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권 17화
517화
물론, 지금 곧장 고대의 존재를 사냥하러 가서는 안 되었다.
‘지금 당장으로써는 힘들어.’
스스로의 전력에 대해서 객관적 으로 평을 내린 서준의 입가에 자 조적인 미소가 흐른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놈도 고대 신 에 근접한 힘을 가졌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고대 신에 올 랐을 수도 있었다.
쉽지 않은 상대라고 말할 수 있었다.
헌데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그냥 쓰러뜨리는 것도 아닌 살려서 생포를 해가야 한다.
당연하지만 그냥 쓰러뜨리는 것 에 비해서 난도가 상당히 높았다.
‘확실하게 준비를 해야 해.’
서준은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기억 중에서 전투에 관한 것들만을 골라냈다.
그중에서도 무공들만을 골라낸 다.
1시간, 2시간, 10시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머릿속을 가득 매우고 있던 기억 들에 대해서 정리를 끝낸 서준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자리에서 일어난 서준은 곧장 수 련을 시작하려 했다.
갑작스레 시야가 흐릿해지고, 흔 들리지 않았다면 분명 그리했을 터 였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몸 상태 가 안 좋네.’
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어쩔 수 없나.’
여유를 부릴 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괜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 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다.’
고개를 주억인 서준은 침대에 쓰 러지듯이 기대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오랜만에 의식을 완전히 잃고 잠 에 취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한시라도 빠르게 고대의 존재, 니오그타를 사냥하고 정복왕의 자 유를 되찾아 줘야 한다.
머리로는 명확하게 알지만 몸이 쉽사리 움직여주지를 않았다.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한번 휴식 을 취하고 나자 부정을 할 수가 없 었다.
‘몸 상태가 최악이네.’
머리에서는 쉴 새 없이 두통이
밀려왔고, 어깨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추가 얹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감겨 있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육신이 완전히 통 제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하자 검게 물들었던 시야가 본래의 색을 되찾아간다.
자연스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 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후 어머니, 양정화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아들, 괜찮은 거니?”
“ 네.”
당찬 대답과 달리 생각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바위가 머리를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허나 이러한 감각도 얼마 가지 못했다.
이어진 아버지, 한석훈의 말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웬만하면 그냥 내버려두겠는데, 이틀 동안 계속 잠만 자더구나.”
서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틀이나 잤다고요?”
미간을 찌푸린 모습, 다소 탐탁 치 않아 하는 서연의 표정은 방금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 나는 혹시 돌아올까 봐 계속 그 행성에서 기다리고 있었는 데 오빠는 집에서 천하태평하게 잠 자고 있더라.”
“……맙소사.”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생각처럼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으윽-!”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다.
마치 무공 하나 모르던 일반인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 천천히 근 육통이 느껴지는 팔을 돌리고, 몸 을 일으켜 본 서준은 확신했다.
‘이거 상당히 무리를 했었나 보 네.’
일종의 과부하 같은 것이다.
실제로도 탈력감을 넘어선 무력 감이 느껴진다.
본래라면 엄청나게 걱정이 되었 을 것이다.
기껏 이룬 고대 신의 격까지, 쌓 아온 모든 것이 한 번에 사라졌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서준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야.’
비록 지금은 다소 작아져 있었지만, 체내의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욕망이 명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단지 지금은 모든 힘이 회복에만 전념해야 할 정도로 서준의 상태가 좋지 않았을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앞서 하스터와 격렬한 전투를 치 렀을뿐더러 고대 신 중 가장 위협 적이라 할 수 있는 사내와 마주했 다.
‘그렇게 마주하고 있던 것만으로 도 정신에 큰 타격이 왔겠지.’
그런데 더불어 갑작스레 수많은 기억들까지 쏟아져 흘러들어왔다.
엄청나게 많은 정신력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정상적일 리가 만무했다.
“괜찮은 거 맞아……? 혹시 잠시 들른다는 곳에서 무슨 큰일이 있었 던 거야?”
“걱정할 거 없어, 조금 쉬면 금 세 회복해낼 수 있을 거야.”
“다행이구나.”
가족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눈빛에 가득 차 있던 걱정들 또 한 사라져 간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쉴게 요.”
곧장 자리에 드러눕는 서준의 모 습에서연이 헛웃음을 홀린다.
“그렇게 자고 또 잔다고?”
“휴식이 필요하다 했잖아.”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었다.
되찾아낸 기억 속, 그곳에는 서준이 바라고 있던 힘, 경지에 도달 한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그 힘을 되찾아낸다면 어떠한 고 대의 존재, 설사 고대 신이 온다 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지금 당장으로써는 기억에 불과하지만……
허나 몸을 회복해내게 된다면 금 세 되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곧장 기억 속의 힘을 완벽 하게 펼쳐낼 수 없을 터였다.
애초에 기억 속에 있는 한서준은 자신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뛰 어난 인물이었다.
다른 특별한 능력이나 힘없이 오 롯이 무(武)만을 갈고 닦아온 진정 한 무인이었다.
‘그렇기에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졌어.’
만약 지금 익히고 있는 혼돈기에 그 무의 힘을 되찾아낼 수 있다면 놀라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 이다.
어째서 시간을 되돌려내는 판단 을 내린 것인지 이해가 갔다.
‘모든 것을 되찾아낸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도달하겠지.’
자연스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정복왕, 가이사……
기억 속, 항상 전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싸우던 든든한 아군의 이름이자 최고의 조력자의 이름이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 감정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 겠지만, 반드시 이 빚을 전부 다 갚아낼 거였다.
‘우선은 자유를 되찾아 줘야 해.’
스스로가 내린 결정이라지만 결 국 자신 때문에 희생된 것이다.
이런 불편한 짐을 떠안고 있을 수는 없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푹 자야 해.”
여러모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우려했던 상황은 아니었다.
때문에 가족들은 별말 없이 물러 나며 방을 떠난다.
“마음대로 해.”
직후, 두 눈을 감은 서준의 의식 이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알아서 일어날 테니까, 너무 걱 정들 하지 마세요.”
“알겠어, 불 꺼줄 테니까, 푹 자 렴.”
“나중에 봬요.”
웃음을 흘린 서준의 시야가 다시 한번 암전이 되며, 정돈된 호흡 소 리만이 고요히 흐르기 시작했다.
마음을 비우고 편안한 휴식을 취 한 덕분인지, 이번에는 처음과 달 리 다소 가벼워진 육신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서준의 머릿속에 의문이 느껴졌다.
‘느낌표?’
초록빛 홀로그램, 시스템 창에 느낌표 표시가 떠올라 있었다.
‘뭐지?’
호기심이 동한서준이 시스템 창
을 불러낸 순간이었다.
띠링-!
[관리자 코드가 감지되었습니다.]
[포스 시스템이 관리자 모드로 변환하기 위해 관리자 ‘한서준’ 님 의 승인.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Y/N]
‘관리자 모드..?’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과거의 기 억들 덕분에 얼마 가지 않아서 평 정심을 되찾아냈다.
‘시스템의 창조자가 나였어.’
아마 추측하건대 되찾아 낸 과거 의 기억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포스 시스템이 그를 감지하고, 변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애초에 이런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지.’
손해 볼 것은 없는 일인 만큼 굳 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Y.’
고개를 주억이자 시스템 창이 잠
시 환한 묵색의 빛을 흩뿌리며 주 변의 대기를 뒤흔들 정도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서준에게 있어서도 꽤나 익숙한 기운이었다.
때문에 쉽사리 이 변화를 받아들 일 수 있었다.
한 가지 의문을 정리해내는 데 성공해냈지만, 서준이 느낀 의문은 눈앞에 떠올랐던 느낌표뿐만이 아 니었다.
‘아직도 집에 아무도 없다고?’
몸이 회복되어 기감이 어느 정도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이하게
도 집 안에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 지가 않는다.
‘ 이상하네.’
서연은 출정으로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더라도 부모님들은 저녁 시 간이 되면 집으로 되돌아왔다.
허나 창문 바깥에 달이 하늘 높 이 떠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들 어디 나갔나?’
처음 집에 돌아왔을 때보다는 상 태가 괜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온전한 상태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상당히 위협적인 힘을 다루고 있
다 할 수 있는 만큼 온전치 않은 몸 상태로 함부로 기운을 쓰면 안 되었다.
‘자칫하면 일대가 혼돈에 집어삼 켜질 수도 있어.’
결국 서준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집 안 곳곳을 뒤져보았지 만 여전히 사람의 흔적을 전혀 발 견할 수 없었다.
“뭐지?”
마음 한편에서 괜스레 차오르는 불안감에 곧장 발걸음을 옮기어, 침대에 놓아두었던 스마트 폰을 황
급하게 들어올렸다.
다급하게 전원 버튼을 누르는 순간, 다행히도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합 쪽에서 출전을 부탁해서 부모님이랑 함께 나갔다 올게, 별 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쉬 고 있어.
메시지를 읽어낸 서준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 하아......
눈앞에 다시 한번 시스템 창이 느낌표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또 있어?’
의문을 느낀 서준이 시스템 창을 다시 한번 불러냈다.
띠링-!
[숨겨진 이스터 에그에 접근해냈 습니다.]
[메시지가 개봉됩니다.]
다행이군, 아마 이 메시지를 보 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이사의 희 생과 나의 노력이 헛된 상황은 아 니라는 것일 테니.
내가 갖지 못하는 혼돈을 품어내
는 데 성공해냈는지는 알 수 없지 만 그래도 시스템을 길잡이로서 붙 여준 만큼 우둔했던 나처럼 한 가 지 길만을 걸어오지는 않았겠지.
분명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을 거 라 생각하네.
비록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해줄 수는 없지만, 축하의 의미로 포스 시스템의 관리자 모드를 넘겨주겠 네.
마지막 당부를 하자면 기억 속의 일에 사로잡혀 현재를 낭비하지 않 았으면 하네.
딱딱한 말투, 허나 본론만을 말 하는 모습은 분명 자신, 한서준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이자 안배 같은 건가.”
불현듯 머릿속에 기억이 스쳐 지 나갔지만, 감정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어떤 생각으로 남겼는지 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사실 어떤 의미든 상관없지.’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관리자 모 드로 변환되고 난다면 이번 싸움에 있어서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
라는 점이었다.
[관리자 모드로 변환 중, 현재 진 행도 3%…….]
‘기대되네.’
입가에 미소를 띄워낸 서준은 다 시 침상으로 향했다.
아직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만큼 조금 더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아마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면 가족들도 돌아올 거고, 시스템도 변화해있겠지.’
부푼 기대를 안은 서준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다시 한번 숙면에 들 어갔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