 이나 더 흐른 상태였다.
헌데 가족들이 아무도 집에 돌아 오지 않았다.
답답한 상황에서준의 미간이 찌 푸려지던 때였다.
후웅-!
미세한 바람 소리와 함께 창가에 익숙한 얼굴, 나라연천의 모습이 보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 군.”
다급함이 어려 있는 표정, 떨리 는 목소리까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알 수 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어.’
솟구치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른 서준은 빠르게 심장을 진정시킨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흥분과 분노로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우선 이야기를 듣는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가벼운 문제일 수도 있었다.
곧장 몸을 움직인 서준은 창가의 문을 열어젖히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것이......”
나라연천의 아랫입술을 질끈- 깨 문다.
떨리는 두 눈동자를 확인한서준 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가벼운 문제는 아닌 것 같네.’
이토록 어두운 표정을 지었던 적 은 드물었다.
서준의 눈치를 살피던 나라연천 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가족분들께서 갑작스런 침 공으로 인해 큰 부상을 입으셨습니 다, 그래도 천만다행히도 위험한 고비는 넘겨, 생명에는 지장이 없 으신 상황입니다.”
눈을 질끈- 감은 서준이 주먹을 움켜쥔다.
이제야 가족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연유를 알 수 있었다.
동시에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폭발하려 한다.
쿠구궁-!
방 전체가 일렁이며 마치 차원이 붕괴되는 듯한 착각이 나라연천의 눈에 어린다.
압박감만으로 나라연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
가장 절망적인 것은 아직 소식을 전부 전한 것이 아니었다.
“동생분인 서연 님께서 그 대상 을 추적하여 복수하려고 출전하신 후 연락이 완전히 끊기셨습니 다……. 추측하기를 아마 전투에서
패배하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 다.”
이어질 서준의 분노에 나라연천 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허나 정말 다행히도 서준의 감정 은 완전히 폭주하지는 않았다.
흔들리던 세계가 빠른 속도로 진 정되고 본래의 모양을 되찾는다.
하지만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도 차가웠다.
“누가 벌인 일이지?”
“고대의 존재, 니오그타의 소행
으로 파악됩니다.”
눈을 가늘게 뜬 서준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낸 후 질문을 던졌다.
“ 이유는?”
“잠드셔 있는 동안 고대의 존재 들의 내전이 끝났다는 것을 확인했 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의 승 자는 앞서 언급했던 니오그타입니 다.”
이어지는 나라연천의 말에서준 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설마......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허나 내전에서 승리를 거머쥐었
다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려 한 건 가?”
숭기가 기울어졌다고는 하나 기 존 가진 세력이 엇비슷했던 만큼 최소 수년은 더 걸릴 것이라 생각 했다.
분명 어떤 변수가 생긴 것이다.
‘뭘까? 힘의 균형을 단번에 무너 뜨릴 능력이 있던 건가.’
머릿속에 의문이 피어났지만, 지 금 중요한 것은 지나버린 과거의 일 따위가 아니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까 지 니오그타가 보인 행보는 침공과 파멸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조심스 러운 움직임이었습니다.”
이어진 나라연천의 말에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그렇다면?”
“돌아온 연합군의 일원 중 한 명 이 말하기를 서연 님이 가지고 있 는 공허의 힘을 노리고 접근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서준은 니오그타에 대해서 자세 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어떠한 의도로 움직
이고 있는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고대 신이 되고 싶겠지.’
그리고 고대 신이 되기 위한 조 건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모든 고대의 힘을 모으는 것.’
고대 신의 자리에서준이 올랐다 는 것을 인지했을 것이다
때문에 직접적 마찰을 피하기 위 해서 부모님들을 공격하여 서연을 자극해서 이끌어냈다.
‘너무 안일했어.’
그저 고대의 존재를 사냥하기만
하면 모든 일을 매듭지을 수 있다 생각했다.
어차피 고대 신이 직접적으로 싸 움을 걸어오지 않는 이상 특별한 위험은 없었으니 말이다.
‘고대의 존재의 힘을 너무 얕잡 아 봤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문 서준 의 눈빛이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전해진 메시지의 정황 만으로도 상황 파악을 끝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제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서연 님을 지켜드렸
어야 했는데.”
나라연천은 가장 충직한 수하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벨리온 연 합의 주요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나 라연천이 전장에 나서지 않고 지구 를 지키고 있던 이유.
당연하지만 무섭거나 두려워 숨 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혹시나 휴식을 취하고 있을 서준 이 위협에 빠질까 봐 자리를 지키 고 있던 것이다.
아니, 애초에 나라연천의 잘못은 어디에도 없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니
하지만 내뱉는 말과 달리 일대의 세계가 뒤흔들리고 있었다.
쿠구궁-!
또다시 감정이 폭발하며 서준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눈동자에는 진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
허나 이성을 잃고 날뛰지는 않는 다.
서준은 주먹을 움켜쥔 채 나라연 천에게 질문을 던진다.
“현재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 지?”
“카터 님께서 위지강이라는 분과 함께 수색을 나서셨습니다.”
그나마 최고의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절대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해.’
생각을 갈무리한서준은 곧장 발 걸음을 옮길 준비를 했다.
생명체가 하나도 없는 곳, 완벽 하게 파멸을 맞이한 황폐한 세계.
빛 한 줌 들지 않는 회색빛의 혼 돈이 내려앉아 있는 이 땅은 한때 이 우주에 무엇보다 강한 힘을 가 지고 있었으며, 수많은 우주에서 경외를 받은 존재이자, 모두가 두 려워했던 존재들의 공간이었다.
“허나 이제는 나 혼자만이 남았
지.”
고대의 존재라는 명칭으로 살아 왔지만, 더 이상 고대의 존재는 아 무도 남지 않았다.
동족이자 형제라 할 수 있는 이 들이 모두 없어진 것이었다.
허나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모두 내 안에서 살아가고 있 다.”
내부에서 명확하게 존재함이 느 껴진다, 그저 무의식 속을 헤매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하스터와 같은 이레귤러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드높은 고대 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검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니오 그타의 시선에 찬란한 미래가 그려 지고 있었다.
“그러니 너 또한 두려워할 것 없 다, 그저 공허라는 존재로 나와 하 나가 되는 것뿐이니.”
수없이 많았던 권좌, 하나 이제 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왕좌에 앉 아 회색빛뿐인 하늘을 바라보며 이 야기하던 니오그타의 시선이 돌아
간다.
허공에 떠올라 있는 검은 구체, 부정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곳에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흔 들림 없이 눈을 빛내고 있는 서연 의 얼굴이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곳 을 떠나고 싶었다.
허나 검은 구체에서 흘러나오는 부정의 족쇄들이 서연의 전신을 구 속하고 있기에 꿈쩍- 조차 할 수 없었다.
“공허를 품은 자여.”
비릿한 미소를 홀린 니오그타가
서연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어 다가온다.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거라.”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니오그타 의 촉수가 바닥올 향해 있는 서연 의 얼굴을 강제로 들어올린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듣고, 네놈 말에 순순히 따라 줄 거라 생 각하는 건 아니지?”
당당한 서연의 태도, 하지만 니 오그타의 입가에는 여유가 가득했 다.
“홑어져 있던 고대의 힘이 한자 리에 모이는 것은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순리라 할 수 있는 것이 니.”
“공허의 힘을 얻고 싶은 것 같은 데, 나도 이걸 넘겨주는 방법은 모 르거든.”
“넘겨줄 필요 없다, 그냥 하나가 되기만 하면 된다.”
“그래? 참 잘된 일이긴 한데 그 래도 너한테 넘겨주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냥 죽여.”
“그럴 수는 없지.”
여전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니 오그타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공정한 계약을 제안하
도록 하지?”
“......계약?”
서연의 고개가 젖혀진다.
“공허의 힘을 얌전히 내어준다면 네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던 리 벨리온 연합과 지구라는 차원의 안 전을 보장해주도록 하지.”
“너라면 부정의 집합체인 네놈의 말을 믿을 것 같아?”
“허면 반대로 제안하지, 당장 공 허의 힘을 내놓지 않는다면 네놈이 아끼는 리벨리온 연합과 지구라는 차원을 부숴버리도록 하지, 어찌 이것도 거짓 같으냐?”
이런 상황이 즐겁다는 듯 니오그 타의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를 확인 한, 서연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애초에 결정권은 없었다.
어차피 니오그타는 모두 파멸시 킬 것이다.
그저 시간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수를 골라낸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내야 해.’
그렇다면 희망이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오빠.’
가장 아끼는 사람이자 고대의 존재는 물론, 그 강력하던 고대 신과 도 필적하게 싸웠던 인물.
지금 이 소식만 전해진다면 이런 부정의 덩어리쯤은 단박에 소멸시 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서준이 최대한 시간을 벌어 지금 리벨리온의 상황에 대해 서 전해 듣고, 찾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서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나가…… 될게.”
“훌륭한 선택이다.”
니오그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 가 떠오르는 순간, 서연의 육신을 휘감고 있는 부정이 내부로 스며들 어온다.
“크흡-!”
아찔한 충격과 함께 전신이 사시 나무처럼 흔들리기 시작한다.
삶,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태초로 돌 아가 하나가 되는 것이니.”
“커헙……!”
두 눈동자가 뒤집어진 서연의 전 신이 떨려온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 부정들을 떨쳐내고 싶었다.
‘공허의 힘을 모두 개방한다 면……
당장 이 부정에서 벗어날 수 있 을지도 모른다.
정복왕이 이 은하를 떠나 공허의 힘을 얻을 방도가 없는 만큼, 니오 그타는 자신에게 과한 힘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허나 떨쳐내서는 안 되었다.
고대 신의 자리를 향한 강한 욕 망을 발산하고 있는 니오그타의 심 기를 거스르게 된다면 분명 많은 차원이 파멸을 맞이할 것이고 애꿎 은 사상자가 나오게 될 것이다.
‘견뎌내야 해.’
끔찍하고도, 비참한 상황에서연 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나와 함께 고대 신의 자리에 올 라 우리를 부정해왔던 저 파렴치한 은하들에 파멸을 선사하는 것이다.”
니오그타가 광소를 터뜨리며 소 리를 내지른다.
“크하하-!”
동시에 허공을 배회하던 부정들 이 일제히 서연의 육신을 휘감고, 집어삼켜 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