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권 8화
483화
[나도 당장 겨뤄보고 싶다만, 그 래서는 내가 애써 저 하찮은 혼돈 인을 놓아주고, 기다린 시간이 수 포로 돌아가서 말이야…….]
여전히 동작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서준을 향해 불길이 치솟으 며 이죽거리는 미소를 흘려낸다.
[섣불리 움직이려 한다면 바로 카터라는 놈은 죽게 될 거야.]
서준의 눈매가 찌푸려진다.
“너……
[두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보고 싶을 뿐이야. 혼돈을 다루고 혼돈 의 황제라 불리면서도 같은 형제라 일컬어질 수 있는 우리 고대의 존재를 사냥한 인간의 힘을…….]
하늘로 치솟은 불길이 크투가의 형상을 더욱더 거대하게 키워 낸다.
[머지않아 일어날 전쟁에 너란 존재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그걸 알아내고 확인해 보고 싶거든, 불쾌하다면 거절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네가 사로잡고 있는 카터라는 인간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거야.]
서슬 퍼런 목소리를 들은 서준이 아랫입술을 깨문다.
“인질극을 벌이겠다는 거네?”
-서준 님…….
구로그가 간절한 표정이 되어 부 른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혼돈의 세계는 끝없는 사고와 문 제가 발생한다.
방치하게 된다면 삽시간에 혼란 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카터 님이 없다면 온건한 성정 을 가진 평화파에 속한 혼돈인들은 살아남을 수 없겠지.’
본능에 충실하며, 강한 힘을 갈 망하는 혼돈인들의 성장의 밑거름 이 될 것이다.
비단, 평화파에 속한 혼돈인들의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힘을 키워 낸 혼돈인들은 세계에 일어난 균열들로 바깥의 은하들로 나아갈 것이고, 파괴해나갈 것이다.
우주 전체에 피가 흐르고, 혼란 이 찾아오게 될 것이란 말이다.
“고대의 존재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치사하게 나오네.”
서준이 차가운 눈동자로 불길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크투가를 응시 한다.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 이었지만, 생각 외의 이야기를 들 었다.
‘머지않아 일어날 전쟁?’
여태껏 침묵을 지켜오거나, 단순 한 유희로 은하를 파멸시키던 고대 의 존재의 입에서 ‘전쟁’이라는 단 어가 일컬어졌다.
‘예상했던 대로 변화하고 있어.’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허나 여태껏 만나본 고대의 존재 들도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끼리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미 일어났을지도 모른 다.
‘만약 승리하게 되면 무엇을 얻 을 수 있는 걸까?’
적의 목적을 알게 된다면 보다 쉽게 적을 이겨낼 수 있었다.
자연스레 궁금증이 동한다.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 묻는다고
순순히 답해줄 리는 없었다.
‘때려눕힌 후에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지.’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 른다.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겠 네.”
-서준 님?
구로그의 고개가 갸웃 젖혀진다.
고민에 빠진 것 같았던 서준이 갑자기 비릿한 미소를 흘리고 있으 니 의문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 이었다.
“원하는 대로 어울려 주고 싶지 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고대의 존재인 네가 그리 약속을 잘 지킬 것 같지는 않거든.”
구로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진다.
-부탁해요, 서준 님. 카터 님이 없으면 모두가…….
“걱정하지 마, 카터 님은 반드시 구할 거니까, 다행히도 저놈이 먼 저 대화를 걸어 준 덕분에 어느 정 도 이해가 됐거든.”
환한 미소로 구로그의 불안감을 덜어 낸 서준이 하늘로 치솟고 있
는 거대한 불길을 바라본다.
“대신 카터 님을 받아들게 된다 면 곧장 도망쳐줘야 해.”
- 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적당히 힘 조절을 하면서 싸우기는 힘들 것 같거든.”
서준의 두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 들었다.
황금안.
아직 미흡하다.
애초에 정령과 비슷한 영혼체인 만큼 완전히 통찰하고, 무(無)로 돌
리는 수는 없었다.
허나 아주 찰나의 순간으로는 걷 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서준에게는 그 찰나의 순 간이면 족했다.
화륵-!
아주 잠깐 불길이 꺼지는 순간, 서준이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는다.
“열려 있는 은하의 통로를 타고, 최대한 멀리 도망쳐 줘.”
서준의 몸에서 흘러나온 잿빛 망 각의 힘이 거센 폭풍이 되어 몰아 친다.
그렇게 느낀 순간, 이미 서준은 구로그의 눈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눈앞에서 매서운 기세로 치솟던 화염이 일순간에 사라진다.
-이게 무슨……?
말을 끝맺기도 전이었다.
거센 바람이 남아있던 불씨와 마 주치며,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온 다.
콰과광-!
뒤이어, 아주 먼 거리에서 또 한 번의 폭음이 들려오더니 하나의 신 형이 대기를 가르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오는 신형이 익숙하 다.
-카터 님!
구로그는 재빨리 걸음을 옮기어 떨어지는 카터를 받아냈다.
-대체 언제 구해내신 거지?
머릿속에 의문이 피어난다.
허나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되었다.
- 약속했잖아.
서준의 부탁대로, 최대한 멀리 달아나야 한다.
구로그는 오롯이 그것만을 생각 하며 걸음을 옮기었다.
서준은 정복왕의 성역에서 자신 만의 무공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완성된 무공들은 태초 기공과 같은 고대의 힘을 이용한, 보법, 경신법.
애초에 무공이 가진 힘은 오롯이
강한 공격을 펼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물론, 모두 적을 쓰러뜨리기 위 함이라는 것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방식은 각양각색이지.’
그래서 고대의 힘의 방식을 바꾸 어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의 경지로는 더 강한 무공을 펼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오롯이 공격만을 생각 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기동력을 살릴 수 있는
태초기공을 이용한, 보법과 경신법 을 만들어냈다.
‘운이 좋았어.’
구로그가 찾아온 순간에 끝마친 일이었다.
만약 구로그가 조금만 더 빠르게 왔더라면, 혹은 무공의 창시가 조 금 늦어졌다면 크투가의 의도대로 끌려다니게 되었을 것이다.
‘인질로 잡힌 카터 님을 구해낼 수도 없었겠지.’
고대의 존재가 약속을 지켜낼 것 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애초에 악의로 가득 찬 존재였
오히려 본인의 쾌락을 위하여 더 큰 고통을 가하면 가했지, 목숨을 살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과감히 움직였고 목적 을 이뤄냈다.
‘다행히 카터 님은 무사히 구해 냈어.’
허나 아직 모든 목적을 이룬 것 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목적이 생겼다.
의식을 잃은 카터를 구로그가 있 는 방향으로 던져낸 서준의 시선이
눈앞의 크투가를 응시한다.
“너한테 묻고 싶은 게 많으니까, 쉽게 죽지는 마라.”
크투가의 가늘어진 눈이 방금 전, 서준이 걸어온 길을 바라본다.
거센 바람이 되어 몰아친 잿빛 기운들이 아직까지도 불길을 억누 르고 있었主
“불길을 황금안으로 홑어냈고, 망각의 힘으로 아예 공간을 잊히게 한 건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힘의 활용 방법에 크투가는 혀를 내둘렀다.
고대의 존재들은 분명히 강력했
그리고 그들 각자가 힘을 다루는 방식은 모두 각기 다르지만 압도적 인 힘을 보여 왔다.
그렇기에서준처럼 기이한 방식 으로 힘을 다루는 이는 없었다.
‘설령 고대의 신들이라 할지라 도……
크투가의 입가에 헛웃음이 흐른 다.
“망각의 힘을 아주 흥미로운 방 식으로 다루는군.”
솔직히 말하자면, 황금안의 능력 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허나 뒤이어 펼쳐진 것.
잿빛 기운, 망각의 힘으로 이루 어진 응의 형상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간이 완전히 잊혀져버렸고, 흩뿌려놓은 불길은 자취를 완전히 감추게 되어버렸다.
“태초성보, 제1식, 망룡질주.”
“ 호오......
크투가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가 늘어진다.
마음에 쏙 드는, 매력적인 물건 을 본 듯한 기색이다.
“대단하군, 대단해, 다른 형제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포장된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거짓 이 아니었나 보군.”
서준은 아무 말 없이 크투가를 응시한 채로 주변으로 기감을 퍼뜨 린다.
‘다행히 무사히 은하의 통로로 들어갔군.’
이로써 구로그와 의식을 잃은 카 터 님이 이 세계에서 완전히 자취
를 감추었다.
“마음에 들기는 한데, 합격점을 주기에는 아직 이르니……
때마침, 혼잣말을 내뱉으며 고개 를 끄덕이던 크투가의 신형에서 불 길이 치솟아 오르며 사라진다.
‘위험해.’
특별한 고대의 힘이 느껴지지 않 는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불꽃도 아니 었다.
흡사 밝게 빛나는 별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휘말리면 죽게 된다.’
본능적인 위협을 느낀 서준이 다 급히 발을 놀리며 거리를 벌리는 순간이었다.
콰과광-!
방금 전까지 서준이 서 있던 위 치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감도 나쁜 편이 아니군.”
삽시간에 거리를 좁힌 서준이 내 뻗은 주먹이 크투가의 신형을 가격 한다.
허나 손끝에 걸리는 감각이 없었
그저 피부가 익는 것 같은 뜨거 움이 느껴질 뿐이었다.
‘영체로 존재하는 건가?’
물리적인 공격이 먹히지 않으며, 모습을 감추는 것까지 빠르다.
진짜 불꽃 그 자체와 싸우는 듯 한 느낌이다.
‘이런 공격으로는 안 되겠네
방법을 바꾼다.
다소 전투가 과격해지긴 하겠지 만, 은하의 통로를 이용해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고 있는 만큼 구로그
와 카터 님이 전투에 휘말릴 일은 크게 없을 것이다.
서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몸을 날렸다.
“제대로 놀아보자고.”
음성이 뒤를 따랐고, 서준의 몸 에서 혼돈기가 폭발할 듯이 치솟는 다.
“.훌륭해……!”
일대에 넘실거리고 있던 불길에서 크투가의 감탄 어린 음성이 흘 러나온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군.”
“충고하자면, 앞으로 더 놀라게 될 거야.”
싱긋, 웃어 보인 서준의 신형이 크투가의 형체를 하고 있는 불꽃을 향해 날아간다.
허나 이번에도 닿지 못했다.
‘ 어째서……
영혼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혼돈기마저 감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투가는 전 혀 타격을 입지 않고 있었다.
홉사 실존하는 생명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 있기는 한 거야?”
저도 모르게 의문 섞인 음성이 입에서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없다면 네놈의 움직임을 보지도 못했겠지.”
“맞는 말이네.”
다소 당황스러운 답변이었지만 서준은 빠르게 잡념을 털어냈다.
‘상대는 고대의 존재야.’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아온 괴물이 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존재였다.
‘현혹되지 말고, 놈이 다루는 능
력과 힘의 근간을 바라보는 거야.’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내며, 빠르 게 머리를 회전시킨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끌려다녀서 는 놈의 진의를 알아내지 못한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자.’
일대의 움직임을 모조리 다 잡아 내면, 힘의 실체를 파악하기가 훨 씬 더 수월해질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서준이 먼저 혼돈 기를 퍼뜨리며 기감을 넓혀내려던 순간이었다.
화륵-!
빛보다 빠르게 움직였지만 어깨 에 불길이 붙어있었다.
‘실체를 파악할 시간을 주지 않 으려는 거군.’
빠르게 주변을 훑어본, 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화르르륵-!
세계가 불길에 뒤덮여 있었다.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보다도 더욱더 불길이 거세져 있었다.
‘마치 본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같네.’
생각이 닿는 순간, 그 불길을 유 심히 바라보고 있던 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