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권 1화
476화
천 대륙, 카라후의 도움을 받아, 본래 있던 위치로 돌아온 서준이 주변 풍경을 보고는 깜짝 놀란 표 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울창했던 숲의 나무들은 마구잡 이로 부러져 있었고, 근방의 도심 지에는 불탄 흔적이 가득했다.
“전쟁이라도 일어난 건가?”
재빨리 허공으로 떠올라 주변을
둘러보던 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졌 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안 력을 키워 반경 수십 킬로미터를 둘러본 결과, 이 땅 위에서 멀쩡하게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가 내가 알던 천 대륙이라 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부정할 수가 없었다.
곳곳에 남아있는 흔적, 나무나 도심지의 위치들은 분명 망각의 시 련장으로 이동하기 전 보았던 것과
똑같았다.
“……대체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지.”
헛웃음을 홀리던 서준은 멀리서 부터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에 정신 을 집중했다.
‘ 이건?’
익숙한 기운이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서준은 어느덧 가까워진 검은 무복의 무인 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안도의 미 소가 흘렀다.
무슨 말을 채 내뱉기도 전이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든 위지강과 서 연이 단숨에서준의 앞에 선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스승님과 동생의 모습에서준의 입가에 미소 가 흐른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 까?
서준의 얼굴을 마주한 위지강과 서연의 입가에도 숨길 수 없는 미 소가 흐른다.
“이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 구나.”
위지강의 말에 동조를 한서준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다니느라 엄청나게 애 썼어.”
미간을 찌푸린 채로, 쏘아보는 서연의 모습에서준이 웃음을 보인 다.
“미안, 상황이 조금 있었어.”
“그래도 무사해 보이니 다행이 네.”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히 무사한
것이 아닌 한 단계 더 성장을 했지 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더 높은 경지로 발돋움했 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천 대 륙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우선 위지율 님이랑 혁련무강은 무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믿고 있었지만 조금은 불안한 마 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서준에게서 확 언을 듣게 되었다.
자연스레 위지강의 입에서 안도 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후, 다행이구나.”
“고대의 존재들의 노림수도 어느 정도 알아냈습니다.”
이어지는 서준의 말들에 위지강 과 서연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서준과 위지강, 서연이 재회를 했을 무렵.
“사라졌던 혼돈제, 한서준이 되 돌아왔다.”
폐허가 된 제국의 수도, 그 중심 에 위치한 천제궁의 가장 높은 곳 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검은 형 상, 수마나스가 입을 열었다.
정면, 숨을 죽인 채 수마나스가 입을 열기만 기다렸던 붉은 눈동자 의 주샤콘이 고개를 번쩍 든다.
“어디지?”
수마나스는 이어진 질문에도 아 무런 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눈매를 찌푸리며, 매우 불 쾌한 안색을 드러낼 뿐이다.
“근방에 있던 위지강 쪽과 합류 했다. 예견했지만 너무나 빠르군.”
말을 내뱉은 수마나스는 검지로 앉아있던 의자의 손잡이를 몇 번이 고 두드린다.
‘정복왕의 사도 측은 키투샤면 충분하겠지만 내가 위지강을 상대 할 수 있을까……
객관적인 전투력을 비교하던 수 마나스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다.
어렵다.
광기제들이 더 많은 시간을 끌어 서 완벽하게 심연을 불러올 수 있 도록 해주어야 했다.
지금처럼 불안전한 상태로 이끌 어 낸 심연으로는 위지강을 흘로 감당할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헛웃음이 흐 른다.
‘어이가 없군.’
수많은 은하의 파멸이자, 심연의 지배라 칭송받던 고대의 존재인 자 신이 전력에서 밀릴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허나 위지강과 혼돈제의 연합이
부담된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 었다.
이런 불안정한 심연으로는 승리 를 거머쥘 수 없었다.
계산을 마친, 수마나스가 입을 열었다.
“위지강을 맡아줄 수 있겠나?”
“불가능하지는 않다, 황제의 가 면을 쓰고 일으켜 준 전쟁들 덕분 에 세계에 광기가 가득 찼거든.”
만족스러운 대답에 수마나스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최대한 빠르게 혼돈제를 사냥한 이후에 합류하도록 하마.”
괜한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심연이 불안정한 상태라 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전 쟁을 벌여 세계를 광기로 퍼뜨린 것이다.
상대의 가장 강력한 전력이라 볼 수 있는 위지강 쪽은 현재 가장 강 력한 힘을 가진 주샤콘이 상대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실제로 지금 위지강과 대등하게 전면전을 벌일 수 있는 것은 주 능 력인 광기와 어둠의 힘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주샤콘뿐일 것이다.
‘여전히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 겠지만, 적어도 시간을 끌어줄 수 는 있겠지.’
계산을 끝마친 수마나스는 방금 전, 자신이 느꼈던 혼돈제의 힘을 떠올린다.
같은 고대의 존재인 보크루그를 사냥했다.
비록 보크루그가 고대의 존재 중 가장 최약체였고,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고는 하나 무시할 정도는 아 니었다.
아무런 대비 없이 맞붙는다면 쉬 운 상대는 아닐 것이다.
하나 이곳에는 불안정하다지만 심연의 힘이 존재했다.
‘승리는 확정이다.’
다소 돌아오고, 변수가 생기긴 했지만 덕분에 보상이 더 달콤해졌 다.
기존에 목표로 했던 위지강의 힘 뿐만 아니라 혼돈제와 정복왕의 사 도의 힘마저 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수마나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 가 흐른다.
“키투샤, 전면전을 준비하거라.”
“충-! 심연의 지배자님의 뜻을 받듭니다.”
키투샤의 입가에도 탐욕이 어린 미소가 흐른다.
경쟁자라 볼 수 있었던 다른 광 기제들은 모두 소멸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전쟁 만 무사히 마치고 난다면 더 높은 곳을 향해 발돋움을 할 수 있게 되 었다.
이런 둘도 없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확실하게 충성을 보이고 많은 힘 을 허용받는다.
키투샤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 어나며 천제궁을 둘러싸고 있는 광 기의 군단을 향해 소리친다.
“군단이여! 전쟁을 준비하여라!”
우렁찬 소리에 침묵을 지키고 있 던 광기의 군단의 입가에서슬 퍼 런 미소가 흐른다.
크아아악-!
소름 돋으면서 기이한 외침과 함께, 광기에 물든 전사들이 병장기 를 치켜들더니 스스로의 심장을 꿰 뚫는다.
동시에 바닥에 맺힌 피의 강이 키투샤의 몸으로 홀러들어가기 시
작했다.
곧 있올 본격적인 전쟁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 것이었다.
“홀륭하구나.”
“곧바로 전면전을 벌이는 게 맞 는 판단이었네요.”
재회 이후, 서준에게서 현재 천
대륙의 상황과 고대의 존재들의 정 복 방식에 대해서 전해 들은 위지 강과 서연은 고개를 주억인다.
“우리의 어정쩡한 태도가 놈들에 게 시간을 주는 꼴이었군.”
역시 사람은 본래 하던 대로 행 동을 해야 했다.
괜히 망설였다가 고대의 존재들 에게 시간을 줘버렸다.
“지금이라도 빠르게 움직이는 편 이 좋겠군.”
수마나스와 주샤콘에게는 그들을 따르는 광기제들이 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들의 힘을 보고, 겪었다.
크로투, 캬쥬, 카릴.
모두 손쉽게 이겨냈지만, 만약 심연이 이 세계를 뒤덮는다면 이야 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놈들이 숨어 있을 만한 위치 는……. 갑작스러운 황실의 행동들을 생각하면 황궁 쪽이겠네요.”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기 다렸다는 듯이 황제가 머물고 있다 는 천제궁에서 눈에 보일 정도의 많은 광기가 분출된다.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닌 것 같 은데……
고대의 존재가 직접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다른 광기제나 군단이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 같군.”
위지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시간을 끌려는 속셈일 수도 있 겠군.”
“이러고 있을 게 아니네요.”
확실한 것은 고대의 존재 쪽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깨달은 서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더 이상 시간을 주지 말고 확실
하게 몰아치죠.”
“본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바로 가보자.”
서로의 의사를 확인한 세 사람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단숨에 초 광속의 세계로 들어갔다.
파앗-!
단숨에 천제궁이 있는 황실의 수 도에 도달한서준이 서연을 바라보 았다.
전과 달리 일그러져 있거나, 무 언가에 지배되고 있다는 느낌이 전 혀 없는 얼굴이다.
‘성장했네.’
서준은 과거, 스스로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던 서연이 훨씬 강해 졌음을 깨달았다.
정확하게 어느 수준일지 짐작조 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키고도 서연은 멀쩡하기만 하다.
“듬직해졌네.”
“……오해하지 마. 오빠한테 칭 찬받으려고 노력한 거 아니야.”
“당연히 그러겠지.”
피식- 미소를 흘린 서준의 시선
이 천제궁을 바라본다.
궁의 주변에 둘러진 심연의 장 막, 결계의 틈을 찾아내는 중이었다.
아마 고대의 존재들은 진즉에 침 공을 눈치챘을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없네, 설마 겁먹은 건가?”
일부러 내뱉은 도발적인 언사에 도 큰 변화는 없었다.
그저 처음보다 더 거대하게 부풀 어 오른 심연의 장막이 일대를 휘 감고 있었다.
“우리를 내부로 유도하려는 것
같군.”
위지강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목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더 이상 시간을 끌려줄 생 각은 없었다.
“어지간히도 시간이 많이 필요한 가 보군.”
이미 서준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 는 만큼 위지강의 입가로 차가운 웃음이 흘렀다.
“정면으로 돌파하죠.”
서준의 의견에 위지강이 고개를 주억 인다.
“좋은 방법이긴 한데……. 쉽지 는 않을 거다.”
심연으로 펼쳐진 장막인 만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내부에 어떤 형태, 형질을 가졌 는지 아무것도 유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나 서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두 눈을 부릅- 뜬다.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 같거든 요.”
황금색으로 물든 서준의 눈동자 를 확인한 위지강의 입가에 헛웃음 이 흐른다.
“위지율에게 선택을 받았나 보구 나……. 너라면 자격은 충분했겠 지.”
미소로 화답을 한서준이 가볍게 몸을 풀었다.
심연이라는 것을 통찰하는 것은 확실히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경지로 발돋움을 했기 때문일까?
황금안에 심연의 내부가 훤하게 들여다보이기 시작했다.
“통찰 끝냈어요, 바로 길을 열겠 습니다.”
가볍게 내뻗어진 서준의 주먹, 그 중심으로 묵색의 장막이 반으로 갈라지며 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세 사람의 신형이 허공을 가르며 장막 안으로 사라졌다.
조용히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수마나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놈들이 심연 속으로 들어왔다.”
고작 1분이다.
절대적인 방어 능력은 아니었지만, 심연의 장막이 이토록 빠르게 파훼된 적은 없었다.
가만히 광기를 흡수하고 있던 주 샤콘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빠르군……, 골치 아프게 됐군.”
남은 시간은 길어야 5분 정도, 모든 준비를 끝마치지 못한 상황인 만큼 썩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허나 미룰 수는 없었다.
곧 벌어질 전투를 준비해야 할 때다.
“다들 무리해서 전면전을 벌일 필요는 없다, 시간만 끌면 될 것이 다.”
그 말에, 주샤콘이 고개를 주억 이며 동조를 표한다.
마찬가지로 광기의 군단의 힘을 흡수하며 전투를 대비하고 있던 키 투샤도 고개를 주억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내가 혼돈제를 처치하는 그 시 간 동안만 시간을 끈다면 우리가 손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샤콘은 굳이 불만을 표하지 않 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지금 수마 나스의 계획이 가장 효과적이면서 확실한 승리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10분이면 되겠지?”
“과하군, 5분, 놈이 가진 혼돈이 갑작스럽게 증폭한 것이 아닌 이상 곧장 혼돈제의 목을 베어내주도록 하지.”
수마나스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흐르는 때였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