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권 22화
472화
광기제이자 요황으로서 칭송받는 크로투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검은 무복의 사내를 멀리서부터 바라보 았다.
‘ 확실하군.’
전장에 홀로 모습을 드러낸 저 사내가 바로 위지강이다.
심장이 크게 박동한다.
고대하던 목표가 눈앞에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놈의 목을
잘라내고, 취하고 싶었다.
하나 크로투는 생각과 달리 발걸 음을 뗄 수가 없었다.
‘강하다.’
이백만이 넘는 군단.
그리고 수십에 달하는 대요괴들.
강력한 부대라고 할 수 있지만 위지강의 힘 앞에서는 하찮을 따름 이다.
‘상상했던 것, 아니 그 이상이군.’
아무리 무극에 도달한 존재라 할 지라도 가진 힘이 ‘무한’은 아닐 것 이라 생각했다.
기운과 체력 혹은 정신력 중 무 엇이라도, 일부라도 깎여나갈 것이 라 생각했다.
허나 허황된 추측이었다.
오히려 위지강의 정신력과 힘은 전투를 이어갈수록 더욱더 강해지 고, 날카로워져 가고 있다.
애초에 힘들게 모은 이 숫자 자 체가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굳이 싸워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패배했군.”
혼잣말을 들은 것일까?
멀리서부터 검은 주먹을 휘두르 고 있던 위지강의 차가운 시선이 크로투를 직시한다.
하나 어째서인지, 위지강은 전의 를 잃은 크로투를 보고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소 여유로운 모습으로 달려드 는 요괴들을 모두 영멸시키고 있을 뿐이다.
마치 누군가를 위해 무대를 마련 해주는 것 같은 모습.
이미 패배를 예견한 크로투의 입 장에서는 아주 고마운 일이었다.
‘지금이라면 도망칠 기회가 있
다.’
이런 크로투의 속마음을 읽은 것 인지, 차갑기만 한 위지강은 고개 를 내젓는다.
명백한 부정이다.
뒤이어, 위지강이 고개를 까딱이 며 한 지점을 가리키자 자연스레 크로투의 시선이 움직인다.
‘정복왕의 사도……!’
저런 감시망이 있다면 도망조차 칠 수 없었다.
허나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크로투가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 킨다.
‘요괴들이 모두 쓰러지기 전에 정복왕의 사도만 죽여 낸다면.’
차가운 눈을 빛내고 있는 크로투 의 모습에 위지강의 입가로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진다.
‘ 설마......
일순간, 크로투의 머릿속에 번갯 불이 튀겼다.
‘처음부터 내가 정복왕의 사도와 싸우길 바랐던 것인가.’
크로투의 입가에 헛웃음이 흐른
완벽하게 농락당했고, 시험대에 놓였다.
허나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안도감이 밀려온다.
정복왕의 사도를 쓰러트려낸다 면, 위지강과의 전투를 피할 수 있었다.
유일한 활로를 찾은 크로투의 눈 동자에 결의가 차올랐다.
위지강은 생각했다.
지금 천 대륙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뭐가 있을까?
가장 최우선이 되는 과제는 고대 의 존재들을 영멸시키는 것이다.
허나 전면전을 펼치기에는 무리 가 있었다.
제대로 된 적의 전력을 알 수 없 을뿐더러, 위지율의 행방조차 알 수 없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전투를 벌일
수는 없었다.
때문에 위지강이 선택한 길은 서 연을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스스로 강해지기를 열망하며 끝 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적절한 상대 혹은 계기만 있다면 벽을 넘을 수 있는 재능마저 가지 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서연을 위한 적 절한 상대가 나타나주었다.
‘저놈이 크로투.’
위지강은 소문으로 듣던 요황, 크로투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평범한 요 괴는 아니군.’
정확히 말하자면 요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혼돈인, 그중에서도 광기제라 칭 송받을 수 있을 정도의 많은 광기 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느껴지는 전투력은 얼마 전 쓰러 트렸던 캬주보다도 강하다.
심지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턱 대고 찾아온 캬주와 달리 제법 머 리를 굴릴 줄도 알았다.
‘요괴들을 이용해 세력을 만들었다.’
최대한 체력을 빼놓기 위한 계략 이었다.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고, 훌륭하 다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놈이 위지강의 힘을 몰랐 기에 벌일 수 있던 오판이었다.
200만이나 되는 대군을 위지강과 싸우게 해준다는 것은 오히려 감각 이 날카로워지도록 도와주는 일뿐 이다.
이미 전쟁의 승패가 갈렸다는 것 이었다.
‘내가 죽이는 것보다 서연에게 양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겠지.’
아직 싸워야 할 적들이 남아있었다.
가능하면 유능한 동료가 많을수 록 좋았다.
간단한 논리였다.
때문에 위지강은 크로투에게 달 려가지 않고 요괴 군단을 쓰러트리 기로 마음먹었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요괴 떼는 지겨울 정도로 그 숫자가 많았지만 위지강에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 천마군림보.”
높게 치켜든 발을 땅으로 내려찍
는 순간이었다.
콰과과광-!
땅이 수백, 수천 갈래로 요란한 지진을 일으킨다.
무공이라 부르기보다는 이적에 가까운 능력을 펼쳐, 수만이나 되 는 요괴를 아주 손쉽게 학살한 위 지강이 크로투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서연과 크로투가 마주하 고 있었다.
허나 생각했던 것만큼 훌륭한 무 대는 아니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전선의 뒤편, 크로투의 주변에 머물고 있던 요괴들이 둘의 싸움에 끼어들려 하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로 서연이 패배하지 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의 상황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일이 틀어지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었다.
“흐음……. 어떻게 해야 하나.”
눈에 띄게 줄어든 요괴 군단을 무심히 바라보는 위지강의 시선이 뒤를 향했다.
인간들 중 제법 실력이 괜찮다
싶은 이들이 몰려오는 모습이 보인 다.
“나쁘지 않겠군.”
위지강은 다시 한번 천마군림보 를 밟으며 생각했다.
저들이 도움이 될까?
사실, 전투에 있어서는 별 필요 는 없다.
하지만 조무래기들을 처리하기에 는 나쁘지 않은 전력이었다.
‘특히 저, 백발의 노인.’
가장 전면에서 달려오는 금양백 이 위지강을 향해 외쳤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혹시 전 설 속의 무신님이십니까!?”
금양백은 두 눈으로 본 것조차 믿기 힘든지, 눈동자에 반신반의하 는 감정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과거, 처음 천 대륙에 와서 강을 만들어낼 때 설화가 퍼진 것을 알 고 있던 만큼 위지강은 담담히 고 개를 주억인다.
흔들리는 금양백의 눈빛, 생각했 던 것과 달리 그리 위엄 넘치는 모 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렴 상관없다!’
애초에 이 전장에서 중요한 것은 위엄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무신님을 돕는다!”
드높은 목소리에 초절정에 달한 무인들이 병장기를 뽑아들며 요괴 들을 향해 달려든다.
콰과광-!
갖가지 무공들이 펼쳐지며 요괴 군단의 전면을 어지럽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훌륭하군.’
위지강은 그 전장의 광경을 다소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검에는 눈이 없었다.
난전에 휘말리게 된다면 눈먼 검 이 아군을 베어낼 수 있었다.
한데 금양백이 이끌고 온 무인들 은 달랐다.
“거리를 벌려라!”
“피해!”
무공이 펼쳐지는 순간, 빠르게 인지하고 서로 간에 목소리를 높이 며 몸을 웅크리거나, 검격의 범위 바깥으로 피해낸다.
그 와중에 적의 발목을 잡기 위 해 검을 휘두르는 것도 잊지 않는 다.
잽싸고, 눈치가 빠르다.
적에게 발이 묶여 다소 느리게 범위를 피해내지 못해도 괜찮았다.
우웅-!
그들이 입고 있는 갑옷이, 혹은 방패와 검이 갑작스럽게 빛을 발하 며 본인에게 다가오는 무공의 여파 를 줄여준다.
‘보구의 힘인가?’
막을 수 있는 공격의 수준이 한 정되기는 하겠지만, 효과는 확실했 다.
그야말로 전쟁에 특화된 무인들
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기운은 보잘것없는 것 같더 니..
생각보다 전투 감각이 제법이었다.
입가로 묘한 미소를 지은 위지강 이 아직 전장에 뛰어들고 있지 않 은 금양백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맡기겠다.”
“당장이야 괜찮습니다만! 구미호 급의 대요괴가 셋 이상, 혹은 요황 이 온다면 무리입니다.”
“그건 걱정 마라.”
단숨에 허공을 박차며 날아오른 위지강이 허공에 검은 기운을 흩뿌 리자, 수십 자루나 되는 검의 형태 로 변한다.
위지강은 허공에 뜬 묵색의 검을 잡아내고는 허리를 돌렸다.
휘이이잉-!
내던져진 검은 바람을 찢으며 달 려드는 대요괴의 숨통을 단숨에 끊 어 놓는다.
이러한 동작이 단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졌다.
10초가량이 흘렀을 때에는 전투 력이 뛰어나던 대요괴들은 대다수
가 시체가 되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살아남은 이들도 적지 않은 부상 을 입은 채 놀란 눈으로 위지강을 바라보고 있다.
“ 과연……
금양백은 역시 감탄을 감추지 못 했다.
‘허황된 설화 따위가 아니었구 나.’
검을 내던질 때의 그 압도적인 힘과 파괴력은 그의 심장을 마구잡 이로 자극했다.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다.
이길 수 있다.
이긴다.
확신을 가지며 눈을 빛낸 금양백 은 정면에서 부상을 입은 채로 달 려오는 대요괴를 바라보았다.
“다들 몰아쳐라!”
검을 말아 쥔 채로, 고함을 내지 르며 돌진하는 금양백의 검격이 대 요괴의 발톱과 부딪치며 굉음을 일 으켰다.
인간들이 전장에 참여했다.
크로투의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 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
‘지레 겁먹고 멍청하게 지켜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거늘……
갑작스레 전투에 참여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위지강을 조금이라도 묶어내어 유리하게 전투를 이끌어 가려 했던 크로투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요괴들을 이용하여 유리한 고지 를 선점한다는 얕은 수를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전면전으로 응대한다.
붉어진 눈의 크로투는 곧장 공중 으로 도약했다.
“오너라! 정복왕의 사도여!”
그의 외침에 하늘과 땅이 울렸 다.
광기제가 발산하는 압도감에, 복 잡하던 전장에 단숨에 침묵이 찾아 오는 듯했다.
“노골적으로 위치를 드러내다니
멍청하네.”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날아든 주 먹이 단숨에 안면에 꽂힌다.
....
반응할 틈새도 없이 지상으로 추 락한 크로투의 육체는 바닥에 거대 한 크레이터를 만들어 낸다.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해줄 테니, 서로 방해 없이 제대로 즐겨 보라고.”
어느덧 둘의 뒤를 쫓아온 위지강 이 말아 쥔 주먹을 내지른다.
쾅-!
기파가 폭발하며 크레이터 주변 으로 달려들고 있던 일대의 요괴들을 순식간에 영멸시켜버린다.
‘과연, 강하군.’
크로투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 가 흐른다.
예측은 했지만 위지강은 강했다.
‘정복왕의 사도를 쓰러뜨린다고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문은 필요 없다.
어차피 확정된 죽음이다.
중요한 것은 이 전투에 무얼 남 기냐는 것이다.
‘우주에 이름을 남길 만한 역사 를 써낸다.’
붉어진 눈의 크로투가 전신에 힘 을 주자 근육이 부풀어 오르기 시 작한다.
콰광-!
폭음과 함께 지축이 거세게 흔들 리기 시작한다.
단숨에 덩치가 3배 이상 커진 크 로투가 휘두른 도끼는 대지를 갈라 내고, 날아가 우뚝 솟은 작은 산의 일부를 무너트린다.
쿠르릉-!
서연은 발끝을 스치는 그 일격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힘은 무식할 정도로 세네.”
공허의 힘을 다루는 서연의 물리 력은 생각보다 그리 강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존재들에서 비해서 압 도적이긴 했지만, 고대의 힘을 다 루는 이들 중에서 강하다고 보기에 는 무리가 많았다.
그 많은 단점을 무공으로 커버하 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크로투는 광기의 힘을 다루고 있음에도 물리력이 상 당히 위협적이었다.
‘강하다.’
적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난적이라 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맞지 않으면 그만이야.’
생각을 정리한, 서연이 가늘어진 눈매로 크로투의 움직임을 주시할 때였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