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권 9화
484화
쏘아지는 불꽃들을 직시하고 있 던 서준은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내 뻗는다.
단순히 쇄도해오는 공격을 받아 치기 위함이 아니었다.
확인을 해보기 위함이었다.
쾅-!
폭음을 일으키며 흩어지고 있는 불꽃들을 보며 서준의 입가로 미소 가 흐른다.
‘ 역시……
그사이, 불길이 더욱더 매섭게 치솟으며 압박을 가해오기 시작했 다.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한 다급한 움직임이다.
서준도 다급히 발을 놀리며, 사 방 곳곳에서 날아드는 불꽃을 피해 낸다.
파바바바밧-!
하나 모든 불꽃들을 피해낼 수는 없었다.
‘확실해.’
크투가가 숨기려 하는 것이 무엇 인지 명확히 보인다.
서준은 홍겹게 웃으며 세계에 퍼 지고 있는 불꽃을 직시한다.
“홀륭하군.”
크투가가 갑작스럽게 음성을 흘 리자, 치솟던 불길이 원형을 그리 며 일대를 휘감아낸다.
“ 뭐야?”
눈을 가늘게 뜬 서준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본체를 숨기려는 노력이 가상하 네……
어느덧, 수백에 달하는 크투가의 신형을 한 불길들이 서슬 퍼런 미 소를 홀리며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쓸데없는 노력이야.”
서준은 개의치 않았다.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본체를 숨 기려 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확신이 되고 있었다.
지금 이 세계를 휘감고 있는 불 길 전체가 크투가라는 존재다.
“힘을 다루는 방식도 독특하고 눈썰미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이 정도라면 합격점을 줄 수는 있
겠군, 혼돈제여, 나의 형제들과 함께 반역을 벌여보겠는가?”
“반역?”
다소 익숙한 단어에서준은 호기 심이 동한 눈빛으로 귀를 기울였다.
지금 고대의 존재들이 바라는 것 이 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앞으로 의 움직임에 대한 방향성을 확실히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반역을 일으켜 기존의 모든 것들을 바꿔내는 것이다, 그 저 먼저 태어났다는,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는 걸로 정통성을 부여받 는 이 우주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지 않느냐?”
“고대의 존재인 네가 할 말은 아 닌 것 같은데, 아니 대체 누구한테 반역을 일으키겠다는 거지?”
“아직은 답할 수 없다, 허나 나 의 형제가 된다면 모든 것을 이야 기해주지.”
단호한 크투가의 대답에서준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쉽게 됐네.’
분위기상 쉽사리 말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헌데 예상외의 신중함을 보이고 있었다.
“뭐, 상관없지.”
때리고, 쓰러뜨린 채로 물어본다 면 말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준이 차가운 눈동자로 크투가 를 바라보자 수백의 불길이 코웃음 을 친다.
“동맹이 아닌 대립을 선택하다니 너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군.”
“난 그냥 너희 고대의 존재들이 싫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음에 도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나와 형제 들을 거부하고 있다니, 역설적이 군.”
헛웃음을 흘린 수백의 크투가들 이 서준을 바라보며 자세를 다잡는 다.
“지금 내린 선택을 뼈저리게 후 회하고 절망하게 될 것이다, 혼돈 제여.”
고대의 존재, 크투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삽시간 에 일대의 불길이 거세게 치솟는다.
“의미 없다니까……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불길을 바라보고 있던 서준의 눈이 휘둥그 레졌다.
‘정령?’
텅 비어있었던 형체들에 강렬한 영체가 깃든다.
더 이상 형체만을 가진 허상이 아니었다.
모두가 진짜 크투가가 된 것이 다.
심지어 불길을 쏘아내는 방식이 나 형태가 모두 달랐다.
다 같은 불길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이건 좀 위험하겠는데.’
쏟아지는 불길의 수가 단숨에 수
천에 달하게 된다.
재빠르게 대응하려 했지만 사방 에서 쏟아지는 공격들을 모두 피해 낼 수는 없었다.
옷이 불탔고, 피부가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몸 곳곳에는 화상으로 인한 상처 들이 생겨난다.
‘다행히 치명적인 상처는 없어.’
아직까지는 괜찮다.
허나 곧 생각이 뒤바뀌었다.
‘ 피부가……
회복되지 않는다.
화르륵-!
계속해서 타오르는 불길.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본 서준이 헛웃음을 홀렸다.
“고대의 힘……. 파괴 쪽인가?”
보라색 불길에 스며들어 있는 고 대의 힘, 파괴가 계속해서 불타오 르며 서준의 전신을 태워버리려 하 고 있었다.
억지로 꺼내려 한다면 가능하겠 지만, 크투가가 그 틈을 줄 리가 만무했다.
화륵-!
계속해서 쏘아지는 불길들 때문 에 육신에 붙은 불길을 떼어내기가 힘들었다.
“서서히 타들어가면서 죽는 것이 다.”
수백이나 되는 크투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말하지 않았느냐, 후회하고 절 망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에는 여유로움이 가득 묻 어나고 있었다.
“그럴 일 없을걸.”
후웅-!
바람 소리와 함께 미소를 흘리고 있던 크투가의 신형이 마치 존재하 지 않았던 것처럼 자취를 감춘다.
“벌써 통찰해낸 건가?”
눈을 휘둥그레 뜬, 크투가들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서준을 바라보 았다.
어느덧 서준의 두 눈동자는 황금 빛으로 물들어있는 상태였다.
황금안.
확실하게 이해하고, 통찰해낸다 면 무(無)로 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네가 내 육신에 심어준 불길 덕 분에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지.”
모두 다른 영체를 가지고 있다지 만 결국 같은 불길이다.
통찰해내었다면 모두 흩어낼 수 있었다.
실제로도 서준의 시선이 닿는 곳 마다 불길이 허무하리만큼 쉽게 사 라져간다.
“재미있군.”
여유를 부리고 있는 사이, 단숨 에 수백에 달하던 크투가들의 신형 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역시…… 본체는……
수백에 달하는 크투가 중에도 없 었다.
허나 당황할 것은 없었다.
이미 예견했던 일이었다.
서준의 시선은 세계를 휘감고 있 는 불길로 향했다.
“세계를 휘감고 있는 불길 전체 구나.”
차가운 눈동자를 한서준이 주변 을 빠르게 홅어내고, 통찰해낸다.
“알고 있다고 해서 감당할 수 있 는 것은 아니지.”
허나 거센 불길에서부터 들려오 는 크투가의 목소리에는 아직까지 도 여유가 홀러넘치고 있었다.
서준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불 길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고작 이따위 공격으로 이 몸이 다루는 영원의 불을 이렇게 쉽사리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화르르륵-!
자취를 감추었던 불꽃이 다시금 거세게 피어오르며 크투가의 형상 을 취한다.
여전히 여유롭다는 듯 웃고 있는 크투가의 표정에 자연스레 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귀찮게 구네.”
고대의 존재들과의 싸움은 모두 쉽지 않았다.
허나 크투가는 그중에서도 가장 귀찮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한번 날뛰어 보거라.”
수백에 달하는 크투가들이 자세 를 다잡더니, 허공을 박차고 서준 을 향해 달려든다.
‘이전처럼 소멸시키기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 없어.’
황금안을 사용해 무로 돌린다 해
도 세계 전체를 휘감고 있는 불길 을 꺼버리는 게 아닌 이상 의미가 없었다.
‘본체를 잡아내야 한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이어가던 서준은 무언가 결심을 내린 듯, 고개 를 주억였다.
‘다른 고대의 존재들이 보고 있 을 것 같아서 아끼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크투가는 단순히 까다롭고 귀찮 은 상대가 아니다.
자칫 한 번의 실수로 인해 패배 를 맞이할 수도 있는 강적이다.
‘전력을 내보일 수밖에 없겠네.’
고대의 힘으로 만든 무공들, 아 티팩트, 특수한 능력들까지.
가진 전력을 모두 사용해야 한 다.
‘황금안 개방.’
이미 한번 통찰해내었던 만큼 쏟 아지는 불길들을 흩어놓는 것은 어 렵지 않다.
자연스레 타오르던 불길이 홑어 진다.
길은 열렸다.
전처럼 확실하게 제압해낸다.
‘ 망룡질주.’
흩어놓은 불꽃들을 거닐며 세계 를 망각에 휘감아낸다.
세계 자체가 사라진 만큼, 한동 안 불길이 치솟지는 못할 거다.
“의미 없는 발악을 하는군.”
크투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 다.
자그마한 불씨가 남아있는 것만 으로 삽시간에 불길이 거세지는 법 이다.
세계 전체를 망각으로 휘감는 것 이 아닌 이상 불길이 꺼질 일은 없
다는 것이다.
잠시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해서 위협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허나 서준 또한 이 사실을 모르 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준은 움직 임을 멈추지 않는다.
타닥-!
오히려 더욱더 빠르게 움직인다.
체내의 모든 힘들을 움직이는 데 쏟아낸다.
‘ 태초소유 (太初 m 流).’
고대, 태초의 힘들을 활용하는
경신법.
내딛는 발걸음마다 서준이 품고 있는 각기 다른 고대의 힘들이 세 계로 퍼져나간다.
“호오.”
크투가의 입에서 감탄사가 홀러 나온다.
“끄어어억-!”
하나 그 감탄은 곧, 비명이 되었다.
고대의 힘이 남아있는 곳은 모두 서준의 지배하에 놓인 것이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
는 본인의 영역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흐르듯이 세계를 자유롭게 노닐 며 다시 타오르는 불씨를 짓밟고, 또 짓밟아낸다.
타닥-!
이윽고, 계속해서 분주히 움직이 던 서준의 발걸음이 바닥에 거대한 용의 형상을 그려낸다.
“태초성보 제2식, 파룡강림.”
그 이후 일어난 것은 하늘로 치 솟는 거대한 용의 승천이었다.
바닥에 그려진 용의 문양에서 보 랏빛 기운이 치솟는 즉시, 세계를
뒤덮고 있던 불길들이 혼적조차 남 기지 못하고 흩어져간다.
파지지직-!
“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크투가의 형상 들이 파괴의 용에 집어삼켜지며 일 말의 불씨조차 남기지 못한다.
콰과과광-!
세계가 부서진다.
그렇게 느낄 만큼의 커다란 충격 과 함께 하늘로 치솟던, 용의 형상 이 사라진다.
서준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얼굴
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역시 이게 전부는 아니었네.”
불꽃은 부가적인 능력 중 하나였 다.
크투가는 가진 고대의 힘을 보이 지 않았다.
실제로도 불길은 완전히 사라졌 지만 일대에서 느껴지는 크투가의 존재감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생각 이상이야…… 실로 훌륭하 군.”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의 중 심, 불길에 휩싸인 악마의 형상을 한 크투가는 감탄을 토해내고 있었
서준은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까지 멀쩡할 줄은 몰랐 네.’
전처럼 매서운 불길을 뿜어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불길들을 소모하여 스스로의 몸 을 지켜냈다고 할지언정 크투가의 실력 역시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는 해줘야지.’
상대했던 고대의 존재들 중 그
누구도 손쉬웠던 상대는 없었다.
심지어 이곳은 혼돈의 세계.
고대의 존재들의 고향과 같은 땅 이라 할 수 있었다.
본래 제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 어간다고 하지 않는가?
‘고작 불길이 꺼진 걸로 죽을 정 도로 나약하면 안 되지.’
입가에 호선을 그린 서준이 자세 를 다잡고서 크투가를 바라보며 입 을 열었다.
“감탄만 내뱉고 있을 거야? 아니 면 이제 겁이 나서 못 싸우겠어?”
많은 양의 고대의 힘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억눌러두었던 감정이 폭발할 듯이 치솟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적을 찢어발 겨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탐이 나는군.”
휘감고 있는 불길 너머, 크투가 는 아쉽다는 듯 혀로 입술을 핥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정말로 나의 형제가 될 생각은 없는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늑대가
어찌 개 밑으로 들어가겠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겠군.”
결심을 내린 듯, 고개를 주억인 크투가의 눈에 진한 살기가 차올랐 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