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권 21화
496화
이타콰가 품고 있던 다량의 광기 가 탐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패황의 칭호를 가지고 있 는 만큼 온전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의 광기를 흡수해낼 수 있었다.
심지어 광기는 이미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었다.
괜한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에 비해서 공허는 구할 방도
가 없지.’
내어주는 정보도 마찬가지였다.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되어 있는 이타과가 올바른 정보를 내어줄 리 가 없었다.
물론, 눈동자에 거짓은 없었다.
이타콰는 살아남기를 갈망하고, 간절히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진정으로 삶을 갈망하는 생명체 의 모습이었다.
허나 이타콰는 광기에 잠식되어 있는 상태였다.
당장이야 생존본능에 의해 제정
신으로 되돌아왔다지만 언제 광기 에 잠식될지 알 수 없었다.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갑작스럽게 돌변하여 공격을 가해 올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위험 요소가 너무 많 지.’
그에 비해서 캄블의 보상은 간결 하면서도 확실했다.
“굳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지.”
고개를 주억인 서준은 작게나마 남아있던 미련을 털어내며 고개를 든다.
때마침 이타콰의 시체에서 붉은
기운이 솟구치며 흩날리기 시작했 다.
동시에 피어오른 아지랑이와 같 은 기운을 서준이 홉수해낸다.
“ 으음......
서준은 난폭하면서도 제멋대로 인, 광기를 조심스럽게 패황의 칭 호를 통해 흡수해낸다.
‘정말 끝났군.’
흘러나온 광기를 흡수해낸 서준 은 몸속에 차오르는 힘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서준은 이타콰와의 싸움을 통해 꽤나 많은 이득을 얻었다.
첫째로는 다량의 광기였다.
온전히 홉수한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양이 많았기에 일부를 흡수해 낸 것만으로도 엄청난 상승세를 보 이고 있었다.
물론, 그에 따른 위험도 증가했 다.
광기 또한 고대의 힘이다.
호시탐탐 정신을 집어삼키고 부 정으로 물들이려 한다.
‘오히려 온전히 삼키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볼 수 있겠네.’
아니, 어쩌면 이타콰가 노린 마 지막 함정이었을 수도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과 광기와 살의로 가득 찬 존재였던 만큼 공멸을 노 리고 힘을 내어준다는 제안을 건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받은 제안이 좋지 않아서 다행 이었네.’
다행히도 이번에 흡수해낸 광기 는 그간 계속해서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단련해온 서준이 견디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당장에야 조금은 버겁다만.’
철을 두드리면 더욱 단단해지듯 이, 이 상태가 지속되면 오히려 더 욱더 강고한 정신력을 가지게 될 확률이 높았다.
당장뿐만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 에서 상당한 이득을 취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얻은 건 광기뿐만이 아 니지.’
그리고 두 번째로 새로운 방향성 을 보았다.
태초기공의 후반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4식, 어느 정도 길을 열어두긴 했으나, 직접 걸어보지는 못했던 무공을 펼쳐냈다.
완성되지 않은 만큼 직접적으로 펼쳐 보이기에는 다소 위험성이 있 어서 사용을 자제하고 있었다.
헌데 이타콰의 싸움에서 방도가 없어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부 족한 점들을 확실히 인지했다.
그로 인해 적지 않은 깨달음을 얻어냈다.
‘비록 당장 겉으로 느껴지는 큰 변화는 없다만.’
다만 자신이 다루는 혼돈기가 지 금보다 더욱더 쉽게 범접할 수 없 는 압도적인 패도를 품게 되는 것 이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혼돈기 자체가 애초에 포 악하긴 했지만 그것과는 완전히 별 개의 문제였다.
오롯이 힘으로만 이 태초기공의 4식을 파훼하려 한다면 같은 수준 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굉장히 압도적인 수준의 파괴력 이 필요할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 부분에 대해 서준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무인으로 살아오면서 수없이 느 껴봤던 것, 다소 본능적으로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더 높은 경지의 무인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느낌이 든다.
‘새로운 경지…… 더 높은 경지 라……
무인으로 살아온 서준에게 이보 다 탐나는 말은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랜 과거, 중원 대륙에서 부터 마선이라 불렸던 시절, 그리고 지구로 돌아와 드높은 신격에
올랐을 때까지.
서준은 항상 무인으로서의 향상 을 바라고 있었다.
아니, 모든 무인들이 바라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막연하기에 억 지로 외면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무릇, 정상으로 향할수록 경사가 가팔라지는 법이었다.
무극에 도달해 있는 서준이 다음 경지로 나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 은 노력을 하고 깨달음을 얻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허나 이번 이타콰와의 전투로 희 미하지만 그 길을 확실히 보았다.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방도가 생겼다는 거지.’
물론, 보았다고 걸을 수 있는 것 은 아니었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욕심이 났다.
때문일까?
정복왕의 성역에 도착해, 캄블이 있는 저택으로 향하는 서준의 발걸 음에는 다소 조급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일전에 보았던 광채를 내뿜는 문.
그 너머에 있는 캄블의 강렬한 존재를 떠올린, 서준은 목울대로 마른침을 삼킨 후 걸음을 내디뎠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서준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던 캄 블이 곧장 모습을 드러냈다.
“ 이타콰는?”
“죽였어.”
“확실히…… 엄청난 광기를 품고 있는 게 느껴지네.”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고 있던 캄
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으며, 입가로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흐른 다.
동시에 사방을 휘감던 빛 무리로 부터 거대한 사슬들이 형성되더니 서준의 전신을 단숨에 포박했다.
“약속을 어길 셈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심지어 나는 빛과 정의를 관장하는 신이야.”
예상했던 답변이다.
괜히 서준이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캄블이 내뱉은 말처럼, 그녀는 빛과 정의의 신이다.
스스로가 내뱉은 말조차 지키지 못할 정도의 모습은 가진 정의라는 격을 갉아먹다 못해 부숴버릴 것이 다.
약속은 반드시 지킬 수밖에 없었다.
“너무 일을 잘해서 추가로 보상 들을 내주려고.”
여전히 말에 거짓은 느껴지지 않 는다.
애초에 거짓말이었다면 무언가 제약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네가 공허를 얻으려는 건 단순 히 공허의 힘이 탐나는 게 아니라,
공허제의 자리를 탐내는 거 아니 야?”
괜한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캄블은 이미 목적을 알고 말을 하고 있는 듯한 어투다.
서준은 묵묵히 고개를 주억였다.
“귀찮게 돌아갈 것 없이 내가 바 로 공허제의 자리를 얻게 해줄 게.”
“그게 가능한 건가?”
“고대의 존재들도 해낸 걸 고대 의 신인 내가 못 해낼 것 같아?”
삽시간에 일대를 휘감고 있던 광
채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매혹적인 여인의 모습은 온데간 데없이 사라졌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빛 그 자체가 되어버린 캄블의 주 변에 회백색의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과거에 내가 사냥하고 모아두었 던 공허의 힘들과 그들의 격이 야……. 다른 이들에게 넘어가면 너무 위험해서 내가 품고 있었거든, 설마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될 줄 은 몰랐지만 말이야.”
고개를 돌린 캄블의 시선이 서준
을 향했다.
직후, 캄블이 천천히 손을 내뻗 자 회백색의 기운이 하나의 구체가 되어 서준의 몸으로 흡수된다.
“이미 많은 황제의 자리에 올라 있는 너라면 분명 인정받을 수 있 을 거야.”
실제로도 체내로 빨려 들어온 공 허의 힘이 내부에 자리 잡은 고대 의 힘과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지도 못한 막대한 보상에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이렇게 과분하게 챙겨줘도 되는
거야?”
“고작 이 정도로 놀라면 안 되 지, 아직 더 챙겨 줄 게 남아있거 든.”
다시 한번, 눈이 멀 것 같은 광 채가 뿜어져 나오며 서준의 시야를 앗아간다.
‘이건......
눈매를 찌푸린 서준은 주변의 광 채가 자신에게 홀러들어오고 있다 는 것을 인지했다.
“내가 다루는 광채야, 네가 품고 있는 심연과 완벽한 상극이지.”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과거에 직접 보고 겪어봤기에 알 고 있었다.
빛과 어둠, 두 힘이 섞여서 만들 어지는 것이 바로 혼돈이다.
물론, 지금 흡수한 빛과 어둠은 과거에 얻었던 것들과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힘이다.
태초부터 존재한 빛이라 볼 수 있는 광채, 그리고 가장 깊은 어둠 인 심연.
제어해낸다면 엄청난 힘을 얻을 것이다.
허나 제어해내지 못한다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서준의 입가에 헛웃음이 흐른다.
“빛과 정의라더니...... 잔꾀가 상 당하네.”
이 상황 자체가 심연을 품고 있 는 자신을 확실하게 영멸시키기 위 한 계획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를 도와주는 아주 듬직한 올 빼미 친구가 지혜의 신이거든.”
“정의라는 자리가 위험할 것 같 은데.”
“지로 품고 있던 공허들을 영멸 시키고, 가장 위협적인 심연마저
없앨 수 있다면 그건 엄청난 정의 지.”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어?”
“외부에서 온 놈만으로도 버거운 데 변수를 남겨둬서 좋을 건 없지.”
서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야.”
“ 뭐?”
이어서 내뱉은 말에 광채를 쏘아 내던 캄블이 의문을 토했다.
“사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고대의 존재들이 은하를 파멸시키
는 것을 계속해서 방관만 해왔던 신이 갑자기 친한 척 다가와서 어 떻게 대해야 하나 고민이 됐었거든, 근데 네 진짜 모습을 본 덕분에 아 무런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겠어.”
“너무 허세를 떠네……
캄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서준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혼돈 기가 캄블이 쏘아낸 광채의 사슬을 단숨에 찢어버렸다.
파지지직-!
세계가 일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광룡혼돈장을 펼친 서준의 손바닥
이 캄블의 가슴에 맞닿는다.
쾅-!
폭음과 함께 뒤로 밀려난 캄블의 광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런 비루한 혼돈으로 나를 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여유로운 미소를 홀리고 있는 캄 블을 바라보는 서준의 입가에 비릿 한 미소가 흐른다.
“너만 힘을 주입할 수 있을 거라 고 생각한 건 아니지?”
“설마......
캄블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을 때
서준의 손바닥에서 심연의 어둠 이 솟구쳐 나오며 캄블의 육신으로 파고든다.
처음 다뤄보는 것인 만큼 미흡하 기 그지없는 힘의 운용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캄블의 성역이 라 불려도 과언이 아닌 저택인 만 큼, 더욱더 몸을 뜻대로 다루기가 힘들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상관없어.’
하지만 서준은 개의치 않는다.
‘밝고 찬란한 빛일수록 쉽게 물 드는 법이지.’
아주 작은, 미세한 한 방울만으로도 저 빛을 물들일 수 있었다.
조바심을 밀어내고, 호흡을 가다 듬은 서준은 차가운 눈으로 캄블의 몸을 직시한다.
자그마한 검은 심연은 찬란한 빛 을 내뿜던 캄블의 몸에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마침내, 빛과 어둠이 뒤엉키기 시작한다.
‘놈도 큰 타격을 입을 거야.’
그때를 틈타 곧장 자리를 벗어나 체내에 들어온 광채를 밀어내고 몸 을 회복한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던 찰나,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 어났다.
몸에 자리 잡고 있던 광채와 심 연이 캄블의 육신과 연결이 된다.
서로가 서로의 힘을 넘겨주어서 일까?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아니, 지금 중요한 것은 이유 따 위가 아니었다.
육신이 연결된 순간, 서준은 자 신이 캄블과 같은 힘과 격을 갖추 게 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 할 수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