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권 9화
509화
고보게그의 말에서연이 아랫입 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상태로는 필패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력을 개방할 수도 없었다.
‘분명 휘말릴 거야.’
위지강에게 도움을 받아 어느 정 도 수련을 해왔다지만 완벽하게 공 허를 제어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 었다.
한계치까지 전부 개방하고 나면 애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허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전력을 개방한다.’
물론, 그 상태로 계속 고보게그 와 격돌할 수는 없었다.
‘짧은 시간 안에 고보게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 물러나게 해 야 해.’
이후, 전쟁터를 바꿔서 전력을 다해 격돌한다.
그것만이 승리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서연이 고개를 주 억이며 공허의 힘을 개방해내려던 순간이었다.
후웅-!
거대한 고보게그의 입이 벌어지 며 붉은빛 섬광이 쏘아진다.
“영멸하거라.”
빠르게 쇄도해오는 공격을 보고 발을 놀리려 했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제길......
서연이 미간을 찌푸린 채로 욕설
을 흘리고 있던 순간, 고보게그가 쏘아낸 섬광이 시야를 뒤덮는다.
“영멸하여라.”
고보게그의 섬광이 서연의 전신 을 뒤덮는다.
쾅-!
밀려오는 고통에서연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실수했어.’
근래 입었던 상처가 전부 회복된 것이 아니었음을 잠시 잊고 있었다.
때문에 생각했던 것처럼 빠르게 반응하지를 못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커헙—!”
입가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 온다.
전신은 이미 넝마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이러한 서연의 일방적인 패배는 리벨리온 연합 전체의 사기에 영향 을 주기 충분했다.
“말, 말도 안 돼……
본래도 그리 유리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고보게그는 수많은 은하를 파멸 시킨 고대의 존재 중 한 마리였다.
허나 리벨리온 연합의 최고 전력 이라 할 수 있는 정복왕의 사도, 한서연이 이리 허무하게 패배할 것 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전장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리 벨리온 연합의 일원들이 저도 모르 게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괴, 괴물……
“이길 수 없어.”
나름 평화를 수호한다는 중대한 사명과 드높은 명예를 지고 전장에 나섰다.
허나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가 피 부에 와닿자 공포가 전신을 짓누른 다.
“고보게그!”
리벨리온 연합의 사기를 되돌려 놓기 위해 나라연천이 다급히 발을 놀린다.
허나 그마저도 뜻대로 이루어지 지 않았다.
“이 몸이 저딴 조무래기도 직접 상대해야 하나?”
고보게그의 말에 일대의 황제들 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앞길을 막아 선다.
콰과과광-!
겉으로 보기에는 치열하게 공방 을 주고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장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꼴이 된 나라연천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합공에 크고작은 상처들이 늘어나 기 시작했다.
서걱-!
결국 쏟아지는 합공을 받아내지 못한 나라연천의 두 다리가 무너져 내리며, 무릎을 꿇는다.
“승자가 정해진 것 같군.”
고보게그가 비릿한 미소를 흘리 며 다시 한번 입을 벌리며 붉은 섬 광을 쏘아낸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에 나라연 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콰과광-!
서연처럼 고보게그가 쏘아낸 붉 은 섬광에 직격당한 나라연천이 피 를 쏟아내며 바닥을 나뒹군다.
“커억, 커헙-!”
그사이, 고보게그를 따르는 황제 들이 조소를 지은 채로 바닥에 널 브러져 있는 서연과 나라연천에게 로 걸음을 옮긴다.
“어리석은 것들, 감히 파멸이라 불리시는 고대의 존재, 고보게그 님에게 대항하다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진 승기에 리벨리온 연합의 일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간다.
“……두 사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끝, 끝이야.”
모두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때였다.
“지금 누구에게 손을 대려는 거 지?”
전장의 하늘, 그 중심지에서 한 겨울의 한파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 가 들려온다.
쉬익-!
이후, 마치 공간을 갈라낸 듯한 속도로 허공에 나타난 한 사내가 서연과 나라연천에게 다가가고 있 던 황제들의 앞에서 움직임을 멈추 었다.
기척을 감지하지도 못한, 갑작스 런 사내의 등장.
보름달마냥 눈이 휘둥그레진 황 제들이 황급히 반격에 나설 준비를 하려했지만, 이미 뒤늦은 움직임이
후웅-!
사내가 가볍게 내뻗은 일권에서 회색빛 기운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 온다.
콰과광-!
이어진 폭발에 황제들이 혼적조 차 남기지 못하고 자취를 감춘다.
“ 네놈은……
직접 얼굴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혼돈을 다룰 수 있 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지금처럼, 리벨
리온 연합과의 싸움에 참전을 할 만한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다.
“한서준.”
항시 여유를 보여왔던 고보게그 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단순히 한서준이 전장에 합류했 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승기가 기울어진 전장이다.
모두가 합세하여 한서준을 밀어 붙인다면 본래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부했을 것이다.
허나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에서 불안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혼돈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 고 있다.’
분명 혼돈제라는 이명을 가진 존재였다.
헌데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음에 도 한서준에게서는 혼돈의 힘이 흘 러나오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다.
‘설마......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가 설이 한 가지가 존재했다.
‘고대 신이 되었다고?’
혼돈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닌, 완벽하게 혼돈으로서 존재하여 감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허나 고보게그는 얼마가지 않아 서 고개를 내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고작 인간 따위가 고대 신에 자 리에 올랐을 리가 만무했다.
근래 우주가 한번 뒤흔들리긴 했 었지만, 그것은 니오그타가 고대 신의 자리에 오르며 생긴 충격이 틀림없었다.
허나 이런 고보게그의 생각이 부 정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 리지 않았다.
“네놈이 이들의 사령관인가?”
말을 내뱉고 있는 서준을 응시하 고 있던 고보게그의 두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린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 태껏 상대해왔던 하찮은 것, 황제 들의 느낌이 아니었다.
이따금씩 느껴봤던 절대적인 존재, 고대 신의 위엄을 내뿜고 있었다.
“반응을 보니 맞는 것 같네.”
차가운 서준의 눈동자가 고보게 그를 응시한다.
“대가를 치룰 준비는 됐겠지?”
이미 뒤집을 수 없을 정도로 기 울어버린 기세라고 생각했다.
헌데 단 한 명으로 인해 전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리 벨리온 연합의 가장 강력한 전력이 자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존재
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의장님!”
“우리의 신이시여!”
오랜 세월 은둔 생활을 마치고, 한서준 의장이 되돌아왔다.
리벨리온 총의장.
혼란스러웠던 은하를 평정, 하나 로 화합해내었던 전설 속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단순히 모습을 드러낸 것뿐만이 아니었다.
공포의 대상이라 할 수 있던 황 제들마저 일격에 모두 영멸시켰다.
서준의 압도적인 힘을 향한 감탄 과 더불어 새로운 희망이 나타났다 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연 합의 일원들에게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온 것이었다.
이윽고 정신을 다잡은 연합의 일 원들이 하나둘씩 목소리를 드높이 기 시작했다.
“이길 수 있어!”
“의장님이 우리를 가호하신다!”
총애하던 황제들은 모두 영멸했 다.
이것만으로도 그리 탐탁지 않은 상황이었다.
헌데 기껏 꺾어놓은 리벨리온 연 합이 사기를 되찾아내기까지 했다.
자연스레 고보게그의 미간이 찌 푸려진다.
‘좋지 못하군.’
비단 전장의 상황뿐만이 아니었다.
정말 지금 눈앞에 있는 한서준이 고대 신의 자리에 오른 것이라면?
이는 싸움이라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기에는 방
금 전, 한서준이 내뿜던 존재감은 분명 고대 신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고대 신의 자리에 올랐다니
믿을 수 없고, 인정하고 싶지 않 았다.
형제들 중 우수하다고 알려진 이 들조차도 오르지 못한 자리였다.
한낱 인간이 넘볼 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허나 눈앞의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한서준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위
엄이 어려 있었고, 존재 자체가 혼 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괴물 같은 놈……
다른 형제들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간이라는 것은 알 고 있었지만, 이제는 경외심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허나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영멸 을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어떻게 니오그타에게서 도 망쳐 나왔는데.’
끝없는 부정 속에 갇혀서 지옥과 같은 나날을 보내며 간신히 잡아낸 기회였다.
마냥 헛된 희망도 아니었다.
‘기회 또한 충분히 있을 거다.’
아직 고대 신에 오른 지 얼마 되 지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힘을 다뤄 본 적이 없는 만큼 크고작은 실수를 벌일 수밖 에 없었다.
‘그 찰나의 순간 곧장 전장을 이 탈한다.’
고보게그가 가늘게 눈을 뜬 채로 서준을 응시하고 있던 때였다.
“도망치려고?”
정곡을 찔렸다는 것에 놀랄 틈도
소리가 닿기도 전, 서준의 신형 이 시야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허나 당황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는 고대 신의 자리에 오른 존재다.’
상식 밖의 움직임과 힘을 보일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이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 라 생각하느냐!”
자신만만하게 소리를 내지른 고 보게그가 곧장 거구의 신형을 뒤틀 며 꼬리를 휘두른다.
적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읽어낸 만큼, 분명 공격에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휘두른 꼬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
당황한 고보게그의 모습에서준 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느려.”
어느새 서준의 신형은 완전히 반 대편에 당도해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고보게그가 다급 하게 붉은 기운, 광기의 힘을 발산
해낸다.
“쉽게 당해줄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퍼져나간 광기가 세계를 집어삼 킬 기세로 쏘아진다.
허나 기이하게도 서준은 제자리 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약해.”
고보게그, 고대의 존재라 불리고 있는 만큼 분명 강대한 힘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서준의 기준에서 보자면 너무나도 미약한 힘이었다.
애초에 격이 다른 만큼, 명확한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우스울 정도로 가엾은 광기네.’
후웅-!
가볍게 손을 한번 내젓는 것으로 주변의 광기를 완벽하게 밀어낸다.
“죽어.”
뒤이어, 서준이 가볍게 말아 쥔 주먹을 내뻗는다.
고보게그가 황급하게 몸을 동그 랗게 말며 방어 자세를 취해냈지만, 무의미한 발버둥에 불과했다.
“혼돈 폭발.”
서준의 주먹에서 혼돈기가 폭발 하기 시작한다.
콰과광-!
세상을 뒤흔들며, 치솟은 혼돈은 고보게그의 신형을 삽시간에 집어 삼켜버린다.
고대의 존재라 칭송받던 고보게 그가 이렇다 할 반항조차 하지 못 하고 영멸을 맞이한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힘에서준의 입가에도 헛웃음이 흐 르고 있었다.
“생각 이상이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