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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508화 (508/517)

- 21권 16화

516화

허나 사내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 는다.

“어이가 없군.”

사내는 헛웃음을 지은 채로 테이 블 위에 놓인 찻잔을 들어올린다.

후루룩-!

짧게 들이마신 후, 찻잔을 내려 놓은 사내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 한다.

“설마 내가 가이사를 그리 만들

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면 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 었다는 거지?”

서준의 차가운 물음에 사내가 천 천히 손가락을 뻗어낸다.

길게 뻗은 검지는 다름 아닌 누 워 있는 정복왕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어찌 보자면, 본인 스스로가 선 택한 것일 수도 있지.”

이해할 수 없는 사내의 말에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쯧, 충격이 너무 심해서 기억을 지운 것인가 아니면 대가로 인해 지워진 것인가.”

“더 나눌 대화는 없어 보이네.”

서준의 주변에서 진한 살기가 흘 러나올 때였다.

“멈, 멈춰.”

둥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서준 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너 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 정복왕?”

서준이 다급하게 발을 놀려 정복

왕에게로 다가간다.

“괜찮은 거야?”

진심 어린 걱정을 담아 던진 질 문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에 대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싸우면 안 돼.”

“무슨……?”

의미심장한 시선과 말, 서준의 시선이 복잡해진다.

“내가 선택한 일이 맞으니까.”

정복왕의 시선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내에게로 향한다.

“지금의 내 상태로는 우주의 제

약을 감당하지 못할 거야, 나 대신 말해 줄 수 있을까?”

“내 성역인 만큼 이야기를 해주 는 것은 어렵지 않겠다만…… 합당 한 대가를 치를 수 있겠나?”

이미 많은 짐을 떠안고 있었고, 남은 힘조차 얼마 없었다.

더 이상 치를 수 있는 대가가 없 다는 말이었다.

정복왕의 얼굴에 그늘이 져가고 있을 때였다.

“됐어, 그냥 우수 고객들을 위한 보너스라고 생각하지.”

초승달과 같이 가늘어진 눈매를 한 사내의 시선이 서준과 정복왕의 전신을 홅는다.

“앉도록 흐}지, 조금 긴 이야기가 될 테니.”

솔직히 말하자면 얼굴을 마주하 고 차를 나눠 마실 정도의 친분은 없었다.

정복왕의 만류만 아니었다면 당 장 싸움이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 았을 만큼, 좋지 않은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내의 말, 정복 왕의 태도, 심지어 이 외로도 궁금

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서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어 테 이블 앞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았다.

“내가 질문을 던지는 형태로 해 도 상관없겠지.”

“ 얼마든지.”

서준의 차가운 말에 사내가 천천 히 고개를 주억인다.

두 눈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즐 거움이 가득했다.

“정복왕이 스스로 선택했다는 게 무슨 말이지?”

시작점을 알 수 없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법이다.

때문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궁금 한 부분을 캐물었다.

그 질문에 사내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소중한 사람, 본래 자신의 주인 의 꿈을 이루어주려다가 저렇게 된 것이니까,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라 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주인? 그가 누구지?”

“한서준, 지금 내 앞에 있는 자 네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믿을 수 없었다.

허나 거짓으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정복왕이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고 있기 때 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린다.

허나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되었다.

정복왕이 부탁을 하면서까지 만 들어 준 기회였다, 이리 허무하게 날려서는 안 된다.

서준은 머리를 회전시켜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 나가며 입을 열었다.

“네 꿈이 뭐였는데? 대체 무엇을 위해서 희생한 거지?”

“시간을 돌려내는 것, 그것도 개 인이 아닌 한 은하의 시간 전체를 돌려냈지.”

“ 이유는?”

“고대 신들과의 전쟁 중 한계를 느껴서, 승리의 실마리를 찾기 위 해서.”

은하 전체의 시간 역행.

고대 신의 자리에 오른 만큼 얼

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인지 추 측이 되었다.

그렇기에 믿을 수 없었다.

그동안은 정복왕이 지켜보고 있 다는 연유 때문에 가까스로 억누르 고 있었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정복왕이 온전한 상 태라고 볼 수 없는 만큼 이 사내에 게 휘둘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서준이 목소리를 드높였지만 사 내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리석군, 네가 자네에게 거짓 을 고할 이유가 있느냐?”

침묵을 지키고 있는 서준을 바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은 사내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도록. 자네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한 시스템이란 것을 누 가 만들었을까?”

또다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메시지로 이따금씩 보았지만 정

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왜 지구에 부여가 되었을까?”

서준의 침묵은 계속된다.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 다.

그저 편리하고 유용하기에 사용 했을 뿐이다.

“모두 과거, 아니 미래의 자네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지.”

콰광-!

사내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 에 벼락이라도 내리치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려온다.

동시에 머리 전체가 강하게 조여 오는 듯한 강렬한 충격이 찾아오며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 지기 시작했다.

“파편을 하나 발견했다면 이어지 는 건 시간문제, 곧 기억나게 될 것이네.”

무수히 많은 고대의 존재와 하늘 위를 메우고 있는 고대의 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흡사,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은 세계의 중심에서 그들과의 결 전을 준비하고 있는 자신과 정복왕.

그렇게 수천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자연스레 서준의 눈이 휘둥그레 진다.

“정, 정말 네가?”

분명 난생처음 보는 장면인데 마 치 바로 어제 일처럼 명확했다.

전장의 혈향, 손끝에 걸리는 감 각, 후들거리는 두 다리, 이 외로도 수많은 감각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리고 마지막 결전, 패배라는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엄청난 기억의 편린들이 빠르게 뇌리를 강타한다.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허나 퍼즐이 맞춰지며 앞서 사내 가 꺼냈던 말들이 모두 받아들여지 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 못 할 충격이었지만 오히려 잘됐다고 볼 수 있었다.

‘……기억 속의 나는.’

엄청나게 강했다.

기억을 낱낱이 확인한 것은 아니 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압도적으로 강했다.

고대 신들과의 전쟁에서 밀린 것 도 스스로가 약해서 아니었다.

그들의 계략, 군세 때문에 밀리 게 된 것이었다.

순수한 무력 자체로만 보면 감히 최강을 논할 수 있었다.

눈앞의 사내에게도 승리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가는 다른 방식으로 치를 테 니, 정복왕을 돌려줘.”

“나도 그러고 싶지만 쉽지가 않 아, 우주의 제약을 받아서 혼돈에 종속되어 있는 이를 강제로 바깥으로 데려갈 경우 어찌 될지 알잖 아?”

앞서, 고대 신이 될 때 혼돈의

틈새에 있어 봤기에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혼돈이 아예 집어삼키려 할 것이 었다.

“너라면 풀어낼 방법이 있올 텐 데.”

“이건 단순히 이야기를 해주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

정복왕, 가이사가 안고 있는 대 가는 우주 전체에서 가해지는 것이 다.

만약 그를 끊어내게 된다면 그 화살들은 사내에게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너라면 잠시 다른 얼굴

을 사용하고 있으면 되겠지.”

“몇만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 야, 어쩌면 영원히 그 얼굴을 사용 하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그에 필적하는 대가를 치를 수 있겠어?”

사내의 물음을 들은 서준의 입가 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정복왕과의 예기치 못한 만남 때 문에 잠시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흘렀지만, 애초에 이곳에 당도한 이유는 사내의 초대 때문이었다.

먼저 계약을 제안한 것은 눈앞의 사내라는 말이었다.

“고대의 존재를 사냥해서 산 채 로 넘겨주지.”

“고작? 내 얼굴 하나의 가치를 잘 모르는 건가?”

“너야말로 내가 넘겨 줄 고대의 존재는 일반적인 놈이 아니라는 걸 알 텐데?”

기억이 돌아왔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고대의 존재들이 강력하긴 하나 수많은 얼굴들을 이용해, 계략을 펼친다면 잡음 없이 조용히 사냥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렇게 사냥을

맡긴다는 것은 일반적인 고대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스터와 같은 이레귤러의 자리 를 노리는 놈, 고대 신이 되어가고 있는 놈 중 하나겠지.”

“틀린 말은 아니다만, 아무리 생 각해도 얼굴 하나를 영원히 잃는 것치고는 대가가 부족한 것 같은 데.”

“그런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겠네.”

쿠구궁-!

서준의 몸 주변에서 혼돈기가 피 어올랐다.

어쩌면 이 행동이 사내의 심기를 거스르고, 살의를 피워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입장 정리가 편해지 지.’

사실 지금 사내를 대하는 입장 자체가 난처했다.

과거에는 분명한 적이었다.

허나 지금은 친절히 정보를 건네 주고, 도리어 정복왕이 자아를 잃 지 않도록 성역에서 지켜주고 있었다.

아군, 적, 그 무엇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애매한 관계라는 것이었다.

불편하기 짝이 없다.

‘확실하게 선택해라. 아군이냐, 적이냐.’

등 뒤에서 칼을 꽂히는 것은 질 색이다.

때문에서준의 행동은 과감하기 그지없었다.

자연스레 사내의 미간이 찌푸려 지며 강렬한 회색빛의 기운이 들끓 기 시작한다.

‘적인가.’

이미 서준은 하스터와의 싸움으로 고대 신의 힘이란 것을 일부 경

험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기억 속에서 강대한 힘을 보긴 했으나, 아직 모두 되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사내와의 싸움에서 일방 적으로 밀릴 수도 있었다.

사내의 검지 끝이 서준을 향한 다.

극도의 긴장감에 목울대로 마른 침이- 꿀꺽 삼켜질 때.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으니 특별히 받아주 도록 하지.”

고개를 주억이는 사내의 손에서 기운이 쏘아졌다.

예상치 못한 동의에 당황한서준 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휘말렸고, 눈을 떴을 때에는 육 신이 마치 물속을 배회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휩싸인 채였다.

[자네가 먼저 제안했던 대로 죽 은 시체가 아닌, 산 채로 데려와야 할 걸세.]

먼 곳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 려왔다.

그리고 그 기묘한 감각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서준은 꽤나 익숙한 곳으로 다소 조심스럽게 떨어져 내렸다.

익숙한 천장과 푹신한 침대가 편 안한 공간은 너무나도 익숙한 공간 이었다.

“……내 방인가.”

서준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생각을 정리할 것이 너무나도 많 았다.

무너진 댐처럼 끊임없이 밀려들 어오는 정보의 파도에 머릿속이 복 잡해져간다.

서준은 이 모든 것들을 짧게 압 축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잡념들은 번뇌를 만든다.

그리고 번뇌는 심마를 가져오게 된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제는 사라진 시간 축이긴 하 나, 그 또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정복왕이 내린 선택 또한 스스로가 자처한 일이었다.

‘분명 마지못해 떠안은 것도 있 을 테지만……

정복왕 스스로가 사과를 바라거 나 원망 어린 말들을 쏟아낸 적은 없었다.

오히려 기억을 잃고 있는 자신에 게 접근하여 끊임없이 도움을 줬다.

시간을 돌려내어 많은 대가를 치 르게 됐음에도 계속해서 호의를 보 여 왔다는 말이었다.

스스로가 자책을 하고 있을 필요 는 없었다.

‘애꿎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차라리 그 시간에 한시라도 빠르 게 정복왕을 구해낸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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