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권 19화
494화
“크아아앙-!”
이타콰의 포효에서준이 황급히 자세를 다잡는다.
폭발하는 광기.
겉으로 보자면 그저 제멋대로 폭 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그 안에 담긴 흉포함에서준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설마 광기를 폭주시킬 줄은 몰 랐네.”
서준을 응시하고 있는 이타콰의 눈동자에 붉은 광기가 넘실거린다.
“광기에 사로잡혀 죽는 한이 있 더라도 네놈 하나만은 반드시 데려 갈 것이다.”
“아무리 봐도 바람 앞에 등불 같 긴 하다만 미약하지만 이성이 남아 있다니, 대단하네……
“네놈 하나를 찢어발길 시간은 충분하다!”
살기를 홀린 이타콰의 신형이 붉 은 기운에 뒤덮인다.
그 거대한 힘에서준이 입맛을 다신다.
“정말 엄청난 힘이네, 상당히 탐 이 나.”
이번 전투에서 승리할 경우 저 광기마저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어리석은 것, 그릇을 벗어난 과 욕을 부리려 하다니.”
이타콰가 그런 서준을 비웃듯 말 한 후, 기세를 부풀어 올린다.
콰지지직-!
기운을 끌어올린 것만으로 세계 가 일그러지고 미쳐가기 시작한다.
땅과 하늘의 위치가 바뀌고 세계
가 기이한 형태로 뒤틀린다.
흡사 세계가 미쳐가는 듯했다.
이 상황을 바라보는 서준의 눈매 가 가늘어진다.
‘이런 적은…… 처음이네.’
많은 광기의 힘을 봐왔다.
하지만 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처음이다.
그사이, 붉은 거인이 된 이타콰 는 서준의 앞에 당당히 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그 끝자락에 보이는 붉은 눈동자를 마주한다.
“태초부터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닌 우리 고대의 존재를 위협 한 이들은 많지 않았고 그중 한 명 이 바로 너다.”
목소리가 울려 퍼지다 못해 세계 를 때리고 균열을 만들어 낸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보크루그 를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단순히 운이라 생각했다.”
서준은 아무 말 없이 이타콰의 거대한 신형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덩치가 거대한 것은 아무 의미 없어.’
오히려 단점이 된다.
동작이 다소 느리며, 때릴 곳이 많았다.
이타콰도 그럴까?
“수마나스를 죽였다 할 때는 너 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었지, 어찌 한낱 황제밖에 되지 못한 이 가 고대의 존재를 사냥할 수 있단 말인가? 인정하지, 혼돈제여. 너는 굉장해.”
붉은 눈동자를 빛낸 이타콰의 입 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기적 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대의 존재들은 모두 진화하고 있다.”
여유를 부리고 있는 이타콰를 향 해 서준은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 둘렀다.
초광속으로 뻗어진 일격, 타격할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헌데 서준의 주먹은 애꿎은 허공 을 때리고 있을 뿐이었다.
자연스레 서준의 눈매가 찌푸려 진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빠르네.’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이리도 신 속하게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치 못 했다.
몸을 회전시키어, 등 뒤로 이동 한 채로 여유롭게 서 있는 이타콰 를 마주한다.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 어 보거라. 이게 우리, 고대의 존재 들의 진화의 중거다.”
“진화가 아니라 제 힘도 감당하 지 못해서 폭주한 거 아닌가?”
대답 대신 비웃음을 홀린 이타콰 의 주먹이 서준을 향해 쇄도한다.
마치 빛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진다.
‘ 빠르다.’
초광속을 뛰어넘는 속도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이었다.
콰앙-!
폭음과 함께 뒤틀린 대지가 부서 지고, 파편이 솟아오른다.
서준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 주먹을 바라보며 입가로 흐르는 핏 물을 닦아냈다.
마지막 순간, 빠르게 발을 놀려 직접적인 타격에 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고작 여파만으로 이 정 도 충격이라니.’
속이 뒤틀리고, 두 다리가 후들 거린다.
‘이건 정말 진화라 부를 만하네.’
광기의 힘이 폭발하며 육체와 정 신을 강제로 가속시키고 있었다.
포식자 그 자체가 되었다.
쾅-!
다시 한번 이타콰의 주먹이 뻗어 진다.
마찬가지로 그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내는 데 성공했지만 완전히 충 격을 상쇄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서준의 귀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강력하다.
심지어 이 단순한 주먹질은 이타 콰의 전력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냥 힘을 휘두르는 것에 불과 해.’
힘과 힘으로 부딪히기에는 무리 가 있었다.
이어서 뻗어지는 이타콰의 주먹 을 바라보고 있던 서준은 곧장 혼 돈기를 폭발시킨다.
때마침, 계속해서 내리꽂히던 주 먹이 서준의 머리 위에 내리꽂힌다.
압도적인 크기와 힘, 이타콰의 무식한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친다 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본래라면 엄청난 충격과 함께 벽 면에 처박혔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준의 손바닥에 닿은 이 타콰의 주먹은 더 이상 앞으로 나 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힘만이 전부는 아니야.”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움은 강함을 제압하는 법이다.
받아내고 돌려준다.
그 정도의 힘과 능력은 충분히
있었다.
전부를 담아낼 수는 없다.
욕심을 버리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힘만을 돌려준다.
태극의 묘리가 담긴 손바닥을 활 짝- 펼치고, 이타콰의 힘을 받아들 이며 자연스럽게 한계 이상의 힘들 은 세계로 흘려낸다.
그러자 이타콰의 무식한 힘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세계로 홀러 가기 시작한다.
콰과광-!
여파로 인해 세계가 갈라지고 부 서진다.
그렇게 서준의 등 뒤의 세계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 서진 순간이었다.
손바닥을 펼쳐 주먹을 받아내고 있던 서준의 두 눈에 이채가 어린 다.
‘태초기공 전반부 제1식, 일권소 멸.’
기존의 일권소멸에 이타콰가 남 긴 힘을 더해낸다.
폭발하듯 뻗어진 서준의 주먹이 이타콰가 내뻗고 있는 주먹을 향해 쏘아진다.
이타콰가 반응할 틈새는 없었다.
쿠르릉-!
천둥이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붉은 눈을 한 이타콰의 팔이 기이 한 형태로 꺾인다.
“크아아악-!”
이타콰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 져 나온다.
길이 열렸다.
서준이 이 순간을 놓칠 리가 만 무했다.
괴성을 내지르며 내뻗는 이타콰 의 주먹을 모두 피해낸 서준은 빠 르게 이타콰와의 거리를 좁혀낸다.
‘태초성보 제1식, 망룡질주.’
공격 전부를 받아낼 수는 없었다.
허나 일부를 충분히 흩어낼 수 있었다.
전신에 둘러진 망각의 힘은 이타 콰가 내뻗는 주먹이 남기는 여파를 상쇄하고, 흩어놓는다.
서준은 삽시간에 이타콰의 두 눈 동자를 앞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마주한 두 시선, 압도적인 힘이 있음에도 가벼이 제압하지 못하는 현실에 이타콰의 미간이 찌푸려진 다.
“죽어! 죽으란 말이다!”
콰아아아—!
이타콰의 절규와 같은 외침에 모 든 것을 집어 삼키는 광기가 쏘아 지며 서준을 압박해온다.
“끄으읍-!”
머리를 어지럽히고, 어깨를 짓누 르는 거대한 광기에서준은 아랫입 술을 질끈- 깨물며 정신을 일깨워 낸다.
‘위험해.’
이 상태로는 광기에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힘에는 힘으로 응수한다.
어느덧, 서준의 손바닥에는 회색 빛 기운의 구체가 초광속이라는 영 역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게 회전 하며, 기운을 부풀려 나가고 있었다.
‘혼돈 폭발.’
콰과과광-!
혼돈과 광기, 두 힘이 충돌하며 세계의 일부가 정말로 완전히 깨어 지며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콰아아아—!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균열이 비
명을 내지르듯 일대를 집어삼킨다.
“으어어-!”
이타콰가 바닥에 다리를 내려 박 으며 균열이 빨아들이는 힘으로부 터 저항을 한다.
허나 거대한 덩치가 문제가 되어 모든 육신을 지킬 수는 없었다.
결국 일어난 균열에 오른쪽 얼굴 이 집어삼켜진다.
이타콰가 검게 물든 자신의 오른 쪽 눈을 매만진다.
육신을 뒤덮고 있던 광기의 힘이 모두 흩어졌을 뿐더러, 뜨거운 혈 혼이 흘러내리고 있는 초라한 가죽
밖에 남지 않았다.
“후우……
반면 덩치가 작은 서준은 여유롭 게 먼 거리로 떨어져 이 상황을 지 켜보고 있었다.
이 결과가 무엇을 말하는 지야 뻔했다.
“내가 밀렸다고?”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미간을 찌 푸리고 있는 이타콰의 얼굴에서 일 어났던 균열이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세계의 일부가 무너졌지만, 다시 빠른 속도로 수복된다.
역시 혼돈의 세계는 아직도 이해 할 수 없는 특이한 일이 많이 존재 했다.
‘분명 수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돌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큰 충격이 없었던 것 같네.’
대지에 남은 자잘한 상처는 있지 만, 세계 전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빠 르게 수복을 해버린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 난 재생력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혼돈의 세계 전
체를 비호해주고 있는 것 같네.’
서준이 속내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이타콰는 아직도 현실을 받 아들일 수 없는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적지 않은 충격 때문이었는지 미 약하게 잡고 있던 정신마저 무너져 가려 한다.
“말,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화한 내가 한낱 황제에게 패배를 한다니!”
고대의 존재는 황제들을 넘어선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 이룬 진화는 기존
고대의 존재들보다 한층 더 강력한 힘을 손에 넣는 것이라 생각했다.
말하자면 두 단계나 경지가 차이 가 난다는 것이다.
헌데도 상처를 입었다.
“더, 더욱더 강한 힘이 필요 해……
읊조리듯이 말하는 이타콰의 눈 동자에 더 이상 이성은 존재치 않 았다.
실제로도 붉은 광기가 폭발하듯 이 솟구치고 있었다.
“크하하-! 그래, 방식! 방식이 잘못됐던 거였어!”
하늘 높게 치솟았던 붉은 광기가 이타콰의 육신을 집어삼키더니 커 다란 덩치를 서준과 비슷한 크기로 줄여냈다.
“더 이상 방금 전과 같은 얕은 수는 통하지 않을 거다.”
비릿한 미소를 홀린 이타콰가 양 팔을 넓게 벌렸다.
그 뒤로 마치 광기를 형상화한 듯한 붉은 장막이 펼쳐진다.
“지금부터 함께 미쳐보도록 하 자.”
“너는 별로 내 취향이 아닌데.”
어느새 거리를 좁힌 서준의 주먹 이 이타콰의 심장을 향해 내뻗어지 는 순간이었다.
휘이이잉-!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몰아 친 광기가 서준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를 뿌리치기 위해 전신을 흔들 며, 혼돈기를 펼친 서준은 곧장 몸 을 뒤로 빼냈다.
허나 이어서 붉은 장막 너머에서 거대한 촉수가 쏘아진다.
그 수가 자그마치 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광기에 절여진 촉수들도 이타콰 의 말에 동의하듯 빠른 속도로 서준을 향해 달려든다.
‘ 빨라.’
마찬가지로 초광속, 그 거대한 덩치의 돌진을 피하기 위해 곧장 발을 놀린다.
쾅-!
무사히 촉수를 피해내는 데 성공 해내었지만 공격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땅에 박힌 촉수에서 다른 촉수들 이 쏘아져 온다.
촉수가 촉수를 만들어내며 계속 해서 서준에게로 쏘아진다.
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그마 한 틈을 향해 몸을 던진다.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는 붉은 촉수들은 서준의 뒤를 곧장 따라붙 는다.
‘힘으로 뿌리치기도 어려워.’
촉수에 담긴 힘은 수마나스가 심 연에서 쏘아내던 촉수들보다 더 강 렬했다.
‘이타콰가 완전히 광기에 잠식돼 서 인가?’
그가 다루는 광기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력해졌다.
“그리 애쓸 거 없다, 받아들여라. 그리하면 나와 함께 광기로서 살아 갈 수 있는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 테니.”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