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권 15화
515화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스터 는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자연스레 서준의 시선이 하스터에게로 향했 다.
“무슨 할 말 있어?”
“……나는 황색의 신이자 하스 터, 그리고 내가 다루던 디멘션 워 커의 주인이다.”
서준의 눈이 크게 뜨였다.
혼돈의 생명체를 사냥할 당시 파 괴의 힘 빌렸었던 존재였다.
비록 과거라지만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는 존재라는 말이었다.
“이제 와서 과거의 계약에 대해 서 말하는 건 무슨 의도지?”
분명, 그 당시에 계약을 통해서 그에 따른 대가는 다 치렀다고는 하나 고대 신의 권능과 힘을 생각 한다면 어떤 속임수를 숨겨두었을 지 모른다.
자연스레 서준의 눈이 가늘어진 다.
하지만 다행히도 하스터는 무슨
꿍꿍이를 숨겨 두지는 않았다.
“경계할 거 없다, 추가적인 계약 을 제안하기 전에 자네가 조금이라 도 날 믿을 수 있도록 과거의 신뢰 관계에 대해서 말해주고 싶었을 뿐 이다.”
“나랑 계약을 하겠다고?”
“정복왕에 대해서 찾고 있지 않 나?”
서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알고 있어?”
“당장 그곳으로 보내줄 수도 있 네.”
고대의 존재들을 제거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평화로운 삶을 거머쥐기 위해서였다.
허나 단지 그 목적뿐이라면 침공 을 해오는 고대의 존재만을 제거해 도 되었다.
지금처럼 드넓은 우주를 헤매고 다닐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준이 분주 히 움직인 것은 정복왕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였다.
잿빛 기운의 존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나 그가 누구인 지, 어디에 있는지, 무슨 목적으로
정복왕을 데리고 있는 것인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막막하기 그지없던 상황에 하스 터라는 예상치 못한 정보통이 찾아 온 것이다.
서준은 흥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보내줘.”
“앞서 계약을 하고 싶다고 말했 을 텐데.”
“조건은?”
“내가 지정한 고대의 존재를 사 냥해주게나.”
하스터가 내민 조건을 들은 서준
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굳이 네가?”
어차피 가만히 내버려뒀어도 사 냥을 했을 것이다.
‘……심지어 직접 움직여서 사냥 을 해도 문제될 게 없을 텐데.’
직접 붙어본 만큼 확신할 수 있었다.
고대 신, 하스터는 강했다.
웬만한 고대의 존재는 가벼이 압 살할 수 있을 것이다.
구태여 번거롭게 계약을 내걸 필 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늘어진 서준의 눈매를 확인한 하스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대 신의 힘의 근원이 뭔지는 알고 있지?”
“욕망.”
“맞아, 다들 제 욕망을 가진 존재들이야. 여태껏 아무런 충돌이 없었을 거라 생각하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인 만큼 양보란 개념이 존재하 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수없이 싸웠고, 크고작
은 부상을 입었지. 그리고 그런 싸 움이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공멸.”
“비슷하네, 죽음의 위기를 느끼 긴 했지만 아깝게도 다들 죽지는 않았어, 그래도 위기감을 느끼기에 는 충분했지, 때문에 고대 신들은 한 가지 맹약을 맺었네.”
하스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흐른다.
“충돌은 벌일 수 있되,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게 지금 이야기랑 무슨 상관 이지?”
서준의 고개가 젖혀지려던 때, 하스터의 입이 다시 한번 열렸다.
“고대의 존재들은 우리 고대 신 들이 만들어냈지, 하나 누군가 특 정해서 만들어냈다고는 할 수 없지, 공공의 소유이자 고대 신, 모두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는 걸세.”
앞선 이야기들의 퍼즐이 맞춰지 며 서준의 눈에 이채가 어린다.
“맹약으로 엮이지 않은 나를 제 외하고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는 거군.”
“맞아, 그래서 너에게 사냥을 부 탁하는 거지, 어때? 너에게도 나쁠
것 없는 제안이라 생각하는데?”
하스터가 당연히 계약을 받아들 일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 있게 말 했지만, 서준의 입가에는 피식- 미 소가 흐르고 있었다.
“대가가 너무 저렴한 것 같은 데?”
서준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복왕 과 관련된 정보는 너무나도 귀중한 것이었다.
허나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충분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의 존재를 사냥하는 것은 다르다.
해낼 수 있는 존재가 손에 꼽힐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고대 신과 우호 적인 관계를 가졌다 할 만한 존재 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허나 하스터 또한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것인지 어깨를 으쓱이며 개 의치 않고 있었다.
“정복과의 만남은 지금 당장 선 금으로 내어주도록 흐}지, 진짜 대 가는 따로 있네.”
“뭐지?”
“그건 나도 모르네.”
너무나도 황당한 대답에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 뭐?”
“애초에 나랑 이야기할 게 아니 거든, 가서 직접 이야기해 보도록 하게.”
하스터가 손을 내뻗는 순간, 회 색빛 섬광이 반짝인다.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른 다.
띵-!
[고대 신 중 한 명이 자신의 성 역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Y/N.]
“ 뭐야?”
가늘어진 서준의 눈매에 비해서 하스터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 었다.
“놀랄 거 없네, 진짜 대가, 그리고 정복왕의 소재에 대한 정보의 제공을 해주려는 거뿐이니까.”
저 말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을 까?
어찌 보자면 이는 함정일 수도
있었다.
성역 내부에 있는 고대 신이 얼 마나 강할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 다.
그런 성역에 제 발로 들어오라고 초대를 보냈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는 서준의 시선이 하스터 의 얼굴을 직시한다.
일전과는 달리 조금의 살기도 보 이지 않는 모습.
‘거절하는 게 맞는 판단이긴 하 지만……
고대의 존재를 사냥하려는 목적 이 같은 만큼 지금 당장은 적이라 고 볼 수 없었다.
애초에 공격을 가하려 했다면 하 스터가 칼을 거두어들이지도 않았 을 것이다.
‘ 가보자.’
오랜 세월 큰 도움을 줬었던 직 감들이 계속해서 이 초대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만에 하나의 확률로 직감이 틀렸 다 한들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고대 신의 힘을 일깨워냈다.
전투로 인해 피로가 누적된 상태 이긴 하나, 제 몸 하나 무사히 도 망칠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단 하 나뿐이었다.
‘지구…… 가족들.’
혹시 모를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민을 이어 가는 서준의 모습에 하스터가 한숨 을 내쉰다.
“하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맹약을 하도록 흐}지, 네
가 자리를 비운 동안 너와 관련된 인물에 대한 일절의 위협도 하지 않도록 흐}지. 아니, 내 능력을 벗어 난 일이 아니라면 오히려 지켜주도 록 하마.”
위험 또한 사라졌다.
오히려 안전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
“어디 좀 잠시 갔다 올게.”
서준이 서연의 얼굴을 마주한 채 로 말했다.
그리 탐탁치 않아하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고개를 주억인다.
“너무 오래 걸리지는 마.”
서연으로부터 대답을 받아낸 서준은 눈앞에 보이는 메시지 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Y.’
동의와 동시에, 지면으로부터 홀 러나온 차가운 회색빛의 기운이 서준을 단숨에 휘감았다.
고대 신의 성역,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만큼 어떠한 모습일지 상 상조차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생명체가 살아가 고 있는 만큼 최소한의 환경은 갖 춰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굳이 치자면 혼돈의 세계와 비 슷한 느낌이겠지.’
회색빛뿐인 세계이지만 넓은 평 야와 생명체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 는 영토들이 보이는 모습 말이다.
아니, 고대 신이 직접 관리하고 있는 곳인 만큼 그보다 더욱더 풍 족한 생활을 영위해나가고 있을지 도 모른다 생각했다.
하나 이런 생각은 모두 빗나갔 다.
“……생각했던 거랑 상당히 다르 네.”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서준 의 입가로 헛웃음이 흐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대 신의 성 역에는 아무것도 존재치 않았다.
넓은 평야, 생명체들이 모여서 살아가고 있는 공간의 이야기가 아 니었다.
하늘과 땅이라는 개념조차 존재 하지 않았다.
그나마 길이라고 볼 수 있게 뻗 어져 있는 공간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오롯이 회색빛으로 가 득 차 있을 뿐이었다.
홉사, 혼돈의 틈새와 같은 풍경 을 보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긴장감에 목울대로 침이 꿀꺽- 삼켜진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고대 신의 존재를 생각하는 안일함을 보였다.
‘어쩌면 이게 당연한 건데.’
태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많은 감정들이
마모되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오롯이 욕망뿐일 것이 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겠는데.’
구태여 혼자서 지레짐작하며 겁 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멀지 않은 곳에 정답이 있었다.
“저쪽이군.”
일자로 길게 뻗어있는 길의 끝자 락, 잿빛의 문이 시선에 들어온다.
누군가 안내를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문 내부에서 흘러나온 힘은 익숙하다.
‘영국에서 마주했었던, 잿빛 기운 의 존재.’
방금 전, 하스터가 내뱉었던 말 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선금으로 정복왕과 곧장 만나게 해주겠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애초에 이번 계약을 내건 이가 정복왕을 데리고 있는 잿빛 기운의 존재였다.
‘완전 놀아났군.’
입가에 헛웃음을 흘리고 있는 사 이, 분주히 걸음을 옮기고 있던 서준의 신형이 어느덧 잿빛 문의 앞 에 당도했다.
근처에 당도하자 자연스레 문이 움직이며, 내부로 향하는 길이 열 린다.
너머의 세상은 지금 서 있는 곳 처럼 회색빛뿐인 세상이 아니었다.
다채로운 색상을 가진 세계, 그 곳에 인간의 신형을 한 존재가 갈 색빛 나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기이하군.’
두 다리와 두 팔, 그리고 일자로
뻗어있는 육신까지, 분명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저히 고대 신이라고는 볼 수 없는 외향이었다.
허나 기이하게도 얼굴을 인식할 수 없었다.
분명 시선 속에 담기는데 보이지 않는다.
‘느낌도 달라.’
과거 잿빛 기운의 힘과 상당히 닮았다.
허나 풍겨져 나오는 느낌 자체는 확연히 달랐다.
여유롭고 오만했던 분위기가 전 혀 느껴지지 않는다.
완전히 다른 존재를 마주하고 있 는 듯한 느낌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기만 할 거지?]
우두커니 서있는 서준을 향해 사 내가 손을 흔든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힘이 서준 의 신형을 이끌며 방 내부로 끌어 당긴다.
탁-!
서준의 신형이 삽시간에 방 내부
로 들어서는 순간, 잿빛의 문이 닫 히더니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오랜만이군.]
편안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 오 는 사내와 달리 서준은 두 눈을 휘 둥그레 뜬 채로 놀람을 숨기지 못 하고 있었다.
....
너무 놀랍고 당황스러워서 말조 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눈 앞에 있는 존재는 정체를 알 수 없 는 잿빛의 사내뿐만이 아니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고 있던 정복왕
이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정복왕?”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불 러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유 또한 짐작이 갔다.
그녀의 몸 주변에 막대한 양의 잿빛 기운이 둘러져 있었다.
이 정도의 잿빛 기운을 다뤄낼 수 있는 존재는 이곳에 단 한 명뿐 이었다.
“정복왕에게 무슨 짓을 한 거 지?”
싸늘해진 서준의 눈빛이 여유로 운 표정을 한 채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내에게로 향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