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권 6화
506화
혼돈을 이용해 빚어낸 육신이 영 혼의 격과 공명하며 하나가 된다.
그 과정을 직접 느끼고 있는 기 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벼락처럼 전신을 강타하는 전율 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릿하게 울 려 퍼지는 듯한 느낌.
‘이게 진짜…… 혼돈……
손을 내뻗으면 모두 쥘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집어삼킬 수 있을 듯했다.
비루했던 육신을 벗어던지고, 완 벽하게 혼돈과 동화되는 느낌은 그 야말로 오랜 세월 우주를 지배해온 신이 된 듯한 기분이다.
어째서 수많은 존재들이 고대의 신들로 불리는 이들을 두려워했는 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 가 되었다.
차오르는 충족감에 혼돈을 거머 쥐기 위해 손을 내뻗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갑작스레 사 라져 버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깜짝 놀라면 서도, 서준의 입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분명 내 앞에 있지만 당장은 실 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 다.
애초에 혼돈은 정의될 수 없는 것이다.
분명 서준은 이 우주에 있어 몇 없는 고대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에 도달해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모든 혼돈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혼돈을 다루는 고대의 신은 나 하나만이 아니니까.’
드넓은 우주, 그 속에 몸을 웅크 리고 있는 존재가 분명 있을 것이 다.
실제로도 모든 혼돈을 거머쥐려 는 순간, 서준은 거대한 존재감, 아 우터라 불리는 고대 신들을 순간적 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괴물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혼
돈을 품은 존재들, 일순간이라지만 그들의 존재감에 기이한 경외심과 두려움을 느꼈었다.
허나 서준 또한 고대 신의 자리 에 오른 존재였다.
그 감정을 추스르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후우
긴장감을 밀어내기 위해 가볍게 내뱉은 숨, 허나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쿠구궁-!
우주가 반응하며 뒤흔들린다.
지금 서 있는 곳이 위지강의 성 역이란 점을 생각하면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오랜만일세.”
“이것 참, 제자 놈이 엄청난 괴 물이 됐네.”
그런 서준에게로 다가온 위지강 이 인사를 건네 온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로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었지만 위지강과 카 터의 눈은 서준의 모든 것을 훑어 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고대 신의 자리에 오른 것은 상 당한 성장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혼돈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온전한 정 신 상태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온전치 않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 을 것이다.
위지강이 복잡한 시선으로 서준 을 바라보고 있던 때였다.
“여긴?”
“길을 못 찾고 너무 헤매고 있는 것 같아서, 이 스승님이 힘 좀 썼
다.”
“위지강 님께서 큰 도움을 주셨 습니다.”
앞서 푸른빛, 카터의 목소리를 들은 만큼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몸 상태는 어떠냐? 어디 이상하 지는 않느냐?”
위지강의 물음에서준은 자신의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며 스스로 의 몸 상태를 살핀다.
의지가 발하는 순간 혼돈이 치솟 는다.
아니, 육신 자체에 혼돈이 깃들
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지와 육체 가 하나가 되는 경지를 넘어 영혼 자체에 동화된 듯한 느낌이었다.
“좋네요.”
서준이 진심 어린 감탄을 홀리고 있는 모습,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 던 위지강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대단하군.”
혼돈을 단순히 수족처럼 부리는 수준이 아닌, 완벽하게 혼돈과 동 화되어 의지로 발현시키고 있었다.
‘이게 고대 신의 힘인가……
위지강과 카터는 쉬이 입을 열 수 없었다.
할 말이 없기보다는, 서준에 대 한 확신이 없는 만큼 조심스럽게 다가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두 분에게는 항상 빚만 지네 요.”
“제가 원해서 한 일이니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어둡기만 했던 카터의 표정이 한 층 밝아진다.
감사를 표하는 말,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남아있는 것은 확실했기 때 문이다.
물론, 완벽히 방심해서는 안 되 었다.
언제든지 변덕을 일으킬 수도 있 는 것이 바로 혼돈이다.
상황을 살피던 위지강이 조심스 레 입을 열었다.
“내가 알던 제자가 맞는 거냐?”
“제가 알던 스승님이랑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네요.”
딱딱하게 굳어있던 위지강의 입 가에 호선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완벽하게 기억하고, 인간의 감정 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써 조금 더 안심할 수 있게 됐다.
“후우, 다행……
짧게 숨을 내쉰 위지강이 말을 끝맺기도 전이었다.
쿠구구궁-!
전 우주가 다시 한번 크게 뒤흔 들린다.
서준이 고대 신의 자리에 도달한 이후 일어났던 진동과 같은 굉음이 다.
자연스레 서준과 위지강의 눈이 먼 곳을 향했다.
아주 먼 거리, 무언가가 거대한 혼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자연스레 서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고대 신의 자리에 오르며 모든 것을 거머쥘 듯한 충족감과 함께 느꼈던 두려움과 경외심의 근원을 정확하게 목도한 것이다.
“아우터 갓.”
차가운 눈을 한 위지강이 서준의 의문에 화답을 내려줬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고대 신이라
불리는 존재지만 근간은 아우터 갓 이라 불리던 존재들이지, 우주의 지배자라 할 수 있는 괴물들이지.”
수많은 은하가 있었고, 각기 다 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모든 은하가 두려워하는 혼돈의 주인이 라 할 수 있는 존재들.
“제자야, 너도 고대 신이 될 때 저들만큼이나 강대한 힘을 쥐었느 냐?”
“마주 보긴 했습니다.”
“손에 넣지는 못했나 보군……. 뭐 어차피 길을 알고 있다면 시간 문제겠지.”
싱긋 웃어 보인 위지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 보고 싶구나, 지금까지로 봐서는 정상이긴 한데 네 입으로 확답을 듣고 싶구나.”
서준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위지강을 바라보았다.
“혼돈으로 빚어진 만큼 갖가지 감정들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을 텐 데, 그를 확실하게 컨트롤할 수 있 겠느냐?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겠구 나.”
위지강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기이하게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간절함이다.
“만약 네가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면……
묵색의 기운이 폭발할 듯이 치솟 기 시작한다.
“내 손으로 슬픈 선택을 내려야 하니 말이다.”
서준을 바라보고 있는 위지강의 눈매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있었다.
다음 날, 서준은 위지강의 성역 을 떠나 지구로 되돌아갔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마공학 정 거장과, 탁한 공기를 맡은 서준은 잠시 그를 허공에서 감상하듯 내려 다본다.
‘오랜만이네……
몇 번씩이나 다른 차원, 행성, 은 하들을 갔다가 돌아왔지만, 오늘은
특히나 그 감회가 색달랐다.
이유는 여럿일 것이다.
‘익숙한 풍경, 현대 문명, 내 집 이 가깝다는 것, 더 성장해서 돌아 온 뿌듯함.’
하나하나 꼽자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오늘 밤까지 쉴 새 없이 말해도 시간이 부족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중에는 가장 큰 한 가지 가 존재했다.
‘다시 가족들도 볼 수 있고.’
그러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
다.
서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서울에 세워진 가장 높은 건물, 마공학 정 거장의 옥상에 걸터앉았다.
위에서 말했듯, 지구로 되돌아올 때마다 갖가지 감정을 느꼈지만 이 번만큼은 만족감이 더 컸다.
마음속에 찾아오는 안정감이 엄 청나게 컸기 때문이었다.
‘고대 신이 됐어.’
엄청나게 큰 위기를 겪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이 겹치며 영멸을 맞이할 뻔했다.
하지만 결국 위지강과 카터의 도 움으로 서준은 빠르게 고대 신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여기가 끝이 아니야.’
만약 고대 신에 오른 것이 끝이 었다면, 서준은 크나큰 고독함과 허탈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절대자가 느끼는 고독과 같은 것 이다.
하나 다행히도 서준에게는 그런 고독이 찾아오지 않았다.
고대 신이 되었지만 이제 막 걸 음마를 떼었을 뿐이었다.
서준은 막 고대 신이 되었을 당 시, 위지강과 함께 느꼈던 거대한 존재감을 떠올렸다.
아주 먼 거리였지만 명확하게 느 껴지는 존재감.
등골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었다.
‘지금 싸운다면 필패한다.’
아직 서준은 고대 신의 힘이란 것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에 비해서 고대 신이라 추앙받 고 있는 이들은 오랜 세월 적응하 고 힘을 다루는 법을 확실하게 인 지한 상태였다.
명확한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 었다.
‘운 트세 캄블이 정말 애송이였 어.’
놈은 방심을 하고 있었다.
더불어 상극인 심연을 가지고 있 었기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갖가지 행운이 겹쳐졌기에 이길 수 있던 것이다.
정직하게 힘으로 맞서 싸우려 했 다면 서준은 결단코 캄블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캄블보다도 강한 신 들이 여럿 존재했다.
그리고 그들 중 지금의 서준보다 도 약한 이는 누구도 없었다.
평화를 바라고 있는 서준의 입장 에서 좋지 않은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다행히도 그들은 아주 먼 거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리 고대 신이라 할지라도, 이곳을 찾아오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최소 100년 이상이겠지.’
그 시간 동안이면 충분히 힘에 적응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벌게 된 만큼, 나름 안정적인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놀고 있을 수는 없지.’
늘상 그랬듯 최악의 상황을 생각 하며 대비한다.
애초에서준은 성격상, 무언가 찜찜한 상태로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는 없었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전력을 모두 끌어올린다.’
특히나 고대의 힘, 공허를 다루 는 서연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 을 것이다.
자연스레 가장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 정해졌다.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 필요도 없 었다.
발아래, 전광판에서 서연이 이끌 고 있는 리벨리온 연합의 출정 소 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아니마 차원이라……
거리도 상당히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만큼, 서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후 곧장 몸을 허공에 띄워내며 아니마 차원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있는 곳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서준이 잠시 머물렀던 마공학 정 거장의 옥상.
간발의 차로 같은 장소에 도착한 황색의 로브를 걸친 존재, 하스터 가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둘러보았
다.
“분명 이쯤이었는데?”
가늘어진 눈매로 주변을 둘러보 던 하스터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 춘다.
“틀림없이 이곳에 머물렀었다.”
이 정도로 거대한 혼돈을 품고 있는 존재는 손에 꼽힐 정도였으니 말이다.
근데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 가?
“눈치채고 이동을 한 건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뒤를 쫓고
싶었지만, 방대한 양의 혼돈이 추 적을 방해하고 있었다.
‘곤란해졌군……
본래라면 한번 추적을 실패한 것 으로 이리 조바심을 느끼지는 않았 을 것이다.
하지만 한서준은 이야기가 달랐 다.
‘고대 신의 자리에 올랐다.’
바로 어제, 우주가 뒤흔들렸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단 하나, 고대 신이 탄생할 때뿐이었다.
‘고대 신에 힘에 완전히 적응해 버린다면 귀찮아진다.’
최대한 빠르게 사냥해야한다.
하스터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 민에 빠졌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