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권 2화
477화
“놈들이 이곳에 도착했다.”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주샤콘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자연스레 수마나스의 고개도 돌 아간다.
“키투샤.”
이어진 수마나스의 부름에 힘찬 표정을 가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복왕의 사도를 맡아라.”
반문은 없다.
그저 따를 뿐이다.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열기도 전, 회색빛 섬광이 천제궁의 하늘 을 뒤덮었다.
쾅-!
어느덧 허공에 생성된 짙은 어둠 이 그를 막아섰다.
먼 곳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 수마나스의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공격을 해오 다니, 오만하기 그지없군.”
혼돈제에 올라 보크루그를 쓰러 뜨렸다 한들, 놈은 고대의 존재 중 에서 가장 최약체로 평가되는 놈이 었다.
“격의 차이를 알려주마.”
“크아아악-!”
기다렸다는 듯, 괴성을 내지른 키투샤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강과 같은 붉은 줄기와 이어진 키투샤의 육체가 커다랗게 부풀며 하늘 높이, 우주로 치솟은 것은 순 식간이다.
거인, 그리고 지옥의 야차와 같 은 형상이 된 키투샤가 주먹을 말
아 쥐고, 내뻗는다.
한 점에 응집된 파괴력은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숴버릴 듯 쇄도해온다.
반대편에서 날아온 회백색의 섬 광과 부딪치기 전까지만 하여도 그 힘은 분명 세계를 뒤흔들 정도로 어마 무시했다.
“크아아-!”
강한 살의가 키투샤의 눈동자에 피어오른다.
거대한 동체는 놀랍게도 초광속 의 속도로 접근해오는 세 명의 존재의 앞길을 막아선다.
콰왕-!
세계가 뒤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대한 키투샤의 동체 가 뒤로 밀려난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수마나 스가 혀를 찼다.
“쯧, 유능하다 해도 결국 황제의 그릇이라는 건가……
뒤이어진 시선은 주샤콘을 향했 다.
눈동자에 담긴 의도는 명확했다.
“재촉할 거 없어, 알아서 갈 거 니까.”
주샤콘이 검은 회오리를 두른 채
로 높게 뛰어올랐다.
이를 본 위지강이 즐겁다는 듯 미소를 그리며 다가온다.
그사이, 수마나스는 자리를 박차 고 일어나 양팔을 허공으로 길게 내뻗었다.
우웅-!
허공이 찢어지며 태초의 우주부 터 존재해왔던 심연의 문이 열린다.
그 내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심 연의 끝에 존재하는, 칠흑의 어둠 에 수마나스의 입가로 미소가 지어 졌다.
쑤욱-!
차원의 문에서 흘러나온 심연을 휘감아 낸 수마나스의 시선이 하늘, 서준에게로 향한다.
“격의 차이란 것을 느끼게 해주 마. 애송이.”
건너편에서 붉은 거인의 주먹을 본 순간 서연은 어째서인지 입맛이 도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 식욕......
앞서 광기제들을 집어삼켜서일 까?
괴성과 함께 쇄도해오는 주먹에서 강한 식탐과 이끌림을 느꼈다.
때문에 저도 모르게 앞으로 뛰쳐 나갔다.
회백색의 기운, 공허의 힘을 발 산하고서는 돌진하는 상대를 제압 하기 위하여 뛰어들었다.
콰광-!
걸음만으로 천지를 뒤흔들 정도 의 거대한 형체를 바라보는 서연의
눈에는 탐욕이 어린다.
“저 거인은 내가 상대해도 될까 요?”
“훌륭한 선택이야, 나머지 놈들 은 감당하기 버거울 테니까.”
시선을 옮기어 고대의 존재를 바 라보고 있던 위지강이 고개를 주억 이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서연의 신 형이 허공을 가르고는 키투샤를 향 해 쏘아졌다.
파지직-!
단숨에 허공에서 뻗어 나온 회백 색의 촉수들이 키투샤의 육신을 휘 감는다.
‘광기제.’
눈에 보이는 크기보다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손끝의 감각에서연 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태껏 상대해왔던 반푼이들과는 달랐다.
마치 고대의 존재들과 흡사한 듯 한 위용을 풍기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강한 힘을 제 대로 다루고 있지 못했다.
흡사 억지로 힘을 끌어올린 듯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이유도 납득이 갔다.
고대의 존재에 종속되어 한계점 이 제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광기 제가 가진 힘은 굉장하다.
“크아오-!”
괴성과 함께 가벼운 몸부림을 쳤 음에도 불구하고 공허의 촉수들이 힘없이 끊겨 나간다.
크로투보다도 힘이 훨씬 강한 느 낌이다.
“매력 있어, 가장 맛있는 광기일 것 같네.”
서연의 혀가 입술을 핥는 순간이 었다.
파앗-!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휘두른 주 먹은 서연의 코앞을 스쳐 지나간다.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낸 서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계속 괴성만 지르고 있어서 지 성이 없는 금수라고 생각했는데, 빈틈을 노리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가 보네.”
붉은색, 광기의 힘을 마구잡이로 뭉쳐서 쏘아 보내는 광기탄(狂氣 彈)이 서연의 시야를 뒤덮은 것도 순식간이었다.
작은 대륙 하나 정도는 단숨에 소멸시킬 정도의 엄청난 힘이 주변 으로 범람한다.
콰과과광-!
폭음 속,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 기구름 사이에 파묻힌 서연은 생각 했다.
‘전면전은 위험하겠네.’
우선 놈의 힘을 확실하게 파악해 낸다.
그리고 빈틈을 파고들어 간다.
촤르륵-!
목표를 정한 서연이 다시 한번 발을 놀리는 순간, 다시 한번 허공 을 찢으며, 공허의 촉수들이 모습 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연이 키투샤와 격돌하고 있을 때.
“아끼는 제자인 만큼 우선권을 주도록 하마, 오른쪽, 왼쪽 어느 놈 을 상대하겠……!”
질문을 던지던 위지강의 앞으로 검은 회오리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다.
콰지지직-!
세계를 부숴버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뻗어진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위지강의 전신을 덮친다.
콰과광-!
폭음과 함께 뒤로 밀려난 위지강 은 검은 보호막에 둘러싸인 채 몸
을 벌떡 일으키며 눈을 붉혔다.
“어색하군, 이런 식으로 선제공 격을 당한 건 오랜만이라서 말이 야.”
쿵-!
“고작 이 정도 일로 충격을 받으 면 곤란하지, 곧 처음으로 죽음이 란 걸 맞이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놓으라고.”
지면으로 떨어져 내린 주샤콘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다시금 신형을 움직인다.
폭풍과 같은 그 압도적인 위용에 눈살을 찌푸린 위지강이 높게 치켜
든 발을 땅으로 내려찍는다.
그러자 놀랍게도 맹렬한 기세로 몰아치던 주샤콘의 폭풍이 반으로 갈라지며 소멸한다.
‘천마군림보.’
천마를 상징하는 보법이자, 위세 를 떨치는 무공이다.
위지강이 펼치는 무공을 본 서준 이 내심 헛웃음을 홀렸다.
일순간이라지만, 그저 내력을 발 산하는 것만으로 고대의 힘을 파훼 했다.
심지어 폭풍을 갈라낸 위지강은 곧장 경신공을 펼쳤고, 직후 물 흐
르듯이 자연스럽게 초식들을 펼치 며 주샤콘을 압박해나가고 있었다.
여유롭다.
때문에 위지강이 수마나스와 접 전을 치르게 될 서준을 향해 조언 을 해주려던 순간이었다.
“수마나스가 다루는 심연의 힘을 조심하도록 하……!”
갑작스레, 지면에서부터 일어난 주샤콘이 축적해놓은 광기를 개방 하더니 붉은 폭풍을 일으키며, 위 지강의 신형을 향해 쏘아낸다.
“크읍-!”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밀려난 위
지강의 검은 눈동자가 정면의 주샤 콘을 응시한다.
주변에 있는 심연에 이어 붉은색 의 기운, 광기의 힘까지 발산하고 있는 주샤콘의 모습이 보였다.
“심연과 광기라……. 설마 천 대 륙에서 한 번에 두 가지 힘을 다뤄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는데.”
비로소 이제야 전쟁을 일으킨 이 유가 납득이 갔다.
전쟁은 광기를 낳는 법이다.
하나둘씩 맞춰져가는 퍼즐에 위 지강의 입가에 진한 호선이 그려진
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싸움이 되겠 어.”
무극의 경지에 도달한 전투 감각 을 더욱더 날카롭게 일으킨 위지강 의 신형이 폭풍을 몰아내며 단숨에 주샤콘에게로 쏘아진다.
“말과는 달리 움직임은 상당히 다급해 보이는군.”
“이 세계에 광기도 그리 많지도 않을 텐데. 이렇게까지 많이 사용 하는 걸 보면 네놈도 처음부터 전 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은데?”
위지강의 말에 조소를 지은 주샤
콘의 신형이 모래가 되어서 흩어진 다.
콰과광-!
이어서 갈라진 틈에서 솟구친, 모래 해일이 단숨에 위지강의 시야 를 뒤덮는다.
위지강은 그 해일을 파고들어 주 샤콘의 본체를 찾으려 하지만, 이 미 그는 허공 높이 날아오른 뒤였 다.
“굳이 천천히 갈 이유가 없지, 힘의 차이가 명확한데.”
“전의 세계를 빼앗길 때도 비슷 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여전히
거짓말이 서툰 편이구나.”
주샤콘이 고개를 크게 내저으며 심연의 일부를 끌어당겨 또다시 폭 풍을 일으키려 한다.
심연과 광기.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 힘을 동시에 다뤄내며 연달아 폭풍을 일으킨다.
계속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는, 과거에도 위지강을 곤란케 만들었 던 주샤콘의 능력이었다.
“인정하지, 그런데 고작 이 따위 공격들로 이 몸을 막을 수 있을 거 라 생각하느냐?”
솔직히 말하자면, 주샤콘의 공격
은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주샤콘이 빚어내는 폭풍 은 심연 혹은 광기의 힘으로 일어 난다.
한번 폭풍에 휩쓸리게 된다면 헤 어날 수 없는 매서운 폭풍이다.
그런 것을 순식간에 일으키고, 원하는 곳으로 발산해낸다.
위지강은 그 위협을 충분히 인지 한 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폭풍을 피 하기 위해서는 지상보다는 공중이 훨씬 더 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 었다.
“네놈과 정면에서 정정당당히 겨 뤄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샤콘은 싸움을 피하려는 듯 다 시 한번 폭풍을 일으킨다.
이어서 시야를 가려내는 검은 폭 풍이 위지강의 전면을 뒤덮었다.
서연은 광기제, 키투샤.
위지강은 주샤콘과 실랑이를 하 고 있을 무렵 서준은 수마나스의 바로 앞까지 당도했다.
“크하하-! 모든 것이 내 계획대 로 되었구나.”
폭소를 터뜨린 수마나스의 입가 에 자신감 어린 미소가 흐른다.
“무슨 소리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 서준의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말에 수마나 스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진다.
“내가 계획한 대로 혼돈제 네놈 이 내 앞에 홀로 섰다는 뜻이다.”
“이게 네 계획이라고?”
“그래, 빠르게 네놈의 힘을 집어 삼키고 주샤콘과 합세하여 위지강 마저 처치하는 것이지.”
“나를 집어삼키려면 날 이겨야 하는 거 아니야‘?”
“어려울 거 없는 일이지.”
“아무리 봐도 너무 꿈이 큰 것 같은데.”
여유로운 서준의 모습에 수마나 스의 입가로 헛웃음이 흐른다.
“고대의 존재를 한 번 사냥해봤 다고 기고만장한 것 같은데, 네놈
이 사냥한 보크루그와 이 몸을 같 은 수준으로 보고 있다면 큰코다치 게 될 것이다.”
“어차피 같은 고대의 존재면서 애써 급을 나눌 필요 없어, 네가 무슨 고대의 신도 아니잖아?”
“그분들의 존재를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수마나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쏘아내듯이 발산하던 불쾌한 감 정은 이내 살기가 되어 서준을 향 한다.
무수히 많은 은하의 생물들, 그리고 주신이라고 칭송받는 존재들
조차 머리를 조아렸으며, 같은 고 대의 존재조차도 두려워한 심연의 힘이다.
“말로 하다가 밀리니까 살기나 쏘아대는 걸 보니 차마 반박할 수 가 없나 봐?”
“그분들의 존재를 언급한 죄, 영 멸로 치르게 될 것이다.”
“영멸시킨다는 말에 두려움을 느 낄 이유가 있나? 애초에 우리가 친 선비무나 하려고 이렇게 마주 선 거는 아닌데 말이야.”
서준의 입가에 조소가 흐르고 있 던 순간, 수마나스가 휘감고 있던
심연들이 날카로운 칼날이 된다.
쉬이이익-!
허공에 떠오른 심연의 칼날이 세 계를 가르며 쏘아진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 초광속 에 달하는 속도다.
어느덧 수마나스가 빚어낸 심연 의 칼날이 서준의 시야를 뒤덮고 있었다.
쾅-!
허나 서준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 소를 유지한 채로, 가볍게 손을 내 뻗어 칼날들을 튕겨낸다.
“이런 공격으로는 내 옷깃도 베 지 못할걸?”
“걱정하지 말거라.”
콰드득-!
다시 한번 수마나스가 두르고 있 던 심연이 움직인다.
이번에는 칼날을 빚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해서 수마나스의 신체가 변 화를 맞이한다.
인간과 비슷했던 신체는 삽시간 에 사라진다.
튼튼하면서도 날카로운 맹수의
손톱과 발톱, 등 뒤에서는 촉수와 같은 꼬리가 치솟았다.
문제는 이런 손톱과 발톱, 꼬리 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얼핏 잡아도 수천 개, 그 엄청난 숫자에서준의 입가에 헛웃음이 흐 른다.
“이게 본모습인 거야?”
물음을 던지고 있던 순간, 이전 보다 두 배는 빠르게 뻗어온 날카 로운 손톱이 볼 끝을 스치고 지나 갔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