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권 24화
499화
‘틈이 보이는군.’
생각이 닿는 순간이었다.
쾅-!
솟구친 니오그타의 촉수들이 다 시 한번 구체가 되어 구울들을 휘 감는다.
‘또 부정을 하려는 건가.’
반복되는 싸움에 모르디기안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어리석은 것……. 부정이라는 것이 한 가지만을 의미한다고 생각 하는 것이냐.”
이어서 니오그타가 쏘아낸 촉수 들에 휘감긴 구울들의 형태가 기괴 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소멸하지 않는다.
모르디기안, 구울들의 아비라 칭 송받는 주인의 존재를 부정한다.
‘통제권을 빼앗아 가려 하다 니……!’
당황한 모르디기안이 다급하게 구울들의 소환을 해제했다.
“제 손으로 무덤을 파는구나.”
구울들이 사라졌다는 것, 모르디 기안의 주변을 지키던 호위병들 또 한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니오그타의 입장에서 보자면 둘 도 없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어느덧 눈앞으로 다가 온 부정의 덩어리, 니오그타가 입 을 벌렸다.
그 안쪽, 입 안에서 수백 개의 촉수가 쏘아지는 것이 선명하게 보 인다.
“빌어먹을……
내뱉은 욕설을 끝맺기도 전이었다.
콰직-!
“맛있게 먹어 주도록 하마.”
니오그타가 쏘아낸 촉수들이 모 르디기안의 신형을 단숨에 휘어잡 고, 입안으로 삼켜냈다.
묵색뿐인 세계, 그 안에서 회백 색의 기운이 거세게 일어나며 충돌 음을 일으켜낸다.
콰과광-!
폭발과 함께 뒤로 밀려난 검은 눈동자를 한 사내의 시선이 다음 움직임을 보이려는 순간, 사방에서 촉수들이 쏘아진다.
곧장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끈질기고 집요한 촉수들의 공격에 결국 사내는 옷자락이 휘감기며 촉 수에게 사로잡혀 버린다.
그사이, 회백색의 머리카락을 휘 날린 여인이 빠르게 접근해오며 손
을 내뻗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주먹에 가격당하면 다음을 기 약할 수는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 사내는 묵색의 기 운을 일으키며 촉수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겨낸다.
서걱-!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세계가 갈라지며 사내의 신형이 삽시간에 자취를 감춘다.
묵색이 완전히 사라지며 회백색 으로 가득 찬 세계의 모습.
회백색의 여인이 승리를 거머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여인은 무릎을 꿇으며 가슴 을 부여잡았다.
“끄으윽-!”
당장에라도 피를 토해낼 듯 숨을 거칠게 쏟아내는 여인의 앞에는 방 금 전 자취를 감추었던 검은 눈동 자의 사내, 위지강이 서 있었다.
찢겨지고 넝마가 된 옷, 몸 곳곳 에 생긴 자잘한 자상들.
치명적인 부상은 없었지만 위지 강 역시도 상태가 그리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하나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묵색, 천마의 힘은 여전히 굳건하며 패도 적이다.
위지강이 아무런 말없이 쓰러져 있는 여인을 지켜보기만 한 지 얼 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회백색으로 물들어 있던 여인의 머리카락이 위지강과 똑같은 흑발 로 물들기 변하기 시작했다.
“허어……. 허억……
가까스로 숨을 가다듬은 정복왕 의 사도, 서연이 땅바닥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얼굴에는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입가에는 호선이 그려 진다.
“제법이구나……
그 미소를 본 위지강의 입가에도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칭찬에 담긴 의미는 두 가지였 다.
“이렇게 제대로 싸워 본 적은 손 에 꼽을 정도야, 확실히 정복왕이 다루는 공허의 힘은 특별하군, 어 떤 의미에 있어서는 내 제자 놈보 다도 대단한 것 같아.”
서연의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던 위지강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껴 질 만큼 강한 힘이다만 오롯이 본 인이 그 대가를 감당해야 하는 만 큼 순간의 실수로 힘을 다루는 당 사자마저 잡아먹힐 수 있는 힘이 야.”
서연은 묵묵히 고개를 주억인다.
“그래서 위지강 님에게 수련을 부탁드렸죠.”
“때문에 적지 않게 고생을 했 지.”
“그 덕분에 이제 저 스스로의 한 계점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됐어요.”
자신감 넘치는 서연의 모습에 위 지강은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수확이군.’
제자 외로도 고대의 존재들과 맞 서 싸울 만한 강자를 발견했다.
심지어 서연의 한계치는 하루가 다르게 가파르게 치솟고 있었다.
어제와 오늘의 격차가 아득하다 고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사라진 정복왕이 서연을 가 호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허는
위험했다, 언제나 서연을 집어삼키 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따지자면 먹이를 노리는 맹수와 같은 힘이다.
때문에 위지강은 맹수가 이빨을 드러냈을 때 서연이 그를 제압하고 억누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수련의 성과 는 상당했다.
공허가 폭주하며 제 육신을 집어 삼키기 직전, 솟구치려는 힘을 강 제로 억누르고 봉인시켜 버린다.
‘이 정도라면 적어도 공허에 잡 아먹히는 일은 없겠군.’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번 쩍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서연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계속해서 샘솟고, 폭주한 공허가 육신을 집어삼키려 한다 할지라도 제 의지만 있다면 탈출해낼 수 있었다.
허나 위지강은 고작 이 정도에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너무 좋아하지 마라, 이제 고작 한 번 성공했을 뿐이니.”
“……알고 있어요, 하지만 머지 않아서 제가 원하는 대로, 아주 손 쉽게 제어해내도록 만들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는 서연의 눈동자 에 결의가 가득 차 있었다.
“훌륭한 포부구나, 허나 단순히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건 알 고 있겠지?”
“죽도록 노력할 거예요.”
이어진 서연의 대답에 위지강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흐른다.
“죽으면 내가 제자 놈에게 할 말 이 없어져서 안 돼, 정확하게 죽기 직전까지만 고생시켜주도록 하마.”
입가에 피식— 미소를 흘린 서연 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미 각오했던 바예요.”
“각오한 이상의 수련이 될 거야, 오히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 각할 수도 있어.”
위지강의 눈동자에 과할 정도의 열정이 차오르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제자를 위해서라도 서연을 절대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할 거다.
때문에 공허의 힘을 완벽하게 제 어하지 못한다면 세상으로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물론, 시간이 무한정 제공된 것 은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빨리 수련을 끝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만……
지금의 우주는 크고작은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 상황이다.
출발점이 어디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나 현재 그 변화의 중심에 자 신의 제자인 서준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크고작은 위기가 찾아올 것이 다.
아니, 어쩌면 이미 찾아왔을 수 도 있다.
‘어제부터 제자 놈의 기운이 완 전히 사라졌다.’
워낙 강해진 만큼, 무슨 봉변을 당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괜스레 차오르는 불안감을 지울 수 는 없었다.
“늦어도 3개월.”
때문에 위지강은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기한을 정했다.
서연이 제대로 된 수련을 시작하 고 공허의 힘을 어느 정도 억제하 기까지 1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모
되었다.
상당히 빠른 성장이었지만, 완전 히 제어하고 억제하는 데는 더 오 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 다.
“그 안에 완전히 제어할 수 있도 록 해주마.”
“위지강 님만 믿고 따를게요.”
어느새, 얼굴을 굳힌 서연이 자 세를 다잡으며 수련을 시작할 준비 를 마쳤다.
*
수호자, 카터.
바깥의 우주로 혼돈인들이 나가 지 못하도록 혼돈의 세계를 지키는 인물이 고대의 존재와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이 주제는 수호자와 고대의 존재 를 알고 있는 존재라면 궁금증을 품을 만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의견은 반반으로 나뉜 다.
고대의 존재들이 강력하기는 하 나, 오랜 세월 혼돈의 세계를 지켜 온 카터의 힘도 만만치 않을 것이 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이야기군.”
분주하게 혼돈의 세계를 돌아다 니며 일어나는 균열을 막아내고 있 던 카터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혼 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의 바로 옆에서 있던 리벨리 온 연합군의 지원군, 나라연천이 물어왔다.
“지금 평화파 혼돈인들이 나누고
있는 이야기에 답한 걸세.”
카터 님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 다.
수호자의 마법은 고대의 존재들 마저 봉인해버릴 수 있다.
결국 그 무시무시했던 크투가 역 시 카터 님을 쉽사리 죽이지 못하 지 않았느냐?
그 어떤 고대의 존재들도 두렵지 않다고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헛웃음이 흐른다.
“그래도 저렇게 희망이라도 품고 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헛된 희망에 사로잡혀,
스스로가 나아가는 것을 멈추려 하 고 있지 않은가.”
단호한 카터의 말에 나라연천은 헛기침을 흘렸다.
“크흠......
반박할 수가 없었다.
허나 아무런 말 없이 벙어리처럼 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저들의 믿음과 희망, 경외 와 같은 감정들이 모여 주군의 힘 이 될 겁니다.”
실제로도 카터로부터 시작된 이 야기는 ‘신’의 후보자로 오른 서준 이 과거, 혼돈의 세계를 구했을 때
의 일화와 근래에 크투가를 처치한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단순한 이야기일 뿐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 카터를 따라 움직 이고 있는 혼돈인들 모두가 평화파 에 속해 있는 이들이자 한 세력을 거느린 수장이었다.
저들이 지금 내뱉고 있는 이야기 는 머지않아 평화파 혼돈인들에게 신화가 되며, 적지 않은 신앙이 모 일 수도 있었다.
호사가나 할 법한 이야기들이 흘 러나오는 것이 카터의 입장에서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쉽사리
말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지금 고대의 존재들의 움직임으로 보아서는…… 머지않아 우주에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원하는 만큼의 문을 열기 위해서라도 평화파, 혼 돈인들은 가장 최우선의 표적이 될 것이다.
강력하면서도, 수많은 적들을 상 대해야 한다.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이 었다.
평화파, 혼돈인들을 수호하는
‘신’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호
사가와 같은 저들의 이야기를 방치 해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부 밝은 미래를 위해 감 내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군.’
애써 마음을 정리하려 해봤지만 카터의 굳어진 표정은 좀처럼 펴지 질 않는다.
물론, 비단 들려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혼돈의 세계가 너무나도 조용하 다.’
고대의 존재들의 내분이라는 상 황으로 인해 지금 우주는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헌데 역설적이게도 혼돈의 세계 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운 시 간을 보내고 있었다.
흡사, 폭풍전야의 상황과 같았다.
머지않아서 불어닥칠 폭풍은 혼 돈의 세계 전체를 뒤흔들 것이다.
‘분명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수만 년을 살아온 수호자로서의 직감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있지만 무언가 거대한 변화가 찾아오려 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일까?’
다행히도 추측 가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었다.
후보자로 올린 후로부터 카터는 계속 리벨리온 연합에 정보를 요청 하여 서준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서준의 흔적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상황이었다.
이전처럼 단순히 수련을 위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허나 카터가 가진 지식들로 현재 의 상황을 유추해봤을 때, 또 다른 가능성이 한 가지 존재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