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권 7화
507화
허나 달리 뒤쫓을 방도가 없었다.
‘골치 아프군. 대체 어디로 갔을 까?’
워낙 정보가 적은 만큼 달리 짚 이는 곳도 없었다.
‘한서준이라는 놈에 대해서 물어 볼 만한 놈이 없으려나……
리벨리온 연합에서 워낙 많은 인 기와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서준
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들은 많다 고 할 수 있었다.
허나 대다수 나약한 종족들뿐이 다.
본신을 드러내고 마주하는 것만 으로 미쳐버리거나 정신을 잃어버 릴 것이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한서준 한 명 뿐이었다.
괜히 애꿎은 피해자를 만들 이유 가 없었다.
“ 으음......
본신을 마주하고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신격들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했지만 이곳은 난 생처음 와보는 은하였다.
마찬가지로 다른 신격들에 대한 정보도 알지 못했다.
결국 빠르게 일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방법이 없네……
단 한 곳, 확실하게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붕괴되지 않을 이들을 알고 있었다.
‘다시 평화파 혼돈인들을 만나러 가는 수밖에.’
두 번이나 연속으로 방문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상황상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게 가장 빠른 길이다.’
웃음을 홀린 하스터의 몸이 다시 우주를 향했다.
‘이번에는 카터 녀석을 만나 볼 수 있으면 좋겠군.’
혼돈의 세계로 되돌아온 카터는
곧장 평화파 혼돈인들을 대표하는 수장들을 소집해냈다.
각 수장들이 모인 만큼 평소라면 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조성되 었을 테지만, 기이하게도 카터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카터의 웃는 얼굴에 평화파 혼돈인들은 마음속 으로 안도와 기쁨을 느꼈지만, 동 시에 의문이라는 감정들이 피어올 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 지……?’
잠시, 머릿속에 의문이 피어났지 만 다행히도 머지않아서 해소가 되 었다.
“우리 평화파들을 지지하는 고대 신이 탄생했네.”
갑작스럽지만 그 무엇보다도 기 쁜 소식에 평화파 혼돈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 대 신을 만나 직접적으로 도움을 청하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이었다.
그들은 제 권태에 찌들어있고, 본인들의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닌
이상 절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 었다.
애초에 정확한 위치조차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피어나는 의문들에 평 화파 혼돈인들은 궁금증을 이겨내 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대. 대체 누구입니까?”
“어느 분이시죠? 위험한 계약을 하신 건 아니십니까?”
“무언가 속임수를 섞어 계약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쏟아지는 질문과 걱정을 듣던 카 터는 단호한 말투로 대답했다.
“자네들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네, 이번에 탄생한 고대 신은 이 성을 가지신 분이니까.”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요? 아니, 그 전에 탄생하셨다는 건……
말을 내뱉던 평화파 혼돈인, 그 중에 총대장의 직책에 앉아있던 크 로고의 눈이 보름달마냥 동그래졌 다.
근래 우주의 뒤흔들림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만, 고대 신의 탄생이라 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곳에서 고대 신
들끼리 충돌했다고 생각했다.
헌데 방금 전, 카터의 말을 통해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감을 알게 되었다.
“맞네, 후보자였던 한서준 님께 서 고대의 신의 자리에 오르셨네.”
이제야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카터의 유일한 업무이자, 삶의 이유라 할 수 있었던 혼돈의 세계 를 수호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평화파들을 지지해주는 고 대 신이 탄생한 것이라면 이제는 혼돈의 세계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
라 완전히 지배를 할 수도 있을 것 이다.
평화파 혼돈인들의 입장에서도 이보다 기쁜 일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드, 드디어! 저희도 이렇게 숨어 다니면서 살 필요가 없어졌군요.”
밝은 미래만을 생각해왔던 혼돈 인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희도 한 가지 보고드릴 게 있 습니다.”
“무슨 일인가?”
회의실에 앉아 오랜만에 웃음꽃
을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던 카터를 향해 카터가 조심스레 다가 온 크 로고를 바라보며 물었다.
크로고의 얼굴은 백지장보다 하 얗게 변해 있었고, 떨리는 눈빛을 감추지 못한다.
“왜 그러나?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무슨 큰일이 있었나?”
오랜 세월 혼돈의 세계에서 평화 파들을 지켜온 만큼, 카터는 그들 의 마음을 쉽사리 읽어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고양된 기분 속에도 갑 작스러운 변화를 놓치지 않았고,
크로고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호, 혹시…… 그 한서준 후보자 님 아니, 고대 신님……
“정말 위대하신 분이지! 이렇게 단기간에 고대 신에 오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 생각하지 못했을 걸세, 전례 가 없었으니 말이야.”
잠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서준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게 되자 카터의 표정이 삽시간에 밝아진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 진다.
오랜 시간 함께한 것은 아니었지
만, 그의 본 모습을 봤었고 함께 전장을 누볐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평화파를 지지해주는 고대 신이라 서일까?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확실한 것은 서준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웃음이 가시질 않고 있었다.
“……그, 그게 아니라. 고대 신님 을 찾아오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크로고가 그 심정을 못 느낄 리가 만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고는 카
터의 밝은 미소를 보면서도 불안감 을 감추지 못한 채 아랫입술을 잘 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리 걱정할 거 없네, 한서준 님은 고대 신이 되셨네, 어지간한 시련은 혼 자서도 충분히 헤쳐나가실 수 있을 테니.”
호쾌하게 웃으며 말을 내뱉었지만 여전히 얼굴에 그늘이 진 크로 고의 모습에 카터의 눈매가 가늘어 진다.
“무슨 일인지 말해 보게, 상황을 알아야 내가 대책을 세울 수 있 O..”
“……하스터.”
조심스레 입을 열고 있는 크로고 에게서 상상치도 못했던 존재의 이 름이 흘러나왔다.
“……황색의 신? 설마 그가 이곳 에 왔었나?”
되묻는 카터의 눈가 끝에 경련이 일었다.
이 우주에 많은 고대의 존재와 황제들이 있으나, 사실상 그 힘은 결국 고대 신들에게서부터 시작되 었다.
그리고 황색의 신 하스터.
고대의 존재로 태어났으나 신의 자리에까지 오른 최초의 이레귤러. 다행인 점이라면 그는 다른 생명체 들에게 다소 우호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존재였다.
이렇게 다른 고대 신들과 달리 하스터가 다소 우호적인 태도로 다 른 종족을 대하는 것은 궁극적인 목적이 그들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 었다.
‘하스터의 목적은 모든 고대의 존재와 신의 말살.’
오직 그를 위해 움직이고 살아온 존재였다.
하지만 가진 힘이 부족해서 다른 고대의 신을 사냥하지는 못하고 있 는 상황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고대 신에 오른 서준을 가만히 둘 리가 만무했다.
물론, 쉽게 서준이 당할 것이라 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미흡해 보이기는 하나 결국 고대 신에 오른 존재였다.
결국 하스터의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아무런 피해 없이 전투를 끝마칠 리가 만무했다.
당연하지만, 하스터를 눈여겨보 던 다른 고대 신들이 그 기회를 놓 칠 리가 만무했다.
‘어쩌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서준과 하스터, 둘의 충돌만은 무슨 수가 있어도 막아야 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 어.’
많은 고대의 신들을 견제하고 있 는지라, 우주를 바삐 돌아다니며 살아가고 있기에 한동안은 눈치채 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사이 서준이 고대 신의
힘에 적응하게 되고, 하스터가 쉽 사리 건드릴 수 없는 경지로 나아 갈 것이라 생각했다.
헌데 하스터는 바삐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다른 고대 신의 탄생을 놓치지 않았다.
다급함을 느낀 카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움이 필요하다.’
서준 혼자서 감당할 일이 아니었다.
고대 신에 오르긴 했으나 불과 하루 전.
쉬이 당하지는 않겠지만 하스터
와의 정면 승부에서 승리를 점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리벨리온 연합의 힘이라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의장인 서준을 지키는 일 이라면 흔쾌히 전투에 참전해줄 것 이다.
‘그중에서도 위지강 님이 나서준 다면……
지팡이를 들어 올린 카터가 다급 히 움직이려 할 때였다.
“오랜만이군, 카터.”
평화파 혼돈인들의 회의장에 제 멋대로 균열을 일으키고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색의 로브, 다리를 대신하여 자리 잡고 있는 촉수들.
그 모습을 확인한 카터의 목울대 로 마른침이 삼켜진다.
“하스터……!”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거든.”
하스터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 어졌고, 카터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몰아쳐라-!”
이후 망설임 없이 마도서를 펼쳐 냈다.
콰과광-!
거대한 마나의 파동과 함께 하늘 이 갈라지며, 한 줄기의 회색빛 벼 락이 하스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번쩍이는 섬광 속, 당황한 크로 고가 손을 내뻗었다.
“카터 님?!”
“무사히 돌아올 테니, 걱정 말 게.”
크로고를 향해 고개를 주억인 카
터의 시선이 하늘에 떨어져 내린 벼락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챈 하 스터를 향했다.
“만나자마자 공격을 해온다 라……. 뭔가 켕기는 것이 있나 보 군.”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켕 기는 것이 없을 수가 없는 거 아니 겠습니까,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다 면 따라오시지요.”
전체가 푸른빛 마나에 휩싸인 카 터의 신형이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파지지직-!
균열이 일어났고, 카터와 하스터
의 신형이 그 안으로 동시에 사라 졌다.
크로고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카터 님-!”
말릴 틈도 없이 사라진 카터를 향해 소리를 내지른, 크로고의 눈 에는 불안함과 다급함이 어려 있었다.
“리벨리온 연합에 이 소식을 알 려주게!”
이어진 카터의 외침, 다소 뜬금 없는 부탁이었지만 아무런 연유 없 이 저런 말을 내뱉었을 리가 없었
크로고는 곧장 고개를 주억이며 리벨리온 연합의 본부가 있는 지구 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카터의 마도서, 그 안에 담긴 무 수히 많은 마법들이 쉴 새 없이 쏟 아져 내렸다.
땅이 갈라지며, 바다가 치솟고,
하늘에서는 별이 떨어져 내렸다.
둘이 남긴 전투의 여파로 인해 행성은 결국 혼적도 남기지 못한 채 소멸해버렸다.
그렇게 몇 개나 되는 소행성을 부순 후, 회색빛 평야 위에 널브러 진 카터의 입가에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크흐흐……
“어째서 웃는 거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 은 하스터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 었다.
“크하하하……
“실성을 한 게 아니라면 대답을 좀 해줬으면 좋겠군.”
“크허허허허…… 쿠엑!”
계속해서 웃기만 하는 카터의 복 부를 짓밟은 하스터의 미간이 찌푸 려졌다.
“영멸하고 싶지 않다면 빨리 말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냥 하스터 님께 작은 상처라 도 입힌 것이 기뻐서 웃었습니다, 천 년 전만 하더라도 단 한 번도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는데 이번 에는 닿아냈거든요.”
카터의 눈동자가 황색의 로브를
향하자 자연스레 하스터의 시선도 따라 움직인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아주 희미하 지만, 짧게 찢어져 있는 로브의 모 습이 보였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